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교 기념일·연회장
2160년 6월 20일
파오스 군사 지휘 학교
오늘 저녁 만찬은 학원 강당에서 열렸다. 카산드라는 2년 전 연합 정부의 예산 협상에서 "승리"한 후, 억지로 천장을 별하늘 돔으로 바꿨다.
돔 전체는 하나의 완전한 아치형 투영 스크린으로, 궤도 천문대의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수신하여 진짜 별하늘을 머리 위에 투사할 수 있었다.
오늘 밤의 투영은 유난히 선명해 은하수가 돔의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 펼쳐져 있었고, 자세히 보면 목성의 갈릴레이 위성 네 개까지 구별할 수 있을 정도였다.
하하하, 봤지? 이게 바로 내가 처음에 말했던 별하늘 돔이야!
연합 정부 녀석들은 "불필요"하다느니, "예산 낭비"라느니, "군사 시설 표준에 맞지 않는다"라느니 떠들어 댔지만, 내가 그 녀석들에게 너희가 뭘 아냐고 쏘아붙였지. 이 학생들이 참호 같은 학교 건물에 몇 년이나 틀어박혀 있었는데, 별빛 아래에서 밥 한 끼 먹게 해주는 게 대수야?
그래서 내가 어떻게 따냈는지 알아?
도미니카를 협박하시고, 17번이나 연속으로 민원을 넣으셨죠, 이사님.
돈 많은 부자가 민원을 넣을 리가 있나? 그런 건 논리 정연하게 따졌다고 하는 거야.
카산드라는 긴 머리를 찰랑거렸다. 카산드라의 손가락 관절에는 오늘 특별히 작은 전구들을 한 바퀴 달아놓았는데, 반짝반짝 빛나며 머리 위의 별하늘과 아득하게 어우러지고 있었다.
아무튼, 오늘 밤은 다들 맘껏 즐기라고, 개교 기념일이잖아!
연회 음악이 울려 퍼질 때, 강당은 이미 만석이었다.
1기생뿐만 아니라 각 기수의 졸업생 대표, 교관, 연구원, 심지어 이사회의 엔지니어들까지 초대받았다. 긴 식탁 위에는 하얀 식탁보가 깔려 있었고, 별하늘 돔의 은은한 빛 아래 식기들이 반짝이며 먹음직스러운 음식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하지만 모두의 시선은 때때로 홀 중앙의 두 자리를 향해 쏠리곤 했다.
…
루시아는 학교에서 선물한 예복을 입고 있었다. 깔끔하게 재단된 반듯한 어깨선과 가슴에는 자그마한 파오스 군사 지휘 학교 휘장이 달려 있었다. 루시아는 이런 정장을 입어본 적이 거의 없어서, 의자에 앉아 있을 때면 자신도 모르게 소맷자락을 끌어당기곤 했다.
[player name]은(는) 그녀 옆에 앉아 있었고, 같은 스타일의 예복을 입고 있었지만 색상은 조금 더 진했다.
조앤이 맞은편에서 몸을 숙여 입을 가리고 작게 말했다.
루시아, 예복 옷깃이 비뚤어졌어.
안 비뚤어졌어.
비뚤어졌다니까, 왼쪽으로 조금 치우쳤어.
원래 디자인이 그래. 안 비뚤어졌다고…
이때, [player name]이(가) 손을 뻗어 루시아의 옷깃을 바로잡아 주었다.
…
루시아는 고개를 살짝 돌렸지만 피하지는 않았다.
헤헤.
왜 웃어?
아니야 아니야, 아무것도 아니야!
오필리아가 와인 잔을 들고 무리 속을 헤치며 다가와 조앤 옆에 앉았다. 오필리아는 오늘 교복 치마를 다시 입고 긴 머리를 자연스럽게 풀고 있었는데, 실험실에서 늘 포니테일을 하고 허리에 손을 얹고 있던 모습과는 전혀 딴판이었다.
됐어. 좀 그만 쳐다봐. 네 눈빛이 꼭 도촬하는 파파라치 같다고.
도촬 안 했거든! 난 그냥… 본 것뿐이야.
뭘 보는 거야?
하지만 오늘은 다르잖아! 오늘은…
쉿.
오필리아는 잔으로 입을 가린 채 주위를 한 바퀴 훑어보며, 루시아와 [player name]이(가) 이쪽을 신경 쓰지 않는 것을 확인했다.
알아. 다 준비해 뒀어.
