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들이 세상을 활보하여 지옥이 텅 비게 되면, 성당은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죠.
성령은 침묵하고, 그분의 신도들은 어두운 방에서 태어난 어린양과 같아 죄를 지어도 인도함이 부족했기에 결백하고 무고합니다.
맨날 똑같은 소리만 반복하는 설교라니... 뭐... 뻔한 레퍼토리라 재미없네.
참으셔야 합니다. 신앙심 때문에 여기 오신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나저나 더 이상 성훈을 받으시면 안 됩니다. 항해사님의 성흔이 벌써 까맣게 변했습니다.
여기 오지 않으면, 딱히 갈 만한 곳이라도 있어? 안개가 자욱해서 부두는 폐쇄됐고, 배는 비둘기 둥지가 되어버렸잖아.
미니의 주점은... 거기 여종업원들이 거의 다 내 약혼녀였거든. 약혼녀가 좋은 점은 아직 결혼을 안 했다는 거지.
암시장에 가서 금붙이라도 좀 찾아보는 건 어떠십니까? 아니면 진료소에 가서 수액이라도 맞으시죠. 의족을 한 의사 선생과는 왜 더 이야기하지 않으십니까? 나중에 주사 맞을 때 할인이라도 해줄지 모르지 않습니까? 하하하하.
그 괴상한 여자 이야기는 꺼내지도 마. 난 그 여자가 무섭단 말이야.
그 여자와 엮였다간 살해당해서 작은 목각 인형이 된 채 약장 아래에 전시되는 결말뿐일 거야.
그때가 되면 내가 너에게 "안녕, 친구"라고 인사하겠지. 그러고는 친애하는 의사 선생에게 너도 내 곁에 있게 해달라고 부탁할 건데, 괜찮겠어?
에휴, 환몽 가격이 또 올랐습니다. 상층 구역 사람들이 박스째, 캐비닛째로 사들여서 밤낮없이 수액을 맞고 있어요. 나중에는 혈관이 다 굳어버려도 깨어나고 싶어 하지 않더라고요.
여기 같은 대도시에서는 "좋은 꿈"조차도 엄청나게 비싸네요.
그러니까 무료인 성훈을 듣는 거야. 마지막에 그 한 방만 맞을 수 있다면 충분히 감수할 수 있거든.
그 한 방이면, 어떤 꿈속으로 빠져들든 지금보다는 훨씬 나을 테니까요. 지난번 꿈에서 겪은 해전은 정말 끝내줬습니다. 어떤 내용이었느냐면요.
알파는 설교를 기다리는 군중 속에 숨어 있다가, 진료소 이야기가 나오자, 천천히 칼날을 어루만졌다. 알파는 선원들이 의사에 대해 떠드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어린아이를 품에 안은 여인이 몸을 돌려 알파 쪽으로 다가왔다. 수수하지만 깨끗하게 빤 옷을 입은 여인은 이따금 품 안의 포대기를 흔들며 안절부절못하는 기색으로 근심 어린 표정을 지었다.
제가 사는 곳이 꽤 멀어서 동이 트자마자 길을 나섰는데, 다행히 늦지 않았네요.
아이가 아픈지, 꽤 됐는데도 도무지 나을 기미가 안 보여서요. 이곳의 성녀님이 아주 영험하시다는 소문을 듣고...
맞바람이 불어와 포대기의 한쪽 모서리가 들린 찰나, 알파는 아이의 백골을 보았다. 여인은 서둘러 그것을 가리기에 급급했다.
난 가족 때문에 왔어.
여인이 경계하며 여공작을 응시하자, 알파가 덧붙여 말했다.
자매가 남모를 병을 앓고 있어서, 그녀를 위해 기도하러 왔어.
어머, 아가씨 같은 분은 아무런 고민도 없으실 줄 알았어요.
죽음으로 향하는 장미 정원의 길목에서 재앙은 그림자처럼 길게 따르니, 영원히 인내하고 포기하지 않는다면 마지막 순간에 주님의 은혜를 입으리라.
이 말은 경전에서 따온 것으로, 알파는 암송을 마친 후 손가락으로 어깨와 이마를 짚고 두 손을 모아 십자 성호를 그었다. 그러자 여인도 같은 몸짓으로 화답했다.
