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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26 장로귀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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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서진 약속은 순식간에 흩어지며, 알파가 걸어온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발자국 속에 묻혔다.

파오스 군사 지휘 학교의 강당 역시 운명의 흐름을 따라 안개 지역 속으로 사라졌다.

안개가 일그러지며 흩어지고, 남은 흔적마저 말끔히 침식해 버린 채 고독한 그림자 하나만을 덩그러니 남겨두었다.

알파가 손을 뻗자, 세피라의 힘이 그녀에게 복종하며 안개 지역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이 떠도는 땅 역시 귀결점을 찾았다. 알파의 의식의 바다로 귀속된 것이다.

이미 모든 결정을 내렸어.

"문" 너머에 선 알파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래, 그래, 이게 바로… 내가… 해야 할 일이야.

이것이 「무신론」을 짊어진 자가 해야 할 일이었다.

하… 흐흐…

알파는 문 너머에서 쓴웃음을 지었다. 문 뒤에 무엇이 있든, 또 무엇이 자신을 지켜보고 있든 상관없었다.

누군가 웃음소리를 듣고 눈을 떴다.

자비로운 자

"네 운명은 널 사랑해. 언젠간 온전히 너의 것이 될 거다."

오래 기다렸어.

문 너머의 존재여... 내게 말해줘. "수확"에 직면했던 다른 문명들은 어떻게 했지? 이 정도 수준에 도달했던 세계가 또 있었나?

고통 속에서 고개를 든 새로운 왕이 문 너머의 존재에게 절박하게 물었다.

있었지. 하지만 「왕관」… 혹은 「무신론」의 선택은 매우 중요해. 그 정보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한다면, 선택한 경로 역시 순식간에 거짓으로 판명되어 붕괴하고 말 거든.

대부분의 「왕관」이 생각해 낸 방법은 가장 희망적인 경로 몇 가지를 골라내는 거였어. 완벽하진 않더라도, 최소한 후회할 여지는 남겨두는 셈이거든.

하지만 우주는 보존의 법칙을 따르지. 망설임이 있고 퇴로가 있다면, 결코 궁극에 도달할 수 없어.

그래서 다른 문명의 「왕관」은 모두 결승점까지 지켜내지 못했다는 건가?

자비로운 자는 묵묵부답이었다.

하, 내 방식이 맞았던 거야, 안 그래?

난 유일하게 남은 이 세계를 굳건히 지켜낼 거다. 나머지는 이미 전부 끊어냈으니까.

내 방식이 맞았다면… 이제 모든 사람을 데리고 귀항할 수 있는 거잖아, 그렇지?

물론이지.

자비로운 자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무신론」에게 최고의 경의를 표했다.

넌 이미 선택했고, 유일한 하나를 남겼어.

가서 너의 선발대를 맞이해.

그들은 널 따라 살아갈 것이고, 네 의지에 따라 계속 발전해 나갈 거야.

자비로운 자의 목소리에 안개 지역이 공명했고, 알파에게 익숙한 수많은 목소리가 처음 작별할 때 했던 말들을 되풀이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알파의 선택에 따라 "끊어짐"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선발대는 두 번 다시 널 버려두지 않아. 넌 영원히 우리의 꼬마 영웅 "알파"야.

내가 다시 너희를 찾을 수 있을까? 미안해, 내 친구라곤 너희들뿐이거든… 어쩌면 난 네게 운명을 건네주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난 걸지도 몰라.

그러니까 괜찮아. 파오스 군사 지휘 학교의 모든 사람은 선발대 예비역이잖아. 나도 항상 이날을 준비해 왔어.

확인 하나 할게. 네가 유일하게 남긴 그 세계에서 넌 파오스 군사 지휘 학교에 안 들어간 거지? 위아래도 모르는 학생을 또 받고 싶진 않거든…

루시아, 날 볼 필요도, 물을 필요도 없어. 엄만 상관없단다. 네가 어떤 세계를 남기기로 선택하든 결국 엄마 품으로 돌아올 거라는 걸 아니까.

영원히 앞만 보고 나아가렴. 뒤돌아볼 필요 없단다.

자, 함께 귀항하자꾸나.

