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내에는 어떠한 자연광도 들지 않았고, 장식은 낡아 얼룩덜룩했으며 기구들은 오래되어 방치된 모습이었다. 수천 개의 인형으로 가득한 그 공간은 콜레도르의 내면을 투영하는 온갖 것들을 품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파이프를 집어 든 엘레나는 성냥으로 불을 붙이는 시늉을 하더니, 짐짓 심각한 기색으로 입을 열었다.
진실을 밝히는 건 내게 맡겨. 위대한 탐정은 원래 남들이 놓친 사소한 단서에서 진상을 찾아내는 법이니까.
여기 사진이 몇 장 있네. 알파와 의사가 함께 찍은 사진인데, 매년 찍었나 봐.
진료소가 생긴 뒤로 매년 사진을 찍었어. 콜레도르가 부탁했거든. 동업자끼리의 기념 같은 거지.
동업자? 그럼, 둘은 엄청 친한 친구 사이겠네? 그레이 레이븐은 날 평범한 직원으로만 보는데.
친구? 아는 사이라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해. 우린 일 년에 몇 번 만나지도 않아. "사혈"이 필요할 때만 여길 찾거든.
맞아. 하지만 그때는 응급 처치였어. 인조 이종인 난 짐승으로 변하는 걸 늦추기 위해 정기적으로 피를 뽑아야 해.
알파의 설명에 따라, 엘레나는 구속형 수술대, 채혈기, 주사기 그리고 혈액 보관관으로 가득 찬 수납장을 찾아냈다.
혈액 보관관 중 일부는 비어 있었지만, 일부는 가득 차 있었고 그 위에는 날짜가 적혀 있었다. 최근 몇 년 동안 "사혈" 행위가 눈에 띄게 잦아졌음을 알 수 있었다.
뭔가 이상해. 이 피들 말이야. 사용됐던 것 같아. 알파, 이거 알고 있었어?
솔직히 말해서, 난 이런 거엔 관심 없어.
난 안전하게 피를 뽑고 술로 변환할 약제만 있으면 됐으니까. 그리고 마침 콜레도르가 그걸 제공해 줄 수 있었어.
그 대가로 난 콜레도르에게 이 저택을 마련해 줬고, 내 보호 아래 두었지.
그럼, 진료소 수익은?
진료소는 매년 적자였어. 5년째에 접어들어서야 수익이 나기 시작하더니, 점차 무시 못 할 만큼 불어났지.
너희 혹시 "환상"이라고 들어봤어?
일종의 위안용 주사제야. 이걸 맞으면 정신이 몽롱해지는데, 그때 살짝 암시만 걸어줘도 더없이 달콤한 꿈을 꾸게 되지.
하지만 그 대가로 주사한 사람에게 모든 비밀을 털어놓게 돼. 자기 속마음을 남에게 말하는 것보다 더 끔찍한 일이 어디 있겠어?
그 주사를 맞고 행방불명된 이들을 찾아달라는 의뢰가 종종 들어오곤 했거든. 이런 남부끄러운 치부를 경찰에까지 알리기엔 좀 그렇잖아.
에이, 우리 사무소의 그 쥐꼬리만 한 수입으로 월급을 제때 주는 것만 해도... 아, 맞다. 알파. 방금 환상이라고 했잖아. 그게 진료소 수익과 무슨 상관이야?
도시 안의 모든 환상 주사제는 다 이 진료소에서 생산돼. 콜레도르가 바로 환상 제조법을 개발한 사람이거든.
뭐, 여기서?!
알파는 적절한 타이밍에 말을 멈췄다. 분명 "환상"의 출처에 관한 핵심적인 세부 사항을 숨기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엘레나는 자신이 흥분했다는 것을 깨닫고, 재빨리 평정심을 되찾았다.
그러니까, 환상 덕에 벌어들이는 수익이 막대했다는 거지? 그렇다면 의사가 그 돈을 혼자 독차지하려 들었을지도 모르겠네.
확실히 많긴 하지만, 그건 아무 영향도 주지 않았어.