누군가와의 약속을 떠올리며 군중 속에서 조용히 빠져나온 알파는 초병을 피해 단 몇 번의 도약만으로 성당의 곁방에 도착했다.
방 안에는 이미 다른 방문객이 있었는데, 어떤 귀족 남자가 성녀의 부름을 기다리며 서류를 뒤적이고 있었다.
끝이 없는 짙은 안개군. 만약 이게 오페라였다면 도입부만으로도 역사에 이름을 남기기에 충분했을 거야.
아쉽게도 이게 우리네 인생이라서, 아주 엉망진창이라는 뜻이 돼버렸지만 말이야.
쓸만한 정보나 말해.
롤랑이 알파에게 서류를 내밀자, 그 위에는 "성녀"의 자료라고 적혀 있었다.
<i>미아는 선천적인 시각 장애인으로 세탁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다가, 전염병으로 죽은 뒤 다시 살아났다.</i>
<i>깨어난 후에는 시력을 되찾았을 뿐만 아니라 수많은 경전에 통달했으며, 환자를 치유하고 망자와 대화하는 등 여러 기적을 보여주었다.</i>
<i>이후 미아는 성당의 시험을 치르기 위해 홀로 안개 지역으로 들어가 7일을 보낸 뒤 무사히 돌아와 성녀로 공식 인정받았다.</i>
<i>현재는 도시의 성당에서 주로 활동하며 구원의 도를 설파하고, "성훈"을 통해 신도들에게 기적을 보여주며 성스러운 은혜를 베풀고 있었다.</i>
정말 성녀가 말하는 것처럼 신통방통했으면 좋겠군.
자비로우신 아버지는 결코 쉽게 기적을 보여주지 않으셨지. 보여준다 해도 항상 속임수들 사이에서나 나타나곤 했으니까.
시끄러워.
하지만 우리는 동료로서 우호적인 대화를 나누고 있는 거잖아. 안 그래? 여공작? 진홍?
...
적어도 네가 온 목적이 무엇인지는 알려줘야 하지 않아? 진홍의 보증인으로서, 너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나까지 덩달아 화를 입게 되니까 말이야.
그들이 나더러 이 성녀가 이종인지 확인하라고 하더군.
이종은 안개를 통과하고도 피해를 보지 않는 자를 뜻했다. 기록관은 이 재앙을 "천벌"이라 불렀는데, 인간은 태초의 죄악 속에서 태어나 해탈할 수 없으나 오직 [이종]만이 이 운명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면죄받은 자인 이종은 어쩌면 어떤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을지도, 혹은 그렇지 않을지도 모른다.
공식적으로 기록되고 공개된 이종은 단 한 명, 여공작 알파뿐이었다.
살육의 이름으로 "진홍"이라는 훈장을 받고 영광스러운 칭호를 얻었으니, 알파가 과거에 얼마나 끔찍한 살육전 속에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서 성녀는 이종이 맞아?
무심하게 소매를 정리하며 밖을 응시하는 롤랑의 눈빛에는 보기 드물게 날카로운 기색이 역력했다.
그 성녀는 폭이 넓은 자수 예복을 입고 있어 일고여덟 명이 치맛자락을 들어주어야만 움직일 수 있었다. 또한 화려한 좌석 주변은 지나칠 정도로 많은 황금 장식으로 치장되어 있었다.
사치에 익숙해진 태도를 보면,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열 손가락이 거칠어지도록 세탁 일을 했던 사람이라는 사실을 상상하기 어려웠다.
아니. 성녀는 이종이 아니야.
조야·니벨리아, 이것이 성녀의 진짜 이름이었다. 아무리 많은 세월이 흘렀어도 그녀의 얼굴과 이름은 알파의 기억 속에 묘비처럼 깊게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비석에는 자매의 이름인 {226|153|166}{226|153|166}&{226|153|166}{226|153|166}{226|153|166}적혀 있었는데, 그 글씨가 워낙 흐릿하여 오직 직접 겪은 사람만이 알아볼 수 있었다.
언니, 나 너무 아파. 엄마는? 엄마가 보고 싶어.
엄마는... 앞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셔. 착하지? 조금만 있다가 엄마한테 가자.
