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순간부터인가 루시아는 자주 이상한 꿈을 꾸곤 했다.
꿈속에서의 시선은 육체를 벗어나 유령처럼 세계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장식을 다 끝냈어!
언니! 지금 생일 파티를 시작해도 돼?
루시아!
루시아!! 나오지 말고, 동생을 데리고 위층으로 올라가!
루시아는 기괴한 검은 그림자에 끊임없이 쫓기는 [player name]의 육체가 점차 녹아내리고, 빛을 등진 채 어둠 속으로 도망치는 모습을 보았다.
지휘관이 낯선 계단을 따라 가장 높은 곳까지 기어 올라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루시아 역시
기이하고 몽환적인 감각 속에서 루시아는 울부짖었지만, 끔찍한 핏빛 악몽은 그림자처럼 달라붙어 그녀의 소중한 사람들을 모두 집어삼켰다.
아빠의 배지는 부서지고, 엄마의 얼굴은 지워졌다,
루나의 목소리는 길게 늘어나 날카로운 비명으로 변한 뒤, 갑자기 끊겼다.
루시아의 세계에는 오직 그 뒷모습만 남아 있었다.
[player name] !!
루시아는 비틀거리며 달렸다. 폐가 터질 것만 같았다.
마침내, 루시아의 손이 그 팔을 움켜쥐었다.
퍽——
?
아무도 뒤돌아보지 않았다. 그녀는 단지 누군가의 팔을 붙잡았다.
뜨거웠다. 들쭉날쭉한 절단면의 찢어진 근육 결 사이로 뼛조각이 튀어나와 있었고, 그곳에서는 피가 솟구치고 있었다.
[player name] ?
녹아내린 쇳물에 손을 집어넣은 것처럼, 극심한 고통이 피부를 타고 뼛속까지 파고들었다. 손끝의 피부가 물집이 잡힌 채 쪼그라들더니, 조금씩 부식되며 구멍이 뚫리기 시작했다.
피가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루시아의 손목을 타고 소매 안으로 기어 올라가더니 피붓결 사이로 스며들었다.
!!
루시아가 눈을 번쩍 떴다.
창밖에서 쏟아지는 햇살에 눈이 부셔 눈살을 찌푸렸다. 뺨은 차가운 책상에 닿아 있었고, 눈앞에는 파일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으며 책상 가장자리에는 펜 한 자루가 굴러가 있었다.
[player name] …
[player name]은(는) 창밖에 서서 한 손으로 창틀을 짚고 몸을 살짝 굽혀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아침 햇살이 지휘관의 등 뒤로 비쳐 책상 위에 긴 그림자를 드리웠다.
…
루시아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이내 안도한 듯 길게 숨을 내쉬었다.
응.
루시아는 눈을 비비며 얼굴에 남은 파일에 눌린 자국을 문질러 지웠다. 창밖의 하늘은 무척 푸르렀고, 멀리 천국의 다리가 아침 햇살 속에서 은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유지 보수 지지대는 수리가 끝난 뒤라 충돌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 습격 사건으로부터 벌써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넌 어젯밤에 쓸데없는 소리를 너무 많이 했어.
추력 벡터 모델링 하나를 두고 풀이법을 네 가지나 이리저리 돌려가며 설명했잖아. 돌아와서 혼자 한참을 정리하고 나서야 뭘 써야 할지 이해했다고.
루시아는 대답하지 않고 일어났다. 제복을 탁탁 털어 구김을 펴고 책상 위의 교과서를 가방에 쑤셔 넣는 동작에는 짜증이 묻어났다.
넌 가끔 참 바보 같아.
비켜.
루시아는 다리를 들어 창문 밖으로 넘어갔다. 기숙사 1층의 이 창문은 루시아가 1년 내내 문처럼 드나들던 통로였다.
[player name]은 그녀가 착지하는 모습을 보고, 무언가 말하려 했지만 결국 말하지 않았다.
둘이 나란히 학교 건물로 향하는 길, 이른 아침의 파오스 군사 지휘 학교에는 옅은 안개가 끼어 있었다. 멀리 훈련장에서는 이미 저학년 학생들이 구보하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루시아는 이어폰을 목에 걸었지만, 착용하지 않았다. 이 습관이 언제부터 생겼는지는 모른다.
루시아는 [player name]와(과) 함께 이 길을 걷기 시작한 이후로, 많은 것들이 변하기 시작했다고 느꼈다.
내년 분과 시험 과목표 나왔던데, 봤어?
이번 문제는 과학 이사회에서 출제했어.
어렵다기보다는… 빈틈없이 하고 싶어서 그래.
