Story Reader / 우주 연대기 / 밤안개 속의 진혼곡 / Story

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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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명의 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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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로니카는 무기를 들어 올리더니 자기 뜻에 반하는 모든 것, 산송장이나 다름없는 그 "참석자들"을 겨누었다.

하지만, 이 향연의 주인은 이러한 변수를 예상하지 못했고, 불협화음으로 연회의 흐름이 끊기는 것을 원치 않았다.

이 도시의 치안관으로서, 더 이상 그들을 지키고 싶지 않은 거냐?

예전에 매일 안개 속을 순찰하면서 그들이 괴물에게 공격받지 않기만을 바랐잖아.

그들 또한 너에게 모든 희망을 걸고 하루하루 기도했다. 요괴 새가 강림해 자신들의 평안을 지켜 주길 바라면서 말이야.

그런데 지금 너는 요괴 새의 힘을 손에 쥐고도 그들을 적으로 돌리려는 거냐?

"로코"의 목소리에 살아 있는 시체나 다름없던 "참석자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생기를 잃은 수많은 잿빛 눈동자가 베로니카를 뚫어져라 응시했다.

빵집 주인, 꽃집 소녀, 술집 바텐더...

모두 베로니카에게 더없이 익숙한 사람들이었고, 안개 속에서 끊임없이 평안을 지켜 주고자 했던 이들이었다.

하지만 지금 베로니카에게 너무도 익숙했던 얼굴은 모두 생기 없는 석고상처럼 무표정한 가면이 되어 있었다.

요괴 새여... 마침내... 강림하셨도다.

우리에게... 마침내... 수호자가... 생겼다.

썩어 가는 듯한 수많은 목구멍에서, 가느다란 실 같은 말소리만이 흘러나왔다.

진정으로 생명과 의식을 지닌 자들의 기도가 아니라 지옥에서 온 망령의 목소리였다.

저희입니다... 저희라고요.

더는... 저희를... 지켜 주지 않으시려는 겁니까?

두 눈을 감은 베로니카는 그 망령들의 청원에 응하지 않았다.

...

너희들은 이미 여기에 없어.

내가 지키려던 건 이곳에 살고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이지. 이런... 살아 있는 시체가 아니야.

치안관... 요괴 새여...

하하... 하하하하...

이성을 잃은 시민들이 태엽이 망가진 기계처럼 광기에 휩싸여 웃어 댔다.

광란의 웃음소리와 함께, 선두에 선 시민의 머리가 베로니카를 비웃기라도 하는 듯 격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부서질 듯한 머리가 흔들거리더니, 갑자기 한쪽으로 비스듬히 기울어졌다. 그러자 썩은 과일이 마침내 가지에서 떨어져 나가듯, 핏기 없는 잿빛의 살갗을 드러냈다.

석고처럼 창백하고 썩어 들어간 살갗 안에서 수많은 쥐가 기어 나왔다.

이곳에는 더 이상 진정으로 살아 있는 사람이 존재하지 않았다. 오직 더러운 쥐들이 움직이는 썩어 갈 육체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너희들의 몸은 이런 더러운 것들에 지배당해서는 안 돼.

내가... 너희들을 보내 줄게.

편히 잠들기 바라.

베로니카는 기병창을 휘둘러, 시체와도 같은 육신들을 가로로 베어 냈다.

그러자 생명 없는 육체가 베로니카의 공세 아래 산산이 부서졌고, 빈 껍데기가 되어 버린 몸뚱이에서는 수많은 쥐가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쥐들과 함께 짙은 어둠의 그림자들도 흩어져 나왔다.

수많은 어둠의 그림자가 생명이라도 지닌 것처럼 흐르며 솟구쳤다. 깃들어야 할 연약한 육신을 잃은 그림자들은 새로운 숙주를 갈망하며, 일제히 "로코"의 몸을 향해 모여들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베로니카의 눈에는 한 점의 망설임도 남아 있지 않았다.

어쩌려고? 과거의 "오랜 친구"에게 손을 대려는 거야?

더러운 "쥐새끼" 따위가 나에게 그렇게 말할 자격이 있나!

"로코"는 손안의 어둠의 그림자를 부추겨, 베로니카에게 덮쳐 가려 했다. 하지만 로코의 손짓은 마치 보이지 않는 힘이 그를 가로막고 있는 것처럼 갑자기 멎어 버렸다.

