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가 마지막 신도를 성당 안으로 걷어차 밀어 넣자,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주철 대문을 닫았다.
여공작은 문에 기대어 천천히 주저앉았다. 온몸에 힘이 빠지자, 허탈감과 함께 강렬한 허기가 밀려왔다.
인조 이종의 신체를 가진 여공작은 타락한 피를 연료 삼아 움직였기에, 다량의 신선하고 기괴한 피가 필요했다.
아이가 울고 있어요.
신의 은총이 있기를. 눈을 뜨고 똑바로 봐. 당신 아이는 오래전에...
그렇게 말하지 마십시오. 아이 엄마에게는 너무 가혹한 말입니다.
미안하지만, 난 아직 죽고 싶지 않아.
여공작이 심장을 움켜쥐고 억지로 혈액을 역류시키자, 하얀 불꽃이 여인의 몸을 스치며 피를 정제했다. 이내 여인은 고통에 몸부림치며 고개를 젖힌 채 길게 포효했다.
알파는 온몸의 피를 태워 힘을 모았다. 피로 빚어낸 술법이나 원군이 없는 상황에서 전투를 계속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이것밖에 없었다.
뼈가 금속처럼 단단해졌고, 핏줄이 튀어나왔다. 피부가 갈라져 갑옷처럼 변했고, 감각은 수배로 예민해졌다. 알파는 단 한 번도 남에게 보여준 적 없는 요괴 같은 모습, 아니 자신의 본모습을 드러냈다.
사람들은 도망치는 것도 잊은 채 여인을 지켜주는 "알파"를 바라보았다. 짐승의 뿔과 백발만이 눈앞에 있는 자의 진짜 정체를 일깨워 줄 뿐이었다.
지금 움직일까요?
아니, 대기해. 총알이 얼마 없으니 한 발 한 발 조준해서 쏴야 해.
진홍의 진짜 모습을 보는 건 처음이지?
네, 대장님.
진홍의 진짜 모습을 처음 본 것은 6년 전, 알파가 여공작이 된 직후 벌어진 안개 지역 전투에서였다.
그때도 상당히 위험했었지. 내가 순직하겠구나 싶었던 순간, 알파가 진짜 모습을 드러냈어. 강력하고 오만한 힘으로 방어전을 우스꽝스러운 처형장으로 만들어 버렸지.
그날 이후 난 이 총알을 준비해 뒀어. 언젠가 쓸 날이 올 줄 알았거든.
이종을 완전히 말살하기에 충분한 은탄환이야. 한 발당 제작비가 만만치 않지.
알파는 두려울 정도로 강하다.
도시의 미래가 이종의 변덕 하나에 좌우된다면, 우리에게 미래는 없는 거나 마찬가지야. 어쨌든 지금 움직여.
알파가 마지막 공격으로 상황을 모두 정리했을 때, 숲속에서 지원군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총을 든 채 거침없는 발걸음으로 알파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빗발치는 은빛 탄환이 알파의 관절과 주요 부위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꽂혔다. 이 순간을 위해 수없이 훈련한 것이 분명했다. 탄환 내부의 특수 독소가 사지로 퍼져나가자, 알파는 감전된 것처럼 쓰러졌다.
저희는 범죄 조사과에서 특별 의뢰를 받고 당신을 체포하러 왔습니다.
보고에 따르면, 당신은 세 가지 중범죄를 저질러 도시의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했습니다. 이번 작전에는 기관총 부대 1소대, 2소대, 4소대가 동원되어 특수 체포를 집행합니다.
알파 님, 즉시 절차를 진행하겠습니다. 이의 있으십니까?
아무도... 아무도 믿지 마.
사안의 긴급성과 피심문자인 알파의 특수한 신분을 고려해, 도시 주민의 불안과 억측을 방지하고자 본 법정은 특별히 이종 알파의 심문을 공개로 진행하겠습니다.
법률의 공정함은 법이 정한 범위 내에서 출신이나 종족을 따지지 않고, 오직 자신이 저지른 행위에 대해서만 합당한 책임을 묻는 데 있습니다.
알파의 첫 번째 죄는 살육을 즐긴 죄입니다.
