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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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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15-8 해질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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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제트 훈련장

과거

안... 안녕...

누군가 부르는 소리에 카무이는 뒤를 돌아보았다. 카무이는 훈련장에서 여느 때처럼 지도와 순찰을 하던 중이었다. 퍼니싱 발발 이후, 에제트 전원이 전시 상태에 돌입하면서 평소와 관리 방식이 달라져 있었다.

에제트는 자체 방어 외에도 다른 재난 지역을 구조해야 했기에, 오딜리와 에우르디스 등은 최전선에서 바쁘게 움직였다. 그래서 고유 능력과 간단한 평가를 종합하여, 당분간은 카무이와 아사르가 임시 관리직을 맡게 되었다.

안녕! 카이, 무슨 일이야?

카무이는 웃으며 눈앞의 카이에게 도움이 필요한지 물었다.

어? 내 이름을 기억하네.

당연하지! 지난달에 동생이랑 같이 들어왔잖아. 맞지? 내 기억으론, 음... 맞아. 아직 배치 대기 중일 텐데.

맞... 맞아. 요즘 난민들을 많이 받아줘서 사람도 많고 정신없을 텐데, 그런 걸 기억할 줄은 몰랐어.

카이는 쑥스러운 듯 머리를 긁적였다. 에제트 사람들이 워낙 바쁘니 이런 사소한 일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을 거라 생각했기에, 카무이에게 어떻게 말을 꺼낼지 고민하던 참이었다.

괜찮아. 무슨 일이든 편하게 말해. 내가 최대한 도와줄게!

그게... 3일 전에 나랑 동생이 최신 전투력 평가를 받았거든. 그 결과로 에제트 정규군에 들어갈 수 있을지 결정된다고 들었는데, 혹시 결과를 먼저 물어봐도 괜찮을까?

말이 떨어지기도 바쁘게 카이는 곧 후회했고, 혹시라도 거절당하게 되면,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속으로 고민하기 시작했다.

물론이지. 사실 원래 오늘 밤에 결과가 발표될 예정이었거든. 어디 보자.

넌 전투력 평가를 통과했네. 원한다면 에제트에 남아 정규 부대에 편성되는 정식 병사가 될 수 있어.

네 동생은 체력이 좀 약해서인지 평가를 통과하지 못했어. 하지만 걱정 마! 통과하지 못한 인원은 모두 가장 가까운 피난 기지로 안전하게 호송될 테니까.

물론 에제트는 강제로 널 남게 하진 않을 거야. 동생과 떨어지기 싫으면 같이 떠나도 괜찮아.

그 말을 들은 카이는 눈에 띄게 흥분했다.

난 여기 남을게! 제발 남게 해 줘. 에제트가 우리 목숨을 구해 줬는데,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계속 고민했거든.

사실 우리 동생의 상황은... 어느 정도 예상했어. 그 아이에게 정착할 곳이 마련되면 난 더 바랄 게 없어.

다행이다. 이해해 줘서 고마워! 정말 미안하게 됐어, 세계 정부의 최신 규정 때문에 지금 에제트의 물자도 엄격한 심사를 받아야 해서, 정식으로 편성된 인원의 규모에 따라 신청할 수밖에 없거든.

정식 인원이 아닐 경우, 우리도 억지로 너무 오래 데리고 있을 수가 없어.

아니야. 오히려 우리가 감사해야지! 여기 있는 사람들도 다 알아. 너희는 이미 충분히 많은 걸 해줬어.

저기... 훈련장 쪽은 아직 안 끝난 것 같은데? 지금 바로 가도 돼? 어서 강해져서 하루라도 빨리 도움이 되고 싶어!

문제없어! 잠깐만 기다려봐. 다치지 않게 몸에 맞는 훈련복을 하나 찾아 줄게.

카무이는 즉시 탈의실로 달려가 자신이 여분으로 두었던 훈련복 한 벌을 찾아 카이에게 건넸다.

사이즈는 대충 맞을 거야... 에헤, 역시 딱 맞네! 자, 받아 봐!

에제트에 온 걸 환영해. 오늘부터 우린 다 같은 가족이야!

응!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게!

말을 마친 카무이는 다른 병사에게 카이의 기초 훈련을 맡겼고, 또다시 기록표를 집어 들어 계속 작성할 준비를 했다. 그러면서 에제트에 가족이 한 명 더 늘어난 걸 진심으로 기뻐하며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카무이...