로코의 손에서 어둠의 그림자가 사라졌다. 그리고 힘을 부리던 오만한 그의 모습은 지금, 이 순간 더없이 평범한 "범인"의 모습으로 되돌아와 있었다.

로코는 어떤 보이지 않는 강대한 힘에 비굴하게 애원이라도 하듯 두려움에 떨며 좌우를 두리번거렸다.

안 됩니다. 제발, 제발 이 힘을 거두어 가지 마소서...

제가 그분을 받들겠습니다. 부디 제가 계속 그분을 받들 수 있게 해 주십시오.

그분을 위해 더 많은 실험 품을 찾아오겠습니다.

하지만 로코의 애원은 어떠한 응답도 얻지 못했다.

이제, 네 차례다!

기병창의 날카로운 빛이 한 점의 망설임도 없이, 현혹당하고 조종당한 육신을 갈라 버렸다.

사람의 형체조차 갖추지 못한 비쩍 마른 껍데기에서 더 많은 어둠의 그림자가 흩어져 나왔고, 그것들은 수많은 절망과 원한을 응축한 듯 비좁은 공간 안에서 흘러 내달렸다.

깃들 곳을 잃은 어둠의 그림자들은 마침내 새로운 목표를 찾아낸 듯, 인간을 향해 맹렬히 덮쳐 갔다.

어둠의 그림자가 습격하자 인간의 발밑 지면이 산산조각 났고, 몸이 빠르게 아래로 추락했다.

인간은 손에 잡히는 모든 것을 움켜쥐며 추락을 막아 보려 했다. 하지만 더 많은 어둠의 그림자가 휘몰아쳐 올라와 인간을 만겁의 나락 속으로 끌어 내리려 했다.

어둠의 그림자 속 모든 목소리가 광란의 절규를 토해 내고 있었다.

시민들의 목소리가 점점 희미해져 가더니 마침내 절대적인 힘을 가진 목소리가 이 모든 것을 장악했다.

항거 의지가 실험의 변수가 되어서는 안 된다.

사라져라, 필요 없는 "변수"여.

사악한 목소리가 인간의 이성을 집어삼킬 듯했고, 어둠의 그림자가 시야를 휘감으며 눈앞은 점점 어두워져 갔다.

자신의 힘으로 더는 버티기 힘들어졌을 때, 인간은 익숙한 목소리를 들었다.

[player name]!

힘이 다해 가던 그 순간, 인간은 따뜻한 두 손이 자신을 받쳐 올리는 것을 느꼈다.

주변은 여전히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뿐이었으나 귓가에는 바람을 가르며 날개 펄럭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괜찮아. 더는 아무 일 없을 거야.

인간의 눈앞에 익숙한 얼굴이 또렷이 들어왔다.

하지만 그림자의 등 뒤로 거대한 날개가 펄럭이며 인간을 받친 채 잔해로 변해 버린 그곳을 날아 가로지르고 있었다.

깨어나서 다행이야.

인간을 꼭 끌어안은 요괴 새가 어둠이 응집된 날개를 순식간에 펼치더니 거대한 기류를 일으키며 모든 것을 집어삼키려던 어둠의 그림자로부터 멀리 날아올랐다.

수많은 죄악과 비명이 그 아래 끝없이 깊은 암흑 속에 묻혀 있었다.

초연이 흩어지자, 그곳은 더는 사람들이 묻힌 무덤이 아니라 편히 잠들지 못한 영혼들을 위해 울려 퍼지는 진혼곡으로 변해 있었다.

베로니카는 지금까지 지켜온 도시를 이런 각도로 내려다본 적이 없었다.

한때 수없이 거닐었던 도시가 지금은 미궁처럼 발 아래 펼쳐져 있었다.

베로니카는 모든 거리와 골목을 마음속에 깊이 새겨 두었으나, 지금 이곳은 인적 하나 없이 텅 비어 하얀 안개만이 흐를 뿐이었다.

베로니카는 다시 두 날개를 펼쳐 허공을 가르며 날았다.

인간은 베로니카의 들릴 듯 말 듯한 한숨이 바람 속으로 흩어지는 것을 들었다.

베로니카가 늘 드러내던 강건함과 차가운 자존심 너머로 인간은 마침내 겹겹이 쌓인 강한 의지 속에 감춰진 진실한 내면을 볼 수 있었다.

전에 내게 숙명 앞에 고개 숙이지 말라고 했었지.

하지만 지금의 난 그런 "숙명"을 조금 다르게 생각하게 됐어.

