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진이 가동되며 파오스 우주 함선이 안개 지역을 돌파해, 전광석화처럼 우주로 귀환했다.
우주의 손길이 우주 함선을 어루만지자, 폭발해야 했을 거대한 충격파가 눈 깜짝할 새에 소멸하였고 예상되었던 모든 돌발 상황이 말끔히 사라졌다.
사람들은 2차원의 세계에서 돌연 3차원으로 끌려왔고, 온몸의 감각이 되돌아오자, 가장 먼저 나타난 것은 집단적인 거부 반응이었다.
우주 함선에 탄 학생들은 웩웩거리며 토했다.
공중 정원의 사람들도 한바탕 바쁘게 움직였다.
파오스 우주 함선이 나타났습니다! 도킹! 즉시 도킹 신청합니다!
9개 도킹 포트의 권한을 모두 개방 완료했습니다. 자동화 협업 모듈 가동 중입니다. 스마트 궤도 계산 시스템은 아직 연산 중입니다! 게슈탈트!
게슈탈트가 은은한 푸른빛을 발했고, 중앙 방송과 모든 작업자의 헤드셋에서 차분한 여성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우주 함선의 궤도 진입을 판정합니다. 자세 정상, 궤도 조정은 한 바퀴 내에 완료됩니다.
도킹 조건을 충족합니다. E-2159 구역과 도킹을 시작합니다.
예상 남은 도킹 시간은 22분 08초입니다.
…
게슈탈트 방송에서 잡음이 들려왔다. 게슈탈트도 "생각"을 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이윽고 게슈탈트는 슈퍼컴퓨터답지 않은 행동을 보이며 다정하게 응답했다.
파오스, 무사 귀환을 환영합니다.
작업자들은 멈칫하더니 이내 정상적인 업무로 돌아갔다.
도킹 가능할 수 있습니다!
잠깐… 전원 주목해 주십시오! 파오스 우주 함선에서 고농도 퍼니싱 반응이 감지됐습니다. 이 정도 규모면… 대행자급 적이 우주 함선에 탑승 중… 아니, 그 이상일지도 모릅니다!
경고! 과학 이사회가 있는 S-2135 구역이 타격을 받았습니다. 적의 퍼니싱 반응 규모가 승격자 이상에 도달하고 있습니다! 공중 정원 전체 마인드 표식 연결 시스템이 붕괴했습니다!
Ⅱ급 경보입니다.
경보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파오스 우주 함선에…
엔지니어의 고함이 멈췄다.
어떤 여자가 보입니다.
고개를 들고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킨 작업자는 넋을 잃은 채 우주 함선 꼭대기의 한 형체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Ⅰ급 경보입니다.
우주 함선 꼭대기의 안개가 걷히자, 적백색 그림자가 그 위에 똑바로 섰다. 고개를 들고 허리를 편 뒤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긴 그녀는 아무런 보호 장비 없이도 우주 공간에 서 있을 수 있었다.
그녀는 천천히 칼을 허리춤에 꽂아 넣고 공중 정원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걸어가 우주의 무게를 무시한 채, 공중 정원의 함교를 향해 묵묵히 걸어 내려왔다.
전투… 준비…
Ⅰ급 경보를 발령합니다! 전투 준비를 하십시오!!
누군가 작업자의 어깨에 두 손을 얹었다.
물러서세요.
비전투 인원은 물러나.
선두에 선 여성 지휘관이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 나갔고, 그 뒤로 셀 수 없이 많은 인간 병사와 구조체 병사가 집결했다.
그들은 총을 치켜들고 지휘관의 발걸음에 맞춰 함교로 접근했고, 레이저 조준경의 붉은 점들이 모두 적백색 형체에 모였다.
알파는 빽빽한 인파 속에서 리브와 리를 발견하고, 우주 함선 가장자리에 발걸음을 멈춘 채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대치는 거의 30분 동안 지속되었다.
도킹 완료했습니다.
선실 내외부 압력 점검 정상, 해치를 개방합니다.
파오스 우주 함선의 해치가 열리자, 창백한 얼굴 몇몇이 군대 앞에 나타났다.
…
바네사는 공중 정원의 강렬한 빛에 자극받아 눈을 뜨기조차 힘들었지만, 억지로 한 걸음 앞으로 내디뎠다. 하지만 자신의 체력을 과신한 나머지 한쪽으로 쓰러졌다.