루시아의 종합 성적은 1기생 중 항상 10위권 안에 들었고, 실전과 체력 과목은 3위권을 굳건히 지키고 있었다. 교양 과목이 가장 뛰어난 분야는 아니었지만, 기본기가 탄탄해 안정권을 벗어난 적이 없었다.
반면, [player name]의 특기는 정반대여서, 둘은 종종 비슷한 순위권에서 엎치락뒤치락하며 경쟁하곤 했다.
월면 기지가 내년에 2차 확장을 하는데,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대. 실전 경험이 있는 사람이 가면 적응 시간을 많이 줄일 수 있을 거야.
응, 파오스에서 배운 것들은 시험용이 아니니까.
달이든, 화성이든, 지상 최전선이든, 날 필요로 하는 곳으로 가고 싶어. 어쨌든 교실에 앉아만 있고 싶진 않아.
그리고… 루나가 달 토양을 보고 싶다고 했거든.
루시아는 한 박자 쉬더니, 갑자기 말투가 부드러워졌다.
지난번 통신 때 꺼낸 이야기인데, 반 친구의 부모님이 월면 기지에서 일하시는데 작은 병에 담아 오셨다면서, 부러워하더라고.
어차피 그곳으로 갈 거니까, 가는 김에 하나 가져다주려고.
둘이 학교 건물 모퉁이를 돌자마자 멀리서 말다툼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정확히 말하자면, 날카로운 목소리와 딱딱한 목소리가 서로 부딪히고 있었다.
내가 먼저 왔다고 했잖아!
훈련장 사용권은 예약 시스템 등록 시간 기준이지, 물리적 도착 시간 기준이 아니야.
난 새벽 6시에 왔다고!
그럼 난 단말기 기록이 증명하지. 난 새벽 5시 57분에 예약을 등록했어.
새벽 5시 57분에 훈련장을 예약하는 미친 자가 어딨어?!
새벽 6시에 훈련장에 오는 사람이라면, 새벽 5시 57분에 훈련장을 예약하는 사람을 이해할 수 있을 텐데.
지금 일부러 그러는 거지?
난 사실대로 말하고 있을 뿐이야.
이 꽉 막힌 인간아! 정상인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해 봐!
내가 한 말은 모두 학교 규정에 부합한다고 생각해.
됐어, 널 목 졸라 죽여 버릴 거야.
다행이네. 그래도 지금은 운동장 반대편에서 소리 지르는 대신 나란히 걸으면서 싸우잖아.
루시아와 [player name]은(는) 그들의 곁을 지나치며 고개를 살짝 돌렸다.
안녕.
안녕.
안녕.
인사 두 마디에 거짓말처럼 말다툼이 뚝 멈췄고, 2초 정도 침묵이 이어지더니 이내…
훈련장을 양보해 줬는데, 왜 계속 따라오는 거야?!
따라가는 게 아니야. 기자재실이 이 방향일 뿐이지. 지나치게 예민한 것도 정신 질환의 일종이야. 내 제안은…
루시아와 [player name]은(는) 고개를 저으며 계속 앞으로 걸어갔다.
학교 건물 계단 입구, 3층 창문에서 처절한 비명이 쏟아져 내렸다.
——안——돼——요!!
카산드라 여사님!! 제발 나가주세요!!
통신 실험실에서 신호 영점 교정을 할 때는 전자기파를 완벽하게 차단해야 한다고요! 이사님의 기계 팔이 간섭을 일으키잖아요!
왜 이래? 그냥 앉아서 구경만 하는 건데, 방해 안 되잖아.
그… 기계 팔이 방해된다고요! 몇 초마다 한 번씩 데이터 향수를 분사해 대는 바람에 제 스펙트럼 분석기가 이사님의 신호로 가득 찼잖아요!
어머? 그럼, 내 팔의 성능이 엄청 좋다는 뜻이네!
실험실에선 전혀 자랑할 일이 아니라고요!!
조앤의 상반신이 3층 창문 밖으로 쑥 튀어나왔다. 머리는 새집처럼 헝클어졌고 안경은 삐뚤어진 채, 절망에 가득 찬 얼굴을 하고 있었다.
루시아… [player name]… 살려줘!
아침 댓바람부터 실험실에 앉아서 "교육 성과를 시찰"하시겠다고 떼를 쓰시잖아! 덕분에 내 영점 데이터가 전부 날아갔다고!
루시아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 그저 동정 어린 시선만 보낼 뿐이었다.
야, 야! 죽어가는 사람을 보고도 그냥 가?!
미안, 조앤… 우리도 지각할 것 같아서 그래.