갑자기 누군가 부르는 소리에 카무이의 생각이 끊겼다. 고개를 들어보니 훈련장 울타리 밖에서 한 의무병이 카무이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의료부 구역과 훈련장은 꽤 멀리 떨어져 있어서, 의무병은 달려오느라 힘을 많이 쓴 듯 울타리에 기댄 채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어? 왜 그래? 의료부 쪽에 도움이 필요해?

부... 부장님이 널 부르셔. 카트레브와 관련된 일인 것 같아.

알았어. 지금 당장 갈게. 참, 이거 좀 마셔. 수분을 보충하고 천천히 돌아가, 너무 서두르지 말고.

그럼, 난 먼저 가볼게. 여기까지 와서 알려줘서 고마워!

카트레브...

카무이의 우렁찬 목소리가 그보다 먼저 의료부에 도착했다.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든 카트레브는 몸을 돌려 카무이가 자기 앞까지 달려오기를 기다렸다.

카무이.

괜찮아?! 어디 다친 데는 없고?

카무이는 카트레브의 몸을 위아래로 샅샅이 뒤졌다. 원래 자연 곱슬이던 그의 검은 머리는 더 헝클어져 버렸다. 머리도, 얼굴도, 손도, 다리도 다친 곳이 없었다. 아무 문제 없다는 걸 확인한 후에야 카무이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 다행이다, 다행이야. 멀쩡해 보이는데, 대체 무슨 일이야?

카무이, 왔니? 전할 말이 있어서 불렀어. 카트레브를 데려가도 돼. 앞으론 의료부의 일을 도와주지 않아도 괜찮아.

위니 아주머니, 보내지 마. 난 잘할 수 있어. 노력할게. 도울 수 있어.

카트레브. 너무 조급해하지 말고 내 말을 좀 들어봐. 그런 게 아니라...

아유, 의사 선생님... 이 총각을 내쫓지 마요. 그동안 우릴 돌보느라 얼마나 고생했는데! 약을 발라주고, 붕대를 갈아주고, 상처도 소독하고, 뭘 하든 엄청 꼼꼼하게 잘해요. 그냥 있게 해줘요!

표정이 좀 무섭긴 하지만... 제가 겁이 많은 편이라 처음 왔을 땐 좀 놀랐거든요. 그래도 다른 건 진짜 흠잡을 데가 없다니까요!

웃을 수 있어. 카무이가, 도와줬어. 연습을.

헤...

...

총각... 내가 부탁할게. 그건 포기하는 게 낫겠어. 내가 좀...

조금 시무룩해진 카트레브는 "미소"를 거두고 카무이 옆으로 다가가더니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고, 방금 받은 충격을 묵묵히 삭였다.

저기요, 환자분. 자꾸 제 말을 끊지 말고 얌전히 누워있어요. 끼어들수록 더 복잡해지니까요.

그런 게 아니야. 카트레브. 의료부는 널 싫어하는 게 아니란다. 자, 너희가 직접 봐.

위니는 그렇게 말하며 손에 든 보고서를 카무이에게 건넸다.

카트레브가 여기로 배정된 후, 계속 열심히 도와줘서 우리도 정말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하지만, 여기서 이 아이의 장점을 발휘할 수 없어서 그래.

이건 최근에 내가 카트레브를 위해 만든 전투력 평가 보고서야. 보다시피 모든 면에서 자질이 뛰어나지. 보기 드문 인재인데 의료부에만 두기엔 너무 아까워.

데려가서 훈련을 시키도록 해. 지금 전선의 상황도 빡빡하고, 너희에겐 이런 훌륭한 전사가 필요하잖니.

내가... 해낼 수 있을까?

우리의 판단을 믿으렴. 그리고 너도 자신감을 좀 가져. 카트레브. 넌 착하고 끈기 있는 아이란 걸 우리 모두가 알고 있어. 넌 분명 잘할 거야.

응, 알았어.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카트레브에게 기초 테스트 몇 개를 더 진행해 보고, 그다음에...

평가 보고서에 나온 등급대로 바로 훈련 기준을 맞춰. 보고서에 조건이 괜찮다고 나왔으면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잖아.

카무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옆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마침, 아사르가 의료 물자 상자를 안고 다가와 상자를 내려놓으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카트레브를 자꾸 애 취급하며 감싸지 마, 카무이. 에제트에 들어온 이상 이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해 헌신해야 해.

