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Reader / 메인 스토리 / 41 장로귀항 / Story

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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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23 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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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탄생은 언제나 몹시 고된 법이지. 새도 알을 깨고 나오려면 치열하게 몸부림쳐야 한다는 걸 알 거야. "</i>

<i>"한번 돌이켜 보며 스스로에게 물어봐. 이 길이 그렇게 험난하기만 했는지 말이야."</i>

<i>"아름다운 순간은 없고 오직 고난뿐이었어? "</i>

<i>"이보다 더 낫고 수월한 길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어?"</i>

<i>"험난했어." 난 꿈꾸는 듯 말했다. "정말 힘들었어. 내가 꿈꾸기 전까지는 그랬지."</i>

<i>"그래. 사람은 자신의 꿈을 찾아야만 해. 그 후론 길이 더 이상 험난하지 않게 되지."</i>

<i>"하지만 꿈은 영원하지 않아. 모든 꿈은 새로운 꿈으로 대체되거든."</i>

<i>"사람은 어떤 꿈도 영원히 붙잡아 둘 수 없어."</i>

<i>…</i>

<i>"당신의 꿈이 여전히 당신의 운명인 한, 당신이 계속 그 꿈에 충실하기만 하다면." 그녀는 엄숙하게 동의했다.</i>

<i>…</i>

<i>"네 운명은 널 사랑해. 네가 계속 그 운명에 충실하기만 하다면, 언젠간 온전히 너의 것이 될 거야. 네가 꿈속에서 보았던 것처럼."</i>

알파는 선발대의… 아니. 희생자들의 에워쌈 속에서 자신의 것이었던 「왕관」을 썼다.

"만약 사람의 일생이 자아를 찾는 과정이라면, 그녀의 일생은 운명의 시작을 찾아가는 이야기일 것이다."

죽은 자의 썩어 짓무른 살점과 기름기가 알파의 정수리로 떨어졌고, 점성이 묽은 선혈과 순환액은 얼굴 피부를 타고 흘러내려 눈구멍을 지나 광대뼈를 따라 계속 흘러내렸다.

마침내 턱끝에 맺힌 그것은 썩어 문드러진 눈물 한 방울로 변했다.

알파는 손을 들어 턱을 거칠게 닦아내며, 피비린내와 썩은 내가 나는 눈물을 전부 훔쳐내 버렸다.

알파는 다시 몸을 일으켰고, 바닥을 기어다니는 "고향을 잃은 자"들이 다리를 할퀴어 수많은 상처를 내도록 내버려두었다.

몸이 너무 무거워.

망자들을 짊어져야 하는 운명을 피할 수 없음을 깨달았기에, 새로운 왕은 짓눌리는 듯한 중압감을 느낀 것이리라.

그럼에도 알파는 먼저 행동에 나서, 아직 구할 수 있는 이들을 빛이 있는 곳으로 밀어 보내야만 했다.

알파가 안개 지역을 향해 손을 뻗자, 의식의 바다에서 이 안개를 이해할 기회가 생겼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먼저 질문을 던져, 우주가 내게 답하게 만들어야 해.

알파는 힘을 얻은 후, 증오를 가득 담은 위협적인 목소리로 우주를 향해 첫 번째 질문을 던졌다.

「왕관」, 세피라, 그게 대체 뭐지?

지금의 내가 어떻게 하면 모두를 행복한 세계로 돌려보낼 수 있는 걸까?

알파의 목소리가 안개 지역을 뒤덮었다. 이는 명령이었으며, 새로운 왕을 홀대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안개가 이에 응답하듯 빠르게 소용돌이쳤고, 전면적인 해석을 거친 뒤 정보에 닿을 수 있고, 이해할 수 있으며, 심지어 뒤바꿀 수도 있는 것으로 변했다. 이것이 바로 「왕관」의 힘이었다.

알파가 손가락을 뻗어 키메라처럼 안개 속에 균열을 내자, "고향을 잃은 자" 하나가 떨어져 나와 영문도 모른 채 발버둥 쳤다.

알파는 손가락 관절을 굽혔다. "고향을 잃은 자"가 분한 듯 손가락에 미세한 상처를 냈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놈을 다시 튕겨냈다.

