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Reader / 우주 연대기 / 밤안개 속의 진혼곡 / Story

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

저 언덕의 경계

>

콜레도르, 이게 네 창조물이야?

저의 군단입니다. 오직 저만을 따르는 꼭두각시 군단이지요. 영원토록 저를 배신하지 않을 훌륭한 군단입니다.

그래? 여전히 뒤에서 수작 부리는 걸 좋아하네. 안타깝게도 네게 그토록 숱한 기회를 베풀었건만, 결국 내게 바치는 것이라곤 고작 이따위 시시한 잡동사니들뿐이구나.

내가 너무 큰 기대를 했던 거니?

루나가 만신창이가 된 콜레도르를 끌고 공중으로 떠오르자, 콜레도르의 인형들도 함께 떠올랐다. 그리고 콜레도르는 루나의 미소를 보고 소름이 돋았다.

루나가 가볍게 손가락을 튕겨 월륜을 소환하자, 그녀의 몸 주위를 감싸듯 맴돌던 월륜이 점차 거대한 궤적을 그리며 회전 범위를 넓혀갔다. 이윽고 수많은 은빛 파편으로 산산이 흩어진 월륜은 아득한 허공을 눈부시게 메운 채, 일제히 목표물을 겨누었다.

루나가 두 번째 명령을 내리자, 모든 조각이 급강하하여 지정된 범위 내에서 소리 없는 교살을 감행했고, 잘려 나간 팔다리들이 바닥으로 우수수 떨어졌다.

궤멸은 순식간에 일어났고, 전력 차이가 너무나도 큰 전황은 일방적인 학살에 불과했다.

형편없네.

너희 따위가 감히 여공작의 자리를 넘봐? 너 따위가 감히 언니의 공로를 훔치려 했다고?

흩어진 조각들이 다시 뭉쳐진 합금 월륜이 루나의 손으로 돌아왔고, 콜레도르는 자신이 그토록 고심 끝에 깨운 존재가 얼마나 끔찍한 악마인지 마침내 깨달았다.

당신이 이렇게... 강할 줄은 몰랐습니다. 수인화만으로도 알파는 벅차 보였는데... 전 그저...

그래서 감히 언니와 견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거야?

힘을 공유하고 있긴 하지만, 언니는 날 지키는 데 힘의 대부분을 썼어.

그토록 기나긴 세월 동안 단 한 순간도 이 짐을 내려놓은 적 없었건만... 콜레도르, 네가 이 모든 것을 어그러뜨려서는 안 되는 것이었어.

루나는 공허한 왕좌에 똬리를 틀고 흥미롭다는 듯 모든 것을 살폈다. 그러다 엘레나를 발견하자 그쪽으로 몸을 움직이려 했지만, 잠시 생각하더니 이내 단념했다.

두 번의 시선, 한 번은 알파였고, 다른 한 번은 루나였어.

죽음을 사이에 둔 두 번의 눈길과 포기였어. 정말 아슬아슬했다니까, 아주 조금만 삐끗했어도 끝이었어.

사장, 네 가장 큰 장점은 처형장 한복판에 서 있어도 낙관적이라는 거야.

다행히 두 자매가 모두 인간성을 선택했어. 그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당신들이 그토록 막강한 힘을 지녔으면서, 어째서 진작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겁니까? 왜 더 빨리 하나로 융합해 그 괴물들을 모조리 쓸어버리지 않았느냔 말입니다!

괴물이 제 다리를 뜯어먹고 있을 때, 당신들은 뭘 하고 있었습니까?

루시아는 동생을 몸 뒤에 숨기고, 키가 작은 소녀는 언니의 팔을 단단히 붙잡고 있었다. 그녀들은 동굴 속 소녀에게 설명하고 있었다.

미안하지만, 너와 팀을 맺을 순 없어.

내 힘은 내 동생을 지키는 것만으로도 벅차거든.

루시아와 루나의 귓가로 콜레도르의 울음소리가 스며들었다. 버려진 어린 짐승처럼, 북받치는 억울함을 차마 터뜨리지도 못하는 처절한 흐느낌이었다. 그 소리에 루나는 말없이 언니의 팔을 더욱 세게 움켜쥘 뿐이었다.

콜레도르는 동굴 더 깊은 곳으로 고개를 파묻었다. 이 임시 피난처는 이미 콜레도르의 전부가 되어 있었고, 자매의 호의가 아니었다면 장애를 가진 그녀는 오늘까지 살아남지도 못했을 것이다.

콜레도르는 멀어져 가는 두 자매의 뒷모습을 차마 지켜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것은 곧 자신에게 내려진 잔혹한 사형 선고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콜레도르.