게다가 카트레브는 나와 동갑이고 너보다 한 살이나 많은데, 자꾸 우리 앞에서 어른인 척하지 마.

데리고 가서 훈련을 시작해. 저 녀석의 장점도 살리고, 서로 챙겨줄 수도 있잖아.

나도 같이 도와서... 진도를 빨리 따라잡게 해줄게.

최근 들어 아사르가 카트레브를 대하는 태도가 많이 부드러워졌다. 방금 아사르의 말은 카트레브를 한층 더 인정해 주는 셈이었다. 카트레브는 눈에 띄게 기뻐하며 고개를 끄덕이고 그들을 바라보았다.

훈련하러, 갈게.

카무이처럼, 에제트를, 지킬 거야.

사실 에제트에 보답할 수만 있다면 무슨 일을 맡든 상관없었다. 전투에 나가 자신을 거둬준 이 새로운 집을 더 잘 지키고, 카무이 같은 사람이 될 수 있다면 그게 바로 카트레브가 바라는 바였다.

좋아. 알았어. 그럼, 앞으론 내가 카트레브를 데리고 훈련할게. 안심하고 맡겨둬!

카무이가 자신만만하게 가슴을 치자, 아사르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 위니를 바라보았다.

위니 이모, 이 녀석들을 데리고 이번 주 업무 정리를 하러 가봐야 해요. 여긴 좀 부탁할게요. 수고하세요.

그래, 가봐. 끝나면 푹 쉬고. 너희는 요즘 쉴 틈도 없이 바쁘더라.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우리 어른들이 책임질 테니까, 너무 부담 갖지 말고.

에제트 자료실

과거

과거-에제트 자료실

세 소년은 자료실에서 이번 주의 업무 내용을 간단히 정리하고, 곧바로 내부 회의를 시작했다.

엄마한테 물어봤는데, 이번에도 바빠서 못 오신대. 지난번처럼 기다릴 필요 없이 우리끼리 업무 내용을 맞추자.

카무이, 너부터 시작해.

응.

카무이는 권한을 조작해 최근 기록된 데이터와 보고서를 화면에 띄웠다.

인원 관리랑 잔류 부대 훈련 쪽은 전체적으로 별다른 변동은 없어.

이번 주 에제트 기지에 잔류 중인 내부 인원의 훈련은 평소대로 진행했어. 구조된 외부 인원들은 순차적으로 전투력 평가 중이고, 현재 3차까지 진행됐어.

결과를 보면 30% 정도가 기준 달성이라, 본인이 원하면 복귀해서 남게 할 수 있어. 나머지는 보고를 올린 뒤, 규정대로 분대가 가장 가까운 구조 구역까지 호송할 예정이야.

제2차 신규 편입 대원들은 현재 기초 훈련을 마쳤고, 다음 주부터 순찰 임무를 배정할 거야. 심화 테스트까지 끝나면 상황 봐서 정식 편대를 꾸리고, 최대한 빨리 최전선에 투입할 계획이야.

구조된 난민 대부분은 정서적으로 안정돼 있고, 도주나 소요 사태가 일어날 조짐도 없으며, 최근 물자 배급이 줄어든 상황도 이해하는 분위기야.

하지만... 후방 지원부 통계에 따르면, 남은 물자로는 길어야 3주밖에 못 버틴대.

3주 뒤에도 새 물자가 들어오지 않으면 3분의 1은 정상적인 보급을 못 받게 돼. 그때가 되면 다들 지금처럼 긍정적일 거라고는 장담을 못하지.

알았어. 카트레브, 최근에 너한테 기지의 의료 비축물이랑 인프라 점검을 맡겼는데, 그쪽 상황은 어때?

의료용품은, 당분간 충분해. 에제트 내부는, 괜찮은데. 위니 말대론 최전선에, 의료 물자가 부족하대.

기지 방어 시설도, 다 점검했어. 조금 부서진 곳은, 내가 고쳤고. 재료를 다 썼어. 다음에 고칠 땐, 부족할 거야.

알았어. 그건 내가 다시 방법을 찾아볼게.

내 쪽은... 자원 신청 건은 엄마가 넘겨받으셨어. 우리더러 신경 쓰지 말라셔서 최근 진행 상황은 아직 몰라.

최근에 수상한 사람이 침입한 적은 없는데, 세계 정부 쪽이 확실히 좀 수상해.

