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발하던 날, 천국의 다리 발사장은 입학 때보다 더 시끌벅적했다.
로켓 연료 주입 시스템은 최종 순환 점검을 진행 중이었고, 액체 산소 파이프에서는 쉬익하는 소리와 함께 흰 김이 새어 나왔다. 관람대는 처음으로 우주에 오르는 선배들을 배웅하려는 파오스 2기, 3기생들로 가득 차 있었다.
루시아와 [player name]은(는) 표준 항공 비행복을 입고 "장로 Ⅰ호" 탑승구로 향하는 탑승교 위에 섰다.
그들의 발밑에는 발사 플랫폼의 강철 격자가 깔려 있었고, 틈새로 수십 미터 아래 지면이 보였다. 바닥에서 불어온 바람에 옆에 있는 깃발이 펄럭였다.
조앤은 탑승교 반대편에 서 있었고, 그 너머는 보안 격리 구역이라 더 이상 들어갈 수 없었다.
루시아! [player name]! 달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나한테 연락해야 해!
조앤의 눈시울은 이미 붉어진 눈시울로 필사적으로 눈물을 참으며, 관절이 하얗게 질리도록 난간을 꽉 쥐고 있었다.
달은 통신 지연이 1.3초나 걸려.
1.3초든 뭐든 무조건 보내! 자주 연락해야 해!
응, 꼭 그럴게.
그리고 너희 비행복 안주머니에 작은 상자가 하나 있을 거야. 내가 몰래 넣은 간식이니까 가는 길에 먹어. 비행선 배급 식량은 엄청 맛없대. 내가 다 찾아봤어. 다른 사람한텐 비밀이야, 카산드라 이사님이 도와주셨거든!
고맙긴… 어차피 내가 더 도와줄 수 있는 것도 없는걸…
조앤은 말을 잇다 결국 눈물을 뚝뚝 흘렸다.
루시아는 조앤을 바라보며 잠시 침묵하더니, 몇 걸음 되돌아가 손을 뻗어 조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연구 열심히 하고, 우리 대신 파오스를 잘 지켜줘.
조앤은 울음을 삼키며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너희도!
우리 대신 달의 뒷면이 어떻게 생겼는지 잘 보고 와!
장로 Ⅰ호
발사 카운트다운
T-4분
루시아의 등은 가속 좌석에 바짝 밀착되었고, 5점식 안전벨트가 가슴을 조여 와 숨을 쉴 때마다 버클이 갈비뼈를 누르는 게 느껴졌다.
헬멧 안 통신 채널에서는 발사 지휘 센터의 카운트다운 소리가 메트로놈처럼 일정한 간격으로 울려 퍼졌다.
"장로 Ⅰ호" 유인 달 표면 운송선, 추진제 주입 완료. 발사 프로그램 자동 시퀀스로 전환합니다.
비행 요원 전원은 생명 유지 시스템 상태를 확인 바랍니다.
루시아가 고개를 숙여 확인해 보니, 가슴 앞 계기판의 심박수, 혈중 산소, 선실 압력 등 모든 수치가 정상 범위 내에서 유지되고 있었다.
심박수만 살짝 높은 편이었다.
루시아가 고개를 돌려보니, [player name]이(가) 오른쪽으로 50센티미터 떨어진 곳에 앉아 있었다. 똑같이 가속 좌석에 묶인 채 유백색 비행복을 입고 있었지만, 헬멧 너머의 표정은 잘 보이지 않았다.
아니.
고개를 숙여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니, 손이 정말 떨리고 있었다. 루시아는 주먹을 꽉 쥐고 허벅지 옆 고정 벨트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또 잔소리하는 거야?
T-2분. 메인 엔진 예비 점화 프로그램 가동합니다.
좌석 아래에서 낮게 윙윙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거대한 야수가 막 눈을 뜬 것처럼 비행선 전체의 골격이 공명했고, 그 진동이 꼬리의 엔진 분사구부터 그녀의 척추까지 전해졌다.