그러니까 진짜로… 둘 다…?
맙소사, 그럼 설마…
입 닥쳐. 들키면 서프라이즈를 망치는 거라고.
조앤은 필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양손으로 입을 틀어막았지만, 눈은 이미 초승달처럼 휘어져 있었다.
그나저나, 오늘 밤 도미니카 선생님이 첫 번째 점화 실험을 하신다던데, 너희 실험실은 알고 있었지?
영점 에너지 원자로 말이야? 알지. 하지만 난 안 갈 거야. 여기가 실험실보다 훨씬 재밌지 않냐?
실험은 영원히 끝나지 않겠지만, 절친은… 볼 수 있을 때 많이 봐 둬야 하잖아.
아델라이드는 현재 맡고 있는 젊은 재학생 몇 명과 함께 구석 자리에 앉아 있었다.
오필리아가 술잔을 들고 다가갔다.
왜 이렇게 멀리 앉아 있어?
내가 맡은 학생들이 이쪽에 있으니까.
학생끼리 알아서 앉게 내버려둬.
교관은 학생들과 함께 있어야 해.
오늘은 교관이 아니잖아. 오늘은 개교 기념일이야. 그리고 넌 동문이라고.
오필리아는 아델라이드 옆에 앉으며 또 다른 잔을 아델라이드 앞으로 밀어주었다.
…
한잔해.
난 안…
왜? 승진해서 우릴 무시하는 거야?
아델라이드는 술잔을 쳐다보다가, 다시 오필리아를 바라보았다.
딱 한 잔만이야.
아델라이드가 고개를 젖혀 단숨에 술을 들이켰고, 오필리아는 시선을 내려 외골격을 착용한 그녀의 오른쪽 다리를 힐끗 보았다.
요즘도 아파?
아프지는 않아. 그냥 날씨가 변할 때 살짝 시큰거릴 뿐이야.
참 가볍게도 말하네.
진짜 심각하진 않으니까.
700미터 상공에서 추락했는데 심각하지 않다고?
임무를 완수했고, 인질도 전원 무사히 구출했어.
…
오필리아는 술을 크게 한 모금 마시고는 탁자 위에 잔을 세게 내려놓았다.
너 진짜 짜증 나는 거 알아?
알아. 여러 번 말했잖아.
앞으론 그런 짓 하지 마. 다들 걱정하니까.
아델라이드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델·라·이·드.
조심할게…
오필리아는 그 말이 장담은 못한다는 뜻임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싸우고 싶지 않았다.
만찬 분위기는 아주 좋았다. 아마도 오늘 밤 모두가 암묵적으로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기에, 평소 가장 진지하던 이들조차 한결 편안한 기색을 띠고 있었다.
술잔이 오가는 가운데, 누군가는 지난 2년간의 경험을 이야기했고, 누군가는 저학년 후배들에게 과거의 무용담을 늘어놓았으며, 누군가는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옛 동창과 건배하기 위해 홀을 반 바퀴나 돌아오기도 했다.
루시아와 [player name]은(는) 긴 식탁 중앙의 우수 졸업생 대표 자리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예복은 구김 하나 없었고, 학교 휘장은 돔의 별빛 아래에서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루시아는 음식을 거의 먹지 않고, 줄곧 [player name]이(가) 옆 사람들과 나누는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가끔 말을 거들기도 하고, 그저 듣기만 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루시아는 오른손을 탁자 아래에 둔 채, 이따금 무의식적으로 예복 안주머니 속 무언가를 만지작거렸다.
[player name]의 왼손 역시 같은 동작을 반복하고 있었다. 둘 다 상대방이 자신과 똑같은 행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하지만 이를 눈치챈 조앤은 둘 다 적절한 타이밍을 기다리고 있는 듯하다고 느꼈다.
후…
그래서 조앤은 심호흡한 뒤 단말기를 꼭 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러분! 잠시 주목해 주세요!
홀 안의 왁자지껄한 소리가 점차 잦아들었다.
바로 어젯밤, 실험실에서 연락받았습니다.
조앤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왕관」 세피라의 3단계 해석이 드디어 통과되었습니다.
홀 안은 돔 투영의 윙윙거리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고요해졌다.
수년간의 기술적 시행착오 끝에, 우리는 마침내 적합성 기준을 실행할 수 있는 범위까지 낮추는 데 성공했습니다.
게슈탈트가 이미 전 세계 규모의 적합성 스캔을 완료했습니다.
