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흑, 아빠...
카무이는 에우르디스를 향해 종종걸음으로 달려가다가 너무 급한 나머지 중간에 넘어지고 말았다.
하지만 울지 않고 금세 일어나 옷에 묻은 먼지를 털어냈다. 그러고서는 몸이 깨끗해진 걸 확인하고 나서야 에우르디스의 품에 안겼다.
응? 우리 작은 태양, 왜 그러니?
에우르디스는 손을 뻗어 카무이의 헝클어진 머리를 꼼꼼히 정리해 주었고, 카무이는 대답 대신 고개를 더 깊이 파묻고는 계속해서 고개를 저었다.
카무이, 아빠한테 어리광 부린다고 훈련에서 빠질 수 있을 거 같아? 어서 오렴!
오딜리는 한 손에는 자신의 무기를, 다른 한 손에는 카무이를 위해 새로 만든 소형 무기를 들고, 어이없다는 듯 부자를 향해 걸어왔다.
나... 난 훈련에 참여하기 싫어. 엄마, 오늘 훈련 대신에 공부하면 안 될까?
고개를 들어 오딜리를 바라보는 카무이의 작은 눈망울에는 이미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어머, 오늘은 아사르와 뇌를 바꿨니? 평소에는 첫 페이지를 보자마자 잠들어서 코를 골고 침을 흘렸잖니?
어림없어! 책도 보고 훈련도 해야지. 자, 봐라. 나와 똑같은 무기를 쓰고 싶다며? 똑같이 만들어왔으니까 꾸물대지 말고, 얼른 와.
카무이는 오딜리의 붕대 감긴 팔을 힐끗 보더니, 싫다는 듯 뒤로 물러나며 계속 고개를 저었다.
카무이!! 오늘 뭘 잘못 먹었니? 전에는 빨리 전투 훈련을 시작하고 싶다며? 빨리 커서 강해지겠다더니?
에우르디스는 카무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상냥하게 웃는 얼굴로 물었다.
혹시 엄마와 훈련하는 게 너무 어려워서 그러니? 그럼, 사람을 바꿔볼까? 오늘은 아빠와 먼저 할래?
아, 아니. 아빠도 싫어.
그래도 너무 어려워? 그럼... 형으로 바꿀까? 아사르를 부를게. 너보다 훈련을 조금 일찍 시작했을 뿐이니, 그렇게 어렵진 않을 거야.
카무이는 더 세게 고개를 저었다.
안 돼!! 형도 싫어.
다 싫어? 그럼, 우리 카무이가 훈련이 힘들고 고돼서 무서운 게 아니라, 혹시...
엄마와 싸우기 싫은 거야? 엄마가 다칠까 봐 무서워서 그런 거니?
에우르디스의 말에 아주 세게 고개를 끄덕인 카무이는 에우르디스의 품에서 빠져나와 앞으로 다가가 오딜리의 손을 잡았다.
그러고는 최근 대원들의 훈련을 지도하다가 실수로 긁힌 그녀의 상처를 만졌다. 오딜리에겐 별일 아니었지만, 공교롭게도 그때 에우르디스를 졸라 엄마를 찾아갔던 카무이가 다치는 과정을 목격하고 말았다.
싸우면, 엄마가... 피 나고, 아파.
당시의 상황을 떠올린 카무이는 자신의 작은 손바닥으로 오딜리의 손을 조심스럽게 감싸 쥐고는 살살 문지르며 입김을 불었다.
호오... 엄마... 피를 흘리고 있어... 카무이가 호 해주면 안 아플 거야!
푸흡, 넌 참... 어쩜 아사르가 훈련을 시작할 때와 똑같니. 다들 너희 보고 친형제라고 하는 이유가 이런 거였나 보다.
바보야, 이게 무슨 대수라고. 자, 봐봐. 상처는 거의 다 아물었어. 이젠 하나도 안 아파.