돈은 내게 중요하지 않거든. 여공작의 수당만으로도 이미 차고 넘치니까. 공동 계좌에 있는 돈은 콜레도르가 언제든 꺼내 쓸 수 있었고, 난 일절 간섭하지 않았어.
에휴, 이익 때문이라면 차라리 다행이지. 이익 분배는 언제나 가장 간단한 법이니까. 하지만 다른 이유라면, 의사는...
네가 자신도 용서 못 할 짓을 저지를지도 몰라~ 사람 마음이란 게 때론 가장 무서운 귀신 소굴이거든. 꼭 필요한 상황이 아니라면 함부로 발을 들이지 마.
알파 말대로 의사가 인형에 남달리 집착했던 건 확실해.
진료소에는 전문 공방에 버금가는 인형 제작 재료가 가득했다. 유리 안구만 해도 서랍 몇 개를 꽉 채울 정도여서 전문 장인조차 부러워할 수준이었다.
작업대 위에는 만들다 만 인형이 버려져 있었는데, 해부한 인체를 축소한 듯 혈관, 신경, 뼈가 고스란히 재현되어 있어 기괴해 보였다.
이 실은 알파가 가져온 것과 같은 거야?
알파는 고개를 끄덕이며 실을 작업대 앞에 툭 내려놓았다.
콜레도르가 이 실을 연구하기 시작한 건 내 수술 때문이었어. 일반 수술용 실은 아주 질기지 않아서 이종의 몸을 꿰매면 터져버렸거든. 나중에 콜레도르가 낚싯줄을 섞고 나서야 좀 나아졌지.
이 실은 알파가 가져온 것과 같은 거야?
알파는 고개를 끄덕이며 실을 작업대 앞에 툭 내려놓았다.
콜레도르가 이 실을 연구하기 시작한 건 내 수술 때문이었어. 일반 수술용 실은 아주 질기지 않아서 이종의 몸을 꿰매면 터져버렸거든. 나중에 콜레도르가 낚싯줄을 섞고 나서야 좀 나아졌지.
알파 말대로 의사가 인형에 남달리 집착했던 건 확실해.
진료소에는 전문 공방에 버금가는 인형 제작 재료가 가득했다. 유리 안구만 해도 서랍 몇 개를 꽉 채울 정도여서 전문 장인조차 부러워할 수준이었다.
작업대 위에는 만들다 만 인형이 버려져 있었는데, 해부한 인체를 축소한 듯 혈관, 신경, 뼈가 고스란히 재현되어 있어 기괴해 보였다.
엘레나가 증거물을 자세히 살피려 작업대 앞으로 다가갔다. 그곳에는 노트 한 권이 펼쳐져 있었는데, 대부분의 내용이 검게 칠해져 있었으나 중요한 정보는 어느 정도 남아 있었다.
알파, 이 노트 좀 봐야 할 것 같은데...
갑자기 실내에 경쾌한 북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꼭두각시 인형들이 일제히 입꼬리를 올린 채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손님들이 리허설 장면을 보게 된 것을 축하하는 몸짓이었다.
알파가 칼을 뽑아 소리가 나는 곳을 베어버리자, 선반이 쓰러지며 가려져 있던 벽면이 드러났다. 그곳에는 벽면 가득 알파의 이름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수많은 밤 동안 콜레도르는 어떤 심정으로 이 이름을 적어 내려갔을까? 콜레도르는 장애 탓에 오래 힘을 주지 못해서 필체가 익숙한 듯 아래로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었다.
역겹군.
콜레도르의 감정에 응답한 것은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알파의 검격뿐이었다. 그 일격에 벽 안의 빽빽한 실이 끊어지며 무너져 내렸다.
실이 끊어지자, 아래층 환자들 역시 남은 이성마저 잃고 2층으로 달려들었다. 손톱으로 바닥을 긁는 소리와 지진 같은 발소리가 코앞까지 육박했다.