일단 돌아가. 넌 내 질문에 대답하기엔 부족해.

내가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형태가 필요해. 이왕이면 "사람"이 와서 잘 설명해 주면 좋겠는데.

알파는 존재했던 모든 생명체를 훑어보며 새하얀 공백 속에서 적합한 해설자를 찾았고, 마침내 하나를 지목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해골이었다. 구조체의 생체공학 피부는 검게 타버렸고, 금속 팔다리는 뜯겨 나간 상태였다. 파오스를 수호하다가 전사한 여성 구조체였다.

알파의 요구에 따라, 이 해골은 안개 지역에서 다시 조립되며 형상을 갖추기 시작했고, 이내 본래의 거만한 모습을 되찾았다.

어머, 나야?

난 "선발대"에서 줄곧 날로 먹었는데, 내가 뭘 알겠어.

멀쩡하고 아름다운 카산드라는 왼손에 연꽃 한 송이를 쥔 채 무엇을 하느라 바쁜지 몰라도, 오른손으로 과장되게 자기 얼굴을 가리켰다.

시점이 휙 당겨졌다. 그리고 알파가 무릎을 세우고 카산드라 곁에 앉아 있었다.

이 미덥지 않은 어른 앞에서 알파는 오히려 조금 안도감을 느꼈다.

난 네가 익숙하다고 느껴지거든. 난 적어도 두 세계에서… 네 도움을 받은 적이 있을 거야.

적어도 두 개의 세계에서? 아~ 나도 생각났어.

카산드라는 조금 불안한 듯 자신의 다리를 만지작거렸다. 어느 세계에선가 퍼니싱에 침식된 강철 거인에게 두 다리가 비틀려 뜯겨 나갔던 고통이 떠오를 때마다 카산드라는 불안해졌다.

어느 세계에서 너희들의 허울뿐인 이사장 노릇을 한 거 말고도, 다른 세계의… 어떤 사원에서 우리 본 적 있지 않아?

한 번 스쳐 지나간 인연인데도 기억해 낸 거야? 이번엔 "파오스 비밀 이사장" 노릇을 꽤 철저하게 숨겼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사원에서 수양한답시고 귀부인 꽃꽂이 수업을 듣느라 바쁠 때, 다른 구조체들은 훈련하느라 바빴지. 주지 늙은이한테 개처럼 혼나면서도 버티다니, 진짜 바보들이 따로 없다니까.

네가 제일 악바리였어. 매일 칼 휘두르느라 정신없었지. 그래서 뒷산으로 갈 때마다 바닥에 뻗어 있는 널 보고 매번 깜짝 놀라서 한가로운 수양을 다 망쳐놨잖아.

그땐 네가 운명에 얽매이지 않을 줄 알았는데, 결국 내 도움이 필요하게 됐네.

알파가 꽃꽂이 예술에 쓰이는 오아시스에 칼을 푹 꽂았다.

개학 연설 같은 잔소리는 좀 그만할래?

카산드라가 머리를 긁적였다.

알았어. 그럼, 우리 둘 다 익숙한 사원에 빗대어 설명해 줄까? 조금… 온화하게?

카산드라는 자신만큼이나 과장되고 촌스러운 연꽃을 눈앞의 오아시스에 꽂았고, 그 연꽃은 알파의 태도와 나란히 놓였다.

꽃가지가 꽂힌 다음 순간, 오아시스 중앙에서 무수한 빛의 가지들이 뻗어 나와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하얀 안개가 여전히 주변을 감싸고 있었지만, 극정 사원의 자그마한 세상은 이미 만들어져 있었다.

카산드라가 둘의 무릎 아래, 가지 중심을 가리켰다.

시작할까? 우리가 있는 곳을 "나무뿌리"라고 생각하고, 고개를 들어 앞을 봐.

알파가 앞을 바라보자, 빛나는 경로들이 희미하게 수많은 "나뭇가지"와 "열매"를 이루고 있었고, "열매" 위로는 수많은 환영이 아른거렸다.

이게 바로 문명 진화의 최종 형태야. 적어도 기존 문명들에선 이게 끝이지.

