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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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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15-5 혈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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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제트 군사 기지

과거

쳇, 이건 뭐 최신형 무기보다 다루기가 더 어렵네.

오딜리는 짜증스럽게 머리를 긁적이며, 손에 든 작고 정교한 물건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화면에는 화이트 밸런스니, 노출값이니, 색온도니... 죄다 알 수 없는 외계어뿐이었다. 분명히 전에 에우르디스에게 자세히 설명을 들었지만,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을 뿐 아무런 흔적도 남지 않았다.

까먹는 속도가 총알보다 더 빠른 것 같았다.

몰라, 대충 아무거나 눌러보지.

난 소리를 끈 적이 없는데, 왜 소리가 안 나는 거지? 지금 반응도 없잖아.

잠깐 만졌다고 고장이 난 건가?!

꿈쩍하지도 않는 카메라를 보며 오딜리는 속이 터질 지경이었다. 때리고 두드리고 패기는 녹음기던 TV던 손길 한 번이면 만사형통이었기에 오딜리는 무의식적으로 전자제품 수리의 최종 비기를 시전하려 했다.

오딜리는 습관처럼 손을 들어 올렸지만, 곧 멈칫했다. 차마 그럴 순 없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에우르디스가 아끼는 물건이었기 때문이다.

오딜리는 이 전자제품에 "물리 치료"를 시전하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며, 어떻게 조작해야 할지 고민했다.

기능 따위 기억해 내는 건 진작 포기했다. 오딜리는 본능에 의지해 몇 개의 버튼 사이에서 한참 고민하다가 결국 그중에서 촬영 버튼처럼 생긴 것을 골라 렌즈를 자신에게 맞추고 버튼을 눌렀다.

"찰칵찰칵찰칵찰칵..."

요란한 셔터 소리와 함께 플래시가 번쩍이며 렌즈를 정면으로 보던 오딜리를 기습했다.

*!!

#...&!! 섬광탄이 터진 거 같네. 눈이 멀겠어!

풉... 어때? 이제 내가 설정하는 거 도와줘도 될까?

옆에 앉아 있던 에우르디스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오딜리가 망신당하는 게 우스워서가 아니었다. 평소에는 보기 힘든 오딜리의 이런 허당 같은 모습이 에우르디스에게는 너무나 소중했기 때문이었다.

가만있어 봐. 다시 해볼 거야. 내가 이깟 기계 하나 정복 못 할 줄 알아!

그래, 그럼 "리더님"의 분부대로 해야지.

그리고... 그렇게 웃으면서 쳐다보지 말라고! 그 표정을 볼 때마다 무슨 꿍꿍이가 있는 것 같아서 찜찜하거든.

원하신다면야. 하지만 방금 그 말에 동의할 순 없겠는걸. 당신의 그런 모습은 워낙 보기 드문 거라... 뭐랄까... 좀...

"지지직..." 귀를 찢는 파열음이 울려 퍼졌다. 오딜리가 수습하기 위해 집어 들었던 설명서를 반으로 찢어버리고는 에우르디스를 째려봤다.

닭살 돋는 소리를 할 거면 그냥 입을 다물고 있어. 그렇지 않으면 너도 이 종이 쪼가리처럼 될 줄 알아.

알아들었어? 부·리·더?

알았어, 알았어. 안 할게.

에우르디스의 시원스러운 웃음소리가 귓가에 맴돌자, 오딜리의 짜증도 눈 녹듯 사라졌다. 그녀는 에우르디스와 일일이 따지지 않기로 했다.

그녀는 오히려 에우르디스의 저런 꾸밈없는 웃음이 좋았고, 숨김없이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솔직한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오딜리는 무료한 일상에 쏠쏠한 재미를 더해주는 것으로 치고, 가끔은 이렇게 티격태격 부대끼는 상황이 발생하는 게 가족의 삶이라고 생각했다.

쳇, 더 끌다간 시간도 없겠네. 관두자, 관둬.

에우르디스. 방금 설명할 때 일부러 뭘 빼먹은 건 아니지? 혹시 누락한 내용이 있는 거야?

당신이 그렇게 말하니까... 갑자기 생각난 게 있어, 정말 빠트린 게 하나 있었네, 내 실수야.

카메라 상단에 다이얼이 있잖아? 시계 방향으로 두 칸 더 돌려야 자동 모드로 설정할 수 있거든. 그러면 연속 촬영이 취소되고 정상적으로 찍을 수 있어.