꿈속에서 줄곧 들려오던 그 목소리는 끊임없이 나를 나약함과 타락으로 이끌려 했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사악한 요괴 새가 되게 하려고 말이야.

하지만 이제 더 이상 물러서지 않을 거야.

사악함이라 해도, 숙명이라 해도 좋아... 난 기꺼이 그런 "어둠의 면"이 되겠어.

그리고 넌 내가 따를 "빛"이야.

뭐가?

베로니카는 의아한 듯 품 안의 인간을 바라보았다.

...

베로니카는 인간 앞에서 대답하지 않았지만, 인간은 그녀의 팔에서 전해지는 힘을 느꼈다. 베로니카는 굳건한 포옹으로 말 없는 응답을 건넸다.

긴 밤의 마지막 어둠이 흩어지고 구름 사이로 첫 새벽빛이 비쳐 들었다.

새벽빛은 둘의 몸 위에 내려앉아 희미한 온기를 전하며 안개 아래로 펼쳐진 풍경을 밝게 비추었다.

마침내 베로니카는 인간을 안은 채 가장 잘 아는 도시에 사뿐히 내려섰다.

베로니카는 예전부터 안개 속 도시 전역을 수없이 순찰하며 발길을 이어왔다. 하지만 이제는 작별을 고할 시간이었다. 이 도시 안 모든 것이 끝나 있었고, 더는 지켜야 할 사람도 남아 있지 않았다.

베로니카와 인간은 어깨를 나란히 한 채 적막한 묘지를 묵묵히 바라보았다. 이곳에서 스러져 간 수많은 이 중, 온전한 무덤 난김 자는 없었다.

꽃다발이나 장례 의식은 없었고, 오직 침묵의 작별만이 있을 뿐이었다.

알렉세이, 그리고 이 도시의 모든 사람들... 너희는 그런 식으로 떠나면 안 됐어.

지금까지 너희를 제대로 지키지 못했어.

치안관으로서의 나든, "살육하는 요괴 새"가 된 나든...

그 전까지, 난 줄곧 "진실"만을 쫓아왔어.

안개 속에서 줄곧 누가 연쇄 살인을 저질렀는지, 무엇이 알렉세이의 목숨을 앗아갔는지 찾아 헤맸어.

그리고 안개 속에 "살육하는 요괴 새"가 정말 존재하는지, 내 꿈속에 계속 나타났던 그 장면들이 정말 현실이 될지...

하지만 지금, 그 "진실"은 날 비웃고 있어.

애초에 "범인" 따위는 존재하지도 않았으니까.

모든 게 "숙명"을 빌미로 내가 타락하기만을 기다려 온 함정에 불과했어. 결국 내가 이런 "살육하는 요괴 새"가 되기만을 기다리던 함정이었던 거야.

베로니카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자신의 등 뒤에 펼쳐진 두 날개를 바라보았다.

지금 내 모습이 어떻게 보여, [player name]?

...

베로니카는 답하지 않은 채 조용히 눈앞의 묘지를 응시했다. 하얀 안개가 둘 사이를 흐르고 있어 인간은 그녀의 표정을 분간할 수 없었다.

일렁이는 마음을 감추려는 듯 한참을 침묵하던 베로니카는 인간을 향해 몸을 돌리더니, 다소 뜬금없는 질문 하나를 던졌다.

말해봐, [player name]. 안개 속에는 무엇이 있을까?

빌어먹을 함정을 파 놓고 내가 광기에 빠지기만을 바랐던 그 "신"일까? 아니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또 다른 존재일까?

정말 솔직한 답변이네.

그 답례로 나도 네게 내 진심을 전할게.

네가 어디로 향하든, 어떤 사악함과 맞서든, 난 네 옆에 설 거야.

베로니카는 모든 짐을 내려놓은 듯 미소 지으며 고개를 들어 희미한 새벽빛이 얼굴에 내리쬐도록 가만히 두었다.

맞아.

탐정의 의뢰인 같은 건 더는 없어. 이제부턴 너와 함께 안개의 진실을 좇고 싶은 "동료" 한 명만 있을 뿐이야.

베로니카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인간에게 손을 내밀며 상대의 응답을 기다렸다.

말은 필요 없었다. 베로니카의 눈빛에 깃든 굳건함이 마음속 모든 것을 대변하고 있었다.

인간이 손을 내밀어, 새로운 "동료"에게 응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