나뭇가지와 나무 열매… 경로와 세피라… 여전히 이해하기 어려운데.

맙소사, 여전히 바보구나. 어쩌다 네가 선택된 거지? 진짜 평범한 꼬맹이에 불과한 거야?

됐어. 차라리 직접 앞으로 걸어가 봐. 그냥 나무뿌리에 앉아 관찰하는 것보다 훨씬 명확할 거야.

카산드라에게 떠밀려 일어난 알파는 조심스레 한 걸음 앞으로 내디뎠다.

내 태도…

행복한 여정엔 길을 열어줄 태도가 필요 없잖아. 당분간 우리가 보관할게.

두려워할 필요 없어, 모두가 여기 있으니까.

챙.

알파의 발끝이 어떤 가지에 닿자, 빛이 그녀의 척추를 타고 위로 번지며 눈앞의 광경이 변하기 시작했다.

네가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들로 이 체계를 설명해 줄 거야. 이게 가장 간단하고 네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일 테니까.

계속 앞으로 걸어가 봐. 결승점에 닿으면… 그리고 원점으로 돌아오면 알게 될 거야.

이건…

눈앞에 다 부서진 계단이 나타났다. 주변 환경으로 보아 꽤 오래 방치된 연구소 같았다.

알파는 멀지 않은 곳에서 사람이 내는 것 같기도 하고, 괴물이 내뱉는 헛소리 같기도 한 "쉬익쉬익" 소리를 들었다.

카오스 오염.

왜 하필 이 세계인 거지? 그것도 모두가 긴 항해를 떠난 이후라니.

네가 처음 바랐던 게 뭔지, 스스로 물어봐야 하니까.

미간을 찌푸린 알파가 손을 뻗어 계단과 이어진 큰 문의 손잡이를 눌렀다.

???

열지 마요.

문 뒤에서 고양이처럼 가냘픈 목소리가 흘러나왔고, 문을 미는 동작에 자그마한 저항력이 느껴졌다.

???

괜찮아요. 무섭지 않아요. 저는 아주 용감하니까요. 코드네임 "알파"라는 작은 영웅은 어떤 것도 두렵지 않아요.

문 뒤에 있는 꼬마 아이는 망상과 자기 위안을 통해 가엾을 정도로 알량한 "행복"을 긁어모으고 있었다.

알파는 일단 손을 놓았다.

그녀는 다시 계단을 살피며 두 층을 내려가, 낮은 벽 근처에서 작은 영웅이 한 발 한 발 밀려난 흔적을 발견했다. 그것은 암적색 펜 자국이었다.

알파는 그 글들을 읽으며 천천히 위로 올라갔다.

다시 한 층 위로 이동했다.

"리올라"의 이름을 잘못 썼네.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어 잘못 쓴 단어를 쓰다듬자, 크레파스 자국이 알파의 손가락을 따라 벽면에서 떨어져 나왔다.

알파는 틀린 이름을 집어 들고 한참을 응시하다가 자신의 가슴속에 품었다.

알파는 계속 위로 걸어가며, 천진난만하면서도 아쉬움이 남는 크레파스 자국들을 하나씩 거두어들였다.

카오스 바이러스에 오염된 괴물은 이 건물 맨 아래층에서부터 기어 올라왔고, 꼬마 영웅은 한 층 한 층 위로 거처를 옮기다 결국 꼭대기 층에 다다른 것이었다.

마지막 흔적까지 모두 모은 알파는 다시 그 문 앞으로 돌아왔다.

문안에서 꼬마 영웅의 힘없는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

괴물이 결국 저를 찾아낸 거네요, 맞죠?

아니. 내가 먼저 널 찾았어.

문을 가볍게 몇 번 두드리는 알파의 모습은 매일 아침 그녀를 깨우러 오시던 어머니처럼 다정했다.

???

누구세요?

난… 별로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야. 그냥 네가 뭘 원하는지 묻고 싶었을 뿐이야.

???

제가 원하는 건 다 봤을 테고, 그쪽이 다 치워줬잖아요.

앳된 목소리였지만, 표현은 놀랍도록 명확했다.

???

