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name]의 입장에서는 낯선 경찰에게 미행당해 체포된 뒤 감방에 처박히기까지 불과 몇 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오늘 전까지만 해도 [player name]은(는) 눈에 띄지 않는 소시민일 뿐이었다. 외진 곳에 탐정 사무소를 차려 두고, 이따금 작은 실수를 저지르는 조수 엘레나와 함께 지내고 있었다.
사무소에서 맡는 의뢰도 불륜, 은밀한 사진 유출, 보석 도난, 유령 전보 같은 사소한 일이 대부분이었다. 샌드위치 하나 사 먹기 힘들 정도로 경제적으로 쪼들릴 때면, 개 산책 같은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다.
그래서
다른 이종들이 요괴와 목숨 걸고 싸울 때, [player name]은(는) 신문, 연극, 가십, 미식, 점술, 심지어 합법적인 탈세에 이르기까지 인간 생활의 모든 것을 누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인간들에게 제압당해 바닥에 짓눌린 채 수갑이 채워진 그 순간부터 과거이자 사치가 되어 버렸다.
감방 안에는 [player name] 외에도 중상을 입은 전사가 한 명 더 있었다. 그 전사는 의식이 혼미하고 얼굴과 사지가 심각하게 변이되어 있었는데, 이는 안개에 아주 오랜 시간 노출된 탓에 이제는 그 세계에서 영영 빠져나올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음을 의미했다.
이렇게 배정한 것이 당국의 능력 시험인지 아니면 신종 처형 방식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래서 [player name]은(는) 무기를 꽉 쥐고 혹시 모를 공격에 대비할 수밖에 없었다.
피... 피를 뽑아 줘. 도와줘.
눈앞의 변이된 여자가 인간의 목소리를 내는 모습은 등골이 오싹해질 정도로 기괴했다.
단단한 비늘이 돋아난 손바닥은 긴 칼을 "쥐고" 있는 듯했다. 살갗 사이에서 자라나 천으로 단단히 감겨 있는 그 칼은 평범한 요괴가 다룰 수 있는 무기가 아니었다.
변이된 여자가 미약한 숨을 내쉴 때마다 가슴속에서 피비린내가 풍겨 왔다. 그 피비린내에 섞인 동족의 기운이 순식간에 [player name]의 후각을 자극했다.
마치 무리에서 떨어진 외로운 늑대가 광야에서 울부짖으며 동족을 찾아낸 것처럼, 몸속에서 반가운 공명이 일어났다.
지금껏 이종의 존재는 도시 전설에 불과했고, 유일하게 신분이 확인된 여공작조차 행적이 묘연한 상황이었다.
[player name]은(는) 자신이 항상 아주 조심스럽게 살아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제멋대로 직감을 믿어 보고 싶었다. 오늘의 혼란이 이성을 무너뜨렸기 때문인지 아니면 동병상련 때문인지 몰라도, 변이된 여자를 구하고 싶다는 본능에 가까운 충동을 느꼈다.
칼을 건네받을 때 무기에서 강력한 힘이 거센 밀물처럼 밀려드는 것이 느껴져 [player name]은(는) 하마터면 칼을 놓칠 뻔했다.
변이된 여자는 분명 인간성을 가지고 있었지만, 짐승의 몸에 갇혀 돌이킬 수 없는 상태였다. [player name]은(는) 변이된 여자가 힘겹게 몸을 움직일 때, 재빨리 상처 부위를 훑어보았다.
몸에서 은은한 은빛이 반짝였는데, 자세히 보니 탄두에 반사된 빛이었다. 손발의 상처를 관통한 쇠사슬은 양 끝이 바닥에 고정되어 변이된 여자의 움직임을 제한하고 있었다.
그들은 변이된 여자를 지하에 "꿰매" 놓았다. 존엄성이나 연민은 찾아볼 수 없었으며, 아주 작은 움직임조차 새로운 상처를 만들어 내기에 충분했다.
변이된 여자는 상처가 곪은 채 고열에 시달리고 있었다. [player name]은(는) 그 상처를 닦아 내며 마음이 한없이 무거워졌다.
미늘이 달린 이 총알들은 "치명상"을 입히기 위해 제작된 것이라 제거하기가 어려웠다. 이는 처형자가 애초부터 눈앞의 여자를 살려 둘 생각이 없었다는 뜻이다.
