짙은 황혼 속 도시는 깊은 잠에 빠진 듯했다.
그때 멀리서 들려오는 발소리가 밤하늘에 울려 퍼졌고, 도시에 들어선 일행은 이 죽은 듯한 정적을 깨뜨렸다.
그믐달의 희미한 빛이 잿빛 옷을 입은 그림자와 그 곁의 소녀가 나란히 걸음을 옮겨 도시로 들어서는 모습을 비추었다. 하지만 소녀는 이런 "고요함"을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것 같았다.
어라, 안개도 끼지 않았는데, 왜 거리에 한 명도 없는 거지?
예전 이곳 안개가 너무 짙어서 도시 사람들을 전부 미치게 만든 거 아니야? 그래서 서로 공격하다 결국 텅 빈 도시만 남게 된 거고...
직접 본 듯 생생한 "환상"을 그려낸 엘레나의 표정은 사뭇 진지했다.
뭐라는 거야? "증거에 기반한 추리"라고 하는 게 맞지.
그러고 보니, 우리 탐정 사무소가 이런 이상한 사건을 맡은 건 처음인 것 같네.
구역을 넘나드는 조사에 목표도 불명확하고, 의뢰인도 직접 모습을 드러내지 않다니... 사건이 끝나면 의뢰인한테 보수를 두 배로 받아야겠어!
엘레나는 그렇게 말하며 전보 한 통을 꺼내 이리저리 뒤집어 보았다.
"그레이 레이븐" 탐정 사무소에 의뢰할 게 있어. 이 지역의 "살육하는 요괴 새" 의혹 사건을 조사해 줘.
주소는 치안관 저택이야.
상황이 어떻든 바로 와 주시기 바라.
——치안관 베로니카
전보에는 치안관 저택의 위치를 상세히 그려 넣은 손 그림지도가 동봉되어 있었다.
대체 무슨 소린지 모르겠네. 영문 모를 소리만 늘어놓고, 말이야. "살육하는 요괴 새"는 또 뭐야? 게다가 이 의뢰인, 너무 막무가내잖아.
아무리 봐도 이... 의뢰서 자체가 미해결 사건인 것 같아!
확실히 신경 쓰이긴 해.
둘은 나란히 걸으며, 지도에 표시된 목적지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때, 멀리서 비틀거리는 여자의 그림자가 불현듯 스쳐 지나갔고,
그 여자는 휘청이는 발걸음으로 골목길의 큰 건물을 향해 나아갔다.
깊게 잠든 도시에서 홀로 환하게 불을 밝힌 이 건물은 유난히 눈에 띄었다.
문과 창문은 굳게 닫혀 있었으나 안에서는 희미한 기도 소리가 새어 나왔고,
입구 동판에 새겨진 "안녕의 집"이라는 글자가 가스등 불빛을 받아 흐릿하게 빛나고 있었다.
방문자가 문을 두드리자, 이윽고 육중한 대문이 굉음을 내며 활짝 열리더니 관리인인 듯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곳에는 무슨 일로 왔지?
저는... 요괴 새 님의... 가호를... 빌러...
문을 연 남자는 여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몸을 비켜 방문자를 안으로 들인 뒤, 아무렇지 않게 문을 닫았다.
멀리서 들려오는 대화 소리는 매우 작았지만, 엘레나는 예리하게 핵심 정보를 포착해 냈다.
저 사람이 방금 "요괴 새"를 언급했어. 설마 의뢰서에서 말한 "살육하는 요괴 새"를 가리키는 건가?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 온 둘 사이에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룰이 있었고, 엘레나는 알겠다는 듯 이내 미소를 지었다.
알겠어. 이제 변장할 차례군. "명탐정"... 아니. 새로운 신분을 생각해 봐야겠어.
[player name], 난 "여행 작가"를 연기할 거야. 그러면 너는...
좋아. 내가 생각한 것과 같네. 이러면 문제없을 거야.
다 됐어. 그럼, 조사... 아니, 여행 작가가 "살육하는 요괴 새" 전설을 취재하러 왔다고 하면 되겠어.
엘레나는 짐 속에서 두툼한 노트 한 권을 꺼내 그럴듯하게 가슴에 안았는데, 영락없는 "여행 작가"의 모습이었다.
"안녕의 집"... 이상한 이름이네. 요양원? 아니면 기도하는 곳인가?
어쨌든 여행 작가와 그녀의 "선생님"이 찾아온 걸 거절하지는 못할 거야, 그치? [player name].
인간은 눈빛으로 엘레나의 물음에 답하면서도, 마음 한편으로는 이 심상치 않은 건물에 대한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문을 몇 차례 두드리자, 육중한 문틈이 조용히 벌어졌다.
이윽고 관리인인 듯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고, 둘을 살피는 그의 눈빛에는 경계와 신중함이 서려 있었다.
남자의 뒤로 보이는 "안녕의 집"의 널찍한 로비에는 조명이 어두웠음에도 많은 사람이 모여 있는 것이 어렴풋이 보였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자신의 자리에 조용히 앉아, 방 중앙의 제법 큰 연단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평온함보다는 외부 세계에 대한 무관심에서 비롯된 무감각함이 더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모든 이가 조용히 앉아 있었으며, 낯선 이들의 방문에도 어떠한 관심조차 보이지 않았다.