퍼니싱 발발 이후 에제트는 세계 정부의 지시에 따라 여기저기 재난 지역을 구조하고 있잖아. 예전엔 세계 정부랑 통신으로만 연락했는데, 최근 들어 핑계를 대며 에제트를 들락거리는 빈도가 잦아졌어.

에제트 본부가 여전히 자체 방어 상태라 인원 출입이 잦으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굳이 사람을 보내 방해할 이유가 없었다.

됐어. 이 일은 일단 제쳐두고. 더 급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어.

아사르는 몇 초간 뜸을 들이다가, 결국 사실을 털어놓았다.

현재 에제트는 수장을 포함해 성인 엘리트 병력 대부분이 최전선에 파견된 상태야. 최근 보고에 따르면 최전선의 병력 손실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고, 연락이 두절된 부대도 늘어나고 있어.

빨리 최전선의 병력을 보충해야 해. 그렇지 않으면 얼마 못 버티고 방어선이 뒤로 밀려나 기지 본부까지 위협받게 될 거야.

최신 인원 편성 통계가 끝나면 다시 계획을 세우자. 에제트 전체 업무는 대충 이 정도고, 이제...

우리가 전에 얘기했던 그 문제야.

아사르가 내무 보고서 기록 창을 닫고 몸을 돌려 카무이, 카트레브와 마주 보았다.

카무이, 네가 제일 먼저 문제를 제기했으니까, 지금 있는 단서들로 먼저 판단해 봐.

응. 전에도 말했지만, 엄마가 훈련 계획을 직접 조정하셨어. 내가 확인해 봤는데 평가 주기가 엄청나게 짧아졌고, 훈련 강도도 최소 세 단계는 올라갔어.

그거 말고도, 최근에 나와 카트레브가 같이 확인한 게 있어. 최전선에 있는 엘리트 병력이 최근에 약품을 과도하게 신청했더라고. 주로 정신 손상 치료와 체력 보충용인데, 신청량이나 빈도가 정상 범위를 한참 벗어났어.

이 데이터는 보고된 사상자 수치랑 안 맞아. 분명 다른 이유가 있어서 이렇게 과다 복용하는 걸 거야.

...

아사르는 생각에 잠긴 채, 오딜리가 보급품을 수령한 시간 기록을 훑어보았다.

이상 징후가 시작된 시점이 세계 정부에서 사람을 자주 보내기 시작한 시기랑 딱 맞아떨어져. 겉만 번지르르한 놈들, 진작에 속셈이 있다는 걸 눈치챘어야 했는데.

우린, 어떡해?

카무이와 아사르가 눈을 마주쳤다. 서로의 생각이 일치하다는 걸 확인한 둘은 화면에 에제트의 구역 지도를 띄웠다.

그쪽에서 직접 말을 안 해주면, 우리가 단서를 찾는 수밖에. 증거를 모아야 대놓고 따져 물을 수 있으니까.

최근 엄마가 복귀하는 횟수도 늘었어. 기지 안에서 윗선 사람들을 만나는 게 분명해. 정확한 장소만 찾으면 최소한 그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있을 거야.

최전선에서 자주 신청하는 약품 종류를 외워뒀다가, 마지막 물량을 가져가기 전에 그 안에다 실시간 위치 추적기를 넣어뒀어.

지금 위치 추적기가 가리키는 좌표는 에제트 기지 최상층이야. 거긴 아직 개방되지 않은 새 훈련장이 있잖아.

그곳은 시련이 닥치기 몇 달 전부터 지어지기 시작했는데, 당시 오딜리는 나중에 쓸모가 있을 거라고만 하고 자세한 설명은 하지 않았다. 이후 전쟁이 터지면서 다들 그 장소의 존재를 잊고 있었다.

위치 추적기가 없었다면 카무이와 아사르도 그런 장소가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떠올리지 못했을 것이다.

공간도 넓고 은밀한 데다, 우리한텐 계속 미개방 상태라며 함부로 들어가지 말라고 했어. 모든 조건이 딱 맞아떨어지네.

그럼, 잠입 작전을 짜자. 마침, 어제 막 복귀했잖아. 우리가 직접 진실을 밝혀내는 거야!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그들은 그날 밤 바로 계획을 실행하기로 했다. 그런데 잠입 과정은 생각보다 훨씬 순조로웠다.

