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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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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15-6 파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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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아빠?

카무이는 어린 시절처럼 오딜리와 에우르디스를 불러보려 했다. 그건 어릴 적부터 각인된 본능이었다. 이 세계에 대한 개념을 세우기 시작했을 때부터, "부모"를 언급하면 떠오르는 건 오직 그 두 사람이었다.

하지만 지금, 파일에는 생전 처음 보는 친부모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럼, 카무이의 기억 속 과거는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카무이와 그들은 어쩌다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

어느 쪽의 부모든 지금 이 자리에는 없었기에, 카무이의 혼란을 잠재워줄 이는 아무도 없었다.

카무이는 퍼즐 속에서 렌즈를 향해 환하게 웃고 있는 두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토록 완벽했던 추억이 처음으로 낯설게 느껴졌다.

아... 아무렇지도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 그래도 너무 걱정하지 마. [player name].

지금의 기억으로는 대충... 떠오르는 게 있는데, 확실하지가 않네.

게다가 이걸 다시 보니까, 아무래도 조... 조금...

난 그냥 그들이 대체 누구인지... 그리고 내가 누구인지 알고 싶을 뿐이야.

이 질문들은 의식의 바다가 좀 더 복구되어야...

입 밖으로 내지 못한 의문이 머릿속에 파문을 일으켰다. 갑작스러운 압박감과 익숙한 찢어질 듯한 통증이 카무이의 의식의 바다로 돌아왔다. 그는 문득 방금 보충했던 에너지가 작용하기 시작했다는 걸 알아챘다.

으윽?!

인간 지휘관의 부축을 받은 카무이는 비틀거리며 벽 쪽으로 이동했다. 지금 카무이의 기억은 먼지가 쌓인 퍼즐과도 같았다. 그리고 마침내, 조각들이 맞춰졌다.

엄마... 아빠...

그들과 관련된 기억이 더 많이 되살아났다. 자신의 출생, 부모님 그리고... "가족" 안의 또 다른 아이까지.

카무이와 비슷한 또래의 소년이었고, 카무이와 동일한 호칭을 쓰고 있었다.

[어█▄▅▁... 아█▄▅▁...]

카무이는 마침내 그의 이름을 떠올렸다.

아사르?

내 이름을 부르지 말라고!! 네가 뭐라도 되는 줄 알아?!

가식을 떨면 내가 널 인정할 줄 아나 본데, 넌 우리 가족도 아니야. 착각하지 마!

넌 이미 충분히 많이 뺏어갔어. 엄마, 아빠의 사랑도, 오롯이 내 것이어야 했던 시간도, 심지어 유일한 가족사진까지. 대체 뭘 더 바라는 건데?

카무이는 소년의 얼굴을 똑똑히 볼 수 있게 되었다. 오딜리와 똑같은 붉은 머리카락, 그리고 에우르디스에게서 물려받은 게 분명한 은빛 눈동자를 가진 소년이었다.

그렇다면 카무이 자신은? 전혀 닮은 구석이 없는 외모에, 피가 섞였다는 증거라고는 단 하나도 찾아볼 수 없었다.

카무이는 아사르가 방 출입을 겨우 허락해 줬던 때가 떠올랐다. 하지만 기뻐할 새도 없이, 그의 책상에 놓인 가족사진을 보게 되었는데, 그 위엔 선명한 붉은 선이 그려져 있었다.

필법이 서툰 걸 보니, 어릴 적 사진을 찍자마자 아사르가 참지 못하고 그어버린 게 분명했다. 그 붉은 선은 카메라와 더 가까운 카무이를 다른 이들과 명확하게 갈라놓고 있었다.

사진의 한쪽은 완벽한 세 식구의 모습이었고, 붉은 선은 결코 넘을 수 없는 골짜기처럼 카무이를 배척하며 그가 진정으로는 섞일 수 없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카무이는 본능적인 따스함에 이끌려, 그 시절이 맑은 거울처럼 투명하고 완벽한 시간이었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아사르의 폭언은 멈추지 않았고, 그것은 카무이가 애초에 그 거울 속에 속한 적이 없었거나 혹은 처음부터 균열이 존재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꺼져!!!