조앤이 루시아와 [player name]을(를) 바라보았다.
전 세계의 적합 인구 중 오직 두 사람의 의식 구조만이 「왕관」 세피라에 완벽하게 적응할 수 있었다.
바로 루시아와 [player name]입니다.
홀 안이 엄청나게 술렁였다. 누군가는 환호성을 질렀고, 누군가는 손뼉을 쳤으며, 누군가는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했으면서도 덩달아 흥분했다.
루시아는 [player name]을(를)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조앤이 단말기를 돌려 보여주자, 스크린에는 중력장 간섭 모델의 개념도가 나타났다.
「왕관」이 성공적으로 가동된다면, 인간은 국부 공간의 중력장에 직접 간섭할 수 있게 됩니다. 간단히 말해… 공간을 접을 수 있게 된다는 거죠.
은하계 탐색이 더 이상 제한받지 않고, 인간은 프록시마 센타우리, 시리우스… 나아가 훨씬 더 먼 곳까지 갈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과거에 간섭하여, 역사를 더 아름다운 미래로 이끌 수도 있을지 모릅니다.
조앤의 목소리가 점점 고조되었다.
16년 전, 도미니카 선생님께서 그 우주 신호를 수신하셨을 때 이미 이 길을 내다보셨죠. 수많은 세월 동안 수많은 이들의 피와 땀을 쏟아부어…
마침내 여기까지 도달했습니다.
조앤은 눈시울이 붉어졌지만 환하게 웃고 있었다.
루시아, [player name].
두 사람은 인간 역사상 최초로… 진정으로 별에 닿는 사람들이 될지도 모른다는 겁니다.
다시 한번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고, 이번에는 훨씬 더 컸다.
루시아는 이 모든 것을 조용히 듣고 나서 고개를 들었다.
밤하늘 돔 위로 은하수가 정중앙을 가로지르고 있었고, 별 하나하나가 고요히 빛나고 있었다. 그 빛들은 수백, 수천, 수만 광년을 거쳐 이곳에 도달한 것이었고, 이제 조앤은 루시아에게 언젠가 그 빛의 근원을 직접 만지게 될지도 모른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녀는 오랫동안 바라보았고, [player name]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은 나란히 머리를 젖히고, 별빛이
루시아가 문득 손을 뻗어 손끝으로 [player name]의 손등을 살짝 건드렸다.
변한 게 하나도 없네.
입학하던 날 우리는 여명 Ⅲ호를 올려다봤는데, 지금은 또 별을 올려다보고 있잖아.
고개를 돌려 [player name]을(를) 바라보는 루시아의 눈빛이 단호했다. 마침내 결심을 굳힌 듯했다.
[player name] , 너한테 할 말이 있어.
그리고 거의 같은 순간, [player name] 역시 입을 열었다.
…
둘은 동시에 멍해졌다.
그럼… 네가 먼저 말해.
먼저 말하라니까.
곧이어 둘은 동시에 예복 안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낸 뒤 각자 등 뒤로 숨겼다.
달에서 있었던 일을 기억해?
바보야, 그거 말고.
수백 쌍의 눈이
아니. 그건 지구 빛이 반사돼서 그런 거야.
루시아는 지휘관을 바라보며 입술을 달싹이다가 다시 꾹 다물었다.
그때 내가 그랬었지, 딱 한 번만 말하겠다고.
내가 거짓말을 했어.
그 이후에도, 난 몇 번이나 그 말을 전하고 싶었어
북아프리카에서 잠 못 이루던 한밤중에도 하고 싶었고, 임무 출발 전에 장비를 점검할 때도 하고 싶었어. 네가 보낸 사진을 볼 때도, 남태평양의 일몰 사진이 별로였지만 그때도 말하고 싶었어
딱 한 번만 말하겠다고 했으니까.
그래서 다른 방법을 생각해 냈어.
루시아의 손이 등 뒤에서 천천히 나왔다.
뭐라고?
마주 선 둘은 각자 정교한 선물 상자를 들고 있었다. 두 사람의 표정에는 놀라움이 서서히 무어라 형용하기 힘든 감정으로 번져갔다. 웃음이 나면서도 한숨이 나왔고, 무슨 말이든 하고 싶었지만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조앤은 거의 울 것 같았고, 오필리아는 웃음을 참느라 얼굴이 붉어졌으며, 아델라이드는 입꼬리가 살짝 움직였는데, 그녀 기준으로는 이미 크게 웃은 것이었다.
