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휘관은 살과 피로 이루어진 심장을 가졌기에, 이 가설과 마주하자, 그 심장이 극심한 고통을 느끼기 시작했다.
젊은이들이 모여 떠드는 왁자지껄한 소리가 울렸고, 시야에 맨 먼저 들어온 사람은 은백색 머리카락을 가진 소녀였다.
그 소녀는 날렵하게 동갑내기 소녀를 부축했지만, 이어폰이 바닥에 떨어지고 말았다.
소녀가 떠나는 뒷모습을 지켜보던 은발의 소녀는 오른쪽 귀를 만지작거리며 멈칫하더니 주위를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고마워. 그쪽도 1기생?
난 루시아라고 해.
한순간 세상이 고요해졌고, 지휘관은 쿵쾅거리는 자기 심장 소리를 가장 선명하게 들을 수 있었다.
지휘관은 두 눈을 깜빡이며 루시아의 지금 모습을 눈동자에 담았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어 루시아에게 그 말을 건넸다.
학교 명패를 보기도 전에 알고 있었다.
청홍팀 깃발 뽑기 훈련을 하기 전부터 알고 있었다.
팔굽혀펴기 500개 벌받기 전부터…
공중 지휘소에서 교대 실전 훈련을 하기 전, 비행기를 몰고 파오스 군사 지휘 학교를 스쳐 지나가기 전부터…
밤의 잔디밭에서 생일 파티를 하기 전부터…
달에서 지구가 둘을 위해 떠오르기 전부터…
그 모든 것 이전에, 마스크 너머로 루시아가 건넸던 첫마디, "지휘관님을 좋아해요."라는 입 모양만을 읽어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명확하게 기억나는 건 그다음 말이었다.
그 목소리는 마스크 속에 갇혀 자신에게만 들렸다.
파오스 군사 지휘 학교의 강당에서 루시아를 위해 약속 하나를 준비하기 전에…
조앤이 사람들의 시선을 이쪽 구석으로 돌렸을 때, 둘은 암묵적인 동의하에 동시에 일어섰다.
알파가 문 너머로 발을 내디뎠지만, 상상했던 헛디디는 느낌은 없었다.
알파는 단단한 땅을 밟았고, 극심한 어지러움이 하마터면 의식을 앗아갈 뻔했다.
고개를 들어보니, 파오스 군사 지휘 학교의 찬란한 돔이 머리 위에 있었다.
알파가 고개를 숙여보니, 자신은 졸업식을 위해 맞췄던 그 예복을 입고 있었다. 그리고 아주 중요한 어느 순간에, 그 옷을 특별히 꺼내 입었던 기억이 났다.
…
알파는 무언가를 확인하려는 듯 갑자기 몸을 떨었다. 떨리는 손으로 주머니를 더듬자, 그 안에서 따뜻하고 매끄러운 무언가가 잡혔다.
반지였다.
폐쇄 루프처럼 둥글었고, 그 폐쇄 루프의 마지막 연결 고리였다.
순간, 알파는 인간이었을 때의 심장 박동을 느꼈고, 모든 감정이 이 몸으로 되돌아왔다.
그리고 가장 큰 용기를 내어 돌아가야 했던 하루였음을 떠올렸다.
청각이 맨 먼저 깨어났다. 동료들과 동문의 주체할 수 없는 웃음소리와 왁자지껄한 소리가 인간
뒤이어 시각이 돌아왔다. 주변을 둘러보자, 흥분으로 상기된 얼굴들이 하나하나 눈에 들어왔고, 모두가 너무나도 낯익었다.
오필리아, 아델라이드, 카산드라… 그리고 비명을 지를까 봐 두 손으로 입을 꽉 틀어막고 있는 조앤까지.
모든 것이 느려진 것 같았다.
우주는 이 미완의 약속을 동정하지 않았지만, 알파를 아끼는 또 다른 이가 그녀를 이 순간으로 데려왔다.
하.
등 뒤에서 묵직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알파는 반지를 쥔 채, 아주 천천히 고개를 돌려 눈앞의 사람을 다시 바라보았다.