당장 꺼지라고!! 카무이!!

카무이!

"챙강..."

무기가 번개처럼 카무이의 머리카락 끝을 스치고 지나갔다. 오딜리가 제때 손을 거두지 못했다면, 카무이는 공격을 받고 몇 미터 밖으로 날아갔을 것이다.

카무이의 무기는 이미 두 동강 나 있었다. 부러진 무기의 아랫부분은 오딜리의 마지막 일격으로 인해 그의 손에서 미끄러져 바닥에 "쾅" 하고 꽂혔다.

카무이에게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에제트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일정한 나이가 되면 실전 훈련을 받아야 했다. 물론 무기 제한은 없어서 각자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었다.

당시 카무이는 별생각 없이 폭발적인 힘을 낼 수 있는 대검을 근접 무기로 골랐다. 오딜리는 카무이가 전투에 소질이 있다고 칭찬했고, 그는 실제로 대검 사용법을 익히는 과정에서도 패배한 적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오늘, 카무이는 처음으로 처참하게 패배했다. 아무리 상대가 에제트 최강자 오딜리라 해도, 이론상 카무이가 이 지경까지 밀릴 이유는 없었다. 마음속에 무언가가 그를 흔들고 있는 게 분명했다.

카무이는 두 동강 난 무기를 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실제 전장이었다면 오늘의 실수는 목숨을 잃기에 충분했다. 치명적인 실수였기에, 그는 엄격한 처벌을 받을 각오가 되어 있었다.

오딜리 역시 무기를 내려놓고 굳은 표정을 한 채 카무이 앞으로 다가왔다.

카무이.

오딜리의 시선이 부러진 대검을 향했다.

이번 훈련에서 대체 무슨 멍청한 짓을 한 건지, 또 무슨 쓸데없는 생각을 하다가 이 꼴이 난 건지, 네가 직접 말해봐.

그, 그게...

꺼져!!

아사르의 악에 받친 고함이 다시 카무이의 머릿속을 울리며 신경을 찌르듯 아프게 했다.

3일 전, 가족의 날에 있었던 일이었다. 오딜리와 에우르디스는 도저히 시간을 낼 수 없다며 아이들끼리 보내라고 했고, 카무이는 평소처럼 간식과 게임기를 챙겨 아사르의 방으로 갔다.

하지만 이번엔 문을 열자마자 아사르의 어두운 표정을 눈치챘다.

왜 찾아온 건데?

어? 엄마, 아빠가 아직 말하지 않았어? 모두 바쁘시다고 해서 내가 먼저 온 건데.

이것 봐!! 네가 좋아하는 간식을 준비했어. 저번에 클리어하지 못했던 게임도 내가 돌아가서 엄청나게 연구했거든. 이번엔 무조건 성공할 수 있을 거야!!

아사르? 왜 그래? 기분이 별로야?

넌 머릿속에 맨날 그런 생각밖에 없냐?

어, 어? 아하, 알겠다. 오늘은 다른 거 하고 싶구나? 그럼, 다른 거 하자!

저번에 네가 그랬었지... 이게 나름 재미있다고, 네가 좋아할 줄 알고 챙겨온 건데...

너 같은 녀석을... 왜 나와 동급으로 취급하는 건데? 자신의 안위는 신경도 안 쓰면서, 그 중책을 너 같은 바보한테 맡기다니...

네가 뭐라도 되는 줄 알아?! 멍청한 녀석!! 꺼져! 꼴도 보기 싫으니까!!

우리 엄마, 아빠는 네 부모가 아니야! 왜 우리 집에 빌붙어서 나가질 않는 건데? 여긴 내 집이지, 네 집이 아니라고!!

꺼지라고!!

내가... 방심했어. 훈련에 집중하지 못한 내 잘못이야.