[player name] , 나와…
홀 안에서 누군가 박수를 치기 시작했고, 이내 더 많은 박수 소리가 이어졌다.
모두 입을 열고 환호성을 지를 준비를 했다.
하지만 그 경쾌한 웃음소리는 모두 목구멍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머리 위에서 굉음이 울렸다.
별하늘 돔이 중앙에서부터 갈라지기 시작하더니 균열이 맨눈으로 보일 만큼 빠른 속도로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거미줄처럼, 번개처럼 뻗어 나가는 균열 사이로 존재해서는 안 될 무언가가 비집고 들어오는 것 같았다.
흩어져!!
콰앙…
돔의 유리가 수천만 개의 조각으로 산산이 부서졌고, 유리 파편들은 불빛을 반사하며 거꾸로 내리는 눈보라처럼 눈부신 빛을 내뿜었다. 조명은 두 번 깜빡이더니 완전히 꺼졌다.
어둠과 함께 밀려온 것은 겹겹이 쌓인 기괴한 안개였다.
하얀 안개가 산산조각 난 돔의 틈새로 쏟아져 내리며 홀의 모든 문과 창문, 통풍관으로 밀려들었다.
이 안개는 질감과 무게가 있었고, 연기나 수증기 같지 않았다. 피부를 스칠 때는 차가운 비단 같았고, 부풀어 올라 테이블과 식기를 삼키고, 바닥의 모든 빛을 삼켰다.
비명 소리와 유리가 깨지는 소리, 모든 소리는 점점 짙어지는 하얀 안개에 삼켜지고 뒤틀려, 아득하게 멀어져 갔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조앤은 본능적으로 손을 뻗어 주변 사람을 잡으려 하자 오필리아의 옷소매에 손이 닿았다.
어서 뛰어! 조앤! 여긴 지금 무너지고 있어!!
불과 1초 전만 해도, 루시아와 [player name]은(는) 조앤에게서 세 걸음 떨어진 곳에 서서 각자 반지 케이스를 든 채 바보처럼 놀라면서도 기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루시아?
루시아!! [player name]!!
하얀 안개에 삼켜진 조앤의 목소리는 솜으로 만든 심연에 내던져진 것 같았다.
다들 침착해, 흩어지지 마.
홀 밖에서 더 많은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무언가가 땅속에서 솟아오르며 기어 나오는 듯했다. 강철이 뒤틀리는 비명과 정체 모를 전자기기가 내는 귀를 찢는 듯한 굉음이 뒤섞여 있었다.
윽!
조앤은 갑자기 손바닥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손을 들어 보니 꽉 쥐고 있던 단말기 화면에 핏빛의 기괴한 기호들이 요동치고 있었다. 그리고 기기 전체가 녹아내린 쇳덩이처럼 시뻘건 전류를 내뿜으며 장갑을 부식시키고 살갗을 파고들었다.
조앤은 즉시 단말기를 내던졌다.
아아아아아!!
옆에서 들려온 비명에 조앤이 고개를 돌렸다. 전술 고글을 쓴 학생 하나가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고글에서 붉은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황산처럼 학생의 눈과 코로 파고들어 살과 피를 부식시키고 있었다.
불과 몇 초 만에 학생의 머리는 핏물 웅덩이로 녹아내렸다.
!!!
지금 가지고 있는 전자기기를 전부 버려!! 어서!!
대체 어떻게 된 거야? 테러야?!
아니… 그건 아닌 것 같아…
강당 전체가 뼈대를 잃은 것처럼 굉음 속에서 위태롭게 흔들렸다. 조앤은 넋을 잃은 채 오필리아의 손에 이끌려 미친 듯이 밖으로 달려 나갔다.
조앤은 뒤쪽의 기괴한 참상을 돌아보다가, 갑자기 강렬한 예감이 밀려드는 것을 느꼈다.
영… 영점 에너지 원자로 때문이야!!
영점 에너지? 그게 무슨 소리야?
콰앙…
아델라이드는 바닥에서 부러진 금속 테이블 다리를 집어 들고, 무게를 저울질하며 손에 쥐었다.
관절 부위에서는 드러난 핏줄처럼 시뻘건 전류가 뿜어져 나왔다. 조종석의 유리 덮개가 산산조각 났고, 안에는 아무도 없었지만, 로봇들은 두 발로 일어섰다.