변이된 여자는 치료 과정에서 고통에 떨며 식은땀을 흘렸지만, 끝까지 땋은 머리를 꽉 깨문 채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마지막 총알이 뽑히자 변이된 여자는 한쪽으로 쓰러지며 자기 심장이 있는 위치를 손으로 두 번 두드렸다.
여기 심장을 찔러.
변이된 여자는 대답 없이 눈을 살짝 내리깐 채 눈동자를 반대편으로 빠르게 굴렸다. 인간의 행동에 빗대자면 경멸을 담아 흘겨보는 것과 같았을 것이다.
[player name]은(는) 어쩔 수 없이 여자의 등 뒤로 돌아가 눈을 질끈 감고 칼끝을 찔러 넣었다. 사람을 살리기 위한 일이라지만, 손끝에 전해지는 감각은 역시나 몹시 불쾌했다.
막혀 있던 힘이 순식간에 뿜어져 나왔고, 그 충격에 [player name]은(는) 칼과 함께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눈앞에서 물안개가 뭉치며 짐승의 형체가 흩어지더니, 요괴 대신 갓 태어난 듯한 여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태아처럼 몸을 웅크린 채 물에 빠진 사람이 필사적으로 숨을 쉬려 발버둥 치듯 두 손으로 가느다란 목을 꽉 부여잡고 있었다.
다급한 마음에 생각할 겨를도 없이 [player name]은(는) 다가가 겉옷을 벗어 여자를 감싸고는 곧바로 꽉 다문 입을 벌리려 했다.
경련 환자는 극심한 고통에 입술이나 혀를 깨무는 경우가 많았고, 그로 인해 목숨을 잃는 일도 적지 않았다. [player name]이(가) 여자의 얼굴에 가까이 다가가자마자 숨이 끊어질 듯 내뱉는 헛소리가 들려왔다.
병... 술... 내게
타락한 건 전부 나한테 넘겨.
술은 이미 바닥났지만, 병 안에는 독한 위스키 냄새가 남아 있어, 그보다 훨씬 짙은 피비린내를 덮어 주고 있었다.
그것은 결코 인간의 피 냄새가 아니었다. 사악하고 타락한 또 다른 산물, 바로 안개 괴물의 피비린내였다.
변이된 여자는 인간의 피를 약이나 식량으로 삼지 않았고, 이곳에 있는 존재가 또 다른 이종이라는 사실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어떤 의미에서 이종의 혈액 구조는 인간보다는 안개 생물에 더 가까웠기에, [player name]의 피는 눈앞에 있는 여자의 요구를 채워 주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술병에 남아 있던 약제가 효력을 발휘해 호박색 액체 속에서 작은 기포가 끓어올랐다. 피가 알코올로 발효되면서 마음속의 죄책감도 함께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피를 삼킨 이름 모를 여자의 피부는 옥처럼 반투명해졌고, 얼굴에는 짐승의 골격과 근육이 어렴풋이 드러나 꿈틀거리는 듯했다. 하지만 상처의 고통은 점차 가라앉았는지 변이하던 모습도 이내 안정을 되찾았다.
추워. 너무 추워. 심해...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곰팡내 나는 짚단 외에는 몸을 덥힐 만한 것을 찾을 수 없었다. [player name]은(는) 어쩔 수 없이 여자를 무릎에 눕히고 가볍게 어깨와 등을 토닥여 주었다.
그렇게 달래 주자 이름 모를 여자의 호흡은 점차 안정을 되찾았고, 고통스럽게 몇 번 흐느끼더니 이내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이렇게 가까이서 보니 그녀의 팔에 남은 흉측한 옛 상처와 굳은살 박인 손이 고스란히 눈에 들어왔다.
다음 날, 처형일이 밝았다.
희미한 아침 햇살 속에서 추위에 떨다 깨어난 [player name]은(는) 자기 몸을 덮고 있는 겉옷과 방 한가운데 조용히 앉아 있는 여자를 발견했다.
여전히 연약해 보이는 모습이었으나, 눈을 감고 가부좌를 튼 그녀는 한 손으로 이마를 괸 채 다른 손으로는 무기를 가볍게 톡톡 두드리고 있었다.
지붕에서 쏟아지는 햇빛은 왕좌의 장식 같았고, 바닥에 흩어진 쇠사슬은 그녀의 훈장 띠 같았다. 그렇게 그녀는 그곳에 조용히 앉아 사냥감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 이름은 알파야. 어젯밤 간호해 줘서 고마워.