아니야. 엄마는 날 탓하실 거야. 분명 나한테 화내실 거야. 내가 말을 안 듣고 나쁜 짓을 해서 엄마는 날 다시는 안 찾으실 거야.
붉은 달이 하늘 높이 걸려 있었다. 지면의 핏빛이 반사된 것인지, 아니면 피가 알파의 눈을 가린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그들은 불과 몇 시간 전만 해도 고아가 아니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옷장 안에서 나오시면 안 된다.
안 돼. 문을 열지 마. 부탁이야, 루시아. 난... 난 이미 네가 알던 모습이 아니야.
너희 말고는 아무도 믿어선 안 돼. 함정일지도 모르니 지금부터는 엄마도 믿지 마.
너... 너희가 자란 모습을 정말 보고 싶었는데. 우리 아가들, 울지 마. 그것들에게 눈물을 보여선 안 돼.
그 이후의 기억은 흐릿했다. 밖에서는 살육의 소리가 계속 들려왔고, 온 세상이 자매의 심장 박동 소리만 남은 듯이 좁아졌다.
루나는 두 눈을 질끈 감은 채, 병이 도졌을 때조차 이를 악물고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았다. 루나가 여태껏 그토록 침묵한 적은 없었다. 그리고 루시아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른 채, 동생의 몸이 축 늘어지는 것만 느낄 뿐이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루나를 잃고 말 거라 생각한 알파는 더 이상 누구도 잃을 수 없었기에, 거실로 가서 루나의 약을 가져오기로 결심했다.
루시아, 어디 있니? 루나야, 어디 있니?
뮤직박스, 리본, 빨간색... 가져온 선물이야. 약... 약 먹어야지. 우리 아기, 약 먹을 시간이야.
아빠야, 언니, 아빠가 돌아오셨어.
루시아가 조심스레 옷장 문을 살짝 열자, 아빠의 얼굴이 순식간에 들이닥쳤다. 문 틈새로 안구를 바짝 붙인 채 필사적으로 안을 들여다보았고, 칼처럼 날카로운 손톱이 들어와 문틀을 단단히 움켜쥐었으며, 입에서는 침이 흘러내렸다.
그 누구도… 믿지 마.
그것은 아빠가 아니라, 아빠의 얼굴을 한 괴물이었다. 자매는 필사적으로 도망쳤고, 더 이상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을 때까지 얼마나 멀리 달렸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정말 안타깝습니다. 너무 늦어버렸네요. 이 구역 사람들은 거의 다 죽었습니다.
아직도 아이를 찾으실 겁니까? 설령 살아있다 해도 이미 변이되었을 겁니다. 대체 어디서 찾으시려고요?
구해줘. 내 동생 좀 구해줘. 동생이 아파.
저기... 제발 동생 좀 살려줘. 약을 먹어야 해. 동생만 살려주면 뭐든 다 할게.
루나는 깨어난 후 실어증에 걸렸고, 온종일 뮤직박스를 껴안은 채 곡을 반복해서 들으며 평온을 찾으려 했다. 그것은 루나의 생일 선물이었으며, 올가을 수술 일정이 잡히면 학교에도 입학할 예정이었다. 만약...
루시아, 솔직히 말해 봐. 그 안개 사고에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누군가 너희를 도와준 거야?
사람들은 타인의 사생활을 엿볼 때 항상 관심이라는 명목을 내세우지만, 그 눈빛만큼은 결코 거짓말을 하지 못했다.
잊어버렸어.
수도원에서 생활할 기회는 아주 소중하단다. 우리는 품성이 착한 아이들만 거두어주거든.
그리고 네가 계속 이러면, 루나에게 물어볼 수밖에 없어.
루나도 잊어버렸어.
너희가 큰 상처를 받았다는 걸 알아. 하지만 너희가 말해주지 않으면, 내가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지 모르겠구나.
날 믿어주지 않겠니? 원한다면 날 엄마라고 불러도 좋아. 내 마음속에선 너와 루나 모두 내 아이라고 생각한단다.
너희를 위해서라면 내 모든 것을 바칠 준비가 되어 있단다.
루시아는 그녀의 눈을 응시했다. 수녀는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마음이 서서히 움츠러들었고, 이번 대치에서 물러났다.
이만 내려가 보렴.