좀 이상해. 중간에 순찰 도는 경비병도 거의 못 본 것 같아. 게다가 평소엔 밤에도 업무를 처리해 달라고 찾는 사람이 꼭 있었는데, 오늘은 왜 이렇게 조용하지?

아사르, 지금 이 상황이 그때와 엄청 비슷하지 않아? 설마 또 엄마가...

만약 그렇다면, 최소한 우리한테 사실대로 말할 준비가 됐다는 뜻이겠지. 이렇게 된 이상 계속 가보는 수밖에.

내가 가장 앞장서서 길을 뚫을 테니까 넌 뒤를 맡아. 카트레브를 잘 챙기고. 여긴 아직 조명이 안 들어와서, 쟤가 야맹증 때문에 아무 데나 걷다가 부딪히지 않게 조심해.

말을 나누는 사이 세 소년은 이미 새 훈련장 문 밖에 도착했고, 살짝 열려 있는 곁문을 발견했다. 마치 그들을 안으로 초대하려는 듯이 꽉 닫혀 있지 않았다.

아사르가 문을 살짝 밀어보았지만, 별다른 기척은 없었다. 카무이가 뒤로 물러나 주변에 이상이 없는지 다시 확인한 후, 그들은 조심스럽게 곁문으로 들어가 앞으로 나아갔다.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서야 새 훈련장 내부에 일부 조명이 켜져 있는 걸 발견했다. 중앙에서 새어 나오는 빛 덕분에 그들은 훈련장 전체 모습을 엿볼 수 있었는데... 이곳은 일반 훈련장보다 훨씬 규모가 컸다.

특히 수직 공간의 높이는 인간의 전투 훈련에 필요한 장소라기엔 너무 높아서, 오히려 에제트의 무기 테스트장과 비슷해 보였다.

여긴... 대체 무슨 목적으로 만든 걸까?

알 게 뭐야. 하지만 안 봐도 뻔하지. 상부와 관련 있는 게 확실해.

흐아아!!

?!!

엄마의 목소리잖아. 저쪽이야!!

그들은 훈련장의 외곽을 쳐다보았다. 그곳엔 간이 재료로 지어진 임시 실험실이 있었고, 처절한 비명은 그곳에서 들려왔다. 아사르가 먼저 달려갔고, 카무이와 카트레브가 그 뒤를 쫓았다.

이건?!!

실험실에 뛰어들자,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커다란 격리 유리였다. 그 너머로 오딜리가 보였다. 그녀는 고통스러운 듯 바닥에 반쯤 무릎을 꿇은 채, 무기를 꽉 쥐고 억지로 몸을 지탱하며 정신을 잃지 않으려 이를 악물고 있었다.

세 소년과 가까운 유리 밖에서는 에우르디스가 정체불명의 기계 앞에 서 있었다. 그는 진작에 뒤에서 나는 기척을 눈치챘지만, 애써 감정을 억누르며 재빨리 흘끗 쳐다보고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에우르디스는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평온하게 반대편의 오딜리를 계속 주시했다. 그러나 곧 이어진 떨리는 목소리에, 그의 속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말았다.

이미 지난번 훈련의 한계치에 도달했어.

에우르디스가 마이크에 대고 말하자, 확성기를 통해 반대편의 오딜리에게 목소리가 전해졌다.

더 올려!!

에우르디스는 마이크 선을 꽉 쥐었지만, 오래 머뭇거리지 않고 오딜리의 요구대로 기계 수치를 올렸다.

더욱 처절한 비명이 울려 퍼졌고, 그 소리는 현장에 있는 모두의 가슴을 후볐다. 에우르디스는 차마 더 보지 못하고 이를 악문 채 시선을 바닥으로 떨구었다.

윽... 이 정도로는 아직 한참 멀었어. 고작 시뮬레이션 환경일 뿐인데, 벌써...

에우르디스... 계속 올려!! 눈곱만큼도 마음 약해지지 마!!

안 돼!! 더 올리면 안 돼!! 아빠 뭐 하는 거야?! 엄마가 저렇게...

카무이가 먼저 뛰쳐나가 기기 스위치를 내려 오딜리의 고통을 끝내려 했다.

건드리지 마!!

에우르디스가 카무이에게 소리를 지른 건 아마 이번이 처음일 것이다. 아이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자신도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었지만, 결코 멈춰선 안 된다는 걸 에우르디스는 잘 알고 있었다.