흥, 눈치는 빨라서!

오딜리는 당장 앨범부터 확인했다. 아니나 다를까, 잔뜩 심술 난 표정의 셀카가 한가득 저장되어 있었다.

쳇, 엽기 사진이 왜 이렇게 많아. 다 지워버려야겠어!

흥, 해결됐어! 거봐, 내가 별거 아니라고 했잖아.

저기... 에우르디스. 그냥 기지의 기술자 아무나 잡아다가 카메라를 전부 자동 모드로 개조해 버리라고 할까? 그럼 엄청 편할 텐데!

자리에서 일어난 에우르디스는 오딜리의 손에서 카메라를 넘겨받은 뒤 세부 설정을 조작했다.

괜찮은 제안인데? 나중에 한 번 말해볼게. 하지만... 잊지 않았지? 오늘은 안 돼.

한 달에 한 번 있는 에제트 가족의 날이잖아. 오늘만큼은 군령도 없고, 오직 가족뿐이야.

그래서 다들 자신의 가족과 시간을 보내야 해. 아무리 우리라도 상급자라는 신분으로 다른 병사들에게 이런 명령을 내리는 건 좀 그렇잖아, 안 그래?

야, 내가 네 속마음을 모를 줄 알지? 방금 내 제안이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하는 거잖아!

모든 일에 그렇게 진지하게 굴 거야. 나도 진짜 시킬 마음은 없었다고, 그냥 해본 소리야.

그나저나, 나 정도면 인간미 넘치는 거 아니야? 저번에 물자 인수인계 때문에 다른 기지 갔더니, 거긴 가족의 날 같은 건 없더라고.

그중 한 곳은 뭐라더라... "기지에 들어온 이상 개인은 없다."라나? 가족이든 친구든 다 잊고 오직 군을 위해 헌신하라는 헛소리를 해대던데.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야! 우리는 사람이지, 생각 없는 무기가 아니잖아? 다들 감정이란 게 있는데.

맞아. 다른 곳과 비교하면... 에제트는 확실히 다르지. 이곳에는 사람과 상황을 변화시키는 특별한 힘이 있지.

"가족"이라는 이름의 신비롭고 따뜻한 힘 말이야. 어쩌면 우리가 이렇게 강하고 굳건히 버틸 수 있는 것도 다 그 덕분일지도 몰라.

그러니까... 리더인 당신이 이 원칙을 깨면 더더욱 안 되겠지?

평소 일할 때보다 잔소리가 더 심하네. 이럴 거면 가족의 날이고 뭐고 때려치우는 게 낫겠어.

에우르디스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등 뒤에서 따스한 온기가 오딜리를 감싸안았다. 그는 그녀의 어깨에 가만히 머리를 기댔고, 카메라는 삼각대 위에 방치되었다.

그렇게는 안 되지.

귓가에 울리는 에우르디스의 속삭임은 크지 않았지만, 한 글자 한 글자 또렷하게 들렸다.

평소에 에제트 식구들이랑 평등하게 「리더」의 시간을 공유하는 걸로 충분해.

귀한 가족의 날인만큼, 난 「오딜리」의 시간을 독점할 거야.

오딜리는 한참 동안 에우르디스의 품에 머물렀다. 그러나 놓아줄 기미가 보이지 않자, 결국 손을 뻗어 그의 머리를 밀어냈다.

쳇... 적당히 좀 해! 어깨가 뻐근하니까 좀 떨어지지.

독점은 무슨! 몇 년을 같이 살았는데 성격은 여전하네. 게다가 앞뒤가 모순되잖아.

어떻게 방금 자기가 한 말도 까먹을 수 있어? 가족의 날이라면서... 이 집에 우리 둘만 사냐고!

다 큰 어른이 애들처럼 굴기는. 그만 엉겨 붙고 가서 애나 데려와.

네! 분부를 받들겠습니다. 리더님.

작작 해라 진짜! 말을 좀 똑바로 하라고!

오딜리의 타박을 들으며 시선을 돌리던 에우르디스는 구석에서 작고 동그란 금발 머리 하나가 쏙 튀어나왔다가 이내 쏙 들어가는 것을 발견했다.

마침 찾으러 갈 터인데, 이렇게 된 이상 수고를 덜하게 생겼다고 생각했다. 그는 피식 웃으며 저 겁쟁이 녀석을 어떻게 끌어낼지 궁리하기 시작했다.