루시아는 문득 지상에서 여명 Ⅲ호가 시험 가동되던 소리를 떠올렸다. 그때 루시아는 수 킬로미터 떨어진 안전거리의 관람대에 서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루시아는 그 굉음의 진원지 바로 위에 앉아 있었다.
T-60초. 발사탑 지지 암을 분리합니다.
창밖 발사대의 지지 암이 서서히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금속 구조물이 손가락을 펴듯 양옆으로 벌어지며 새파란 하늘이 드러났다.
루시아는 이런 각도로 하늘을 본 적이 없었다. 반듯이 누운 채 내열 유리 너머로 창틀에 잘려 조그맣게 보이는 옥빛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것이 바로 루시아가 곧 뚫고 지나가야 할 곳이었다.
T-30초. 자동 비행 제어 시스템 인계, 모든 수동 명령어를 차단합니다.
윙윙거림은 진동으로 변했고, 선실 벽, 계기판, 안전벨트의 금속 버클, 헬멧 안의 숨소리까지 모두 같은 주파수로 공명하고 있었다.
루시아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뒤통수를 헤드레스트에 바짝 밀착시켰다.
T-10.
루시아의 손이 고정 벨트에서 빠져나와 오른쪽 팔걸이에 놓였다.
[player name]의 손이 바로 옆에 있었다.
5
…
4
3
루시아는 숨을 들이마시며 무의식적으로 옆으로 살짝 손을 뻗었다.
그러자 손끝과 손끝이 닿았다.
발사장 외곽 고가도로에는 흑 금색 승용차 한 대가 조용히 세워져 있었다.
카산드라는 차창에 기댄 채, 수행원도 담배도 없이 홀로 있었다.
카산드라는 [player name]과 루시아, 그리고 다른 파오스 학생 10명을 태운 발사대 위의 "장로 Ⅰ호" 로켓을 조용히 바라볼 뿐이었다.
손에 쥔 낡은 회중시계를 만지작거리며 뚜껑을 여닫기를 반복했다. 그에 따라 회중시계 뒷면의 흐릿한 사진이 햇빛에 반짝였다가 어두워지기를 거듭했다.
보렴, 니트.
카산드라의 입술이 달싹거렸고, 새어 나온 목소리는 아주 작았다.
인간의 아이들이 지금 출발한단다.
마지막 카운트다운이 하늘에 울려 퍼지자, 카산드라는 회중시계를 덮고 가슴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들은 반드시 찾을 거야, 네가 꿈꾸던 "해법"을.
천지를 뒤흔드는 굉음과 함께 불꽃이 뿜어져 나왔다.
기지 남측 에어록이 열리고, 달 표면에 내디딘 루시아의 첫걸음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부드러웠다".
아무도 밟지 않은 회색 밀가루 위를 걷는 것처럼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깊은 발자국이 남았고, 그 무늬는 지구에서 남기는 어떤 발자국보다 선명했다.
루시아는 쪼그려 앉아 장갑 낀 손으로 달 토양을 한 줌 쥐고는 헬멧 가까이 가져가 살펴보았다.
회색이네.
모르겠어, 루나는 아마 은색일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
루시아는 달 토양을 휴대용 채집 주머니에 담고 꼼꼼하게 밀봉했다.
첫 번째 샘플이야.
달 표면 임무의 첫 이틀은 통상적인 작업으로 채워졌다. 달 표면 기지 외곽의 통신 중계소를 점검하고 낡은 태양 에너지 패널 몇 개를 교체하며, 과학 이사회의 요청에 따라 지정된 구역의 달 토양 샘플을 채집하는 일이었다.
지루하고 반복적이지만, 모든 항목은 거의 집착에 가까운 정확도로 완료되어야 했다. 우주에는 "대충"이란 게 없었다. 어떤 느슨한 볼트라도, 다음 온도 변화 사이클에서 치명적인 누수점이 될 수 있다고, 수행 교관이 당부했다.
루시아는 아주 진지하게 임했다.