저는 아빠, 엄마, 동생이 보고 싶고, 리올라 언니를 포함한 모두가 보고 싶어요, 바보 개구리도 갖고 싶어요.

모두가 저의 귀결점인데, 그들이 없으면 저는 집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잖아요.

목소리가 알파의 귓가를 맴돌았다.

???

그쪽도 저랑 똑같지 않나요?

"루시아의 행복은 귀결점을 지키는 것", 설마 벌써 잊어버린 거예요?

아니면 그 갈망을 잃어버리기라도 한 건가요?

숙명에 맞서 싸우는 길을 너무 멀리 걸어오느라, 정말로 이런 것들을 잃어버렸나 봐.

???

그럼, 지금이라도 기회가 있어요.

굳게 닫혀 있던 방화문 너머로 "딸깍"하는 소리가 나더니, 문틈이 살짝 벌어졌다.

흑발의 여자아이가 겁먹은 목소리로 "중요하지 않은 사람"에게 부탁했다.

저 괴물들을 물리쳐 줄 수 있나요? 부탁할게요, 네?

당신의 도움을 받아서 출발해야 해요.

저는 영웅 알파예요. 저한텐 바보 개구리도 있고, 어른이 준 검도 있어요. 그러니 저는… 반드시 임무를 완수할 거예요.

너 같은 꼬맹이가 어떻게 임무를 완수하겠다는 거야?

「왕관」 세피라를 찾아서 다음 세계로… 전달해야 해요.

아이는 작은 검을 꼭 쥔 채,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어른들이 끝내지 못한 임무를 완수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다시 찾으러 갈래요.

다른 세계로 가서 엄마 뱃속에서 다시 태어나, 또다시 엄마의 아이가 될 거예요.

매일 아빠 엄마랑 같이 아침저녁을 먹고, 배우고 싶은 건 뭐든 다 배울 거라고요.

바보 개구리 인형을 갖고 싶다고 할 거고, 여동생도 있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싶어요.

그다음에는…

문틈이 점점 더 크게 벌어졌고, 영웅 알파의 눈빛은 점차 단호해졌으며, 말투 역시 갈수록 힘이 넘쳤다.

다양한 지식을 배우고, 무한한 가능성을 탐구하다가, 마지막에는… 전사가 될 거예요. 리올라 언니 일행과 같은 전사 말이에요.

어쨌든, 저를 사랑하는 모든 것을 사랑하며 용감하게 헌신할 거예요.

마지막 말을 마치며, 영웅 알파가 작은 검을 치켜들었다.

이건 저로부터 시작된 이야기예요. 제가 바로 출발점이라고요.

알파는 반짝이는 그 두 눈과 마주 보며 한참을 침묵하다가, 이내 모든 것을 이해했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이게 바로 네가 운명의 시작부터 줄곧 쫓고 있던 행복이야?

맞아요.

루시아가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파도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널 위해 카오스 오염물질을 제거하고, 장애물을 치워줄게.

알파가 몸을 숙여, 기원을 향해 문을 열어주었다.

하지만, 이 세계는 이미 무너지기 시작했어. 그러니 빨리 달려야 해, 루시아.

알파는 약속대로 파오스 연구소에 몰려든 카오스 오염물질을 말끔히 치워냈다.

그리고 기원의 루시아가 문밖으로 기어 나와 「왕관」을 안고 안개 지역을 지나, "꿈을 건너는 다리"에서 뛰어내릴 준비를 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뛰어내리기 전, 루시아가 고개를 돌려 알파를 쳐다보았다.

어서 출발해, 용감한 "알파".

하지만 루시아는 장비를 모두 한 손에 몰아 쥐고, 비어 있는 다른 손을 알파를 향해 힘껏 뻗었다.

안개 지역이 이미 퍼져나가 루시아의 머리카락을 휩쓸며 하얗게 침식시키고 있었다.

알파는 점점 리올라의 이야기 속 우주를 밝히는 꼬마 영웅 알파와 환상 속 겁 없는 자기 자신을 닮아가고 있었다.

같이 가요! 당신을 두고 가고 싶지 않아요. "별로 중요하지 않은 사람"… 당신도 저와 함께 갔으면 좋겠어요!