굳이 찾으러 갈 필요는 없어. 하지만 제 발로 오게 하려면... 미끼가 좀 필요하겠어.

응? 그게 무슨 소리야?

눈치 빠른 오딜리는 에우르디스의 말에 즉각 레이더를 가동해 주위를 훑었다.

아니나 다를까, 오딜리의 매의 눈이 간을 보듯 들락거리는 금색 머리를 포착했다.

금색 머리만 쏙 내밀었다가 다시 쏙 들어갔다. 나올 생각은 없고 눈치 게임만 수차례 반복 중이었다.

나간다, 안 나간다? 나간다, 안 나간다? 나간다...

으악, 왜 또 "나간다"가 뽑혔지? 싫어, 싫어, 다른 꽃을 가져와서 다시 셀 거야...

망설이는 모습을 지켜보던 오딜리는 결국 인내심이 바닥났다.

카무이!! 나와 네 아빠를 장님으로 여기는 거니?! 꼼지락거리지 말고, 당장 튀어나와!

오딜리의 우렁찬 사자후에 깜짝 놀란 꼬마는 쭈뼛거리며 모습을 드러냈다.

고개를 푹 숙인 채, 옷자락만 꼬옥 쥐고 있던 카무이는 앞으로 나와서도 오딜리의 눈치를 슬금슬금 살피더니, 찔리는 게 있는지 다시 고개를 푹 숙였다.

저... 그게...

오딜리는 카무이를 빤히 쳐다보았다. 카무이는 여전히 평소에 입던 훈련복 차림이었다.

설마 흙바닥에서 얼마나 굴렀는지도 모를 그 훈련복을 입고 가족사진을 찍겠다는 건 아니겠지?

입으라고 준비해 둔 옷은 어떻게 했니? 그 큰 옷을 잃어버렸다는 핑계는 대지 마라.

그 말이 나오자 카무이는 억울한지 입술을 삐죽거리며 웅얼거렸다.

그게... 치, 치마는 좀...

안 들려! 할 말이 있으면 크게 똑바로 말해!!

치마를 입기 싫다고!!

마침내 용기를 낸 카무이는 오딜리를 향해 속으로 수없이 되뇌었던 말을 외쳤다.

남들이 놀린단 말이야... 치마를 입고 가족사진을 찍는 건 싫어.

하, 난 또 뭐 대단한 일이라고.

근데 어쩌지? 너한테 선택권은 없는데. 네 입으로 약속한 거면 지켜야지! 당장 가서 그 치마로 갈아입고 와서 군말 말고 사진 찍어.

싫어, 싫어. 놀림당하기 싫단 말이야! 치마를 입지 않을 거야!!

대체 누가 놀린다고 그래!! 떼를 써도 소용없어! 선택지는 단 두 개다. 얌전히 치마를 입고 오든가, 아니면 홀라당 벗고 알몸으로 찍든가!!

그럼 알몸으로 찍지 뭐!!

네가 뱉은 말을 지켜야 해! 내가 지금 당장 다 벗겨주마!!

오딜리가 진짜로 손을 뻗자, 기겁한 카무이는 에우르디스의 등 뒤로 잽싸게 숨었다.

에우르디스는 손을 저으며 오딜리를 진정시키면서도, 무작정 아이를 감싸지 않고 부드럽게 카무이를 이끌어 오딜리와 마주 보게 했다.

카무이. 에제트 최고의 전사가 되겠다고 했었지? 전사는 남의 등 뒤에 숨지 않는다. 그리고 당당하게 나서서 원하는 걸 쟁취해야 해.

어떻게 해야 할지 알겠지? 겁먹지 말고, 용기 내서 말해 보렴.

어... 엄마. 치마를 입고 가족사진을 찍기 싫어... 이번만 봐줘. 다음부턴 꼭 약속을 지킬게, 진짜야.

좋아. 정 그렇다면 마지막 기회를 주지.

내가 읽으라고 했던 교재 말이야, 어디까지 봤니?

저... 절반 정도...

카무이는 이전에 오딜리에게 다 읽었다고 거짓말을 했었다.

오딜리가 돌멩이로 바닥에 기호 하나를 그렸다. 그것을 본 카무이는 책에서 본 것 같긴 한데, 뜻이 가물가물했다.

자, 말해 봐. 우리 에제트 표지판에서 이 기호가 무슨 뜻이지?