지휘관이 이를 보고 즉시 손을 뻗어 바네사를 부축하려 했으나, 뜻밖에도 자신의 팔다리마저 말을 듣지 않아 옆에 있던 루시아의 부축을 받아야 했다.
!
지휘관님!
리브와 리가 먼저 진형을 깨고 대열 밖으로 뛰어나와, 새로운 파오스 부대가 도미노처럼 쓰러지기 전에 모두를 부둥켜안았다.
바렐리아는 학생들의 옷에 묻은 검붉은 핏자국을 한눈에 알아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리브와 리에 이어, 생명의 별 응급구조 대원들이 병사들의 엄호를 받으며 우주 함선으로 뛰어들어 죽음과 시간을 다투기 시작했다. 이것이 또 다른 전쟁이었다.
하지만 알파는 시종일관 우주 함선 위에 서서 칼자루에 가볍게 손을 얹은 채,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고 파오스의 학생들이 차례차례 대피하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했다.
알파는 그저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의식의 바닷속 안개 지역에서 자신에게서 비롯된 물음 하나가 들려오는 듯했다.
알파가 고개를 살짝 들어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
알파는 다시 고개를 숙여, 지휘관과 그 곁에 있는 루시아를 바라보았다.
행복을 얻을 수 있는 하나의 루시아를 바라보았다.
…
이 정도면 충분해.
지휘관이 가장 마지막으로 우주 함선에서 대피할 때까지 병사들은 묵묵히 지휘관과 그레이 레이븐 소대에게 길을 내어주었다.
알파는 그제야 눈을 내리깔고 더 이상 쳐다보지 않았다.
무릎을 굽히고 힘을 모아 우주 함선 꼭대기에서 뛰어내린 알파는 공중 정원의 건축물을 파괴할 생각이 없었기에 함교를 통해 떠날 참이었다.
알파는 그렇게 조용히 떠나려 했다.
하지만 알파를 향한 경계 태세는 풀리지 않았다.
지휘관 역시 걸음을 멈추고 알파 쪽을 바라보았다.
…
알파가 두 걸음 앞으로 내디디며 함교 쪽으로 다가갔다.
팽팽한 긴장감 속에 병사들의 총구 역시 알파의 움직임을 따라가며, 뒤통수와 등을 겨누었다.
움직이지 마, 알파. 거기까지다.
하지만 알파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일촉즉발의 상황 속에서 지휘관이 먼저 손을 뻗었다. 그리고 입술을 달싹거렸는데, 분명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했다.
고맙다고 인사하고 싶은 걸까? 아니면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싶은 걸까? 그것도 아니라면, 남아달라고 하려는 걸까?
…
알파는 단 한마디도 덧붙이지 않았고, 걸음을 멈추지도 않았다.
알파는 곁눈질조차 하지 않았고, 몸에 비치는 붉은빛들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은 채 곧장 지휘관과 그레이 레이븐 소대를 스쳐 지나갔다.
지휘관은 팽팽한 긴장감에 압도되어, 차마 알파에 손을 뻗지 못했다.
…
알파는 단 한마디도 덧붙이지 않았고, 걸음을 멈추지도 않았다.
알파는 곁눈질조차 하지 않았고, 몸에 비치는 붉은빛들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은 채 곧장 지휘관과 그레이 레이븐 소대를 스쳐 지나갔다.
어쩌면 모르는 사람처럼 스쳐 지나간 것일 수도 있고, 완전히 갈라선 것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알파에게는 더 이상 답이 필요 없었다.
「무신론」은 진작에 인간과 영원한 맹세를 맺고, 행복의 길과는 정반대로 가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알파는 사람들과 반대되는 방향으로 흔들림 없이 걸어 나갔다. 함교의 끝을 향하여.
이어서 어두운 우주로 걸어 들어갔다.
알파는 "나무" 아래서 지구를 응시했다.
리올라 일행의 말이 맞았어. 도미니카에겐 다른 계획이 있었던 거야.
인간은 이미 도미니카가 내다봤던 길을 걷고 있으니, 난 이 길이 단기간 내에 방향을 틀지 않도록 지켜야겠어.
인간에게 길잡이가 되어주어야 해.
알파가 손을 뻗어 대서양의 중심을 가리켰다.
눈을 떠.