하지만 셋째 날 오후, 기지 외곽을 6표준시 동안 순찰한 후, 루시아는 교관들이 일제히 뒷목을 잡을 만한 일을 벌였다.
어서 타.
월면차는 분화구의 완만한 경사면에 멈춰 있었고, 네 바퀴는 달 토양에 파묻혀 있었다. 그리고 안테나에는 방금 점검하면서 떼어낸 낡은 패널이 걸려 있었다.
[player name]은(는) 한숨을 내쉬며 조수석 쪽으로 돌아가 자리에 앉았다.
지휘관이 안전벨트를 채우기도 전에 월면차가 튀어 나갔다.
달의 중력은 지구의 6분의 1밖에 되지 않았지만, 월면차의 모터 출력은 지구의 하중에 맞춰 설계되었다. 즉, 이곳에서는 엄청난 가속도가 붙는다는 뜻이었다.
바퀴가 달 토양을 거칠게 밟고 지나가며 회색 흙먼지가 아치형으로 치솟았다. 진공 상태에서 완벽한 포물선을 그리며 천천히 떠올랐다가 가라앉는 모습이 슬로 모션처럼 차 뒤로 길게 이어졌다.
하하!
루시아가 핸들을 오른쪽으로 끝까지 꺾자, 월면차는 분화구 내벽을 따라 비스듬히 기울며 커브를 돌았다. 지구였다면 영락없이 뒤집혔을 각도였다.
하지만 달의 저중력 덕분에 가볍게 튀어 올랐을 뿐, 안정적으로 경사면에 다시 착지했다.
괜찮아, 꽉 잡아.
루시아가 액셀을 끝까지 밟았다.
다음 순간, 월면차가 허공으로 솟구치며 운석 구덩이 가장자리를 훌쩍 뛰어넘었다. 네 바퀴가 동시에 땅에서 떨어졌고, 차체는 공중에서 호를 그리며 거대한 구덩이 반대편에 안정적으로 착지했다.
착지의 충격이 소리 없이 차체 전체에 전해졌다.
~!
통신 채널로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루시아는 문득 아빠의 오토바이를 몰래 탔던 날이 떠올랐다.
다만, 이번엔 곁에 지휘관이 있다는 게 달랐다.
미친 듯이 달린 후, 월면차는 고지대에 멈춰 섰다. 차 뒤로는 바큇자국이 구불구불 불규칙한 길을 만들고 있었다.
둘은 차에서 내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푹푹 빠지는 달 표면을 걸었다.
바람도 소리도 없고, 어떠한 생명의 흔적도 없었다. 회색 지평선이 사방으로 뻗어 나가고, 끝에는 순수한 검은색의 돔이 펼쳐져 있으며, 우주는 모든 이에게 평등하게 순수한 색을 보여주고 있었다.
별이야…
그것들은 검은 벨벳 위에 점점이 박힌 빛점과 같아, 촘촘하게, 천공 전체를 가득 메웠다.
우주 안에 서 있을 때에만, 비로소 깨닫게 된다: 지구의 밤하늘은 별빛의 일천만분의 일만을 보여주고 있었음을.
응.
[player name]의 목소리가 미세한 잡음과 함께 통신 채널을 타고 들려왔다.
응…
루시아는 뒤에서 걸으며, 조용히 답했다.
루시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지휘관이 돌아보자, 루시아는 걸음을 멈춘 채였다.
루시아는 [player name]와(과) 반대 방향을 향한 채 미동도 없이 서 있었다. 헬멧 너머의 눈동자에는 무언가가 어려 있었고, 표정에는 처음 바다를 본 아이처럼 경이로움과 평온함이 뒤섞여 있었다.
[player name] .
루시아는 무의식적으로 지휘관의 손을 잡아끌고는 다른 손을 뻗어 월평선 너머를 가리켰다.
그러자 월평선 너머에서 지구가 천천히 떠오르고 있었다.