좌, 좌회전.

흥... 그럼 이건? 멍 때리지 말고, 빨리 말해.

오딜리가 그린 두 번째 기호를 본 카무이는 목소리가 더 움츠러들었다.

으음… 후… 후퇴.

오딜리는 이 기습 테스트를 더 이상 이어갈 가치가 없다는 듯 돌멩이를 내던졌다.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거짓말을 하네. 넌 그 교재를 어디다 버렸는지 기억도 안 나지?

첫 번째 기호는 "통행 금지", 두 번째 기호는 "직진"이다.

그저께 보물 찾기 게임에도 나왔던 거잖아. 그때도 틀리더니, 복습을 하나도 안 했던 거야? 어떻게 똑같은 바보짓을 또 하는 거지?

그때 나와 약속했었지? 보물 찾기는 네가 표지판 규칙을 잘 외웠는지 시험하는 거라고.

네가 보물 찾기에서 어느 종점에 도착하면, 그곳에 놓인 옷을 입고 가족사진을 찍기로 했잖아. 그게 어떤 옷이든, 넌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네가 표지판만 제대로 읽었어도, 전부터 갖고 싶다던 그 옷이 있는 곳에 도착했을 텐데. 하지만 넌 농땡이 피우다가 엉뚱한 길로 가서 치마를 찾게 된 거야.

카무이, 나랑 네 아빠는 비겁하게 책임을 회피하는 법을 가르친 적이 없어. 전사는 자신이 한 행동에 책임을 질 줄 알아야 해.

잘했든 못했든, 결과를 감당해야 한다고 게임 시작할 때 분명히 말했지?

나도… 알고 있어…

그… 그래도 치마는… 흐흑…

카무이는 더 이상 떼를 쓰지 않았다. 이번 일은 자신의 잘못이란 걸 알고, 오딜리가 가르친 도리도 인정했다.

하지만 아직 어린아이에게 있어 "쪽팔림"은 죽기보다 싫은 것이다. 카무이는 책에서 본 삽화와 에제트 무장실에 걸려 있던 멋진 전투복들을 떠올렸다.

그런 옷을 입고 전사처럼, 영웅처럼 보이고 싶었다. 게다가 "그 사람"과 다르게 보여서 놀림당하는 건 죽어도 싫었다.

에우르디스는 카무이를 무릎에 앉히고 찔끔 새어 나온 눈물을 닦아주었다.

옷은 중요하지 않아, 카무이. 용기, 강인함, 다정함, 따뜻함... 그런 수많은 훌륭한 자질들이 모여서 진짜 빛나는 영웅을 만드는 거란다.

누더기를 걸치든 갑옷을 입든, 치마든 바지든, 영웅은 영웅이란다. 그 사실은 변하지 않아.

그래! 네 엄마를 봐라. 지난번에 자다 깨서 내복 차림으로 적들을 모조리 때려잡은 거 기억 안 나니? 바로 이렇게, 얍!!

하아!!

오딜리가 주먹을 휘두르며 적을 쓰러뜨리던 상황을 재연하자, 카무이도 울음을 그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에우르디스가 카무이의 볼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무슨 옷을 입든, 우리의 자랑스러운 작은 태양은 언제나 가장 눈이 부실 거야.

아이의 감정은 풍부하고 변화무쌍했기에 그 말을 들은 카무이는 울상을 거두고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진… 진짜? 안 이상해? 놀리지 않을까? 내가 치마를 입어도 멋있을까?!

당연하지! 옷도 예쁘고 생긴 것도 예쁜데 이상할 게 뭐가 있어?

못 믿겠으면 입고 나가서 물어봐. 맞다. 렐리스 이모한테 먼저 영상 통화를 걸어봐. 이모가 너한테 딱 어울릴 거라고 하면서, 직접 그 치마를 골랐어.

우와~ 그럼, 지금 당장 입을래!!

카무이는 펄쩍 뛰어내려 방으로 돌진했다. 그리고 우당탕퉁탕 옷 갈아입는 소리가 들리더니, 곧이어 에제트 멤버들에게 차례로 영상 통화를 거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머나~ 우리 카무이, 웬일로 전화를 다 했어?

카무이

렐리스 이모!! 이거 봐, 지금 치마를 입었는데, 어때?

어머, 벌써 입었니? 세상에, 너희 엄마가 고른 촌스러운 옷 말고 이걸로 하길 정말 잘했다. 정말 귀엽네!