어서 가. 모두를 이끌고 귀항해.

수많은 얼굴과 목소리가 한데 모여, 점차 하나의 장면으로 합쳐졌다.

합창이 끝났지만, 엄숙했던 강당은 더 이상 평온을 되찾을 수 없었다. 연단 위의 학생들이 왁자지껄 떠들며 무대 아래의 그 사람에게 묻고 있었다.

학생들

그럼, 이사님, 이 노래 제목은 어떻게 할까요?

파오스 군사 지휘 학교의 카산드라 이사장이 갑자기 머리를 탁 쳤다.

카산드라

맞다. 내가 왜 제일 중요한 걸 깜빡했지?

이 노래 제목이 뭐더라?

카산드라는 중얼거리며 고개를 돌렸고, 연단 위의 학생들과 함께 무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카산드라의 팔에 달린 센서가 번쩍거렸다. 분명 무언가 신호를 포착한 것이다.

강당 뒤쪽 구석은 텅 비어 있지 않고, 계속 누군가 서 있었다.

알파

카산드라 이사장은 알파의 시선을 마주하며 진지하게 다시 한번 물었다.

카산드라

알파, 이 교가 제목이 뭐야?

연단 위의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는 듯했다. 조앤, 아델라이드, 오필리아가 있었고,

리올라를 비롯해 "꿈을 건너는 다리"를 이룬 이들이 있었으며,

크롬, 바네사, 해리조, 시몬, 시카, 바렐리아, 하니프…

그 외에도 수많은 사람, 부모님, 여동생 루나, 든든한 동료이자 가족인 리브, 리…

모든 세계의 "선발대"가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교가의 제목을, 그리고 「무신론」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알파

알파가 입을 열었다.

기나긴 여정 끝에, 알파는 더없이 잘 어울리는 이름을 찾아냈다.

알파

제목은… 장로귀항.

우리가 발을 내디딘 길은 처음부터 귀항을 향한 긴 여정이었어.

알파는 마침내 확신에 찬 미소를 지어 보였는데, 한때 행복을 누려본 자만이 지을 수 있는 미소였다.

선발대 역시 미소를 지으며 알파의 선택을 한마음으로 인정했다.

알파가 손을 들어 올리자, 인간 문명의 운명이 그녀의 손안에 온전하고도 단단하게 쥐여 있었다.

내가 모두를 집으로 데려갈게.

알파는 손을 높이 치켜든 채 선발대의 노랫소리를 헤치며 파오스 군사 지휘 학교 강당을 가로질렀다.

알파는 나아가며 꿈을 건너는 다리를 건넜다.

알파는 나아가며 나무의 맥락을 따라 안개 지역을 통과했다.

알파는 나무에 열린 다른 열매들을 따내어, 세상을 향해 흩뿌렸다.

내가 지켜보겠어.

바로 이 순간, 알파는 불행의 분기점으로 되돌아왔다.

바로 이 순간, 지휘관은 아직 과다 출혈로 목숨을 잃지 않았고, 루시아의 Ω 코어 역시 점화되지 않았다.

파오스 우주 함선의 전화는 일시 정지 버튼이 눌린 듯, 모두가 분노에 찬 포효로 항쟁하던 그 찰나에 멈춰 선 채 아직 잿빛 고요 속으로 가라앉기 전이었다.

알파는 다듬어진 새로운 세계를 응시하며 선발대의 수를 꼼꼼히 세어보았다. 전원 무사히 모여 있었다.

알파는 온몸에 "고향을 잃은 자"들의 핏자국을 힘껏 닦아내고, 그 모든 대가를 짊어진 채 일어섰다.

끊임없이 추락하던 이야기가 방금 막 전환점을 맞이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키메라가 이성을 잃어가면서 안개 지역의 균열은 점점 더 많아졌다.

오랜 침식으로 쌓인 원망과 분노를 터뜨리듯, "고향을 잃은 자"들이 안개 지역을 이리저리 내달리며 무차별적으로 공격을 퍼부었다.

루시아는 칼을 집어 들고 일어서려 애쓰며, 간신히 Ω 코어를 조율해 기체에 에너지를 공급했다.