그들은 "잠식"하려 들었다. 알파의 피로 만들어진 열등한 꼭두각시들은 "모체"의 피를 미친 듯이 갈망했다. 성당에 있던 괴물들처럼, 이 또한 의사가 심어 놓은 지령인 듯했다.
늦었어.
알파가 벽에 걸린 사슴 머리 장식을 베어내자, 곰팡내 나는 길고 좁은 통로가 드러났다.
여공작에게 붙잡혀 통로로 던져진 둘은 거미줄과 함께 지하 밀실로 굴러떨어졌다.
알파, 어서 내려와. 같이 가자.
올려다본 알파는 너무나도 고귀하고 위엄 있어 보였다. 여공작은 고개를 가로젓고는 결연히 피의 술을 마셨다. 그러자 이마와 오드아이에서 범상치 않은 빛줄기가 요동쳤다.
이번엔 아니야. 너희를 무사히 지켜준다고 장담할 수는 없을 것 같아. 의사가 저지른 사고가 꽤 큰 것 같거든. 적어도...
환자들이 문을 부수고 들어오자, 알파는 서둘러 말을 마치고는 가림판을 닫아버렸다. 그러자 지하실에는 칠흑 같은 어둠만이 남았다.
환자들은 이전보다 훨씬 더 난폭한 데다 수 또한 너무 많아서 알파는 순식간에 부상을 입었다. 결국 알파는 통로를 지키며 위협적인 생물들을 신속히 물리쳐야만 했다.
여공작이 강제로 심맥을 쥐어짜 두 번째로 피를 폭주시키자, 짐승의 기운이 지하실까지 퍼져 나가며 그레이 레이븐 일행조차 이성이 흐려졌다.
상황은 갈수록 긴박해졌지만, 그레이 레이븐은 벽에 바짝 붙은 채 엘레나와 함께 위층에서 들려오는 처절한 사투 소리를 들으며, 전세를 뒤집을 방도가 없을지 필사적으로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그레이 레이븐에게는 동료가 사력을 다해 싸우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과, 섣불리 나섰다가는 여공작의 희생을 짓밟는 꼴이 된다는 생각이 죽음보다 더한 절망으로 다가왔다.
주사기!! 저것들이 갈망하는 건 알파의 피잖아! 방법이 있어.
올라가서 알파를 돕자. 저 위에 혼자 두면 안 돼!
아직 사용하지 않은 혈액 보관관을 떠올린 그레이 레이븐은 엘레나가 어떤 의도로 말했는지 순간적으로 깨달았다.
그레이 레이븐은 위로 기어 올라가기 전, 먼저 밧줄을 주워 엘레나를 단단히 묶었다.
[player name], 난 겁쟁이가 아니야. 계획도 내가 낸 거니까, 나도...
살다 보면 어른에게는 어른의 사정이, 아이에게는 아이의 사정이 있는 법이다. 어떤 명목으로든 아이를 어른들의 시험에 끌어들이는 것은 비열한 짓이다.
그레이 레이븐은 적어도 자신에게 그런 일이 벌어지는 것만은 용납할 수 없었다. 다만 이번에는 엘레나의 그 조잘대는 입을 미리 막지 못한 게 아쉬울 뿐이었다.
둘 다 꼭 살아서 돌아와야 해. 안 그러면 시신도 안 거둘 거야. 난 절대로 안 할 거니까.
가림판을 열자, 그레이 레이븐은 전투 중에 짐승으로 변한 여공작의 모습을 처음으로 목격했다. 짐승의 뿔에서는 눈 부신 빛이 뿜어져 나왔고, 눈빛에는 위압감이 서려 있었다. 파효 역시 알파의 변화에 따라 몇 배나 더 거대해져 있었다.
변이된 이들은 쓰러져도 숨이 끊어지지 않는 한 다시금 알파를 향해 달려들었다. 잿빛 시야 속에서 알파의 심장 박동은 그들을 인도하는 유일한 등대와도 같았다.
[player name]이(가) 손바닥을 그어 피를 뿌리자, 이종의 비슷한 냄새가 일부 환자들을 끌어들였다. 몇몇은 바닥에 엎드려 핏자국을 핥았으며, 다른 몇몇은 방향을 틀어 [player name]을(를) 향해 공격했다.