거대한 행성 하나가, 마치 물 속에서 우뚝 선 거울 같은 반영처럼, 달의 반대편에서 물결치며 나타나고 있었다.
새까만 우주 속에 떠 있는 그것은 반경 수십만 킬로미터 안에서 유일하게 색채를 지닌 존재였고, 뭇별조차 그 앞에서는 빛을 잃었다.
길고 거대한 호의 푸른 빛이 번지기 시작했고, 점점 더 많아지고, 점점 더 넓어졌으며, 그 위에서 구름의 흰색 무늬가 천천히 굴러갔다.
이어서 대륙과 바다, 그리고 인간이 수천 년에 걸쳐 그려 낸 지도가 모습을 드러냈다. 지금, 이 순간 그 모든 것이 한 행성의 표면에 고요히 펼쳐진 채 태양계의 유일한 항성이 비추는 빛을 받아 절반을 밝히고 있었다.
루시아는 잿빛 황무지에 서 있었고, 우주복이 지구의 푸른빛을 반사하며 회색 달 토양 위에 옅은 그림자를 드리웠다.
지구가… 우리를 위해 떠오르고 있어.
그 말을 하는 루시아의 목소리는 아주 작고 부드러웠다.
둘은 개인의 운명을 아득히 초월한 무언가를 마주한 듯, 나란히 서서 지구를 바라보았다.
그 푸른 별 위에는 수십억 명이 숨 쉬고 있었고, 어떤 이는 태어나고, 어떤 이는 죽고, 어떤 이는 성장하고, 어떤 이는 일하고, 어떤 이는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하늘에서는 아주 작은 두 존재가 그들을 마주 보고 있었다.
[player name] , 나도 잘 모르겠어.
루시아의 목소리는 평소의 차분함을 되찾았지만, 어딘가 모르게 다른 감정이 섞여 있었다.
화성이든, 달이든, 지구로 돌아가든… 당장은 대답할 수가 없어.
미래는 아무도 결정할 수 없는 거니까.
루시아가 몸을 돌려 [player name]을(를) 마주 보았다.
하지만…
루시아가 손을 뻗었다.
우주복 장갑은 크고 뻣뻣했다. 다섯 손가락이 기밀층과 방사선 차폐 소재로 둘러싸여 막대기 같았지만, 루시아는 손을 내밀어 [player name]의 손을 잡았다.
장갑 너머로 손을 잡아 꽉 쥘 수는 없었지만, 루시아는 온 힘을 다해 잡고 있었다.
적어도 지금은, 너에게만 하고 싶은 말이 있어.
루시아의 시선이 두 겹의 헬멧을 뚫고, 그 안의 눈동자를 응시했다.
딱 한 번만 말할 거야.
루시아가 다른 손을 들어 헬멧 측면의 통신 패널을 눌렀다.
삐—— 통신 채널이 꺼졌다.
달 표면에는 다시 완전한 적막이 찾아왔다.
…
루시아의 입술이 달싹거렸다.
그 입 모양을 읽어 낸 사람 역시 살며시 입꼬리를 올렸다.
하지만 루시아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한 마디가 더 남아 있었다.
한 글자 한 글자, 아주 천천히. 마치 잘못 말하면 다시는 기회가 없을까 봐 두려워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헬멧 너머의 표정은 진지하고 정중했으며, 평소라면 절대 남에게 보여주지 않았을 긴장감마저 서려 있었다.
루시아가 말을 마쳤다.
[player name]은(는) 헬멧 너머로 루시아를 바라보았다. 두 겹의 헬멧 사이로 지구의 그림자가 천천히 이동했고, 푸른빛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흘러가며 둘의 얼굴을 비췄다.
그리고——
소리 없는 달 표면에서 지휘관의 입술 역시 달싹거리기 시작했다.
같은 박자로, 같은 말을 했다.
…
루시아가 미소를 짓자, 그 눈빛이 지구의 광채 아래서 부드럽게 반짝였다.