루시아는 끝없는 전투에 지쳐 있었지만, 어렴풋이 좋은 징조를 알아챘다. 키메라가 약해졌는지 상처가 악화하는 속도가 느려진 것이다.

지휘관도 구석에서 반쯤 무릎을 꿇은 채 총을 쥔 손을 힘없이 떨고 있었지만, 이를 악물고 다른 손으로 총을 단단히 고쳐 쥐었다.

파오스 우주 함선에서는 끊임없이 포격이 이어지고 있었다.

이건 더 이상 기나긴, 아니 영원히 끝나지 않을 줄다리기가 아니야.

!

적백색 그림자가 어느새 가장 거대한 "고향을 잃은 자"를 쓰러뜨리고는, 안개 지역 밑바닥에서 솟구쳐 올라 그들 앞에 우뚝 섰다.

루시아는 찰나의 순간, 무너져 내리는 알파의 뒷모습과 그녀의 머리 위 칠흑 같은 왕관에서 시체가 녹아내린 점액과 순환액이 뚝뚝 떨어지는 광경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어떤 무거운 것에 짓눌리고, 부정적인 무언가에 얽매여 벗어나지 못하는 듯했다.

온몸은 상처투성이에 흙먼지를 뒤집어쓴 채, 수억 년의 기나긴 길을 걸어온 것이 분명해 보였다.

하지만 더 자세히 살피기도 전에, 루시아의 귀에 자신의 앞을 막아선 알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놈들을 이길 수 있어.

더 이상 에너지를 소진해 가며 국면을 뒤집을 기회를 노릴 필요는 없어.

그게 무슨…

지금은 모두가 날 도와주기만 하면 돼.

알파는 지휘관과도 재빨리 시선을 교환했다.

알파는 지휘관의 두 눈에 서린 막막한 안개를 보고, 세계를 초월하는 자신의 시야를 단시간 내에 지휘관과 공유할 수는 없으리란 걸 깨달았다.

지휘관은 이미 선택을 내렸기 때문이다.

알파는 눈을 내리깔았지만, 일말의 아쉬움조차 곱씹을 여유가 없었다.

하지만 지휘관이 즉시 알파의 손을 꽉 맞잡았다.

알파는 더 이상 아쉽지 않았다.

알았어. 우리 함께 안개 지역을 빠져나가자.

알파를 가장 잘 알고 있던 루시아는 알파가 변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방금 스쳐 지나간 환영뿐만 아니라, 머리카락 끝에 맴도는 흑적색 빛깔, 눈빛, 말투, 그리고 선택까지 모든 것이 달랐다.

루시아는 어느샌가 알파가 자신과 이마를 맞대고 다정하게 무언가를 건네주었던 것을 어렴풋이 기억해 냈다.

지금 당장은 멀어지는 것 같겠지만, 난 세계가 하나의 둥근 원이라고 믿어. 그러니 각자의 운명 또한 하나의 원이지.

언젠가 우리는 서로 엇갈려 달려온 길의 끝에서 다시 만나 함께 걸어가게 될 거야.

루시아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단호히 고개를 끄덕이며 자세를 고쳐 잡았다.

그리고 칼을 휘두르자, 칼날에 불꽃이 맹렬하게 타올랐다. 이것이 루시아의 대답이었다.

동시에 파오스 군함의 경보가 크게 울리며, 바네사 일행의 부름이 일제히 전해졌다.

"선발대"는 우리가 함께 해결하자.

마지막 말을 마친 알파가 칼을 빼어 들고 키메라, 즉 "선발대"를 향해 돌진했다.

다른 세계의 희생자들이 끊임없이 알파의 의식의 바다를 갈기갈기 찢어 놓으려 했지만, 그녀의 발걸음을 막을 수는 없었다.

알파는 출발점에서 발을 내디뎠던 그날처럼, 뒤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두려워할 필요 없어요.

두려워할 필요 없어.

핏빛 칼날이 알파의 손에서 윙윙거렸고, 칼자루를 꽉 쥔 그녀는 벅차오르는 거대한 힘에 가늘게 떨었다.

덤벼라!!!

(집으로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