동굴 밖에서 루나의 가느다란 목소리가 들려오면서 그녀가 돌아왔다. 루나는 실험장에서 알파의 작은 꼬리처럼, 단 한 번도 혼자 떨어진 적이 없었다.

이 식량을 다른 사람 눈에 띄지 않게 잘 챙겨둬. 이게 우리가 가진 전부야.

그러고는 루나는 다시 떠났다. 루나에겐 그녀의 언니가 있었다. 두 자매는 분명 더 안전한 거처를 찾고, 더 많은 물자를 확보해 낼 터였다. 그리고 어쩌면, 이 가혹한 실험이 막을 내리는 그날까지 끝끝내 살아남을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콜레도르도 너무나 두려웠다. 붉은 불빛이 다시 깜빡이기 시작했다. 그녀는 건조식품을 꽉 쥐었다가 이내 내던지고는 자신의 인형을 품에 안았다.

괴물의 발톱이 밖에서 긁어대는 소리가 들렸다. 그것들이 콜레도르의 냄새를 맡은 것이다.

맞아. 넌 참 불쌍해. 하지만 그게 우리 자매와 무슨 상관인데?

"나와 언니가 제때 널 구해주지 않은 걸 원망하는 거야? 아니면 우리가 너처럼 울고불고하며 죽음을 기다리지 않은 걸 원망하는 거야?"

루나는 이 말을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알파는 약자에 대한 연민을 비롯해 인간적인 복잡한 감정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아직 수습되지 않은 전장을 응시하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좋아, 콜레도르. 지난 몇 년을 허투루 보낸 건 아니었나 보네.

실과 재료들이 루나의 손끝에서 얽히더니, 작고 귀여운 인형 하나가 엉성하게 완성되었다. 납작한 이목구비는 겨우 인간의 형태를 갖추고 있었고, 그레이 레이븐에게서 빼앗은 단추를 눈으로 삼았다.

실이 작은 인형과 알파의 몸을 연결하자, 곧 인형의 몸이 부풀어 올랐고, 그 안에서 루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루나는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 보며 반응이 둔하다고 느꼈지만, 임시 거처로 삼기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연결된 실은 검붉은 액체로 물든 채 두 몸 사이를 오갔으며, 순환 속도가 점점 빨라지더니 이내 눈으로 좇을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작은 인형이 작업을 하던 중 고개를 홱 돌려 그레이 레이븐을 빤히 쳐다보더니, 손을 들어 알파를 가리킨 뒤 다시 자신을 가리켰다. 상대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제야 안심한 듯하던 일을 계속했다.

지금 뭐 하는 거지? 꼭 미친 인형의 의식 같잖아. 아니, 제 몸을 포기하면서까지 죽은 자를 깨우려는 거야.

실패하면 다시는 저 몸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알고나 있는 거야! 인형은 오래 버티지 못해. 그러면 두 자매는 함께 사라질 테고, 알파가 한 모든 일은 물거품이 되고 말 거라고!

루나는 피를 씻어내며, 알파의 수인화를 정화하고 있습니다.

불결한 것들이 피와 함께 몸을 빠져나가 인형의 몸속에 남고, 여과된 순수한 피는 알파에게 돌아가는 겁니다.

수인화를 이렇게 해결할 수 있었다니... 젠장, 왜 전 생각하지 못했을까요?

하지만 이게 다 네가 벌인 일이잖아?

넌 이걸 생각 못 한 게 아니라, 그러기 싫었던 것뿐이야.

조금만 더 하면 그 통로를 완전히 장악할 수 있습니다. 제겐 아직 조직이 있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마지막 한 걸음만 남았단 말입니다.

그 순간 신의 의지가 드러났다. 신은 뜻을 강요하지 않고 단지 선택지를 펼쳐놓은 채, 각자가 마땅한 결말로 타락해 가는 과정을 지켜볼 뿐이었다.

작은 인형이 타락한 피로 가득 차기 전, 루나는 알파의 몸 위를 분주히 오가며 초조하게 언니의 상태를 살폈다. 그러자 수인화의 흔적이 조금씩 사라져 갔다.

작은 인형이 정신없이 바라보다 비틀거리며 떨어질 뻔한 순간, 그레이 레이븐과 여공작이 동시에 손을 뻗었다. 하지만 작은 인형은 결국 언니에게 들어 올려졌다.

드디어 현실에서 다시 만나게 됐네.

이게 다 환각이 아니야.

루나, 네가 살아 있다는 걸 이제야 확신했어. 넌 살아있었어.

필요하다면 내가 증명해 줄게. 내가 알기론 환각엔 통각이 없거든. 됐다.

이 순간을 즐겨, [player name]. 네가 이겼어.