오딜리는 붕대를 풀어 다 나은 상처를 보여주었지만, 카무이는 고집스럽게 고개를 저었다. 아이의 세계에서는 엄마가 다쳤으니 엄청 아플 거라는 생각뿐이었다.
카무이, 엄마가 꼭 해줄 말이 있어. 훈련을 받든, 나중에 진짜 전장에 나가서 싸우든, 피를 흘리고 다치는 건 피할 수 없어. 두렵지 않겠니?
두렵지 않아! 다치면 아프지만, 모두를 지킬 수 있잖아!
아주 좋아. 그러니까 훈련하면서 겪는 그 어떤 것도 무서워할 필요 없어. 그게 뭐든 널 더 강하게 만들어 줄 테니까.
근데... 엄마, 꼭 엄마, 아빠와 싸워야 돼? 다른 방법은 없어? 난 엄마랑 아빠가 다치는 게 싫은데.
오딜리는 카무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에우르디스가 방금 정리해 준 머리를 다시 헝클어뜨렸다.
언젠가 네가 엄마와 아빠를 정말로 이기게 된다면, 오히려 그게 기뻐할 일이야.
네가 우리보다 더 강해질 만큼 훌륭해졌다는 증거니까. 그때가 되면 넌 더 많은 사람을, 에제트의 모두를, 심지어 우리까지 지킬 수 있게 된 거야.
이런 일로 슬퍼할 필요 없어. 이제 울어서도 안 되고... 네가 그랬지? 에제트에서 가장 용감한 영웅이 되겠다고. 영웅은 눈물을 흘리지 않아!
우릴 위해 슬퍼할 필요 없어. 카무이, 아사르, 카트레브.
오딜리의 손은 유리 벽에 가로막혀 있어서 손을 뻗어 두 아이의 눈물을 닦아줄 수 없었다.
이건 이별이 아니야. 우린 영원히 너희와 함께할 거란다.
에제트를 너희에게 맡길게. 그러니까, 앞으로는 울면 안 돼, 알았지?
알겠어, 엄마, 아빠.
카무이는 자신이 직접 쓰러뜨려 고철이 되어버린 두 구의 "침식체"를 꽉 끌어안았다.
엄마, 아빠의 소원은 내가 이룰게. 더 강해져서, 모두를 지킬게.
그리고... 다시는 울지 않을 거야.
사실 감시기 화면에서 소름 끼치도록 비슷한 점들을 발견했을 때부터, 카무이는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어진 수차례의 교전과 전투에서... 과거 부모님과 에제트에서 훈련하던 장면이 눈앞에 생생하게 떠올랐다. 너무나 가깝고도 아득한 기억이었다. 가장 익숙한 기술이 가장 숨 막히는 절망을 안겨주었지만, 카무이는 오딜리와 에우르디스의 당부를 확실히 지켜냈다.
충분히 강하고 굳셌기에, 침식체로 전락한 부모님을 제 손으로 쓰러뜨려 그들에게 해방을 안겨줄 수 있었다.
응. 두 분을 잘 모셔드리고 싶어.
그리고... 수상한 부분이 하나 더 있는데, 단서를 더 찾아보려고.
카무이는 침식체가 된 부모님의 잔해를 안아 들고 멀지 않은 곳에 놓인 보안 상자로 걸어갔다.
관찰을 해본 결과, 두 분의 활동 반경이 보안 상자 주변을 벗어나지 않고 있었어. 폭주하긴 했어도 본능적으로 여길 지키고 계셨어.
이 상자 안에 분명 해답이 있다는 걸 알고 계셨기 때문에 마지막까지 이곳에 남고 싶으셨던 거야.
발리콘 계획에 따르면, 훈련자는 태양 코로나 유전자 변환 후기에 접어들어 성공 가능성이 어느 정도 확정된 후에야 구조체 개조를 시작하게 돼 있어.
당시 시간상으로... 두 분이 그 단계를 마쳤을 리가 없어. 인간의 몸으로 침식체가 될 리는 더더욱 없었을 거고.