네 초대를 받을 이유가 없어. 난 이미 이 세계 밖에 머무르고 있을 테니까…

너무 외롭고 길을 잃은 것처럼 보여서 그래요.

가서 저와 같이 행복을 느껴봐요. 그럼 당신이 뭘 해야 할지 알게 될 거예요.

루시아는 알파의 손목을 꽉 붙잡고, 애써 미소를 지어 보였다.

당신의 자아는, 언제나 당신과 함께하고 있어요.

루시아가 운명의 시작점을 찾아냈다.

마침내 자아와 하나가 된 알파는 모든 세계의 윤회 속으로 뛰어들었다.

가장 먼저 어머니의 자궁으로 돌아가 다시 태어났다.

자신의 포동포동한 손, 요람 머리맡에서 딸랑거리는 풍령, 베개맡의 바보 개구리 인형을 보았고, 부모님의 웃음소리도 들었다.

카산드라가 말했던 "꿈에 그리던 행복"이 무엇인지 점차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잠깐,

카산드라가… 누구였더라?

무의식중에 발걸음을 옮겨, 나무뿌리에서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한 걸음, 두 걸음, [왕국]에서 [기본]으로, 다시 [자비], [아름다움]을 지나…

운명의 나무 위를 걷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은 채, 점차 눈앞의 풍경에만 집중하게 되었다. 어머니의 자애로운 미소가 얼마나 소중한지 보라.

피를 나눈 혈육이 한 명 더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를.

루시아?

야, 아, 무무… 무…

무무… 동생.

어머니

그래. 루시아에게 여동생이 생길 거란다.

꿈꾸던 학교에 들어간다는 건 또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여명 Ⅲ호" 발사장에서 루시아는 왁자지껄한 청춘의 활기 속으로 빠져들었다.

아델라이드. 학번 004. 동기로서 이 학교의 명예와 질서를 지켜야 할 의무가 있어.

004? 하, 고작 4등 주제에 기세는 엄청나네?

미안해. 미안해. 내가 너무 급해서 제대로 보지 못했어. 괜찮아?

난 루시아라고 해.

사랑하는 이의 이상을 존중하고 지켜준다는 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평온한 오후, 파오스 군사 지휘 학교 졸업식이 끝나고 갑자기 루나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뭐? 록? 밴드?

동생을 마주할 때면 가끔 웃지 못할 소소한 사건이 벌어지곤 했다.

루나

응. 우리 음악 축제가 시작하기 전에 밴드 이름을 골목 벽에 쫙 도배할 계획이야. 그럼, 효과가 엄청날걸.

근데 그 결과는… 경찰에서 엄마한테 당장 보호자가 와서 서명하라고 연락이 왔잖아.

루나

엄마한테 또 일렀네! 우리 아빠 관할 구역 아닌데, 아직 아빠는 모르는 거지?

내가 거기서 가까우니까 갈게. 먼저 말해봐, 그 "모임"에 누구누구 있어? 다들 잡혀 들어간 거야?

루나

나랑 롤랑, 라미아. 그리고 임시로 들어온 애가 둘 있는데, 걔네는 이번 일이 터졌으니 도망칠 거야.

그래서 언니, 우리 음악 축제에 새로운 베이시스트가 필요해. 완전 급해.

나도 껴야 하는 거니?

루나

맞아.

언니가 최전선으로 발령 날 때까지 아직 3개월이나 남았잖아. 설마 그동안 주둔지에 박혀 있을 건 아니지?

언니의 그 "절친"이랑 같이?

루나는 일부러 말끝을 길게 늘였다.

알았어, 알았어, 루나. 내가 갈 테니까 아빠한텐 절대 말하지 마.

그리고…

루시아는 그 사람을 떠올리며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미소를 지었다.

아직 말 못 했는데, [player name]이(가) 지휘부로 가겠다고 결정했어. 앞으로도 우린 계속 함께할 거야.

세상의 온갖 행복을 지키기 위해 싸운다는 건 또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루시아는 전사가 되었다.