잠깐, 잠깐만!
조앤이 창문 안으로 쏙 들어가더니, 우당탕탕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마 카산드라의 손에서 무언가를 빼앗으려 실랑이를 벌이는 듯했다.
지난번에 조앤을 도와서 카산드라 여사님의 "우주 함선 염색 계획"을 막았다가 반성문 3,000자를 썼어.
얘들아~ 저녁 음악 시간이다, 오늘은 학교 이사님이 단 1만 분의 1 재능과 15분의 소중한 시간을 써서 새로 만든 보물 같은 곡을 들려줄 거야!
방송에서 형언할 수 없는 기괴한 전자음 비트가 쏟아져 나왔다. 베이스가 쾅쾅 울리는 가운데 멜로디는 기이한 주파수 대역을 오가며 미쳐 날뛰었고, 이따금 사람의 신음 같기도 하고 고장 난 신시사이저 소리 같기도 한 잡음이 섞여 들려왔다.
학교 건물 전체가 이 끔찍한 소리에 시달리고 있었다.
책상 아래 루시아의 오른쪽 다리가 점점 더 빠르게 떨렸고, 펜 끝은 이미 교재에 구멍을 몇 개나 뚫어 놓은 상태였다. 겉으로는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관자놀이에는 천천히 핏대가 솟아오르고 있었다.
맞은편에 앉아 있던 [player name]이(가) 펜을 내려놓고 단말기로 시간을 확인한 뒤, 조용히 통신 메신저로 메시지를 보냈다.
어딜 가려고?
[player name]이(가) 창밖을 향해 턱짓했다. 1년 전, 둘이 위태롭게 비행기를 몰며 스쳐 지나갔던 바로 그 밤하늘이었다.
오른쪽 다리가 멈춘 루시아는 이어폰을 벗고 [player name]을(를) 쳐다보았다.
탈 줄 알아?
한 번 가르쳐 줬는데, 세 번이나 넘어졌잖아.
…
루시아는 복습하던 책을 덮었다.
파오스의 뒷산은 그리 높지 않았다. 우주 도시 외곽에 위치한 완만한 언덕으로, 드문드문 열대 관목이 자라 있고 가로등도 없어 인적이 드문 곳이었다.
그리고 언덕 정상에 서면 우주 도시 전체가 내려다보였다. 천국의 다리 조명이 지상에서 구름층까지 이어져, 마치 어둠 속에 꽂힌 거대한 빛기둥 같았다.
언덕 꼭대기 작은 나무 곁에 세워 둔 오토바이에서 엔진이 식으며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둘은 잔디밭에 양반다리를 하고 어깨를 나란히 한 채 앉았다.
머리 위의 별하늘이 밝았다,
루시아는 고개를 들고 먹물처럼 끝없이 펼쳐진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한참 동안 침묵했다.
아니.
루시아가 고개를 숙여 보니, 손이 닿는 곳의 연한 풀들이 정말로 한 움큼 뜯겨 나가 휑하게 맨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시끄러워…
루시아는 미간을 찌푸리며 곁에 있는 [player name]을(를) 쿡 찔렀다.
그때, 산 아래에서 바람이 불어왔다. 액체 산소가 증발한 뒤의 건조하고 차가운 기운이 섞인 우주 도시 특유의 냄새로, 어디를 가든 맡을 수 있는 것이었다.
루시아는 산들바람에 흩날리는 은빛 머리카락을 정돈하며 고개를 돌렸다.
이쪽 일이 끝나면 제일 먼저 뭘 하고 싶어?
아니, 졸업하고 파오스를 떠난 뒤의 계획을 묻는 거야.
[player name]은(는) 고개를 숙이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게 무슨 말이지?
…
루시아는 한 손으로 턱을 괸 채 대답하지 않았다.
나?
루시아는 고개를 살짝 갸웃거리며 진지하게 고민했다.
너랑 비슷할 것 같아.
응, 더 높은 곳으로 가고 싶어. 더 많은 사람을 지킬 수 있는 곳으로.
루시아는 풀을 만지작거리며 천국의 다리 끝부분에서 빛나는 불빛에 시선을 두었다.
어렸을 때… 종종 이상한 꿈을 꿨어.
안개가 자욱한 곳에 떨어졌는데,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있었어. 그런데 사람들이 하나둘씩 사라져 갔고, 난 뒤에 서서 손을 뻗어 봤지만 아무도 잡을 수 없었어.
깨어나면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고, 아주 중요한 걸 잊어버린 것처럼… 손바닥만 뜨거웠어.