카무이는 재빨리 대답했다. 거짓말에 서툰 그는 조금이라도 머뭇거리거나 말을 덧붙이면 오딜리에게 들킬까 봐 두려웠다.

흥, 그래? 카무이, 변명할 기회를 한 번 더 주지. 잘 생각해 봐. 정말 그게 다야?

난... 응, 맞아. 그게 다야. 그에 맞는 처벌을 받을게.

쳇... 좋아. 그럼, 잘 들어! 오늘부터 네 훈련량은 두 배다. 그리고 네가 고른 무기는 사용을 금지할 테니, 창고에 있는 예비용 무기만 사용하도록 해.

무기 신청 절차부터 다시 진행해. 그리고 이 고강도 훈련을 버텨내고 기준을 통과해야만 무기 사용 권한을 다시 주겠다.

지금 당장 의무실로 가서 상처를 대충 치료하고, 바로 훈련을 시작해!

알겠어. 지금 바로...

안 돼!!

카무이는 놀라서 고개를 돌렸다. 아사르가 여기 있는 줄도 몰랐고, 오딜리의 명령에 반발하며 뛰쳐나올 줄은 더더욱 몰랐다.

회복할 시간도 안 주고 고강도 훈련을 시키면 상처만 덧날 뿐이야.

게다가 예비 무기는 도움도 안 되는데, 이런 상태로 어떻게 기준을 통과해? 이건 악순환일 뿐이고 전혀 공평하지 않아!

공평? 아사르, 그럼 네가 말해봐. 대체 어떻게 해야 공평하다는 거지?

말대꾸를 몇 번 한다고 내가 넘어갈 줄 아니? 문제가 생겼으면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지. 그게 진짜 공평한 거야!

방해하지 말고 비켜! 너와 상관없는 일이니까 입 다물어.

왜 상관이 없다고 하는데?! 엄마, 내가 모를 줄 알아? 엄마, 아빠는 최근 훈련을 통해 우릴 평가하려고 하는 거잖아.

내가 핑계를 대고 빠지니까 카무이한테 똑같은 짓을 시키는 거고. 내가 저 녀석의 무기에 손을 썼어. 그러니 이번 훈련 결과가 어떨지는 나도 잘 알아. 엄마가 말한 것만큼 심각한 상황이 아니었다고!

저 녀석은 저런 벌을 받을 이유가 없어. 그리고 엄마, 아빠도 이런 비현실적인 행위를 진작에 그만뒀어야 했어!

그만해, 아사르.

엄마, 난 모든 명령을 따를게. 이번 일은... 그냥 이렇게 넘어가 주면 안 될까? 더는 묻지 말아 줘.

카무이는 바닥에 꽂힌 부러진 검을 뽑아 들고 자리를 뜨려 했지만, 그 행동이 오히려 아사르를 자극했다. 이에 아사르는 달려가 카무이의 무기를 빼앗고는 앞을 가로막았다.

가긴 어딜 가?! 카무이. 다친 몸으로 어딜 가려고!!

휴게실에 가서 얌전히 있어. 난 겁쟁이가 아니거든. 그러니 네가 내 책임까지 뒤집어쓸 필요는 없어.

그런 뜻이 아니라... 네가 예전에 했던 말이 다 맞는 것 같아서 그래.

내 것도 아닌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면 안 되는 거였고, 네 것을 뺏어서도 안 되는 거였어.

그러니까... 이걸로 됐어. 진심이야. 네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들을 더 이상 잃게 하고 싶지 않아.

네가... 이렇게까지 되길 바란 건 아니었어. 카무이.

그냥 이번 평가에서 널 떨어뜨리려 했던 거야. 그... 그러면...

흥, 이제야 둘 다 솔직하게 말할 마음이 생겼나 보지?

오딜리가 다가와 빤히 쳐다보자, 두 소년은 더 이상 말할 기운도 없이 고개를 푹 숙인 채 침묵했다.

카무이, 착한 것과 멍청한 건 다른 거야. 그 차이를 모르면 조만간 더 끔찍한 대가를 치르게 될 거고.