만… 만약 영점 에너지 원자로가 전기망에 연결된 순간 무언가가 전기망을 타고 퍼져 나갔다면, 그것 때문에 전자기기들이…
그만 말하고, 일단 피하자!
오른쪽 무릎이 희미하게 아팠지만, 발걸음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긴 테이블 다리는 풀리고, 의자 등받이의 강철관은 부러졌으며, 누군가는 식칼을 움켜쥐고, 누군가는 도자기 꽃병을 깨뜨려 바닥에서 가장 날카로운 조각만 남겼다.
전원 스마트 화기는 포기한다! 전자기기에는 절대 손대지 마!
가까운 인원끼리 3인 1조 임시 소대를 편성한다! 사용할 수 있는 무기는 모조리 확보해!
네!
강당 밖 복도에는 무기고가 없었지만, 파오스의 학생들에게는 필요 없었다.
긴 테이블의 다리는 비틀려 뜯겨 나갔고, 의자 등받이의 철제 파이프는 꺾여 부러졌다. 누군가는 식탁용 칼을 움켜쥐었고, 누군가는 도자기 화병을 깨뜨려 가장 날카로운 바닥 조각만을 손에 남겼다.
20초도 지나지 않아, 홀 안에 서 있던 사람들은 모두 무장을 마쳤다.
쓰러진 경비 로봇 쪽에 구형 수류탄이 몇 개 있다. 소대당 하나씩 챙기고, 함부로 사용하지 마.
각 소대, 내 뒤를 바짝 따라와! 프리즘 광장 쪽으로 후퇴한다!
알겠습니다!!
키에엑!!!
덤벼라, 괴물 자식!!
첫 번째 침식체가 측면 통로에서 기어 나와 학생 무리를 향해 돌진하자마자, 여섯 개의 강관이 일제히 놈을 향해 내리꽂혔다.
셋이 정면에서 적을 막고, 둘은 측면을 봉쇄하며, 하나는 후방을 주시했다. 이는 파오스 1학년 필수 기초 과목인 표준 6인 근접 제압 진형이었다.
이 녀석이 안 죽어요!
죽일 필요 없어! 골격을 박살 내서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어! 관절을 노려라!
두 번째 침식체 무리가 몰려왔을 때, 학생들은 이미 자발적으로 교대 엄호 후퇴 대형을 갖추고 있었다. 앞줄이 적을 막아내고 뒷줄이 상황을 주시하며, 열 걸음 물러날 때마다 다른 조가 교대로 앞으로 나서고, 부상자는 대열 한가운데로 끌어들였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르쳐 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학생들은 파오스에서 어떤 상황에서든 대처하는 법을 이미 배운 상태였다.
크아아!!!
윽!!
니아는 거대 침식체의 꼬리에 왼쪽 복부를 관통당하며 무너진 돌기둥에 등을 부딪쳤다.
니아가 다쳤어! 엄호해!! 으아아아!!
다른 학생이 철판을 치켜들고 달려들었으나, 침식체가 몸을 틀며 휘두른 쇠집게에 단숨에 왼쪽 다리가 잘려 나갔다.
윽! 날 두고… 먼저 가!!
쿨럭… 파오스는… 절대…
단 한 명도 버리지 않는다!!
다 같이 밀어붙여! 놈의 관절을 박살 내!!
!!!
강철 관절에서 작열하는 증기가 뿜어져 나와, 몰려든 학생 둘을 동시에 날려버렸다.
거대 침식체는 쇠집게를 높이 쳐들고는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 쓰러진 남학생을 향해 세차게 내리찍었다.
쾅… 쇠집게가 학생의 눈앞에서 멈췄다. 침식체가 뒤를 돌아보자, 돌기둥에 박힌 철꼬리를 니아가 사력을 다해 움켜쥐고 있어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쿨럭!!
니아는 피를 왈칵 토해내더니, 복부를 뚫고 들어온 철꼬리를 따라 피투성이가 된 몸을 밀며 조금씩 침식체의 몸통을 향해 다가갔다.
니아… 파오스 1기생, 374번!
니아는 허리춤에서 수류탄을 꺼내 피에 물든 이로 신관을 물어뜯었다.
내일을 위해!!
쾅…
그 폭음은 마치 고요한 수면에 돌멩이를 던진 것처럼 모든 사람의 귓가에 선명하게 꽂혔다.
그 소리는 전장에 있는 모든 이에게 자신의 허리춤에 무엇이 있는지, 그리고 자기 몸으로 아직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일깨워 주었다.