대서양의 한 지점에 손길이 닿는 순간, "눈" 하나가 서서히 떠졌다.
본래라면 나와 같은 높이에서 세상을 바라봤어야 할 또 다른 존재… 그 인간.
그녀는 평생을 함께하기를 포기한 그 이름을 입에 올리지 못했다.
너의 "출발점" 역시 이곳에서 찾아야 할 거야.
알파는 대서양 바닷속에 인과를 하나씩 심어 놓았다.
잠깐.
그녀는 문득 무언가를 눈치챘다. 다른 누군가의 시선 또한 자신과 같은 곳을 향하고 있는 듯했다.
잠시 확인해 본 끝에, 그 시선이 흑백의 구조체에게서 비롯된 것임을 깨달았다. 예상 밖의 또 다른 변수였다.
그녀한테서 오필리아의 기운이 나는데.
알파는 꼼꼼히 확인했다.
아틀라스해는 새로운 왕을 맞이하며 요동쳤고, 파도 소리는 천지를 울리며, 회색빛으로 물든 해안을 드러냈다.
썩은 냄새가 곳곳에 퍼지고, 수많은 시체가 갯벌을 뒤덮었다. 인간, 구조체, 고래와 상어, 원숭이와 뱀, 온갖 날짐승들…
은빛 가닥들이 얽히고설켜, 탯줄처럼 서로를 연결하며, 진화에서 무덤으로 나아가 깊은 심연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무신론」… 넌 드디어 이 시야를 얻게 됐구나.
거미 문양을 가진 여인이 시체 바다의 끝에 서 있었다.
오필리아의 언니… 헬렌틴.
내 동생한테 감사하게 생각해. 덕분에 너도 나에 대해 미리 알게 됐으니까. 하지만 네가 치른 "대가"와 달리, 난 이 육신을 빌려서야 이곳에서 널 만날 수 있었어.
나한테 전할 말이라도 있는 건가?
"저울의 맞은편."
그녀가 손을 들어 올리자, 파도가 흔들렸고, 다섯 손가락에서 뻗은 거미줄이 수많은 썩은 시체를 들어 올리며, 공중에서 두 개의 나선형을 이루었다.
우주의 정보는 보존되는 거야, 넌 이미 그것의 위력을 목격했고, 체험했지.
이 길의 미래에서 인간은 여전히 「선별」로 인한 다른 위험을 직면하게 될 거야.
그때 너는 운명을 버린 감독관으로서, 인간이 올인하는 선택을 받아들이고 도와줄 수밖에 없어. 결과가 어떻게 되든 말이야.
여인은 알파를 주시하고 있었고, 파도는 억만 년 된 암초를 내리치고 있었다.
이게 과연 네가 원했던 미래일까?
수많은 그림자가 눈앞을 스쳐 지나갔고, 그것은 알파가 단 한 번도 주저하지 않았던 답이었다.
난 내 미래를 모두 태워버렸어. 사람들이 이로 인해 걷게 될 길은 반드시 올바르면서도 험난할 거고.
그들은 나의 그림자를 따라 더 먼 미래로 걸어갈 거야.
그렇구나…
헬렌틴은 바다를 내려다보았다. 썩은 시체들이 얽혀 나선형을 이루었고, 바닷물에 잠겨 가장 오래된 단세포 생명들을 만들어냈다.
나선의 염기 서열에는 열 쌍의 염기가 있었고, 이는 나무 위의 열 개의 열매를 대응하고 있다.
생명의 나무?
그것은 모든 의식의 온상과도 같아. 생명의 번식과 분열로 인해, 모든 존재는 나무 뿌리와 연결된 다리를 잃어버렸어.
어느 순간부터 하늘과 대지가 갈라지기 시작했다. 번개가 창공을 가르며 내리쳤고, 세포는 분열하고 결합했다. 생명은 바다에서 육지로 뻗어 나갔고, 그렇게 시간은 데본기 후기에 이르렀으며…
「나무」라 불리는 생명체가 세상을 지배하게 됐다.
이것은 지구만의 해결책이야. 모든 이야기는 이 맥락에서 답을 찾게 될 거고.
너와 그 인간이 그걸로 틈새를 막았지만, 퍼니싱의 주인도 그걸 중심으로 새로운 대리인을 뽑게 될 테지.