넌 전투 중에 한눈 팔 바보가 아니잖아. 쓸데없는 짐을 네 어깨에 다 짊어지려고 하지 마.

넌 어릴 때부터 그런 못된 버릇이 있었지. 작은 상처를 숨기면서 우리한테 털어놓지도 않고, 그게 알아서 나으면 다 해결되는 줄 아는 버릇 말이야.

혼자서 그런 사소한 것들을 너무 많이 숨기면, 결국 치료할 수 없는 곪은 상처가 된다고, 나중에 후회해도 소용없어.

말을 마친 오딜리는 아사르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너도 똑같이 새겨들어, 아사르.

장난 좀 친 거라 별것 아니라고 생각한 거니? 어떤 놈한테서 그런 못된 것만 배웠어! 건방지게.

네 말대로 내가 카무이에게 고강도 훈련을 강행했거나, 오늘 에제트가 기습을 받아서 저 녀석이 상대해야 할 적이 내가 아니라 진짜 적이었다면...

카무이가 얼마나 다쳤을지 짐작해 봤니? 아니면 그대로 전장에서 죽었을 수도 있다는 걸 생각해 본 적 있냐고.

네가 상처를 주기 시작하면, 그 상처가 점점 더 커지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니? 그래서 에제트는 가족에게 고의로 상처를 주지 말라고 거듭 강조하는 거다. 그게 사소하든 심각하든 말이야.

만약 잘못되기라도 했다면, 너는 평생 죄책감에 시달렸을 거다.

미안해. 카무이 그리고 엄마.

일이... 이렇게 되길 바란 게 아니었어.

도망치지 않을게. 내가 저지른 잘못은 내가 책임질 거야. 그러니 모든 벌은... 나 혼자 받을게.

흥, 책임감은 좀 있네. 하지만 꿈 깨. 처벌은 둘이 같이 받는다. 누구 하나 차별하지 않겠어.

말했지. 너희 둘 다 문제가 있다고. 그럼, 누구 하나 빠짐없이 다 해결해야지.

저 녀석이랑 같이 벌을 받기 싫어. 그리고 왜 이런 순간까지 우리한테 똑같은 기준을 들이대는 건데?

아사르,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러는 거야! 우리가 카무이만 편애하면 속이 시원하겠어?

지금 이러는 게 편애잖아! 왜 쟤한테 기대를 걸어? 왜 나와 똑같이 키우려고 하는데? 왜?!

저 녀석은 입양아일 뿐이고, 진짜 친자식은 나잖아! 우리 가족도 아닌데 왜 그렇게 신경을 쓰는 거냐고?!

엄마, 아빠는 나 하나만 바라보고 있어야 하는 게 맞는 거잖아!!

오딜리는 기가 막힌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조금 전보다 더 허무맹랑하게 들리네.

고작 핏줄 따위가 "가족"을 이어준다고 생각해?

오늘 여기서 다시 한번 말해줄게. 아사르... 그리고 이게 마지막이야.

너와 나, 카무이, 에우르디스, 그리고 여기 있는 우리 모두에게 가족은 하나뿐이야.

그 가족의 이름은 "에제트"란다.

가족 사이엔 어떤 장벽도 없어야 하고, 서로를 지킬 책임이 있어.

오딜리는 근처 의자에서 낡은 책 한 권을 가져와 첫 페이지를 펼친 뒤 아사르에게 보여주었다.

에제트의 역사는 귀에 못이 박히도록 배웠을 텐데,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린 모양이구나.

아사르, 직접 말해봐. 첫 페이지에 그 사진이 뭔지.

에제트의 설립자들이 이곳에 자리 잡고 찍은 첫 단체 사진...

그럼, 사진 속 사람들 중에 피가 섞인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나?

그건... 없지. 다들 세계 각지에서 왔고, 전쟁으로 집을 잃은 사람들인데, 우연히 만나서 하나로 뭉쳤고, 에제트를 자신들의 집으로 삼으려고 했어.

하지만 나중엔 자신들의 후손을 남겼잖아! 에제트 안에도 핏줄이 이어지고 있다고!