문득 도망치고 싶어졌지만, 이것은 마지막이자 가장 중요한 선택이었다.
그래서 알파는 눈을 들어 시선을 맞췄다.
먼저… 말…
알파는 익숙한 문장을 더듬거리며 반복했다.
하지만 맞은편의
…
알파는 멍해졌다.
지휘관의 눈빛엔 긴장도, 걱정도, 기대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 두 눈엔 아직 하고 싶은 말이 아주 많아 보였지만, 풋풋한 감정은 사라지고 오직 모든 걸 다 아는 듯한 충만한 행복만이 가득했다.
하지만… 그때와는… 이미 다르잖아.
알파는 스스로 울먹이고 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했다.
너도 다 알고 있구나.
알파가 재빨리 주위를 둘러보고서야 모두의 표정이 그때와 미세하게 다르다는 걸 깨달았다.
모두 미소를 짓고 있었는데, 그것은 홀가분한 미소였다.
조앤마저 알파에게 눈짓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얘들아…
…
지휘관이 반걸음 앞으로 다가서자, 작은 소동이 일어났다.
시작한다, 시작해. 누가 먼저 반지를 줄까?
…
알파는 시선을 거두고 더 이상 주위를 둘러보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었으니까.
맞은편에서 알파의 "대사"를 꺼내 들었다.
월면차… 운전했던 거?
알아…
알파는 무언가를 꿀꺽 삼키더니, 백여 쌍의 눈동자가 주시하는 가운데 이야기를 이어갔다.
우리 둘 다 기억하잖아. 내가 먼저 통신을 끄고… 네게 한마디했잖아. 지금 생각해도 여전히…
알파의 뺨이 옅게 붉어졌다.
그때 내가 딱 한 번만 말하겠다고 했지만, 내가 거짓말을 했어.
그 이후에도, 난 몇 번이나 그 말을 전하고 싶었어
북아프리카에서 잠 못 이루던 한밤중에도 하고 싶었고, 임무 출발 전에 장비를 점검할 때도 하고 싶었어. 네가 보낸 사진을 볼 때도, 남태평양의 일몰 사진이 별로였지만 그때도 말하고 싶었어
알파는 더 많은 말을 덧붙였다.
원으로 돌아갈 때 오토바이 타고 가다 너와 마주쳐서 차에 태웠을 때도 말하고 싶었고, 축제 때 코팅 파는 가게에서도 말하고 싶었어. 컨스텔레이션의 벼룩 시장에서 고양이 집 살 때도 말하고 싶었어.
계속… 말하고 싶었어.
루시아의 손이 등 뒤에서 천천히 나왔다.
알파가 이번에도 먼저 반지를 꺼냈고, 지휘관도 그 뒤를 따랐다.
반지를 든 두 손이 같은 높이에서 마주했다.
둘은 눈물이 차오른 눈으로 서로를 마주 보며 서 있었다.
[player name]… 파오스의 증명 아래.
알파는 새로운 증언을 덧붙였다. 그래야 이것이 영원히 철회할 수 없는 맹세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난… 너와 백년해로할 수 없어.
약속이라도 한 듯 머리 위에서 굉음이 울렸다. 돔이 갈라지고, 마지막 세계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너와 평생을 함께하지도 못할 거야.
맹세는 산산조각 난 돔보다 더 처참하게 마음을 찢어놓았다. 그러자 알파는 참지 못하고 변명하고 싶어졌다.
(하지만 넌 내게 가장 특별한 사람이야. 처음부터 끝까지 변함없었어.)
알파는 일말의 여지도 남기지 않았고, 아무 말도 덧붙이지 않았다.
인간의 이해와 포용은 언제나 한결같았고, 덕분에 알파도 마지막 부탁을 꺼낼 용기를 얻었다.
넌…
수천만 조각으로 부서진 유리가 끊임없이 쏟아져 내렸고, 조각 하나하나가 빛을 굴절시키며 둘의 얼굴을 비추었다.
영원히… 나랑 결혼하지 말아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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