맞잡은 두 손에 더욱 힘이 들어갔고, 둘은 한 걸음 다가가 서로의 헬멧을 맞대었다.
지구가 머리 위에 떠 있었고, 푸른 광채가 두 사람의 어깨 위로 쏟아져 내렸다.
지금 그 말, 네가 직접 한 거야. 그리고 온 지구가 증인이라고.
참, 바보 같아.
사방은 끝없는 잿빛 황무지와 끝없는 칠흑의 우주, 그리고 끝없는 침묵뿐이었다.
하지만 두 헬멧 사이의 몇 센티미터 남짓한 공간에는 그 어떤 것도 부족함이 없는 듯했다.
그렇게, 또 3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파오스는 마침내 첫 졸업 시즌을 맞이했다.
파오스의 1회 졸업생들은 어디에 있든 모두 모교 복귀 통지서를 받았다.
루시아와 [player name]은 각자의 관할 캠프에서 출발했고, 조앤과 오필리아는 실험실에서 나왔다——그녀들은 멀리 갈 필요가 없었다.
가장 늦게 도착한 아델라이드의 군복에는 어떤 국가나 기관의 마크도 없었고, 오직 왼쪽 팔에 자그마한 회사 번호만 새겨져 있었다. 그녀는 몰라보게 수척해졌지만, 눈빛은 예전보다 더 차분해져 있었다.
오필리아는 다시 만난 아델라이드를 보며 놀란 듯 입을 벌렸다가 이내 다물고는, 그저 조용히 입을 열었다.
같이 맛있는 거나 먹으러 가자.
응.
졸업식 당일, 파오스의 대강당은 사람들로 가득 찼다.
강당 밖 광장에는 거대한 장막이 쳐져 있었고, 1기생 420명은 제복이나 흰 가운을 입거나 군부에서 받은 훈장을 단 채 교관의 재촉에 마지못해 줄을 지어 섰다.
우수 졸업생인 루시아는 첫 줄 정중앙에 섰고, [player name]이(가) 그 옆에 자리했다.
셔터를 누르는 순간 마침 바람이 불어와, 모두의 머리카락과 옷자락이 흩날렸다.
자, 마지막 순서야!
너희가 사랑하는 이사이자 작가, 감성 프로그램 사회자, 전문 엔젤 투자자, 베테랑 영양사인 나 카산드라가 졸업식을 위해 큰 선물을 하나 준비했다.
파오스 교가~!
카산드라는 뒤쪽 연단에서 인쇄된 악보 뭉치를 집어 들어 학생들을 향해 흔들어 보였다.
작사, 작곡 전부 엄청난 돈을 들여서 전문가한테 맡겼다고! 작곡비만 해도 무려…
카산드라는 잠시 멈칫하더니 손을 내저었다.
어쨌든 돈 엄청 썼으니까, 다들 감상해 봐!
카산드라가 재생 버튼을 누르자 강당 스피커에서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곡은 아주 단순했다. "작곡"이라고 부르기조차 민망할 정도로, 누군가 피아노 앞에 앉아 대충 코드 몇 개를 누른 것을 녹음한 듯했다. 편곡은 밋밋했고, 멜로디는 평범하기 짝이 없었다.
가사 역시 어느 학교 졸업식에 가져다 놔도 무난하지만, 특별할 것 없는 문장들로 채워져 있었다. "청춘", "꿈", "높이 날아오르자" 같은 진부한 표현을 짜깁기한 수준이었다.
…
조앤은 고개를 푹 숙인 채 가사지를 보는 척하며 입술을 꽉 깨물었다. 아델라이드는 무표정했지만, 손가락 관절을 꾹꾹 누르고 있었다. 무언가를 필사적으로 참을 때 나오는 아델라이드 특유의 버릇이었다.
들어봐, 이게 바로 진짜 음악이지.
루시아의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이 없었지만, 어느새 이어폰을 손에 꽉 쥐고 있었다.
[player name]이(가) 고개를 돌려 루시아를 보곤, 옷자락을 살짝 잡아당겼다.