에제트가 고작 그런 거에만 의존했다면, 오늘날의 모습은 없었을 거다.

에제트가 수백 년 동안 이름 없는 용병단에서 대규모 군사 기지로 성장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니?

오딜리가 손가락으로 두 번째 페이지를 가리켰다. 커다란 세계 지도 위에는 붉은 선으로 그려진 수많은 경로였다.

이건 전부 우리 선배들이 지나온 길이야.

피를 흘린 땅마다 전쟁으로 갈 곳 잃은 사람들을 데려왔지. 그리고 남겠다는 사람은 누구든 가족으로 받아줬다.

우린 그렇게 강해져갔고, 그만큼 더 확고한 힘이 필요했어.

에제트가 왜 "자유"를 포기하고 세계 정부의 편입 요청을 받아들이면서 관할 군사 기지로 변했는지 알고 있나?

세계 정부가 약속한 보장과 전문적인 훈련이 있으면, 에제트의 꿈을 실현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 믿었기 때문이야.

"세상의 어떤 가족도 뿔뿔이 흩어지지 않고, 모두가 햇살 아래서 살아가게 하라."

에제트에 속한 모든 사람은 이 꿈을 위해 싸우는 거다.

물론, 너희가 굳이 뿌리를 따지고 싶다면 그 소원을 들어주지.

오딜리는 고개를 돌려 카무이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카무이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트라우마를 완전히 부숴버릴 때가 왔다고 판단했다.

네가 철들 무렵부터 에우르디스와 난 네가 친자식이 아니라는 걸 숨기지 않았어. 넌 모든 걸 알 권리가 있고, 그걸로 열등감을 느낄 필요는 없어.

이제 네 친부모에 대해 더 자세히 알려주마.

네 아버지 솔과 어머니 라는 전임 에제트의 리더였다. 그들은 원래 에제트 병사가 남긴 고아였지만, 자진해서 남아 부모의 유지를 이었지.

그리고 최강의 전사가 됐어. 마지막 전투에서 다른 대원들을 무사히 철수시키기 위해 스스로 남아 뒤를 맡았고, 그렇게... 돌아가셨다.

굳이 핏줄을 따지고 싶다면 이걸 명심해.

네 몸엔 언제나 영웅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걸.

아... 알겠어.

그리고 아사르... 넌 우리 집 자식이라는 이유만으로, 에제트의 통제권을 당연히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나?

오딜리는 자신의 친아들에게 다가가, 자신과 똑같은 붉은 머리를 바라보았다.

에제트는 세습되는 왕조가 아니야. 나나 너나 태어날 때부터 우월하고 고귀한 핏줄이 아니라고.

네 친어머니인 나는 이름 모를 마을에 살다가, 마을이 도적 떼에게 습격을 당해 전멸당한 뒤 남겨진 고아였다. 구조대가 오기 전까지, 난 짐승의 손에 자라며 그의 새끼처럼 지냈지.

숲을 지나가던 에제트 군대가 짐승의 보금자리에서 날 데려와 키워줬다.

네 친아버지 에우르디스는 예전에 어느 암살 조직의 일원이었는데, 손에 묻은 피가 나 같은 군인 못지않다.

한 번은 크게 다쳐서 내가 데려왔는데, 그때 설득하려고 주먹으로 실컷 때려 굴복시켰지. 결국 우리와 협력해서 그 조직 본거지를 쓸어버린 뒤에야 에제트에 남게 됐다.

네 기준대로라면, 우리가 에제트의 가족이 될 자격이나 있다고 생각하니?

나, 나는...

내가 이 얘기를 하는 건, 누가 더 고귀하고 천한지 따지려는 게 아니다.

너흰 모두 에제트의 사람이고, 평등해.

에제트의 미래를 진정으로 짊어지고 싶다면, "가족"이 뭔지부터 다시 배워.

이제, 너희 둘에 대한 처분을 내리겠다.