식량이 부족해졌단다. 오늘부터 너와 루나는 매일 1인분의 식사만 할 수 있어. 그리고 각자 맡은 노동 의무도 다해야 한다.
알았어. 그렇게 할게. 그럼, 나 먼저 가볼게.
루시아는 몸을 돌려 자리를 떴고, 계단을 내려가기 전 난간을 잡고 냉정하게 대답했다.
당신은 내 엄마도, 루나의 엄마도 아니야. 우리 엄마는 따로 계시고, 아름다운 천국으로 가셨어.
수녀는 애써 평정을 유지하려 했지만, 소녀가 복도의 끝에서 사라지자 더 이상 화를 참지 못하고 책상 위의 모든 물건을 쓸어버렸다. 고가의 동양 도자기는 쓰레기가 되고 말았다.
지금 루나의 약을 계속 공급할 여력이 없구나. 그래서 루나에게 더 좋은 곳을 찾아줄 수밖에 없단다. 다행히 하늘이 도와서 마침 아이가 없는 부부가 한 쌍 있단다.
수도원에 와서 아이들을 본 적이 있는 그 "부부"는 동화 속 주인공처럼 행복하고 부유해 보였으며 눈부신 금발 머리를 하고 있었다.
루나를 보낼 수 없어. 내가 일도 더 많이 하고, 밥도 더 적게 먹을게.
하지만 너에게 줄 일거리가 더 이상 없구나. 설마 네 이기심 때문에 루나를 죽게 내버려둘 작정이니? 꽉 쥐고 있는 것보다 놓아주는 편이 항상 더 많은 것을 얻게 해준단다. 그렇지 않니?
게다가 루나도 동의했단다. 새 아빠와 엄마를 아주 마음에 들어 하더구나. 어쩌면 루나는 널 그렇게 좋아하지 않을지도 몰라. 너도 알다시피 넌 남에게 사랑받을 성격은 아니니까 말이야.
루시아는 입술을 떨었지만 말을 할 수 없었고,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며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 참았다.
수녀는 묘한 만족감을 느꼈다. 그녀는 루시아의 연약한 상처를 꿀 삼아 맛보는 듯했고, 조심스럽게 음미했다.
그녀는 루시아가 굴복하여 구걸하거나 약해진 말을 하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그 아이는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예를 올린 뒤 떠났다.
떠나는 날이 되자, 루나는 이불을 가지런히 개켜 놓은 채 작은 여행 가방을 품에 안고 차가 오기를 기다렸다.
달은 여전히 쓸쓸해 보였고, 침묵하는 어머니처럼 아무런 말이 없었다. 떠나기 전 루나는 작은 짐승처럼 언니의 등 뒤에 찰싹 달라붙었다.
난 이제 더 이상 짐이 되지 않을 거야, 언니.
언니, 뒤돌아보지 마. 언니를 다시는 못 본다고 생각하면 발길이 떨어지지 않을 것 같아. 가슴이 너무 아파.
아무도... 아무도 믿지 마.
아이 여덟 명에 금화 여덟 닢입니다.
저 병약한 아이까지 데려온 건가요? 실험이 워낙 가혹해서 저 아이는 오래 버티지 못할 거예요. 자리만 차지하게 둘 수는 없어요.
그럼, 그쪽에서 알아서 처리하세요. 어쨌든 난 다시 데려가지 않을 겁니다.
저 아이의 언니는요? 왜 안 데려오셨죠? 그 아이가 훨씬 가망 있어 보였는데 말입니다.
그건 다음 기회로 미루시죠. 그 아이는 저를 아주 불쾌하게 만들어서, 둘이 함께 있는 꼴은 보고 싶지 않거든요.
그녀가 자신의 여동생이 좋은 곳에서 살고 있다고 믿게 하고, 죽을 때까지 속았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생각하면, 나름 괜찮지 않은가?
그런 것 같지는 않군요. 당신을 사람이라고 부르는 것조차 과분한 것 같습니다.
연구원 양반, 난 이 아이들을 데려왔을 뿐입니다. 이 아이들을 진짜 죽음으로 내모는 건 당신들 아닌가요?
그 "원대한 소망"을 위해, 당신들은 또 얼마나 많은 사람의 미래를 손수 꺾어버렸습니까?