침식체들은 강철의 파도처럼 밀려왔다. 한 파도가 지나가면 곧바로 또 다른 파도가 뒤따랐고, 사방에서 들려오는 강철의 비명이 숨통을 옥죄어왔다.
두 번째 폭발음이 울렸다.
<size=40>1기생 하니프, 학번 264.</size>
<size=40>그는 침식체에게 오른팔을 잘렸지만 마지막 힘으로 신관을 제거하고,</size>
<size=40>주변의 두 침식체를 향해 돌진하며 함께 폭파시켰다.</size>
<size=40>세 번째, 1기생 비버, 학번 197.</size>
<size=40>네 번째, 2기생 시카, 학번 367.</size>
<size=40>…</size>
<size=40>수많은 수류탄 폭발음이 울려 퍼지며 혼란스러운 전장을 채웠다.</size>
<size=40>그들은 파오스가 가르쳐 준 모든 것, 그리고 자기 자신마저 바쳐 가며 전우들에게 단 하나뿐인 살길을 열어 주었다.</size>
일행이 1층까지 돌파했을 때, 대열은 이미 눈에 띄게 줄어들어 있었다.
1층 훈련 구역만 통과하면, 텅 빈 프리즘 광장으로 무사히 빠져나가 불리했던 실내전 상황을 타개할 수 있었다.
일행이 막 출발하려 할 때, 조앤은 남몰래 대열 맨 뒤로 빠져나가 혼자 반대 방향으로 향했다.
조앤! 어디로 가는 거야!
…
멈춰 선 조앤은 잠시 망설이다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왕관」이 아직 실험실에 있어. 그걸 가져와야 해.
미쳤어?! 밖엔 괴물들 천지라고!
만약 「왕관」마저 침식을 당한다면, 어떤 재앙이 벌어질지는 차치하더라도… 무려 16년에 걸친 모든 연구와 모두의 노력이 전부 물거품이 되고 말 거야.
그 안에 얼마나 많은 희생이 담겨 있는지… 오필리아, 대서양 경제 공동체에서 자란 네가 나보다 더 잘 알잖아.
난 반드시 그걸 루시아와 [player name]의 손에 전해야 해.
…
오필리아는 입을 열어 무언가 쏘아붙이려 했지만,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넌 모기 한 마리도 못 잡잖아. 내가 같이 가줄게.
오필리아는 오른쪽 어깨의 붕대를 단단히 조여 매고 심호흡을 한 뒤, 어둑한 후방을 향해 걸어갔다.
잠깐.
아델라이드?
아델라이드는 제자리에 서서 조앤과 오필리아를 한 번 훑어보고는, 곁에 선 부관을 바라보았다.
모두를 데리고 광장으로 가. 가서 본대와 합류해.
너희들은 어디로 가려고?
「왕관」이 아직 실험실에 있어.
셋은 너무 위험해. 우리도 같이 갈게.
아니, 너희들은 광장으로 가.
아델라이드…
「왕관」도, 너희도 포기할 수 없어. 실험실은 셋이면 충분해. 밖의 놈들은 우릴 기다려 주지 않으니, 광장으로 길을 뚫고 부상자들을 보호할 인력이 필요해.
아델라이드는 뒤에서 다친 동기들을 한 번 보고, 다시 부관을 바라보았다.
너는 지난 몇 년 동안 실전 경험을 나보다 더 많이 쌓았잖아. 모두를 데리고 이 건물을 돌파하는 건 충분히 해낼 수 있어.
그럼, 너희는?
우리가 가야 할 곳으로 갈 거야. 그건 너희도 마찬가지고.
부관이 잠시 침묵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살아서 돌아와야 해.
알았어. 반드시 그럴게.
부관이 몸을 돌려 대열을 향해 소리치자, 사람들은 진형을 가다듬고 훈련 구역을 향해 나아갔다.
오필리아는 아델라이드가 다가오는 것을 보며 쏘아붙일 말을 잔뜩 준비했지만, 결국 쯧 하고 혀를 찰 뿐이었다.
그 무릎으로 뛸 수는 있어?
문제없어.
쳇, 말은 참 그럴싸하게 하네.
조앤이 고개를 들어 눈앞에 선 두 전우를 보자 콧등이 시큰해졌다.
고마…
시간 낭비하지 마. 가자.
셋은 몸을 돌려 실험실로 향하는 복도를 향해 함께 달려 나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