마치 둘의 등장이 이 은밀한 집회의 흐름을 일순간 가로막은 듯했다.
너희는?
맞아. 나와 선생님은 여행하면서 추리 소설의 소재를 모으고 있어. 그래서 괴담이든 살인 사건이든 상관없이 전부 취재하고 있어!
이곳에 "살육하는 요괴 새"에 관한 사건이 있다고 들었는데, 내가 아주 관심이 많아!
가능하다면, 자세히 좀 말해줄 수 있을까?
엘레나는 자연스레 인간의 말을 받아넘기며, "여행 작가의 학생"이라는 배역에 어느새 완벽히 녹아들어 있었다.
하지만 남자의 눈매에는 언뜻 포착하기 힘든 음험한 빛이 찰나에 스쳐 지나갔다. 눈앞의 두 이방인을 향한 불신의 기색이 역력했다.
실망하게 될 거야. 그건 시시한 괴담에 불과하거든.
안개가 내려온 이후, 도시의 모든 사람은 안개 속에서 목숨을 잃지 않을까, 내일의 태양을 보지 못할지 두려워하고 있어.
이곳은 그저 마음을 보듬어 주는 안식처일 뿐이야. 나는 이곳의 운영자, 로코라고 해.
안개가 내려오면서 도시 사람들의 마음이 흉흉해졌고, 그래서 우리는 이곳에 모여 안개가 하루빨리 걷히기를 기도하고 있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마음이 불안정한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평온을 가져다주는 것뿐이야.
하지만...
엘레나가 두 번째 거짓말을 지어내기도 전에, 방금 그 정신이 혼미한 여자가 갑자기 유령처럼 로코의 등 뒤로 다가왔다.
"살육하는 요괴 새"... 그녀가... 안개 속을... 거닐고 있어요.
저희는... 요괴 새의... 강림을... 기다리고 있어요.
!!!
인간이 경계하며 한 발짝 앞으로 나서서 자기 몸으로 엘레나와 그 "광인" 사이를 가로막았다.
하지만 그 "광인"은 인간의 경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광기 어린 말을 계속 중얼거렸다.
저희는... 요괴 새의... 강림을... 기다리고 있어요.
요괴 새에게... 선혈을... 바칠 거예요.
이윽고 여인의 몸에서 기괴하면서도 나직한 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 순간, 여인의 코트 안에서 살찐 쥐 몇 마리가 기어 나오더니, 사방으로 흩어져 이내 어둠 속으로 종적을 감추었다.
...
괜찮아. 돌아가서 계속 기도하도록 해.
로코의 말은 괴이한 위력을 품은 언령과도 같아, 여자의 눈동자에 서린 공포를 흩뜨리며 그녀를 다시 본래의 무감각한 상태로 되돌려놓았다.
여자는 방금 전의 소동이 애초에 없었던 일인 양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괜찮다면, 저 여자와 이야기를 좀 나눠 봐도 될까?
그건 안 될 것 같아.
하지만 저 여자 분명 조금 전에...
그리고 그 쥐들은 또 어떻게 된 거야?
우리에게는 우리만의 규칙이 있어.
먼 곳에서 온 이방인이라면, 우리의 기도에 동참하든지, 아니면 더는 이들의 평온을 어지럽히지 마.
"안녕의 집"의 문은 이제 너희에게 열리지 않을 거야.
그 "광인"의 괴이한 말 속에서 정보를 더 분별해 내기도 전에, 로코라는 남자는 문을 닫아 버렸다.
엘레나는 눈앞에서 닫히는 묵직한 대문을 바라보며,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이곳은 안개에 머리가 망가진 "광인"들의 집회 장소 같은 느낌이야.
그리고 조금 전에 그 이상한 여자 말이야. 어떻게 몸에 쥐를 데리고 다니지? 누가 쥐를 애완동물로 키운다고?
일이 점점 더 복잡해지는 것 같아.
단숨에 여러 가지 의문점을 쏟아낸 엘레나는 꽤 곤혹스러우면서도 어찌할 바를 모르는 것 같았다.
"선생님", 우리 "여행 작가"들이 쓸 만한 소재는 결국 찾지 못했네.
일단 우리 의뢰인부터 찾으러 가자.
엘레나는 "역할극"의 유머로 계획 실패의 불쾌함을 희석시키려는 듯 다소 과장된 한숨을 내쉬며 손에 든 노트를 덮었다.
인간과 엘레나가 떠난 뒤, "안녕의 집"의 대문이 다시 열렸다.
그들이 떠나는 모습을 말없이 응시하던 로코의 얼굴에, 모든 것이 손안에 있다는 듯한 미소가 번졌다.
마치 방금 자신이 보여준 모든 것은 위장에 불과했다고 말하는 듯했다.
이게 바로 너의 "동지"인가?
흥, 이 모든 걸 바꿀 수 있을 거라고 착각하지 마. 나의 존경하는... 치안관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