쏟아지는 공세를 막아내며 혈액 보관함이 있는 수납장 앞까지 몸을 날린 그레이 레이븐은 주사기를 낚아채 방 반대편으로 던졌다. 그러자, 거의 모든 환자가 즉시 그곳으로 방향을 틀었다.
변이체들이 피를 탐하며 동족의 손가락마저 물어뜯는 아수라장이 펼쳐졌고, 그 틈에 알파는 간신히 포위망을 벗어날 수 있었다. 인간은 샹들리에와 약장을 가리키며 여공작에게 눈짓을 보냈고, 그녀는 단숨에 의도를 간파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자세를 다잡았다.
그레이 레이븐이 캐비닛을 밀어 넘어뜨리자, 혈액 보관함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박살 났다. 그 순간 알파가 샹들리에를 베어 넘겼고, 약장 전체가 도미노처럼 무너져 내렸다. 사방으로 흩어진 유리 파편 사이로 약제와 혈장이 뒤섞여 바닥을 적셨다.
그레이 레이븐이 알파를 향해 미끄러지듯 쇄도하자, 여공작은 촛대를 베어 던져 화답했다. 순식간에 터져 나온 불꽃은 맹독을 머금은 채 용틀임하며, 바닥의 핏물을 탐하던 환자들을 단숨에 집어삼켰다.
폭발 기류가 들이닥치기 일보 직전, 그레이 레이븐은 가림판을 열어젖히고 알파를 낚아채듯 끌어당기며 비밀 통로 안으로 몸을 날렸다.
하지만 추락하는 찰나, 여공작은 그레이 레이븐을 거칠게 밀어내고 온몸으로 가림판 앞을 가로막았다. 방 안을 가득 메운 맹독성 가연물이 일으킨 연쇄 폭발은 이미 예상을 아득히 상회하는 위력을 뿜어내고 있었다.
비밀 통로 바닥에 추락한 그레이 레이븐이 다급히 외투로 엘레나를 감싸안자, 사방이 완전히 잠잠해질 때까지 흙먼지가 폭우처럼 쏟아졌고 연쇄 폭발음은 고막을 마비시킬 듯이 울려 퍼졌다.
화염에 휩싸여 추락한 여공작은 전신의 피가 혈관 속에서 들끓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하지만 흩어지는 이성을 간신히 붙잡아 억누르며, 다시 인간의 형상으로 되돌아왔다.
늦지 않아서 다행이야. 너희 모두... 무사하구나.
불, 피가 타오르고 있어. 너무 아파.
극심한 고통에 알파는 머리를 감싸 쥐고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그러고는 한참이 지나서야 잠재된 의지에 이끌려 비밀 통로 깊은 곳을 향해 비틀거리며 걸어갔다.
비밀 통로 깊은 곳, 물이 고인 암석 지대에는 햇살이 밝게 내리쬐었고, 꽃 덩굴에 감싸인 관은 흑단목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알파는 파효를 내려놓고 화상을 입은 팔로 관 위의 낙엽을 가볍게 털어냈다. 마치 관 속의 사람을 깨울지 두려워하듯, 그 손길은 더없이 부드러웠다.
기절하기 직전 [player name]에(게) 부축받은 알파의 몸은 용암처럼 뜨거웠고, 호흡은 미약했다. 그레이 레이븐은 자신이 또다시 무력한 상황에 빠졌음을 깨달았다.
엘레나가 그레이 레이븐의 손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 알파의 손을 맞잡기 전까지.
[player name],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기억해?
사람에겐 누구나 가장 가까운 사람조차 알 수 없는 비밀이 있는 법이야. 알파는 너무 큰 상처를 입어서 스스로를 "보호"하고 있는 거야.
자, 이제 눈을 감고 내 손을 꽉 잡아. 지금부터 알파의 의식 깊은 곳으로 갈 거야.
거기서 온전하고, 털끝 하나 다치지 않은 알파를 데려오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