에제트 멤버 아사르, 규율 위반으로 3일 뒤 금지 구역 시련장으로 이동해 1급 난이도 시련을 수행할 것.

그리고 멤버 카무이, 넌 이를 알고도 보고하지 않아 은폐의 죄를 범했으므로, 아사르와 동행하여 시련을 완수할 것.

이 통보는 기지 내에 공시될 것이며, 즉시 효력이 발생한다.

?!

왜 금지 구역의 1급 시련이야?! 그건 리더 후보자 선발할 때나 하는 거잖아?

게다가 절차상 시련 전에 사전 평가도 있어야 하는데, 우린 그것도...

이건 에우르디스와 내가 상의한 결과다. 다른 이유도 있지만, 지금은 설명할 때가 아니야.

너희가 돌아오면 다 설명해주마.

다른 이유가 있다면... 분명 그 일이겠지? 맞지?

최근 평가나 마찬가지로, 엄마, 아빠는 절대 그걸 포기하지 않을 거잖아. 우릴 위해서라도 양보 안 하겠지.

아사르, 감정을 추슬러. 앞으로 에제트의 책임을 넘겨받고 싶다면, 성장하는 법부터 배워라.

소위 "책임"이란 것도, 엄마, 아빠는 단 한 번도 우리의 의견을 물어본 적이 없잖아?!

모든 걸 숨기고, 멋대로 결정하고...

대체 언제쯤 진짜로 우릴 위해 생각해 줄 건데?!!

아사르!!

오딜리의 부름에도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아사르는 걸음을 멈추지 않고 훈련장을 뛰쳐나갔다.

엄마, 내가 가볼게. 그리고 잘 준비해서 3일 뒤에 시간 맞춰서 갈게.

그리고... 고마워. 엄마, 아빠.

카무이도 아사르를 따라 떠났다. 오딜리는 아이들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이내 미간을 찌푸렸고, 골치가 아픈 모양이었다.

됐어... 아직은 때가 아니야. 나중에 얘기하자.

그리고... 에우르디스! 구석에 숨는 버릇은 언제쯤 고칠래?

아사르와 카무이 둘 다 당신한테 나쁜 것만 배운 것 같네.

웃으며 오딜리 앞으로 다가온 에우르디스의 손에는 자잘한 치료 용품들이 들려져 있었다.

직업병인가 봐. 숨어서 지켜보는 게 편하네. 뼛속까지 새겨진 거라 고치기 힘들 것 같아.

그리고... 당신이 내 흑역사를 까발릴 때 애들 앞에서 망신당하고 싶지 않았거든.

자랑할 만한 과거는 아니잖아.

오딜리는 팔짱을 끼고 에우르디스를 향해 눈썹을 치켜올렸다.

지금 보면 옛날 그 독사 같던 사람과는 딴판이란 말이야.

난 차라리 처음 만났을 때가 좋아. 다 죽어가면서도 눈을 부릅뜨고 덤비던 그 모습이 더 나아.

그건 당신의 일시적인 흥미와 승부욕만 자극했을걸. 당신의 눈길을 오래 잡아두려면 지금이 낫지.

한마디 했더니 아주 기어오르네, 참나.

오딜리는 에우르디스의 손에 들린 치료 용품을 보았다. 병 모서리는 찌그러져 있었고, 엉망으로 엉킨 붕대도 평소 그의 깔끔한 정리 스타일과는 거리가 멀었다.

아사르가 가져온 거야? 안 봐도 뻔하네. 카무이에게 주려고 챙겼겠지.

맞아. 네가 소리칠 때 바닥에 떨어뜨렸는데, 결국 안 챙겨가더라.

오딜리는 골치 아프다는 듯 이 물건들을 보며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난감해했다.

그러게. 최근 몇 년 동안 아사르가 카무이에게 하는 짓이 좀 누그러진 줄 알았는데, 요즘 왜 또 저러는 거야?

요즘 카무이한테 화내는 게 어렸을 때로 돌아간 것 같아.

기껏해야 카무이한테 말만 틱틱대는 정도인 줄 알았는데, 갑자기 선을 넘네.