그때부터 난 계속 강해지고 싶었어, 루나를 지키고, 부모님을 지키고. 자라면서 점점 더 높은 곳에 서서 더 많은 사람을 지키고 싶단 생각도 들었어, 마치… 그 애니메이션 속 "영웅"들처럼.
그래서 파오스에 입학했어.
루시아는 풀 한 줄기를 뚝 끊어내고는, 계속해서 자기 신발 끝만 응시했다.
이 세계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이 같은 목표를 향해 노력하고 있으니, 나도 가장 앞장서서 그들 앞을 지키고 싶어.
순간, [player name]은(는) 대답 대신 루시아의 시선을 따라 저 멀리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날… 비웃고 싶은 거야?
루시아의 손끝이 무심코 조여지고, 일부러 고개를 돌려 [player name]을 바라보지 않았다.
그럼, 왜 아무 말도 안 하는 거야?
나랑… 같다고?
…
루시아가 지휘관을 쳐다보았다. 어두워서 표정은 잘 보이지 않고 윤곽과 눈동자에 반사된 별빛만 살짝 보일 뿐이었다.
우린 어떤 면에선 많이 닮은 것 같아.
[player name]이(가) 옅게 미소 지었다.
파트너?
그래, 결국 그게 신경 쓰였던 거네…
당연하죠… 늘 네 등 뒤를 지켜주는 이가 있을 테니까.
루시아가 웃음을 터뜨렸지만, 이내 무언가 생각난 듯 서서히 웃음을 거두었다.
고개를 든 루시아는 별이 쏟아지는 밤하늘을 바라보며 아득하면서도 현실적인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루시아는 잠시 생각하다 입을 열고 무언가를 말하려 했다.
그때, 멀리서 낮고 둔탁한 굉음이 들려왔다.
천국의 다리 발사대에서 주황빛 불꽃이 뿜어져 나오며 밤하늘 반쪽을 환하게 밝혔다.
로켓 하나가 서서히 솟아오르더니 속도를 높이며 긴 불꽃 꼬리를 남긴 채 구름층을 뚫고 나아갔다.
두 사람이 동시에 머리를 들어 올리자, 꼬리 불꽃이
루시아는 한참을 지켜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널 알게 된 이후로, 내 삶이 참 많이 변했어.
원치 않게 많은 사람과 어울려야 했고, 단체 활동에 끌려다녔고, 식당에선 억지로 다섯 명이 한 테이블에 옹기종기 앉아야 했잖아. 게다가 그중 두 명은 틈만 나면 싸워 대고.
생활 패턴이 규칙적으로 바뀌었고, 훈련에는 짝이 생겼어. 그리고 수업 후에는 누군가와 함께 복습을 했지, 비록 잔소리가 많이 파트너였지만.
루시아가 또 풀을 한 움큼 뜯으며 점차 흩어지는 불꽃을 응시하느라, 옆 잔디밭에서 나는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귀찮고 피곤하고 시끄럽긴 했지만, 그래도 난…
응?
루시아가 몸을 돌리자, 어둠 속 언덕 너머 반대편에 그림자 셋이 서 있었다.
조앤이 두 손으로 들고 있는 삐뚤빼뚤한 골판지에는 큼지막한 글씨가 적혀 있었다. 글씨체는 엉망이었는데, 방금 오는 길에 급하게 만든 것이 분명했다.
오필리아는 허리를 짚고 옆에 서 있었고, 얼굴 표정은 자랑스러우면서도 어색해서 뭔가를 참으려 애쓰는 듯했다.
아델라이드는 맨 오른쪽에 꼿꼿하게 서서 아직 불지도 않은 풍선 뭉치를 손에 들고 있었다.
이윽고 모두가 동시에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생일 축하해!!
셋의 목소리는 제각각이었다. 조앤의 목소리가 가장 컸고, 오필리아는 반 박자 늦었으며, 아델라이드의 성량은 지나치게 열정적이지도 냉담하지도 않은 수준으로 정확하게 통제되어 있었다.
너희들…
루시아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player name]을(를) 바라보았다.
[player name]은(는) 어느새 일어나 중간 크기의 케이크를 들고 있었다. 그 위에는 양초 몇 개가 꽂혀 있었고, 밤바람에 불꽃이 흔들거렸다.
…
루시아는 무의식적으로 반박하려 입을 열었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이내 입을 다물었다.
루시아는 정말로 자신의 생일을 잊고 있었다. 늘 이날을 까먹곤 했지만, 누군가는 항상 그녀를 대신해 이날을 기억해 주었다.
예전에는 아빠, 엄마, 그리고 루나였다.