총으로 테러리스트의 무릎을 박살 내기도 했고, 아이가 건넨 꽃을 두 손으로 조심스레 보듬기도 했다.

가끔 몰래 주둔지로 돌아와, 전사의 좁은 생활 공간 안에서 할 수 있는 한 가장 큰 깜짝선물을 준비하기도 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생일을 여러 번 보냈다.

갈수록 동료가 많아졌고, 사람들과의 인연은 실처럼 가늘고 촘촘하게 루시아와 이 세계를 이어주어, 하나의 행복한 그물망을 엮어냈다.

수없이 많은 행복한 낮과 밤이 흘러, 마침내 충만한 어느 오후를 맞이했다.

루시아?

난 이제 아쉬운 게 하나도 없는 것 같아.

침대에 누워 눈을 감은 채, 곁에 있는 사람에게 말했다.

루시아?

너무 행복해서 눈물이 날 것 같아.

루시아?

하지만 난…

뜻밖의 그 말에 곁에 있던 사람도 멈칫했다.

루시아?

난 그 그물망, 그 줄기들을 자주 내려다보곤 해.

항상 작은 빈자리가 하나 있었던 것 같아.

그곳의 은빛 실타래가 끊어져 있고, 무언가를 안갯속에 잃어버린 게 보여.

곁에 있던 지휘관이 여전히 다정한 손길로 루시아?의 손을 꼭 쥐여주었다.

루시아?

그래야 할 것 같아.

난 이미 "더 높은" 시점에서 [완전한 행복]을 온전히 누려보았어.

숙명의 출발점과 처음 떠나기로 마음먹었을 때의 그 마음을 되찾은 거지.

그렇기 때문에 난 현실 어딘가에 분명 이런 루시아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 살면서 좌절도 겪고, 쓴맛 단맛 다 봤지만, 삶이 끝나는 순간에는 미련 없이 감탄할 수 있는 루시아를 남기고 싶어.

"내 인생은 충분히, 완전한 행복 속에 있었다."

사랑하는 [player name] , 나와 함께 이 일을 완성해 줄래?

대가로 "더 높은" 내가 모든 고통을 짊어지고, 당신은 영원히 안개 지역에 가라앉는 날 지켜봐야 해.

나와 함께, 이 진실한 행복을 단 한 하나의 루시아에게 온전히 맡겨줄래?

완벽하게 행복한 루시아 하나를 남기는걸… 도와줄래?

곁에 있던 지휘관은 루시아?에게 완벽한 긍정의 대답을 들려주었다.

죽음은 알파를 아쉬움 속에 허무로 돌려보냈다.

알파가 눈을 떠 보니, 어느새 「왕관」의 열매 위에 서 있었다. 카산드라도, 그 작은 공간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고, 오직 안개와…

그리고 갓 찍힌 양 발굽 자국이 한 줄 이어져 있었다.

알파는 그것을 따라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뎌, 나무 아래서 어린양을 찾아냈다.

작고 부드러우며 깨끗하고 연약한 양이 알파를 응시하고 있었다.

알파는 이 양이 [player name]이자, 희생양 키메라이고, 모든 희생자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알파와 어린 양은 나무 아래에서 약속대로 함께, 어느 세계에선가 흑발의 루시아가 탄생하기를 기다렸다.

마침내 웅크린 인간의 형상이 나무에서 나타났다. 몸엔 상처 하나 없는, 가장 온전한 모습이었다.

찾았다.

내가 유일하게 채워 넣어야 할 빈자리이자, 모든 우주를 통틀어 아직 행복해지지 못한 단 하나의 루시아를 찾았어.

루시아 가슴의 Ω 코어는 여전히 산산조각 나 잿빛으로 변해 있었다. 안개 지역에서 폭발이 루시아의 모든 생명력을 앗아간 탓이었다.

알파는 루시아 앞머리를 정리해 주며 깨끗한 이마를 드러냈다.

그리고 「왕관」은 이걸 고칠 수 있지.

알파가 루시아에게 얼굴을 가까이 가져가, 코끝과 코끝, 이마와 이마를 맞댔다.

엄마가 예전에 이렇게 해주셨잖아. 나도 배웠어.