크는 게 다 그렇게 복잡하지 뭐. 과정이 필요하지, 하루아침에 되겠어?

아사르와 카무이 둘 다 이 문제를 확실히 해결할 기회가 필요해.

그리고... 어쩌면 아사르가 최근에 뭔가를 눈치챈 걸지도 몰라. 우리가 준비하던 "그 계획" 자료를 몰래 본 것 같아.

다행히 더 기밀인 자료는 못 본 것 같지만, 에제트 내부에서 숨겨왔던 그 정보까지 봤다면...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마, 에우르디스. 일단 부딪혀보자. 성공하면 그 문제는 더 이상 아무 상관이 없어질 테니까.

멤버 개개인의 생리적 기능뿐만 아니라, 미래의 에제트 사람 모두가... 더는 그 일로 고통받지 않게 될 거야.

워낙 예민한 아이라...

에우르디스는 그 예민함이 언젠가 독이 되지 않았으면 한다는 뒷말을 삼켰다.

시련을 마치고 오면 다 말해주자.

그 계획을 실행하게 되면 우리도 미리 준비해야 돼. 그 아이들이 물려받기에 가장 적합한 인재니까.

으음... 진짜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엄청 고민되네.

카무이는 침대에서 뒹굴거리며 베개와 이불을 바닥으로 다 차버렸다.

카무이와 아사르가 어느 정도 자란 뒤로는 다행히 오딜리와 에우르디스가 함부로 방에 들어오지 않았다. 어릴 때였다면 지금쯤 오딜리에게 귀를 잡힌 채 혼나고 있었을 것이다.

훈련장을 나온 뒤 카무이는 아사르를 쫓아갔지만 아사르는 그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다. 결국 카무이는 3일 뒤에 사용할 물자를 홀로 확인하러 갔다.

무기는 부러졌고, 오딜리가 아사르에게 무기를 물어내라고 요구했지만 아사르에 대한 처벌은 명확히 하지 않았다. 그래서 카무이는 이 문제를 반드시 해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안 돼! 가만히 있을 순 없어. 내일 아침 일찍 출발인데, 그땐 진짜 기회가 없다고.

카무이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며 지금 당장 무기고에 잠입해 대검을 하나 더 가져오기로 결심했다. 아사르가 빈손으로 시련에 참여하게 내버려둘 순 없었다.

아니지... 아사르의 성격대로라면 분명 "누가 동정해 달래? 네 적선 따위 필요 없으니까 당장 꺼져!"라고 할 거야.

아, 그럼 출발하고 나서 바꾸자고 하면 되겠지? 역시 난 천재야. 훌륭한 아이디어야, 그렇게 하면 되겠네!

주먹을 쥔 카무이는 기합을 넣은 뒤 방문으로 돌진했다. 그러다 문을 열기 직전 급한 발걸음을 멈춘 카무이는 턱을 괴고 잠시 생각하더니, 웃으며 문을 열었다.

짜잔! 역시 너였구나, 아사르! 내 귀는 못 속이지!

?!

문 앞에 서 있던 아사르는 카무이 때문에 화들짝 놀라 노크하려던 손을 허공에 멈춘 채 굳어 있었다. 그는 이내 화난 표정을 지으며, 억지로 거친 말투를 흉내 내어 카무이를 위협하는 척했다.

카무이! 경고하는데, 다음에 또 이렇게 놀라게 하면 진짜 한대 칠 줄 알아!

그렇게 말한 아사르는 정말 때릴 기세로 주먹을 들어 올렸다.

으아아, 안 돼, 안 돼!! 내가 졌어, 졌다고, 때리지 마.

카무이는 뒷걸음질 치다 문가의 장식에 부딪혔다. 그러다 하필 오늘 훈련 때 다친 상처가 긁히고 말았다. 무심코 튀어나온 카무이의 짧은 비명에 아사르는 다시 긴장했다.

멍청한 자식!!

아사르는 무의식적으로 카무이를 끌어당겼고, 그의 상처를 꼼꼼히 살펴주었다.