알파는 작은 인형과 머리를 맞대고는 루나를 어깨에 올려놓았다. 이내 전장을 훑어보며 동료들의 위치를 파악해 둘의 안전을 확인한 후, 어른들은 무언의 눈빛을 교환할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외곽의 불길이 갑자기 높게 치솟아 차단막을 이루더니, 불꽃이 원을 그리며 안쪽으로 좁혀들었다. 모든 권속이 휩쓸렸지만, 오직 콜레도르만은 비껴갔다. 여공작은 처음으로 온 힘을 다해 자신의 위력을 유감없이 과시했다.

술병 하나가 공중으로 던져지자, 파효가 그 뒤를 꿰뚫었다. 진홍의 여공작이 날아올라 장검을 거머쥐고 공중에서 현란하게 몸을 돌렸다. 술에 젖은 칼날에서는 불나비 같은 날개가 뿜어져 나왔고, 그 모습은 비할 데 없이 거대하고 눈부시게 화려했다.

어두운 달이 하늘에 걸린 가운데, 백발을 휘날리는 여공작이 허공의 계단을 밟고 오르며 칼날에 손을 얹고 힘을 응축했다. 칼끝에서 쏟아지는 빛무리가 불꽃처럼 눈부시게 타올랐고, 가장 높은 곳에 이른 알파는 마침내 달을 가렸다.

알파

진홍이 머무는 곳에선 파효가 망자만을 위한 길로 인도하지.

운명의 얽힘을 내가 끊어주마, 콜레도르.

알파가 공중에서 마지막 일격을 휘두르자, 그 위력이 닿는 곳마다 만물은 물론 안개조차 흩어졌다. 칼날의 그림자가 땅에 닿는 것과 동시에 알파 역시 지면으로 급강하했다.

알파가 콜레도르 앞에 내려서며 칼을 거두자, 눈앞의 콜레도르는 더 이상 위협이 되지 않았다.

완전히 부서진 콜레도르의 몸 위로 실들이 솟구쳐 오르며, 그녀의 인격이 깃든 매개체를 하나로 짜맞추고 있었다.

아주 훌륭하군요. 악당이 퇴장하기 전 관람하는 마지막 공연으로는 만점을 드리죠, 여공작.

너만의 길을 끝까지 걸어갈 기회는 충분히 있었어. 누구의 것을 훔칠 필요도 없었지. 콜레도르, 너에겐 그럴 만한 힘이 있었어.

당신에게 설교를 듣고 싶지 않습니다.

아니면 저 같은 광대 따위를 아쉬워하기라도 하시는 겁니까? 알파.

콜레도르는 쓴웃음을 지으며 실패의 쓰라림을 삼켰다. 그녀는 패배했고, 자신이 택했던 미래도 함께 산산조각 났다.

어쩌면 다음번에는 "미래"가 더 나은 "대변인"을 선택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당신도 제게 빚을 지게 해드리죠, 알파.

콜레도르는 몸속에 손을 밀어 넣어 핵심 물질을 꺼냈다. 신이 내린 "최초의 실"인 그것은 붕괴해 가는 콜레도르를 지탱하는 마지막 근간이었다.

작은 인형이 작은 주먹을 휘두르며 언니를 만류했지만, 알파는 아랑곳하지 않고 손을 뻗었다.

제가 도달할 수 없었던 그 미래라면, 당신들은 닿을 수 있을 것 같군요.

알파가 실을 쥐려는 순간 차단 역장이 개입하며 일행을 수 미터 밖으로 밀어냈다. 이내 콜레도르는 그레이 레이븐 일행의 눈앞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것은 일반적인 의미의 소멸이 아니었다. 상처를 입거나 공격받은 결과가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투명하게 흩어지며 사라져 버린 것이었다.

알파가 역장에 저항할수록 더욱 멀리 밀려날 뿐이었다. 결국 그레이 레이븐 일행은 성안까지 물러나, 안개 지역에서 치솟아 하늘을 뒤덮는 불길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신께서 내리셨으니, 거두어 가실 수도 있습니다.

실패한 실험 쥐 주제에, 다른 표본들까지 오염시키려고 합니까?

"최초의 실"이 뽑혀 나가는 찰나, 콜레도르는 완전히 소멸했다. 콜레도르에 대한 기억은 모두 남아 있었으나 누구도 그녀의 형상을 떠올릴 수는 없었다. 단체 사진을 비롯한 모든 흔적이 세계에서 말소된 까닭이었다.

정적 속에서 알파와 [player name]은(는) 서로를 마주 보았다. 이윽고 각자의 동료를 이끈 채 아득한 밤의 장막 속으로 자취를 감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