당신들이 무슨 짓을 하든, 루나는 당신들을 따라가지 않을 거야.
이 아이는 어떻게 온 겁니까?
루시아가 어두운 그림자 속에서 나타났다. 피와 먼지가 그녀의 온몸을 뒤덮고 있었다. 그녀는 차를 붙잡고 이동하다가 통기관에 손을 데었다.
차가 단지 안으로 진입하며 속도를 늦추자, 알파는 뛰어내려 바큇자국을 따라 철조망 울타리 안으로 기어 들어갔다. 그러다 순찰 중이던 하이에나에게 발을 물렸다. 하지만 그 대가는 하이에나가 훨씬 처절하게 치러야 했다.
이곳에 들어온 이상, 결코 나갈 수 없다.
그들은 그 부유한 상인 부부였다. 그 순간, "남편"이 산탄총을 들어 루시아를 겨누었다.
내 총에 맞아 죽든가, 아니면 남아서 실험체나 돼라.
루시아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녀는 고통을 느끼지 않았다. 단지 완전히 무감각할 뿐이었다.
수녀가 너희에게 아이 한 명당 얼마를 받고 팔아넘겼지?
부가 발행한 무기명 순금 5그램짜리 금화 한 닢이다.
그럼, 난 내 발로 직접 왔으니까, 금화는 저 여자가 아니라 나한테 줘. 그리고 나와 루나를 합쳐서 금화 한 닢으로 계산하고, 내가 너희 실험에 참여할게.
내 요구는 딱 하나야. 무슨 일이 있어도 루나와 함께 있게만 해줘.
아주 공평한 거래로군. 그렇게 하지.
무슨 실험인지 물어보지도 않는 건가?
"남편"은 사냥총을 거두고 "아내"의 손에서 작은 금주머니를 건네받았다. 보름달을 축소해 놓은 듯한 황금 세공품의 무게를 가늠해 보던 남편은 그중에서 비교적 온전한 것 하나를 골라 알파의 손바닥에 올려놓았다.
이게 나와 루나의 목숨값이야? 아주 예쁘네.
괜찮아. 네가 죽고 나면, 시체에서 다시 거둬 가면 그만이니까.
아니. 그건 내가 할 말이야. 네 진짜 이름이 뭐지? 수녀?
조야·니벨리아다. 요망한 것, 똑똑히 기억해 둬라.
조야·니벨리아, 기억해 두지. 이 피에 맹세컨대 금화로 목숨값을 치르게 해주마. 언젠가 이 금화로 네 목숨을 사러 갈 거니까.
그때, 루나를 해치려 했던 네 죄에 대한 우리의 빚은 청산될 거다.
내가 성당 앞에서 사람을 죽이면, 그것 때문에 네가 번거로운 일에 휘말리게 될까?
솔직히 말해서 내 생사 따위엔 눈곱만큼도 관심 없잖아? 안 그래, 알파?
아래층에 있는 저 여자가 성녀든, 사기꾼이든, 이종이든 내가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말이야. 그녀는 무엇이든 될 수 있고, 동시에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어.
중요한 건 마지막 패에 단 한 명뿐인 이종이 나와 동맹을 맺고 있다는 사실이야. 이것이야말로 이익을 극대화하는 최고의 전략이지.
이종이 배급제라면 경찰청장과 다를 게 뭐야? 그러니 걱정하지 마. 번거로운 일은 없을 테니까.
네가 성녀를 죽여준다면 나야 좋지. 네가 왜 손을 쓰려는 지에 관해선 관심 없어.
너와 대화할 때마다 귀족이라는 족속에 대해 새로운 걸 깨닫게 되는군.
그렇게 생각하지 마, 알파. 네 작위를 생각해 봐. 너도 우리 중 한 명이야.
우리가 동맹인 이상, 복잡하고 교묘한 권력 투쟁 따윈 걱정할 필요 없어. 그리고 어쩌다 일어나는 살육이라도 내가 깔끔하게 뒤처리해 줄 테니까.
짙은 안개가 걷히는 날, 나를 교수대로 앞장서서 보내는 이가 너는 아니길 바라.
두고 보면 알게 되겠지, 알파.
난 네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충성스러운 동맹이라는 걸 증명해 줄 테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