난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어——"생명의 나무 계획"은 어느 누구의 발명품이 아니란걸, 도미니카는 단지 미리 올바른 길에 서 있었을 뿐이지.
헬렌틴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광활한 바다를 바라봤다.
그렇다면 인간은 무덤에서 기적을 요구할 필요가 없다는 것도 알고 있을 텐데?
조금 의심스럽네. 넌 진짜 헬렌틴이 맞아? 아니면 하나의 점입자에 불과한 투영인가? 난 정해진 운명 속에서, 지금 이 순간의 연결고리를 읽은 적이 없거든.
그게 바로 우리의 목적이야. 내가 대가를 치른 건, 감독관인 네게 경고하기 위해서야. 변화가 곧 닥칠 거란 사실을 알려주려고. 넌 "생명의 나무"를 통해 가능한 한 빨리 세계의 규칙을 완전히 이해하는 게 좋겠어.
알파는 헬렌틴의 과거와 미래를 훑어보며, 그녀가 말한 그 변화 속에서 익숙한 모습을 발견했다.
결과를 미리 알려줄까?
그럴 필요 없어.
알파는 먼저 고개를 들어, 부패한 반딧불이 자양하는 울창한 거목을 바라봤다.
난 인류 문명의 모든 선택을 목격하기로 정해진 운명이야. 최종 목적은 결과를 달성하는 것이지만, 그 과정에서 겪는 일분일초의 선택과 변경을 「감시」하는 게 내 몫이지.
알파는 시선을 아래로 돌려 계속해서 지구를 응시했다.
지상의 임시 주둔지에서 루나 역시 눈을 떴다.
루나가 알파를 떠나보낸 지 찰나의 순간밖에 지나지 않은 듯했다.
당황한 물고기는 아직 곁에 있었지만, 그 표정은 이전보다 한층 더 어쩔 줄 몰라 했다.
아가씨! 파, 파오스 군사 지휘 학교가 다시 나타났어요!
라미아는 어디서 훔쳐 왔는지 모를 통신 단말기를 치켜들고, 그 화면에 뜬 전체 공지를 가리켰다.
롤랑은 오히려 해답을 알고 있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마침내 자신만의 길을 찾아냈다고 축하해 줄 준비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
하지만 루나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우러러보았다.
언니가 운명의 출발점을 되찾았어.
불현듯 위를 올려다 루나는 자신의 시야에 한 치의 막힘도 없음을 깨달았다. 하늘부터 우주까지, 그 무엇도 점차 루나에게 걸림돌이 되지 못했다. 그렇게 루나는 서서히 모든 것을 꿰뚫어 볼 수 있게 되었다.
눈앞의 공기를 어루만지자, 모든 것이 뜻대로 움직였다. 루나는 승격 네트워크와의 연결이 정말 알파의 말대로 "어느 순간 뒤집혔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루나는 그 전화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특별히 당부할 말이 있어. "미래"의 어느 날, 내가 안개 지역을 거둬들이고 내 힘으로 승격 네트워크를 교란할 거야.
그날은 그리 머지않아 올 거고, 넌 분명 알아차릴 수 있을 거야.
그때가 오면 모든 건 네 뜻대로 해. 만약 그 기회를 틈타 승격 네트워크를 역으로 지배하고 싶다면, 내가 도와줄게.
언니. 언니가 내게 승격 네트워크를 완벽하게 통제할 기회를 주었어.
루나는 공기 중의 퍼니싱을 모조리 긁어모으려는 듯 주먹을 꽉 쥐었다.
때마침 언니의 힘이 어떤 "이상 현상"에 교란당하고 있으니, 타이밍도 딱 맞네.
루나가 눈을 가늘게 뜨자 "이상 현상"의 근원이 공중 정원을 수시로 도발하는 애송이 하나에게 모여 있다는 걸 눈치챌 수 있었다.
너였구나.
루나는 의식의 바닷속 잡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나아갈 방향을 굳건히 다진 뒤, 다른 승격자 둘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숲을 벗어나기로 결심했다.
난 영원히 언니 편에 설 거야. 다음은…
우리가 나서서 그 "이상한" 벌레 새끼들을 잡아낼 방법을 찾아보자.
루나 역시 당분간은 원한으로… 혹은 애정으로 가득 찬 이 대행자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기로 했다.
승격의 힘 또한 루나가 옳다고 믿는 길 위에서 계속 발휘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