지금 참고 있거든.
마침내 노래가 끝났고, 카산드라는 잔뜩 기대에 찬 얼굴로 무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어때, 꼬마 친구들? 예술혼이 넘쳐흐르지 않아? 완전 대박이지?
학생들은 침묵한 채 서로 얼굴만 마주 보았다.
어떠냐니까?
갑자기 뒤쪽에서 의자가 바닥에 끌리는 날카로운 소리가 울리더니, 오필리아가 일어섰다.
이사님.
전 파오스를 5년 동안 다니면서 벌로 구보도 뛰었고, 폭발도 겪어 봤고, 무인기에 쫓기기도 했고, 극지방 임무에서 얼어 죽을 뻔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걸 다 참아 냈죠.
하지만 오늘 파오스에서의 마지막 날인데, 이렇게 구리고 예술성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노래를 불러야 한다는 건 도저히 못 참겠네요.
강당 곳곳에서 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들렸다.
하? 구리다고?
죄송하지만 이사님, 엄청 구려요.
얼마나 많은 돈을…
돈을 얼마나 썼든 구린 건 구린 거예요!
카산드라의 입이 벌어졌다가 닫히기를 반복했고, 기계 손가락이 연단을 두 번 두드리며 틱틱 소리를 냈다.
오필리아는 답변을 기다리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무대 위로 성큼 올라갔다.
제가 해볼게요.
그녀는 돌아서서 아래를 바라보았다. 수많은 얼굴이 일제히 그녀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우리가 직접 쓰자고!
어… 어?
파오스 교가는 파오스 학생들이 써야 해. 우리에겐 입이 있고, 머리가 있고, 지난 5년 동안 겪은 모든 경험이 있잖아. "높이 날아오르자" 같은 나부랭이보다 만 배는 더 낫게 만들 수 있다고!
내가 편곡할 테니까, 너희가 가사를 말해봐.
오필리아는 관중석을 한 바퀴 쭉 훑어보고는, 행사 반주용으로 옆에 놓여 있던 피아노로 다가갔다.
생각나는 대로 말해. 한 줄이든 반 줄이든 상관없어. 이상하면 내가 고칠게.
오필리아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 건반 위에 손가락을 얹었다.
십여 초 동안 사람들은 멍하니 할 말을 잃었고, 침묵이 흐른 뒤 황금빛 강당에는 반복되는 화음만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아득한 곳에…
갑자기 모두에게 너무나 익숙한 목소리가 울려 퍼지며 피아노 선율에 맞춰 나지막이 노래하기 시작했다.
아득한 곳에, 봉화가 번져가고.
자리에 앉아 앞을 응시하며 부르는 루시아의 노랫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고요한 강당 안에 거짓말처럼 또렷하게 울려 퍼졌다.
선구자의 옷자락은 붉은 피로 물들었네.
루시아가 잠시 노래를 멈추자, 강당에도 한 박자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player name]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좋아! 계속해!
오필리아는 영감을 얻은 듯 [player name]의 노랫소리에 맞춰 계속 건반을 눌렀다.
[player name]은(는) 잠시 생각에 잠기자, 5년간의 캠퍼스 생활이 시냇물처럼 흘러 들어와 가사로 변한 채 머릿속을 끊임없이 맴돌았다.
입을 여는 순간, 지휘관은 왠지 모르게 낯설고 아득한, 마치 또 다른 세계에서 들려오는 듯한 수많은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그 목소리들은 따스하고 아름다운 멜로디 속에 숨어, [player name]이(가) 그 이름들을 노래하도록 이끄는 듯했다.
지휘관이 루시아를 바라보았다.
그건 바로 수많은 선구자의 발자취였지.
오필리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곡조를 바꾸었다. 왼손 반주가 더해지고 화음 몇 개가 부드럽게 깔리며, 그녀의 손끝에서 멜로디의 뼈대가 서서히 완성되어 갔다.