날 진홍 또는 여공작이라고 불러도 좋아.
순간 머릿속에 이종 여공작에 관한 수많은 소문이 떠올랐다. 과거 요괴와 맞서 싸운 전투에서 그녀가 세운 공로가 그야말로 탁월했다는 내용이었다.
여공작조차 버림받은 패가 되어, 이토록 굴욕적인 모습으로 갇히게 된다니...
아니, 넌 죽지 않아. 내가 위기에 처했을 때 날 도와줬으니, 너도 분명 오늘을 무사히 넘길 수 있을 거야.
이건 네게 하는 내 약속이다. 그리고 난, 빈말 따위는 결코 입에 담지 않아.
고개를 숙인 알파는 이와 비슷한 상황을 수없이 겪어 온 듯했다.
알파는 말없이 고개를 돌려 유일한 감방 동기를 더 이상 쳐다보지 않았다. 대답하고 싶지 않은 상황과 마주했을 때, 여공작은 늘 이런 식으로 대처하곤 했다.
[player name], 넌 무슨 죄로 감옥에 들어왔지?
"이종으로 태어난 것" 말고 다른 죄를 묻는 거니까 잘 생각해서 말해.
꽤 마음에 들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유머나 별로 웃기지도 않는 썰렁한 농담 같은 거 말이야.
죽음을 앞두고 누구나 그렇게 품위를 지킬 수 있는 게 아니거든.
미리 말해두는데, 어제 마신 "술"에서 네 정보를 꽤 많이 읽어냈거든. 공평하게 너도 나한테 질문 하나 해봐.
기회는 딱 한 번뿐이니까, 신중하게 물어봐.
아니, 그렇진 않을 거야.
넌 태어날 때부터 이종이었고, 난 평범한 인간이었다가 변이된 거니까. 수많은... 특수 실험을 당했거든.
이 힘을 다루려면 끊임없이 피로 빚은 술을 채워야 해. 하지만 능력을 쓸수록 결국 난 완전히 괴물이 되고 말겠지.
쓴웃음을 지은 알파는 재능을 훔친 대가로 받아 든 청구서가 대략 이런 것이리라 생각했다. 그 후 두 사람 사이에는 어색하면서도 싸늘한 침묵이 흘렀다.
눈앞의 여공작은 이 모든 사실과 무너질 수밖에 없는 결말을 이미 완전히 받아들인 상태였다. 그녀의 평온함 앞에서는 그 어떤 위로도 불필요한 가식처럼 느껴졌다.
내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아. 짐승으로 변하는 건 돌이킬 수 없거든. "알파"로서의 시간이 끝나 가는 게 느껴져.
그리고 만약 그날이 오면, [player name], 네가 날 죽여줘.
대답을 기다리는 사이, 여공작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player name](에)게 다가왔다. 하지만 이는 무기를 깊숙이 감추기 위함이었으며, 그녀의 시선은 창밖을 향하고 있었다.
들려? 처형 부대가 오고 있어.
준비 단단히 해. 오늘은 기나긴 하루가 될 테니까.
그 광경을 지켜보고 싶지 않아?
죄 없는 내가 심판받는다면, 이 도시 역시 내 심판받아야만 해.
내 두 눈으로 이 모든 걸 똑똑히 지켜볼 거야. 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이 내가 죽기를 바라는지, 또 그 대가로 내가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여야 정의를 되찾을 수 있을지 가늠해 보겠어.
따지고 보면, 여기가 누구의 처형장이 될지는 아직 모르는 일이지.
하지만 모두가 감사해야 할 거야. 한때 이 알파의 원수로 여겨졌던 것에 말이야.
어제 알파의 죄를 선고했던 바로 그 장소, 그때와 똑같은 군중이었다.
오늘 또다시 한껏 차려입고 여공작을 비롯한 이종들의 장례식에 참석하러 온 것이다.
그중 첫 번째는 "진홍의 여공작"이라 불리며, 밤에 활동하면서 어둠 속에서 자라나는 공포를 뿌린다.
두 번째는 "살육하는 요괴 새"라 불리며, 날마다 선혈이 가져오는 생명력을 갈구한다.
세 번째는 "악마 사냥꾼"이라 불리지만, 그가 사냥하는 것은 안개 속의 그림자만이 아니다.
네 번째는 "침묵의 장의사"라 불리며, 그가 걸어간 수많은 길에는 죽음만이 남는다.