에제트의 모든 대원은 각자 개인 보안 상자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카무이의 기억에 의하면, 당시 세계 정부가 에제트를 접수한 후 오딜리와 에우르디스에게 그들의 모든 물품을 넘겨주었다고 했었다.
뭔가 숨겨진 게 분명했다.
카무이는 익숙한 비밀번호를 다시 입력해 오딜리와 에우르디스의 공용 보안 상자를 열었다.
그들의 육신은 여전히 본능에 의지해 상자 안의 물건을 지키고 있었다.
이 상자 안의 물건은... 황금 태양 에너지, 그리고 편지?
"부모님께서... 내게 뭔가 다른 걸 남기셨을까? 더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었을까?" 카무이는 온갖 생각을 다 하며 제법 잘 보존된 편지를 열었다.
<i>카무이</i>
<i>이 편지는 엄마와 아빠가 너에게만 남기는 거란다.</i>
<i>오랫동안 의논한 끝에, 결국 너와 아사르에게 줄 편지를 따로 쓰기로 했다. 이런 때일수록 너희 각자의 권리를 존중해주고 싶었거든.</i>
<i>내 얘기부터 먼저 할게. 아빠가 남긴 내용은 뒤에 있어.</i>
<i>우선... 미안하다. 발리콘 계획에 관해 일부러 숨기려던 건 아니었어. 그저 말할 적당한 타이밍을 찾지 못했을 뿐이야.</i>
<i>너희도 이미 눈치챘겠지만, 우리는 시련 전부터 참여하고 있었다. 돌아오면 바로 말해주려고 했는데...</i>
<i>퍼니싱 그 망할 게 너무 빨리 들이닥쳐서 손쓸 새가 없었지.</i>
<i>세상은 온통 엉망이 됐고, 에제트 식구들도 누구 하나 숨 돌릴 틈도 없었어.</i>
<i>후회하진 않는다. 발리콘 계획이 퍼니싱에 대항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건 뜻밖의 수확이었으니까.</i>
<i>그 소식을 들은 순간, 너희를 위해 길을 닦아줄 수 있어 다행이라 생각했다.</i>
<i>너희가 참여하게 되는 건 개량된 버전일 거야. 그러니 안심하렴. </i>
<i>1기 훈련자로서 우리가 너희를 대신해 충분한 위험을 감수하며 시행착오를 겪었으니까.</i>
<i>사랑한다, 얘들아. 하지만 시간이 너무 짧았고, 우리 몸도 더는 버티질 못했어.</i>
<i>이제 우린 전환 성공 가능성이 거의 없는 상황이야. 그러니까 필요한 순간이 오면, 우릴 포기해야 한다.</i>
<i>나머지는... 네 아빠가 남긴 내용은 뒤에 있어.</i>
<i>카무이, 아빠다. 슬퍼하지 마라.</i>
<i>이 글을 볼 때쯤이면 마음이 무척 아플 거라는 걸 안다.</i>
<i>하지만 아들아, 앞으로 가야 할 길은 아직 멀어. 우리 없이도 스스로 나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i>
<i>엄마가 방금 한 말을 이어서 할게. 네가 이 편지를 볼 기회가 생겼다면, 아마 우리는 이미 에제트를 떠난 후일 거다.</i>
<i>결말이 어떻게 될지는 우리조차 장담할 수 없구나. </i>
<i>너희에게 더는 무언가를 보장하고 약속해 줄 힘이 없기에, 이 편지를 쓰게 된 거란다.</i>
<i>세계 정부의 군대가 도착하면, 그들이 우리에게서 태양 코로나 유전자의 영향을 제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거다. </i>
<i>운이 좋다면 소문으로만 듣던 구조체 개조를 받을 수도 있겠지.</i>
<i>하지만 그렇다 해도 우린 에제트에 남을 수 없어. 아마 다른 곳의 최전선에 나가게 될 것 같다.</i>
<i>또 다른 가능성은 듣기 싫어할 테니 끝까지 말하진 않을게.</i>