복잡하지 않고 오히려 조금 투박했지만, 오필리아는 그 안에 무언가 묵직한 것이 담겨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맞아. 바로 이 느낌이야.
저기! 나, 나도 하나 생각났어.
그러니까… 가끔 밤늦게까지 실험실에 혼자 앉아 있다가 도저히 문제가 안 풀릴 때면… 너희가 생각나고, 파오스 친구들이 생각나고, 우리를 위해, 지구를 위해 최전선에서 계속 싸우는 전사들이 떠올랐거든.
"포기하고 싶을 때면, 언제나 떠오르는——"
"아득하면서도 뚜렷한 그 모습들."
조앤의 목소리는 점점 기어들어 갔지만, 오필리아의 손가락은 이미 건반 위를 훑으며 그 가사를 곡에 녹여 내고 있었다.
그러자 이곳저곳에서 더 많은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누군가 "뭇별은 바다를 응시하고"라고 하자, 다른 누군가 "바다는 돛을 품에 안네"라고 이어받았다.
누군가 큰 소리로 "손에 쥔 검으로 긴 밤을 꿰뚫으리라"라고 외쳤다. 그러자 옆 사람에게 오글거린다고 놀림받기도 했지만, 한바탕 웃은 뒤 그 가사 역시 그대로 남았다.
오필리아는 피아노를 한 소절 치다 멈추기를 반복하며, 새로 나오는 가사를 멜로디에 끼워 넣었다. 어울리지 않으면 리듬을 바꿔 가며 다시 맞추어 보았다. 피아노 소리는 뚝뚝 끊겼지만, 마치 벽돌을 한 장 한 장 쌓아 견고한 집을 짓는 듯했다.
여기서 한 키 더 올릴까?
아니. 이 노래는 그렇게 높이 올라갈 필요 없어.
사람이 성장하듯 계속 앞으로 나아가다가 자연스레 달려 나가면 되는 거야.
이때 음악을 전공하는 학생 한 명이 몸을 앞으로 숙이며 나섰다.
방금 그 넘어가는 부분 말이야. 서스펜디드 코드를 쓰면 좀 낫지 않을까? 아련한 느낌으로… 우리 모두 길을 잃고 헤매다가 하나로 뭉치는 그런 느낌?
오필리아의 손가락은 잠시 건반 위에 머물렀다, 시험 삼아 눌러보았다, 잔향이 공기 중에 맴돌고, 한 박자 기다렸다가 주 화음으로 돌아왔다.
강당 안 누군가가 작게 "아" 하고 감탄했다.
좋아. 이걸로 가자.
여러 사람의 의견이 분분하게 오가는 가운데 노래는 서서히 형태를 갖춰 나갔다. 간주에 여백을 두자는 의견, "내일을 위해"라는 가사를 세 번 반복하자는 의견, 마지막은 고음에서 멈추지 말고 차분하게 마무리하자는 의견도 나왔다.
상처투성이가 될지라도, 나락으로 떨어질지라도.
이를 꽉 깨물고… 앞으로 나아가리.
오필리아는 인파 속에서 그 익숙한 목소리를 듣고는 살짝 멈칫하다가, 그 가사에 맞춰 연주해 보았다.
그리고 그녀는 다시 한 번 연주하며, 작품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오필리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 부분을 노래의 클라이맥스로 정했다.
이 "교가"의 편곡 작업은 오후 내내 계속되었다.
무대 옆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아 있던 카산드라는 처음엔 자기 노래가 퇴짜를 맞은 것에 불만을 품었으나 이내 입을 다물고 진지하게 귀를 기울였고, 어느새 손등에 턱을 괸 채 낡은 피아노 주변에 모여 옥신각신하는 아이들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저녁이 되었을 때, 최종 버전이 확정되었고, 오필리아는 무대에서 내려와 손으로 쓴 총보를 조앤에게 건네주어 복사기로 수백 부를 인쇄하게 했다.
왜 내가 심부름해야 해!
네가 제일 굼뜨니까, 그 시간 동안 다 같이 연습하면 딱 맞을 거야.