여보, 빨리 와봐. 내가 그랬잖아? 우리 카무이가 결국 이 치마를 입을 거라고 했지? 이번 내기는 내가 이긴 걸로?

카무이

브루 아저씨, 어서 날 봐봐!!

허! 진짜네. 알았어, 오늘 저녁 집안일은 내가 할게.

근데 카무이, 너 생각보다 잘 어울린다? 아주 예쁜데!

우리 카무이, 사진 예쁘게 찍어서 위니 이모한테도 보내줘. 꼭 이모 말대로 해야 해.

위니 이모랑 모트 삼촌이 지금 뱃속 아기가 예쁜 딸이길 바라면서 방에 예쁜 아기 사진 붙여놓겠다고 난리였거든.

우리 카무이의 사진을 붙여놓으면 틀림없이 천사 같은 공주님이 태어날 거야~

카무이

진짜? 그럼, 지금 바로 전화해 볼래! 끊을게, 렐리스 이모!!

카무이

위니 이모... 날 좀 봐.

한바탕 소동은 꽤 오래 이어졌다. 카무이는 친한 에제트 멤버들에게 모조리 전화를 돌린 듯했고, 밖에서 기다리던 오딜리와 에우르디스는 그 모습을 보며 웃음을 참지 못했다.

참나, 울다가 웃다가 난리가 났네. 애는 애라니까.

방금까지 콧물 질질 짜더니, 금세 한낮의 태양보다 더 해맑게 웃고 있네. 누굴 닮아서 저러는지 몰라.

그러게, 누굴 닮은 걸까?

에우르디스는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오딜리를 쳐다보며 그녀의 어깨를 감싸안았다.

잠시 후, 맞춰둔 알람이 울리자, 에우르디스가 시간을 확인했다. 이제 사진을 찍어야 할 시간이었고, 더 지체하면 다음 일정에 차질이 생길 터였다.

아직도 오지 않는 거야?

당신도 그 녀석의 성질을 알 거 아냐. 가족사진을 찍는다고 하니까 바로 거절하더라고, 지금도 방에서 뾰로통하고 있어.

하필 오늘따라 왜 저러는 건지. 요즘 윗선에서 자꾸 사람들을 보내서 귀찮게 굴어. 올 때마다 뻔한 소리만 늘어놓는데, 옆에서 수류탄 터지는 것보다 더 시끄럽다니까.

아직도 포기하지 않은 거야? 지난번에 얼핏 들었는데, 이름이... "발리콘 계획"이었나?

흥, 굶주린 늑대들이 먹잇감을 놓치겠어? 고기 냄새만 살짝 풍겨도 죽자고 달려드는 놈들이잖아.

난 여전히 반대야. 너무 위험해. 게다가 에제트가 안고 있는 "그 문제"를 더 악화시킬 수도 있어. 내가 겪어본 바로는 그 사람들...

대놓고 악의가 있다고는 못 하겠지만, 적어도 떳떳하지 못한 흑심을 품고 있는 건 확실해.

근데 어제 책상 위에 상세 계획서가 있던데, 당신이 둔 거지? 아직도 망설이는 거야?

맞아. 높으신 분들은 허구한 날 헛된 꿈이나 꾸면서 우리 하나하나가 핵폭탄이 되어 세상을 뒤흔들길 바라지. 그놈들 속셈이야 알 바 아니지만...

성공한다면, 더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잖아.

그리고 "그 문제"도... 알다시피 지금으로선 답이 없어. 에제트의 고질병이잖아. 하지만 발리콘 계획이 성공한다면 희망이 생길지도 몰라.

그래서 일단 검토해 보겠다고 했어. 진짜 시작하게 되면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지겠지.

그럼, 오늘 가족사진은 무조건 찍어야겠네. 또 미루면 언제 시간이 날지 아무도 장담 못 하니까.

이렇게 하자. 일단 당신이... 그리고 내가...

에우르디스는 오딜리에게 귓속말을 한 뒤, 몸을 돌려 카무이의 방문을 두드렸다.

카무이? 아빠가 비밀 이야기를 해줄까?

에우르디스가 방으로 들어서자, 다시 치마를 갖춰 입은 카무이가 옷매무새를 다듬고 있었다.

카무이

무슨 이야기인데? 듣고 싶어!