6년 전 붉은 장갑 사건 당시, 범인은 동일한 수법으로 젊은 여성 여럿을 살해해 경찰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당시 살해당한 여성들은 모두 가슴이 갈라지고 피가 뽑힌 채 사망했으며, 사후에 장기가 적출되었습니다. 그리고 심장만 왼손에 쥐어진 채 가슴 위에 놓여 있었고, 다른 한 손은 입술 앞에 두어 마치 침묵을 지키는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습니다.
단 한 명의 생존자만이 운 좋게 도망쳤는데, 진술에 따르면 살인마는 양팔만 밖으로 드러난 검은 옷을 입고 있었고, 그 팔이 피해자의 피로 붉게 물들어 마치 예복용 장갑을 낀 것 같았다고 합니다. 이에 본 법정은 해당 범인이 여공작 알파라고 합리적으로 의심하고 있습니다.
이에 본 법정은 생존자 이화 양을 증인으로 소환하겠습니다. 이화 양은 법전에 손을 얹고 앞으로의 발언이 모두 사실임을 맹세해 주십시오.
저 이화 오르페우스는 이 자리에서 진실만을 증언할 것을 선서합니다. 알파가 여러 범죄를 저지른 것은 사실이나 이 사건의 범인은 아니며, 오히려 또 다른 사건인 오르페우스 일가 몰살 사건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화의 증언에 법정이 술렁였다. 오르페우스는 도시를 세운 네 가문 중 하나이자 백 년을 이어온 아이리스 가문의 성씨로, 몇 년 전 일가족이 의문의 몰살을 당한 사건 이면에 이토록 기구한 과거가 숨겨져 있을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제가 여섯 살 때 안개의 습격으로 가족과 헤어진 뒤, 한 여사장이 저를 입양해 키워 주셨습니다. 그분은 술을 빚어 팔며 생계를 이어갔습니다. 맞습니다. 당시 주류 판매 허가증이 없었기에 밀주를 판매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불법적인 일이 집 없는 수많은 여성을 먹여 살렸습니다.
이 도시에는 버림받거나 장애가 있거나 과부가 된 많은 여성이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하지만 여사장의 밀주 덕분에 한데 모여 한동안은 웃으며 살 수 있었습니다. 양조장이 박살 난 그날 전까지는 말입니다.
여사장의 밀주가 오르페우스 일가의 수익에 영향을 미치자, 그들은 여사장의 체포를 지시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친아버지가 절 알아봤습니다. 아마 친어머니와 닮은 외모 때문이었겠죠. 하지만 아버지는 저를 딸로 인정하기는커녕, 사람을 시켜 절 처리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천한 술집 여자가 가문의 딸이 돼서는 안 됐기 때문일 겁니다. 그래서 그 유명한 혈투극은 소문이 새어 나갈 가능성을 짓밟아 버리기 위한 것에 불과했습니다. 어쨌든 전 도망쳐 나왔고, 알파를 만나게 됐습니다.
전 알파에게 저 대신 정의를 실현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억울하게 죽어간 술집 여자들의 수만큼, 그 일가도 똑같이 고귀한 피를 흘려야 한다고요.
이건 제가 소중히 간직해 온 꿀술이자, 여공작이 마시는 피의 술을 만드는 원재료 중 하나입니다. 여러분, 꿀이 술 같고 술이 피 같으며 피가 곧 죄와도 같은 그 맛을 한번 음미해 보시겠습니까?
이화가 법정에서 베일을 벗자, 장내가 술렁였다. 젊은 여성의 얼굴에는 지네가 기어다니는 듯한 흉터가 빽빽하게 자리 잡고 있었지만, 어느 부인과 몹시 닮았다는 사실은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일가는 살인마에게 이 얼굴을 망가뜨리라고 지시했고, 목을 긋기 직전 살인마는 칼을 바꿔 쥐어야 했습니다. 기절한 척하던 전 그 틈을 타 해자로 굴러떨어졌죠. 전 그렇게 살아남았습니다.
증인은 잠시 물러나 주십시오. 그 상황에서 살아남은 건 운이 좋았지만, 증오의 늪에서는 온전히 벗어나지 못한 것 같군요. 오르페우스 가문은 오늘부로 사회에서 완전히 매장되었습니다. 이것도 당신 계획의 일부였는지 모르겠군요.
알파의 두 번째 죄는 탐욕입니다.