<i>어쩌면 제대로 작별 인사를 하지 못할 수도 있어서, 이 편지로라도 대신하는 거란다.</i>
<i>여기가 우리의 종착점이겠지만, 너희의 종착점이 되어서는 안 돼.</i>
<i>너희에겐 아직 희망이 있어. 발리콘 계획에서 전환점을 맞이해 꿋꿋이 살아남기를 바란다.</i>
<i>어릴 적 네가 가장 좋아하던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니? </i>
<i>태양의 탄생은 평범하지 않아. 수많은 어둠을 삼켜야만 비로소 눈 부신 빛을 낼 수 있지.</i>
<i>그 어둠은 천지에서 올 수 있고, 한때 그처럼 태양이 되려고 했던 동포에게서 올 수도 있어. </i>
<i>과정은 필연적으로 고통스럽겠지만, 뒤돌아봐선 안 돼.</i>
<i>우린 이미 어둠이 되기로 정해진 운명이야. 그러니 너무 슬퍼하지 마. 우리 대신 계속 걸어가 줘, 카무이.</i>
<i>사랑하는 아들아, 우리가 보지 못한 태양과 아름다운 고향을, 네가 대신 봐주렴.</i>
<i>▇▄▃▆▃▁▁▁▁</i>
<i>물론 너도 알겠지, 카무이. 널 향한 우리의 기대는 이 정도가 아니란 걸. 네 어깨엔 너 자신뿐만 아니라 에제트의 미래가 달려 있어.</i>
<i>너와 아사르, 너희는 반드시 그 태양이 되어야 해. 그게 유일한 길이야. 안 그러면 지난 모든 일이 아무 의미 없어지니까.</i>
<i>우리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거지? 네가 그랬잖아, 카무이. 넌 언제나 우리의 자랑일 거라고.</i>
<i>우리는 연구 데이터 제공을 위해 시신을 자발적으로 기증한다는 서약서에 서명했다.</i>
<i>만약 불상사가 생긴다면, 세계 정부의 뜻에 따라 구조체 기술을 개선하는 데 쓰이게 될 거다.</i>
<i>편지와 함께 남긴 에너지는 우리가 널 위해 애써 구한 거란다.</i>
<i>우리의 유전자 강화 기술이 그리 안정적이지 못해서 추출할 수 있는 에너지가 많진 않지만, </i>
<i>너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구나.</i>
<i>우리가 너희와 함께한다고 생각하고 필요하면 흡수하렴.</i>
<i>오딜리 에우르디스</i>
엄마... 아빠...
카무이는 편지가 구겨지지 않도록 손에 들어가는 힘을 억눌렀다.
[player name], 다시 연결 좀 도와줄 수 있어?
이 정제된 에너지를... 지금 흡수할게.
오딜리와 에우르디스는 카무이를 누구보다 잘 알았다. 인간이었던 소년 시절에도, 잃었다가 다시 찾은 지금의 구조체일 때도 카무이는 기꺼이 똑같은 선택을 할 것이었다.
어떤 위험도 두려워하지 않고, 스스로 그 태양이 되는 길을 걸어갈 것이다.
카무이는 더 망설이지 않았고, 오히려 살짝 조급해 보이기까지 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살아남았을까?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의 구원을 기다리고 있을까? 조금이라도 늦는다면, 그때 부모님을 잃었던 것처럼, 소중한 사람을 구하지 못하게 되는 걸까?
카무이는 두 번 다시 그런 결말을 맞이하고 싶지 않았다.
익숙한 찢어질 것 같은 통증이 밀려왔고, 카무이는 벽에 기댄 채 산산조각 났다가 다시 신생을 향하는 세례를 담담히 받아들였다.
그는 빨리 떠올려야만 했다.
카무이에겐 온전한 기억과 힘이 필요했고, 다시 한번 그 태양이 되어야만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