알파가 「왕관」의 힘을 사용하기 시작하자 왼쪽 눈이 빛났다.

알고 보니 이 힘은 본래 우리 것이었어.

알파

루시아가 루나를 잃지 않고 니콜라를 따라가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건강하게 자라 긍정적이고 훌륭한 병사가 되고, 사랑하는 사람도 찾았겠지.

지휘부의 한자리를 꿰찼을지도 몰라.

알파

구조체로 개조되지도 않았고, 이전 그레이 레이븐 소대에 들어가지도 않았으며, 레븐쉬에게 이용당하지도 않아서 원한도 품지 않았겠지.

의식의 바다를 분할 당하지도, 실험체로 전락하지도 않았을 거야.

알파가 길게 숨을 내쉬었다.

알파

하지만 그레이 레이븐 소대의 루시아도 존재하지 않았겠지.

우주엔 보존의 법칙이 있는 법. 하나가 죽으면 하나가 사는 거니까. 마찬가지로 내가 다른 길을 택했다면, 그레이 레이븐 소대의 루시아도 없었을 거야.

하지만 난 어떻게 해서든, 행복한 나 자신을 남기고 싶어.

알파

단 하나의 세계만 남게 된다 해도, 나머지 모든 게 사라져 존재하지 않게 된다 해도.

내가 "꿈" 속의 건강하고 무사한 가족을 잃고, 평생을 함께할 반려자를 잃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지 못하며, 행복을 위해 싸울 수도 없게 되어… 망연자실한 채 길을 잃고 끊임없이 발버둥 쳐야만 한다고 해도.

알파는 망연자실했던 자신,

진홍빛 심연에 빠져 있거나

숙명의 새장에 갇혀 있던 자신을 떠올렸다.

알파

그렇다 해도… 기꺼이 받아들일 거야.

알파

넌 그렇게 멀리까지 도망치고, 그렇게 높이 기어 올라가서… 또 비슷한 "꿈" 속을 몇 번이고 헤매며 찾아다녔잖아. 결국 원했던 게 이거 아니었어?

네가 목숨을 걸고 「왕관」을 내게 전해준 것도, 다 이걸 위해서였잖아.

알파는 방금 「왕관」을 통해 보았던 그 따뜻하고 즐거웠던 "과거"들, 자신이 조금씩 포기해 왔던 그 이야기의 방향을 되새기듯 처음으로 다정하게 이마를 비볐다.

내가 우주에 있는 모든 부정적인 정보, 악의, 불행, 고통을… 전부 내 안으로 끌어모은다면 어떨까?

그럼, 넌 오롯이 행복으로만 둘러싸이겠지.

알파가 중얼거렸다.

그렇다면.

고난의 길은 내가 끝까지 걸을게.

미세한 빛의 점들이 "나무"의 가지를 타고 흘러, 눈을 감은 루시아의 손발에서 솟구쳐 심장으로 모여들었다.

한 군데가 복원될 때마다, 알파의 "선택받지 못한 가지"는 한 뼘씩 시들어 갔다.

하지만 희생하는 자는 이를 달게 여겼다.

하나의 비극이 거꾸로 흐르고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조금 있으면 우리는 돌아가게 될 거야. 안개 지역에서 다시 키메라를 마주하게 될 테니, 넌 다른 사람들을 지키겠다고 Ω 코어를 폭발시킬 필요는 없어.

네가 한 말 잊지 마. "우리는 똑같아. 너에게 선택권이 주어졌더라도 이렇게 했을 거야."라고 했지.

알파는 지금 과거, 현재, 미래를 아우르고 다른 세계선까지 가로지를 수 있는 시야를 갖게 되었기에, 가장 막강한 선택권을 쥐고 있었다.

루시아의 속눈썹이 떨고 있었고, 마치 이 독단적인 선택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만 같았다.

걱정하지 마. 그리고 슬퍼하지도 마.

지금 당장은 멀어지는 것 같겠지만, 난 세계가 하나의 둥근 원이라고 믿어. 그러니 각자의 운명 또한 하나의 원이지.

언젠가 우리는 서로 다른 길의 끝에서 다시 만나, 함께 같은 길을 걷게 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