그리고 넷의 권속은 모두 통솔자인 "그레이 레이븐"에게 고개를 숙였다.
인간 세계의 혼란과 공포가 완전히 자라나면, 그들은 사신을 소환하여 인간 세계에 강림하도록 인도할 것이다.
죄상 낭독이 여기까지 이르자, 알파 역시 무심한 표정으로 "그레이 레이븐"을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는 흥미와 일말의 경의가 담겨 있는 듯했다.
알파는 눈을 감은 채 자신과는 아무 상관 없는 말들과 농담 같은 음모 섞인 망상에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때로는 도시가 안개 지역보다 훨씬 위험했다. 안개 속에서는 적의 정체라도 알 수 있었지만, 이곳에서는 사람 마음의 진의를 가늠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 때문인지 모든 이종을 한자리에 모아 이 강력한 전력이 단번에 몰살되기를 바라는 이들이 있었다. 만약 그들이 순순히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반격할 힘이 남아 있었다면, 이는 야수를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넣는 형국이 되었을 것이다.
알파가 언제 칼을 뽑을지 가늠하던 찰나, 비명이 먼저 정적을 깨뜨렸다.
안개... 안개다!
저놈들이야, 저놈들이 안개를 불러들였어! 이 빌어먹을 이종 놈들!
알파가 손을 들자 소환된 칼날이 몸을 묶고 있던 쇠사슬을 끊어냈다. "파효"라 불리는 그 칼날은 알파 자신의 뼈를 제련해 만든 것이었다.
눈앞의 도시는 죽음의 장막에 뒤덮였고, 뿔뿔이 흩어져 달아나는 군중에게는 차별 없이 사신의 손길이 미쳤다.
알파는 아기를 안은 여인이 눈앞에서 무너져 내리며 백골이 엉겨 붙은 안개 괴물로 변하는 것을 보았다. 괴물이 되어서도 여전히 포대기에 뺨을 비비던 그녀는 초병의 공격에 몸이 산산조각 났다.
불길에 휩싸인 마차가 포위망을 뚫고 나와 짐승 떼를 잠시 따돌렸으나 이내 다시 붙잡히고 말았다. 요괴들이 하나둘 마차 위로 기어올라 지붕을 뜯어내자, 마차 안에 타고 있던 도일의 새 아내와 어린 아들의 모습이 드러났다.
이화는 총구를 관자놀이에 겨누며 스스로 목숨을 끊어 마지막 체면이라도 지키려 했다. 그러나 찰나의 망설임 끝에 괴물에게 끌려갔고, 허공에는 피로 물든 베일만이 흩날렸다.
이들은 모두 알파에게 구조를 요청했으나, 알파의 마음과 칼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으며 그들을 위해 걸음을 멈추지도 않았다.
들었어.
이게 바로 저들이 그토록 갈구하던 게 아닌가?
이종이 없는 세상 말이야.
아니. 저들은 죽기 직전이 아니고서는 절대 뉘우치지 않아.
빈사 상태의 독사가 난로 곁에서 겨울을 넘기고 나면, 기운을 차리자마자 불을 지펴준 은인부터 물어 죽이는 법이다.
안개에 감사해, "그레이 레이븐". 이제 다시 도시의 "영웅"이 됐잖아, 안 그래?
알파는 차가운 시선으로 "그레이 레이븐"을 바라보았다. 초병들과 등을 맞대고 원진을 짜 약자들을 호위하는 "그레이 레이븐"을 뒤로한 채, 알파는 묵묵히 다른 길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레이 레이븐"의 말에도 알파는 대답 없이 그저 손을 흔들어 보이며 마지막 예의를 표할 뿐이었다.
이 인간들이 너한테 그렇게 중요해?
옳고 그름의 문제는 삶과 죽음 앞에 두어서는 안 되며, 이 도시의 미래도 결국 인간이 써 내려가야 한다. 하지만 그레이 레이븐은 이 말들을 끝내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도시를 수호하는 것"에 관해서라면 여공작은 그 누구보다 발언권이 있었고, 그렇기에 그녀는 더 많은 실망을 감당해 왔다.
하지만 여공작은 결국 발걸음을 멈추고 [player name]의 곁에서 피를 머금을수록 더욱 예리해지는 파효를 뽑아 들었다.
이번 일이 끝나면 더 이상 매달리지 마. 난 더 중요한 일이 있으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