4년 전, 부유한 상인 웨인이 납치되어 사설 감옥에 갇힌 뒤 폭도들의 심판을 받아 매일 황금과 가족 중 어느 것을 택할지 강요당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약 한 달 뒤 웨인은 풀려났고,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보고도 무사했던 친척과 친구들 역시 함께 풀려났습니다.
웨인은 모두에게 버림받은 채 가난하게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자금을 지원한 기반 시설들, 즉 가로등과 배수로, 안개 지역 저항벽은 여전히 도시를 위해 제 몫을 다하고 있습니다.
피고인 알파에게 묻고 싶습니다. 장난삼아 웨인 씨의 인생을 망쳐 버린 일에 대해, 단 한 순간이라도 후회한 적이 없습니까?
웨인 씨가 납치되던 당시 마부였던 참고인 도일 씨를 모시겠습니다. 이 선량한 시민의 진실한 증언을 들어 보시죠.
도시 사람 절반 정도가 웨인을 위해 일하고 있었으니, 어떤 의미에서 웨인은 보이지 않는 신이나 다름없었습니다. 맙소사, 왜 하필 그런 인간이 그런 자리에 있었던 걸까요?
그해 웨인의 딸이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그는 성대한 결혼식을 위해, 공급업자들에게 자신에게 책임이 돌아오지 않을 정도로만 저항벽에 살짝 손을 써서 안개가 방어선을 뚫고 농경지를 덮치도록 지시했습니다.
알파의 아버지는 그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아니어도 할 사람은 널려 있었죠. 결국 웨인이 지정한 구역뿐만 아니라 저희가 사는 동네에까지 손을 썼습니다. 단지 누군가 웨인의 뜻을 거스르려 했다는 이유만으로 말입니다.
수많은 사람이 비참하게 죽어 갔지만, 그 결과 남은 건 무엇입니까? 식량, 땅, 노동력 모두 줄어들었을 뿐입니다. 반면 웨인은 사재기해 둔 식량과 술로 큰돈을 벌었죠.
웨인의 딸이 칠일 밤낮으로 결혼식을 올리는 동안, 저는 가족을 묻어야 했고, 알파는 수도원에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진실이 밝혀진 날, 저희는 복수를 계획했습니다.
알파는 이 가혹한 심판에서 웨인이 올바른 선택을 하기만 한다면, 그를 풀어 주겠다고 제게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꼬박 한 달 동안, 저희는 끊임없이 웨인에게 물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단 한 번도, 정말 단 한 번도 사람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마지막 순간, 저울 양 끝에 자신의 목숨과 황금이 놓였을 때야 비로소 자신을 선택했죠.
일이 이 지경까지 된 이상 웨인과 저의 죄는 다 고했으니, 남은 건 신의 뜻에 맡기겠습니다. 하지만 여러분께서 알파를 심판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에겐 그럴 자격이 없습니다. 알파에게 죄가 있다 한들, 여기 앉아 계신 그 누구의 죄보다 무겁지는 않을 겁니다.
참고인, 협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증언은 종합적으로 검토하겠습니다. 후자극제를 주세요. 어지럽고 숨이 차네요.
마지막은 성당 사건입니다. 절차가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겁니다. 다만 판사님, 오늘 일은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계속 진행하다 보면 자연스레 결론이 날 겁니다.
성당 사건은 오늘 발생한 일로, 다수의 목격자가 있습니다. 알파는 개인적인 원한으로 가짜 성녀 미아를 살해했습니다. 그 후 성당 뒷마당에서 갓난아기들을 학살하다가 경찰에게 현행범으로 체포되었습니다. 더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습니다.
본 법정은 여러분께 각별한 주의를 당부합니다. 알파는 일반인과 다릅니다. 한때는 인간이었으나 지금은 이종이며, 이능력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피로 빚은 술과 피 섞인 음식을 섭취해야 합니다.
그 아기들은 안개에 감염되긴 했지만, 의사의 진단을 받지 않았기에, 원래대로 돌아올 가능성도 있습니다. 따라서 알파가 그들에게 잇따라 사형 선고를 내린 것은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한 것임을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알파의 마지막 죄는 폭식입니다. 여공작의 보증인과 증인은 법정에 출석해 주십시오.