카무이가 폴짝폴짝 뛰어와 에우르디스에게 귀를 바짝 댔다.

에우르디스

그러니까... 다 모이면 네가 살금살금 카메라 앞으로 가서 타이머 버튼을 누르는 거야.

그리고 그 녀석이 도망가기 전에 후다닥 돌아와서 우리랑 같이 가족사진을 찍는 거지. 어때?

카무이

나한테 맡겨!!

카무이는 냅다 밖으로 튀어 나가려다가 실수로 치맛자락을 밟고 넘어졌다. 하지만 금세 일어나 얼굴에 묻은 흙을 툭툭 털고는 야외에 있는 카메라를 향해 달려갔다.

오딜리

▇█▅▂▅▃▁▁, 빨리 와!

싫긴 뭐가 싫어, 잔말 말고 와!

어허... 가만있어. 옷이 다 헝클어졌잖아. 아빠한테 정리해달라고 부탁하렴.

카무이

이 목소리는... 왔다! 에헤헤~ 내 실력을 보여주지!!

아빠가 그랬었지, 타이머가 20초라고... 지금 누르면 딱 맞을 거야.

위에 건가? 아니, 아래 건가? 위의 것이었지? 맞아. 확실해!

"찰칵!!"

오딜리

카무이! 잘못 눌렀잖아, 그건 즉시 촬영 버튼이라고!

에우르디스

애가 서툴 수도 있지. 내가 한번 확인할게.

음... 오히려 느낌 있는데? 아주 특별한 가족사진이 됐어. 한번 볼래?

오딜리

나쁘지 않네. 애들한테도 보여줘.

에우르디스

카무이? 이리 와서 봐봐.

그리고... ▇█▅▂▅▃▁▁? 왜 말이 없어? 멀찍이 서 있지 말고 이리 와. 같이 보자.

카무이

▇█▅▂▅▃▁▁!!

누구지? 왜 카무이의 기억 속에서 그의 이름을 부를 수 없는 걸까?

마치 한 조각이 빠진 퍼즐처럼... 얼굴조차 흐릿했다. 하지만 카무이는 그 사람이 자신을 부르던 목소리만큼은 어렴풋이 기억할 수 있었다.

익숙한 목소리가 카무이를 기억 속에서 끄집어냈다.

어?! 미안, 미안! 잠깐 딴생각 좀 했어.

간만에 생생한 기억이 떠올라서 지휘관한테 꼭 말해주고 싶었거든... 이런 걸 보고 감회에 젖는다고 말한다지!

응, 근데 이름이랑 얼굴은... 에휴, 그 부분은 지금까지 기억이 나지 않아.

가족사진에서 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하필 퍼즐 한 조각이 빠져 있을 줄이야.

그 아이가 누군지, 나와 어떤 관계인지 진짜 알고 싶은데...

됐어. 이건 나중에 얘기하자. 의식의 바다가 좀 더 복구되면 분명 생각날 거야!

기왕 자료실까지 왔으니 필요한 거나 찾아보자. 발리콘 계획이랑 생명의 나무 관련 자료는 보안 등급이 높아서 깊숙한 곳에 있을 거야.

따로 찾아볼까? 지휘관은 전자 데이터를 계속 봐줘. 난 기억나는 대로 종이 문서를 뒤져볼게.

혹시라도 나와 관련된 파일 같은 걸 찾으면 이 수수께끼가 풀릴지도 모르잖아.

그렇게 말하며 둘은 일사불란하게 역할을 나누어 움직였다. 전자 데이터는 정리가 잘 되어 있었고 목차도 명확해서 카무이의 개인 파일 기록은 금방 찾을 수 있었다.

응? 왜? 우리가 찾던 답이 정말로 나왔어?

신이 나서 달려온 카무이는 지휘관과 함께 전자 스크린을 들여다보았다.

이렇게 빨리 내 파일 기록을 찾다니 역시 지휘관이야! 뭐라고 적혀 있는지 어서 보자.

엄청 자세하네. 태어난 순간부터 크고 작은 일이 다 기록되어 있어. 담당 의사, 초등 교육 교사 그리고 부모님...

?!

엄마!! 아빠!!

순간, 카무이의 뇌리에 오딜리와 에우르디스를 부르던 수많은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전자 스크린의 부모란에 있는 사진은 놀랍게도 카무이의 기억 속에 있는 엄마 <오딜리>와 아빠 <에우르디스>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