그리고 지금은…
케이크는 오필리아랑 내가 같이 만들었어! 두 번이나 구워서 겨우 성공했다고! 처음엔 얘가 오븐 온도를 섭씨와 화씨 사이 어딘가의 창조적인 단위로 맞춰 버리는 바람에…
시끄러워! 넌 왜 이렇게 말이 많냐!
아무튼, 엄청 맛있을 거야!
잠깐? 벌써 맛봤어?
방금 다 구워졌을 때 못 참고 아주 조금만 맛봤어!
네가 아주 조금 맛본 탓에 가장자리 한 조각이 통째로 날아갔잖아.
그래서 뜯어 먹은 쪽을 뒤로 돌려놨잖아.
뒤이어 일행이 이러쿵저러쿵 떠들며 루시아 앞으로 모여들었고, 오필리아는 다짜고짜 구겨진 생일 고깔모자를 [player name]의 손에 쥐여 주었다.
헤헤, [player name], 자~ 그녀~에게~ 씌워~
잠깐, 난 안…
저기, [player name]!
루시아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player name]은(는) 조그마한 「왕관」을 루시아의 머리에 씌웠다.
생일 모자는 비뚤어졌고, 고무줄이 귀에 걸려 썩 편하진 않았다.
조앤은 단말기를 들고 사진을 찍고 있었고, 플래시가 번쩍번쩍 빛났다. 오필리아는 옆에서 각도를 지시했고, 애들레이드는 그 풍선 봉지를 불어보려 했지만, 분명 잘하지 못해 세 번 불었지만 입을 제대로 묶지 못했다.
루시아는 그들 사이에 서 있었다. 머리에는 삐뚤어진 모자를 쓴 채 눈앞에는 한 조각이 빈 케이크를 두고 있었고, 등 뒤로는 하늘로 솟아오르는 로켓의 꼬리 불꽃이 빛났다.
기쁜 건지 우스꽝스러운 건지, 루시아는 갑자기 코끝이 찡해졌다.
루시아는 고개를 숙이고 바람에 흔들리는 촛불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불빛이 그녀의 눈동자에 작고 밝게 맺혔다.
…
엄마는 네가 행복하고 즐거운 삶을 살아가기를 바라, 루시아.
(그 "이상한 꿈"이 영원히 현실이 되지 않기를.)
(엄마가 남겨 주신 축복이, 반드시 이루어지기를.)
(그리고 또…)
밤바람에 흔들리는 촛불이 그녀의 눈동자에 작고 밝게 맺혀 있었다. 멀리 천국의 다리 불빛은 지상에서 구름층까지 뻗어 나가 머리 위 별들과 이어져 있었다.
(우리 모두가… 이곳의 모든 사람이 무사하고 행복하게 내일을 맞이하기를.)
루시아의 소원은 자신보다 타인을 향해 있었다.
"루시아"의 소원과 행복에 관한 것이라면, 그녀는 스스로 이루어 낼 각오가 있었기 때문이다.
루시아는 눈을 감고 몇 초간 고요히 침묵했다.
그러곤 단숨에 모든 촛불을 불어 껐다.
뭐라고 빌었어? 무슨 소원을 빈 거야?
안 알려줄 거야. 말하면 이루어지지 않잖아.
치, 치사해. 뭐, 됐어, 분과 시험은 어때? 다들 자신 있어?
흥, 당연하지. 전 과목 1등은 따 놓은 당상이라고.
하지만 지난번 재료 공학 성적은 루시아, [player name] 다음으로 3등이었잖아.
입 닥쳐, 입 닥쳐, 입 닥치라고…
체력 과목만 안 봤으면 좋겠다. 힝…
루시아는 케이크 한 조각을 잘라 [player name]에(게) 건넨 뒤, 네 조각을 더 잘라 차례대로 건넸다.
다들 합격할 거야.
루시아의 목소리는 모두에게 건네는 말 같기도,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말 같기도 한 듯 부드러웠다.
분과가 나뉘어서 달로 가든, 지상에 남든…
루시아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흩어져 가는 로켓의 궤적을 바라보았다.
어차피 파오스의 친구들은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될 테니까.
파오스의 밤 풍경을 배경 삼아, 다섯 명의 젊은이가 촛불 몇 개와 조금은 엉성한 케이크를 둘러싸고 뒷산에 앉아 있었다.
멀리 천국의 다리에는 환한 불빛이 반짝였고, 로켓의 꼬리 연기는 은하수 속으로 완전히 흩어졌다.
바람이 촛불 연기를 날려 보내고, 달콤한 생크림 향기가 공기 중에 스며들었다.
저녁 바람이 산 전체의 풀밭을 스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