안녕, 오늘 오후 묘지 혈투극 당시 현장에 가장 가까이 있었던 건 너와 여공작 밖에 없었어. 그러니 거리낌은 잠시 접어두고, 당시 상황을 말해줘.
아이들이 배가 고팠는지 울고 있었어요. 그래서 제가 다가가 젖을 물리려 했죠.
그때, 알파가 제 앞을 가로막으며... 절 보호해 줬어요. 그 대신 알파가 아이들에게 물렸는데, 늑대개처럼 한 번 물고는 놓지를 않아서 피가 났어요.
네 아이에게도 남모를 병이 있다고 들었는데, 지금은 무사해?
아주 잘 지내요. 조금씩 나아지고 있으니, 머지않아 다 나을 거예요.
하지만 현장에 있던 사람들이 너의 아이는 분명 죽었고, 네가 품에 안고 있던 건...
아니에요, 제 아이는 죽지 않았어요. 아주 잘 지내요. 몸이 약해서 아주 가볍고 추위를 많이 탈 뿐이에요. 제가 이렇게 계속 안고 있잖아요. 얼마나 얌전하고 착한 아이인데요.
그럼, 아이 좀 보여줘. 알다시피 증언하는 사람은 제정신이라는 게 확인되어야 해. 그렇지 않으면 증언의 신빙성이 크게 떨어지니까 말이야.
이곳은 아주 안전해. 아무 일도 없을 거라고 약속할게. 딱 한 번만 보면 돼.
그만하십시오, 훈작. 너무 지나치십니다. 이분을 모셔다드리세요. 용기를 내주셔서 고맙습니다. 부인의 증언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대체 뭘 묻고 싶은 겁니까? 원하는 대답을 억지로 끌어내기 위해 아이 엄마에게 얼마나 더 상처를 줘야 직성이 풀리시겠습니까?
그건 내가 판사에게 묻고 싶은 말인데. 원하는 대답을 억지로 끌어내기 위해 얼마나 더 사실을 왜곡할 작정이야?
인정하겠습니다. 어떻게 보더라도 여공작의 죄는 성립하지 않습니다.
판사가 손을 젓자, 사람들이 물러나며 가운데 자리를 내주었다. 그리고 차광막이 걷히자, 그 아래 쇠사슬에 묶인 채 숨만 겨우 붙어 있는 알파가 보였다.
알파는 심판 내내 지켜보고 있었지만 끝내 침묵을 지켰다.
판사가 다시 손을 들자, 기관총 부대원들이 알파를 향해 사격을 가했다. 그러자 알파는 빈사 상태에서 자신을 보호하고자 지하 감방에서 미친 듯이 몸부림치며 두 번째 수인화를 시작했다.
그 광경에 사람들은 침묵했다. 인간이 어떻게 괴물로 변하는지, 오직 상상과 전설 속에만 존재하던 그 장면은 결코 쉽게 지워지지 않을 터였다.
롤랑 훈작, 이것이 바로 알파의 원죄인 이종입니다.
알파가 언제까지 인간에게 충성할 거라고 장담할 수 있습니까? 괴물로 전락하지 않을 거라고 장담할 수 있습니까? 언제까지 야심을 품지 않을 거라고 장담할 수 있습니까?
난 알파를 변호하려는 게 아니야. 하지만 안개가 다시 몰려오면, 우리는 가만히 앉아서 죽기만을 기다려야 해?
우리가 이종을 없앨 수만 있다면, 더 큰 재앙에도 맞설 수 있을 겁니다.
이제 선택권을 여러분 모두에게 넘기겠습니다. 단 한 사람이라도 반대 의견을 낸다면, 알파에게 무죄를 선고하고 그 자리에서 풀어주겠습니다.
우리가 이곳에 모인 건 올바르고 정의로운 일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제 결정이 부끄럽긴 하지만, 도시 모든 시민의 미래를 위해 저는 알파를 처형장으로 보내는 것이 올바른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남은 평생 이로 따라 죄책감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 해도, 기꺼이 감수하겠습니다.
올바름 혹은 정의. 그것은 시간이 증명하거나 뒤집을 때까지는 알 수 없는 법이야.
이제 심판을 진행하겠습니다.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모두에게는 동등한 판결 권리가 있습니다. 알파는 유죄입니까, 아니면 무죄입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