힝, 그게 무슨 논리야!
첫 번째 리허설은 엉망진창이었다. 박자도 안 맞고, 음정도 제각각이었으며, 반 박자 빨리 부르는 사람도 있었고, 여전히 가사만 쳐다보는 사람도 있었다.
두 번째는 멜로디의 뼈대가 잡혔기 때문에 조금 나아졌다. 화려하진 않지만, 단순한 곡 속에 단단한 힘이 느껴졌다. 급하게 쌓아 올린 벽돌담처럼 예쁘진 않아도 튼튼했다.
세 번째 연주 때, 420개의 목소리가 마침내 하나로 합쳐졌다.
오늘을—— 이미 내 손에 꽉 쥐었고
내일은—— 오늘의 의지가 부여하리
앞길이 험난해도, 너와 나는 여전히 나아가리——
훗… 정말 잘 부르네!
마침내 마지막 음이 잦아들자, 무대 옆에 있던 카산드라가 갑자기 펑펑 울기 시작했다.
고급 손수건을 꺼내 유난을 떨며 눈물을 훔치는 카산드라를 보며, 현장에 있던 많은 이들은 구조체도 눈물을 흘릴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깨달았다.
그래, 진짜 좋네. 내가 돈 주고 만든 것보다 훨씬 낫구나.
누군가가 웃음을 터뜨리자, 카산드라는 코를 훌쩍이며 다시 일어섰다.
좋아, 됐어! 이 노래를 교가로 정한다! 내 건 폐기 처분이야!
제목?
카산드라는 갑자기 멍해지더니, 강당 뒤쪽 구석을 바라보았다.
그곳은 텅 비어 있었고, 아무도 없었지만 카산드라는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팔에 착용한 센서는 가볍게 깜박이며 뛰었고, 마치 아주 미세한 신호를 포착한 듯했다. 마치 한 줄기 시선이, 먼 길을 지나, 조용히 이 강당에 닿은 것처럼.
하지만 눈을 깜빡이는 순간, 그 기이한 감각은 사라져 버렸다.
몰라, 내가 어떻게 알아.
네?
너희가 직접 쓴 노래니까, 제목도 너희가 지어야지.
카산드라의 말에 무대 아래가 순식간에 시끌벅적해졌다.
"파오스의 행진곡"은 어때?
너무 촌스러워. "인간의 노래"가 좋겠어!
그게 더 촌스럽거든!!
시끌벅적한 와중에 [player name]이(가) 고개를 돌려 루시아를 보았다.
내 재생 목록을 몇 번이나 들었잖아. 난 이런 분위기와 안 맞아.
울림…
무대 위와 아래는 떠들썩했고, 몇 초마다 누군가 더 터무니없는 이름을 외치면, 다른 사람들이 더 큰 목소리로 반박했다. 카산드라는 턱을 괴고, 흥미롭게 이 난투극을 지켜보았다.
결국 교가 제목 짓기는 유야무야 끝이 났다. 결정하는 사람도, 투표하는 사람도 없이 끝까지 떠들다가 배가 고프고 목이 쉬어 버린 탓에 다들 그냥 해산하고 말았다.
그렇게 파오스 교가의 제목은 1기생들에게 영원히 미해결 과제로 남게 됐다.
하지만 파오스를 떠난 모든 이는 그 멜로디를 기억했다.
해산할 즈음엔 이미 날이 어두워져 있었다. 삼삼오오 강당을 나서는 사람 중에는 방금 배운 곡을 흥얼거리는 이도 있었고, 웃는 이도 있었으며, 문득 말없이 조용해진 이도 있었다.
복도 끝의 불이 하나둘씩 꺼졌다. 내일이면 이곳은 고요해진 뒤, 다음 기수 학생들의 복도, 다음 기수 학생들의 교실, 다음 기수 학생들의 운동장이 될 터였다.
그리고 그들은 이 이름 없는 노래를 품고 각자의 먼 곳으로 떠나갈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