참 손이 많이 가는 녀석이라니까... 얼른 이리 와.

카무이는 얌전히 아사르에게 이끌려 방으로 들어갔고, 그가 미리 준비해 둔 의료용품을 꺼내는 걸 지켜보았다. 종류도 다양한 것으로 보아 방금 난 상처만 치료하려고 준비한 것이 아닌 게 분명했다.

아아아아... 아파, 아파, 아프다고!!

아파도 참아. 엄살 부리면 더 세게 할 거야! 이건 제때에 상처 치료를 안 한 대가라고.

약을 바를 때마다 이 난리면서, 며칠 지나면 또 덜렁대겠지. 넌 상처가 나으면 아픈 것도 까먹잖아.

그의 말이 끝나자 짧은 침묵이 이어졌다. 카무이는 아사르의 기분을 망칠까 봐 먼저 말을 걸지 않았고, 아사르는 마음이 찔렸지만 티를 내기 싫어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망설였다.

그 무기 말이야...

결국 아사르가 먼저 어색한 침묵을 깼다.

엄마가 요구한 대로 너한테 줄 무기를 가져왔어. 문 앞에 뒀으니까 이따 네가 들여놔.

그리고 며칠 전에 했던 말들은...

그러니까... 그땐 내 감정이 격해져서 그래, 꼭 너 때문만은 아니야.

볼일은 끝났으니까 먼저 간다. 내일 훈련장에서 널 기다릴게. 만나서 같이 금지 구역으로 출발하자.

아사르가 돌아서자 카무이도 벌떡 일어났다.

잠깐! 네 무기를 나한테 주면, 넌 어쩌려고?

아사르는 이전처럼 화를 내거나 투정을 부리지 않았고, 부정적인 감정을 카무이에게 쏟아내지도 않았다. 그는 그저 목소리를 낮추며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하려 했다.

나한테 소형 무기가 몇 개 더 있어. 그걸 다 챙기면 충분할 거야.

내 힘은... 무기 종류에 의존하는 편이 아니라서, 그것만으로도 시련을 완수할 수 있어.

소형 무기만으론 턱없이 부족하다는 걸 아사르도 잘 알고 있었지만, 그는 자신의 실수를 책임지고 만회하려 했다. 그리고 카무이에게 무기를 배상하겠다고 한 이상 그 약속을 지킬 생각이었다.

안 돼!! 우리 둘이 같이 간다 해도 금지 구역은 엄청 위험해. 제대로 된 무기가 없으면 위험할 거야.

그럼 나더러 어쩌라고? 무기를 다시 돌려주겠다는 헛소리는 하지 마.

엄마한테 걸리면 더 큰 처벌을 받을 거야, 그리고 네 호의 따위는 필요 없어.

어어, 그런 뜻이 아니라... 무기가 하나 모자라면 채우면 되잖아?

카무이는 아사르를 방 밖으로 끌고 나와 무기고 쪽을 가리켰다.

무기고에 가서... 무기 하나를 훔치자고?

야야, 우린 가족이잖아, 훔친다니?

엄마도 그랬잖아. "너희가 알아서 해. 난 신경 안 쓸 테니까."

혹시 들키면 다 내 짓이라고 하면 되잖아!

허리에 손을 얹고 자신만만한 카무이를 보며 아사르는 어쩔 수 없다는 미소를 지었다. 역시 이 바보 같은 녀석은 항상 이렇게 단순했다.

알았어. 가자. 무기고 안에 수리 공구함이 있었던 것 같아. 일단 네 무기부터 고칠 수 있는지 보자.

공을 세우든 벌을 받든... 혼자 독박 쓸 생각은 하지 마.

그럼, 동의한 거지?

카무이는 눈에 띄게 신이 났다.

앗싸... 아사르가 나와 같이 간다!! 가자, 가자, 출발하자, 야호...

바보야!! 조용히 좀 해! 우리가 뭐 하는지 엄마 아빠에게 다 광고할 셈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