카무이, 아사르... 그리고 카트레브. 너희 중 누구도 이 기기를 건드려선 안 돼.

똑똑히 지켜봐라. 너희 엄마가 지금 뭘 하고 있는지, 우리가 뭘 하고 있는지...

이게 바로 미래에 너희가 완수해야 할 사명이니까.

고문과도 같은 이 과정은 꽤 오래 지속되었다. 아사르는 엄마의 고통스러운 비명을 차마 듣지 못하고 귀를 막은 채 구석으로 숨어버렸다. 반면 카무이는 유리창 가까이 다가가 오딜리가 몸부림치는 매 순간을 마음에 새기려 했다.

카트레브는 카무이 곁으로 다가가 그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조금이나마 위로와 의지가 되어주려 했다. 하지만 그 역시 시선을 떨군 채 고개를 들지 못했다.

지금의 그는 오딜리와 에우르디스의 양아들이지만, 이 순간만큼은 그녀의 고통을 똑바로 마주할 용기가 없었다.

오딜리!!

마침내 목표치에 도달하자, 에우르디스는 즉시 기계를 끄고 안으로 뛰어 들어가 기진맥진한 오딜리를 꽉 끌어안았다.

아이들도 뒤따라 들어갔지만, 그들을 방해하지 않고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기다리기만 했다.

오딜리가 마침내 기운을 차리고 정신을 되찾자, 그녀는 에우르디스의 등을 토닥이며 위로했다. 그리고 그를 떼어낸 뒤 몸을 일으켜 세 소년에게 다가갔다.

어... 엄마, 대체 왜... 왜 이러는 거야?

카무이는 쏟아지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오딜리가 이렇게 연약하고 처참한 모습을 보인 건 처음이었다.

카무이, 아사르, 카트레브. 너희들... 참 잘했어.

최근에 대국을 주도하며 에제트를 잘 이끌어준 것도, 단서를 찾아 여기까지 온 것도 아주 훌륭했어.

이렇게 되면... 우리도 완전히 마음을 놓을 수 있겠어.

이제부터 내가 하는 말을 똑똑히 기억해 둬. 명심해, 앞으로 맞이할 모든 순간에 가슴 깊이 새겨야 해.

오딜리의 목소리는 평소만큼 우렁차지 않았지만, 에제트의 리더로서 뿜어내는 압도적인 기백만큼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그동안 너희도 봤겠지만, 퍼니싱이라는 악마가... 우리 세상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놨어.

우리가 에제트를 지키고 무고한 사람들을 구하려고 최선을 다하긴 했지만... 그것만으론 턱없이 부족해.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 그리고 우리의 구원을 기다리는 더 많은 사람을 위해 에제트는 결코 가만히 앉아서 죽음을 기다릴 수 없어.

오딜리가 팔을 들어 올리자, 선명한 채혈 자국이 드러났다.

너희가 계속 궁금해하던 그것 말이다, 지금 그 이름을 알려줄게. 이름은 "발리콘 계획"이야.

몇 년 전부터 세계 정부 측에서 초안을 기획하고 있었고, 그러다 에제트로 찾아와 우리한테 먼저 시도해 보라고 한 거다.

이건 일종의 유전자 강화 개조 실험이다. 개조 대상자에게 "태양 코로나 유전자"라는 백신을 주사하면, 유전자가 변환되면서 전면적으로 강화되지.

원래는 정상적으로 추진됐었는데... 퍼니싱이 터지면서 상황이 바뀌었어.

개조자의 혈액에서 어떤 물질을 추출할 수 있다는 걸 발견했는데, 그게 퍼니싱에 미약하게나마 면역력을 가지고 있다더군. 물론 면역 효과는 아직 강화하는 중이지만, 인간에겐 엄청난 희망이고 새로운 가능성이 열린 셈이지.

이 발견 덕분에 세계 정부는 발리콘 계획을 더 발전시키려고 해. 유전자 변환이 완전히 성공한다면, 그 물질이 더 강력한 효과를 가져올지도 몰라. 성공한 사람이 나중에 구조체 수술까지 받으면 힘이 배로 늘어날 테니까.

우린 개조에 성공한 자를... "황금 태양"이라고 부르기로 했어. 그리고 그 물질을 "태양 에너지"라고 명명했다. 에제트가 처음 세워졌을 때부터 지금까지 쫓아온, 강하고 따뜻한 "태양" 말이야.

