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와서 그걸 묻다니, 너무 늦었다는 생각 안 들어?
네 조수 데리고 오겠다고 한 건 너였잖아.
여기 너무 으스스해. 황량한 데다 가로등조차 없잖아. 벌써 묘지 한 군데랑 폐허가 된 장원 두 곳, 거기다 깊은 숲에 작은 성당까지 지나왔단 말이야.
엘레나와 동행하면 눈먼 사람이라도 길을 잃지 않을 것이고, 귀먹은 사람도 청력을 되찾을 지경이다. 하지만 정작 엘레나는 아무렇지 않게 잘만 돌아다니고 있다.
엘레나는 탐정 사무소의 유일한 직원이자 조수, 경리, 접객 업무를 겸하고 있었다. 어느 하나 잘하는 것은 없었지만, 어쨌든 해내기는 했다.
처형장 안개의 위기를 해결한 여공작은 곧장 성당 사건의 후속 조사를 하러 떠났다. 그레이 레이븐은 그런 그녀의 뒤를 쫓지 않을 수 없었으며, 엘레나 역시 자연스럽게 동행하게 되었다.
연이은 혈전 끝에 도시는 잠시 평온을 되찾았고, 이종들은 당국으로부터 풀려났다. 그렇게 모든 것이 예전으로 돌아간 듯 보였지만, 그것이 짧은 평화일 뿐이라는 건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이종들을 향한 집단적 모함은 결코 단순한 우연의 산물이 아니었다. 실타래처럼 뒤엉킨 상황 속에서 찾아낸 이 "실마리"가 어쩌면 국면을 타개할 열쇠가 될지도 모른다.
좀 시끄럽네.
알파는 줄곧 앞장서 걸으며 탐정 콤비와 미묘한 거리를 유지하다가, 목적지에 다다라서야 발걸음을 멈췄다.
뒤따라 가던 엘레나가 뜬금없이 알파에게 부딪히며 그녀를 껴안았다. 알파는 보기 드물게 당황한 기색을 보이더니, 이내 뒤로 물러나며 엘레나를 피했다.
엘레나의 손길은 알파에게 또 다른 여자아이를 떠올리게 했다. 그것은 오래전에 잊고 지낸, 인간으로서 느꼈던 기쁨이었다.
다 왔어. 여기가 콜레도르의 진료소야.
이곳은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안개 지역과의 경계선에 자리하여, 두더지 무덤과 인접해 있었다.
그리고 무법지대인 이곳은 질서가 서서히 무너지면서 황금과 야수성이 원초적인 서열 싸움을 벌이는 곳이었다.
콜레도르의 진료소는 단독 별장으로, 잡초가 담장을 대신하고 폐기물 웅덩이가 곧 정원이었다. 간판조차 없어서 단골손님만 찾아오는 곳이었다.
아니, 거절할게. 이 언니 옆에 있는 게 훨씬 안전할 거 같아.
알파는 엘레나의 호칭을 정정하지 않고, 걸음을 멈춰 그녀가 따라오기를 기다렸다. "꼬마 알람 시계" 알파는 마음속으로 엘레나를 그렇게 불렀다.
부를 거야~ 필요할 때만.
알파가 손을 뻗어 일행에게 약제 주사기와 실을 보여주었다.
어제 성녀 사건 당시 미아가 남긴 증거물이었다. 여공작에게 이 두 물건은 무척 낯익었으며, 그 주인은 단 한 사람, 콜레도르뿐이었다.
문을 두드리기에 앞서, 알파는 미리 경고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들어가면 콜레도르 다리는 쳐다보지 마. 선천적인 기형이라 어쩔 수 없거든.
그리고 콜레도르 인형도 쳐다보지 마. 안 그러면 밤새도록 붙잡고 설명을 늘어놓을 테니까.
알았어. 여공작. 명심할게.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누구라 해도 상관없지만 너만은 아니기를... 너는 이 세상에 얼마 남지 않은 친구니까." 알파는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한 간절한 바람을 마음속으로 빌었다.
알파가 문을 두드리자, 밀폐된 공간에 얼마나 오래 갇혀 있었는지 모를 수많은 환자가 뻣뻣하게 뒤틀린 몸으로 떼 지어 쏟아져 나왔다.
여공작은 본능적으로 몸을 돌려 한 손으로 엘레나를 감싸 보호한 채, 다른 한 손으로는 칼을 휘두르며 군림하듯 앞길을 헤쳐 나갔다.
무방비 상태였던 [player name]은(는) 굴러서 피했다. 하지만, 이 환자들은 그레이 레이븐에게는 전혀 개의치 않고, 오로지 한 방향만을 향해 나아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런 거 같군. 어떻게든 2층으로 올라가자. 그곳이 더 안전할 거야.
알파는 계획을 설명한 뒤 엘레나를 안고 날아오르듯 뛰어올라 2층 깨진 창문 안으로 들어갔다. 홀로 남겨진 [player name]이(가) 환자들의 주의를 끄는 사이 엘레나가 줄사다리를 내려주자, 그제야 그레이 레이븐은 빠져나갈 길을 찾을 수 있었다.
여공작은 끊임없이 검기를 날렸고, 그레이 레이븐을 추격하던 환자들은 낙엽처럼 떨어져 나갔다. 등 뒤에서 들려오는 포효에 그레이 레이븐은 발걸음을 재촉하며, 사다리를 기어오르는 자들을 이따금 하나둘씩 해치웠다.
그레이 레이븐이 마침내 엘레나의 손을 잡자, 알파는 공세를 전환해 전력으로 공격에 나섰다.
내 선물이 마음에 들어? 알파.
등불을 든 엘레나가 남겨진 글귀를 소리 내어 읽었다. 콜레도르는 이미 진료소를 떠난 뒤였으며, 벽에는 붉은 글씨로 적힌 인사말만이 남아 있었다. 알파는 깨진 창문을 닫고 검을 거두며 다가왔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콜레도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