이게 바로 우리가 필사적으로 쟁취하려는 목표이자, 인간이 반격할 수 있는 새로운 희망이다.

그럼 엄마, 그에 따른 대가는?

카무이가 오딜리의 말을 끊었다.

힘, 희망, 영웅... 그 많은 걸 설명해놓고, 왜 방금 겪었던 고통에 대해 설명해 주지 않는 거야?

이 계획엔 분명 고통스러운 대가가 따를 텐데. 그래서 우리한테 계속 숨긴 거잖아... 내 말이 맞지?

어떤 결정을 하든 대가가 따르기 마련이다. 발리콘 계획은 전례가 없기 때문에, 우리가 미지의 위험과 가능성을 전부 떠안아야만 해.

유전자가 변이하는 과정에서 말로 다할 수 없는 극심한 고통이 따르고, 퍼니싱에 맞설 전사로 성장하려면 이런 고강도 훈련을 견뎌내는 수밖에 없어.

이게 바로 너희한테 당부해야 할 더 중요한 사항이다.

우리를 포함한 에제트의 성인 엘리트 병력이 1차 개조에 먼저 투입됐다. 그 미지의 위험들은 우리가 먼저 겪어보게 될 거다. 그러니 에제트의 주도권을 불안정한 사람의 손에 맡길 순 없어.

오늘부터 세계 정부에서 지원군을 파견할 때까지 에제트의 모든 통제 권한은 너희에게 넘긴다. 너희들은 앞으로 그들과 함께 기지를 관리하게 될 거다.

더 자세한 이유는 지금 당장 설명할 수 없지만, 명심해라. 에제트가 진정으로 성공할 수 있는 희망은... 어쩌면 너희한테 달렸을 수도 있어.

우리가 리스크를 충분히 낮춰놓은 뒤, 그땐 너희가 개조를 받는 거다.

이게 앞으로 에제트 전원의 우선순위다. 돌발 상황이 생기면 우리가 막아설 거고, 너희 대신 소모품이 될 테니, 너희는 자신부터 지켜라.

이건 명령이다. 다들 알아들었나?

하지만 어떤 아이도 대답하지 않았다.

억만년처럼 길게 느껴지는 침묵 끝에, 오딜리가 먼저 어색한 공기를 깼다.

일단 돌아가서 쉬어. 내일부터 내가 직접 모든 권한에 대한 인수인계를 도와줄 테니까.

난 동의 못 해!!!

아사르는 보기 드물게 억눌러왔던 감정을 폭발시키며 부모를 향해 소리쳤다.

엄마, 아빠는 왜 항상 마음대로 다 결정해 놓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결과만 통보하는 건데?

우리한테 뭐 하나라도 물어본 적 있어?! 이따위 쓰레기 같은 계획을 받아들이고 싶은지, 세계 정부의 구조를 받고 싶은지, 엄마, 아빠가 우리 대신 죽으러 가는 꼴을 눈 뜨고 지켜보는 걸 원하는지...

단 한 번도 물어본 적 없잖아!!!

아사르는 온 힘을 다해 앞을 향해 소리친 뒤, 새 훈련장 밖으로 뛰쳐나갔다.

난... 아사르한테 갔다 올게.

카무이는 무기력한 목소리로 말하며, 엄마, 아빠가 왜 그랬는지 캐묻지 않고 묵묵히 발걸음을 돌렸다. 하지만 문을 나서기 직전, 카무이는 끝내 참지 못하고 뒤를 돌아보며 그들과 시선을 맞췄다.

엄마, 아빠. 우린 그냥... 힘든 일이 있을 때, 같이 감당하고 싶어서 그래.

우릴 지켜주고 싶은 마음은 알겠는데, 우린 가족이잖아.

우리도 엄마와 아빠를 잃고 싶지 않단 말이야.

우리가 너무 약해서 그런 거라면... 더 빨리 성장하도록 노력할게.

그냥... 우릴 조금만 더 믿어주면 안 될까?

카트레브도 카무이의 뒤를 따랐다. 아이들이 모두 떠나고, 텅 빈 거대한 훈련장엔 오딜리와 에우르디스의 고독한 그림자만 남았다.

이미 지칠 대로 지친 부모의 눈빛엔 아쉬움이 묻어났지만, 결국 아이들을 뒤쫓아 붙잡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