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학 첫 주, 파오스 1기생들은 군사 학교 생활의 고단함을 뼈저리게 체감했다.
새벽 6시의 호각 소리, 5킬로미터 구보, 규격화된 내무반 점수, 초 단위로 짜인 일과. 첫날 밤부터 누군가는 울음을 터뜨렸고, 셋째 날엔 교관에게 대든 누군가는 빗속에서 하루 종일 벌을 서야 했다.
7일이 지나자, 420명의 학우 중 이미 서로를 알게 된 이도 있었고, 여전히 혼자 있는 사람도 있었다.
이날 이른 아침, 연병장에 나타난 교관이 첫 번째 홀로그램 훈련 조 편성 명단을 발표했다.
3인 1조, 제비뽑기로 결정한다. 대장은 조 내 종합 점수가 가장 높은 자가 맡는다. 규칙은 간단하다. 적군의 깃발을 먼저 뽑거나, 적을 전멸시키는 쪽이 승리하는 깃발 뺏기다.
홀로그램 탄에 맞으면 전사로 판정되며, 데이터가 기록된 뒤 강제 퇴장 처리된다. 각자 표준 훈련용 소총 1정, 탄창 3개, 섬광탄과 수류탄 1개씩을 받게 된다.
이미 전사한 학교 학생을 고의로 공격하거나 지급되지 않은 장비를 사용하는 행위, 연습 구역 경계를 벗어나는 행위는 금지한다. 격투술 교전은 허용하나, 실제 상해를 입힐 수 있는 동작은 금지한다.
규칙 위반이 적발되면 엄하게 벌하겠다. 다들 알겠나?
알겠습니다!
홍팀은 아델라이드, 니아, 루시아. 대장은 루시아다.
청팀은 조앤, 오필리아, [player name]. 대장은 [player name](이)다.
루시아는 낯선 이름이 들리자, 그쪽을 돌아보았다.
그날 관람석에서 자신에게 이어폰을 건네주었던, 바로 그 낯익은 얼굴이었다.
[player name] .
마침 인파 너머로 지휘관과 시선이 마주쳤고, 지휘관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문득 신기한 우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휘관은 조앤에게 나지막한 목소리로 무언가를 설명하고 있었고, 조앤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안경을 추켜올렸다. 허리에 손을 얹고 옆에 선 오필리아의 시선은 연병장 반대편을 가로질러 아델라이드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흥.
…
저기… 대장? 혹시 짜놓은 계획이라도 있어?
사격 성적이 어떻게 되지?
전 과목 만점이야.
난 턱… 턱걸이.
알겠어, 지금부터 내 지시에 잘 따르고 바짝 쫓아와.
적군의 전력도 우리와 비슷할 거야. 그렇다면, 승패는 결국 용기와 실행력에 달렸다는 말이지.
탄창 점검을 마친 루시아는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지으며 두 대원을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내가 무조건 이길 거야.
모의 훈련장은 파오스 본관 2층에 있으며, 시작되면 전체 공간에 도시 폐허를 모사한 가상 환경이 생성된다——부서진 건물, 쓰러진 가로등, 쌓인 콘크리트 엄폐물, 복잡한 시야, 얽힌 골목길.
붉은색과 푸른색, 두 개의 군기가 훈련장 양쪽 끝에 꽂혀 있었다.
아델라이드는 2층 창문에서 정면으로 두 블록을 엄호해. 니아, 넌 나와 함께 왼쪽 골목으로 가자.
알겠어.
루시아의 판단은 매우 빨랐다. 그녀는 서둘러 돌파를 시도하는 대신, 가장 먼저 상대의 공격 동선을 좁히는 쪽을 택했다.
맞은편에서 [player name]이(가) 내린 배치 역시 거울을 보듯 똑같았다.
아… 알았어. 근데 들키면 어떡하지?
체력 노동을 맡은 느낌인데. 난 원래 머리 써서 해결하는 게 더 좋은데…
왜?
그래서 어쩌라고?
쳇,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데?
나더러 깃발을 훔치라는 거야?
오필리아의 눈썹이 들썩이더니 호탕한 미소가 번졌다.
좋아. 머리를 제대로 썼네.
몇 분 전까지만 해도 홍팀과 청팀은 서로를 떠보는 단계에 머물러 있었고, 골목 사이로는 드문드문 총성이 울릴 뿐이었다.
루시아의 움직임은 무척 빨랐고, 어떤 엄폐물 뒤에서도 5초 이상 머물지 않았다. 그녀는 골목 사이를 누비며 짧고 날카로운 사격으로 상대의 진로를 압박했다.
니아는 루시아의 뒤를 따르며 호흡을 맞추려 애썼지만, 이미 숨소리가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대장, 오른쪽에 뭔가…
엎드려.
루시아는 니아의 어깨를 누르며, 한 발의 총알이 그녀의 머리 위를 스치고 지나가, 뒤쪽 벽의 홀로그램 벽돌을 깨뜨렸다.
미끼야.
뭐, 뭐라고?
엄폐물이 너무 적어. 일부러 유인하려고 노출한 거야. 아델라이드, 동쪽엔 움직임이 있나?
아직은 없어. 정면 메인 블록 끝의 엄폐물 뒤에 타겟 한 명이 숨어 있는데, 여태 사격하지 않는 걸 보니 감시조인 것 같아.
신경 쓰지 마. 양옆이랑 후방을 주시해. 상대 대장이 제법 약삭빠른 스타일이라 정면만 노리진 않을 거야.
알겠어.
골목 반대편, 조앤은 엄폐물 뒤에 잔뜩 움츠린 채 땀이 흥건한 손으로 총을 쥐고 있었다.
방금 그 한 발은 [player name]이(가) 지시한 것이었다. "그쪽으로 대충 한 발만 쏴, 맞든 안 맞든 상관없어."
명중하진 않았지만, 상대방은 확실히 움직임을 멈췄다.
쫓아오면 어떡해?
그 사이, 루시아는 니아를 데리고 측면으로 우회해 조앤의 위치를 포위해 들어갔다. 루시아의 발걸음은 아주 가벼워서, 폐허의 그림자 속에 녹아든 것만 같았다.
하지만 모퉁이를 도는 순간, 루시아의 총구와 또 다른 총구가 거의 동시에 서로를 겨누었다.
!
[player name]이(가) 나타났다.
둘의 거리는 10미터도 채 되지 않았고, 그사이에는 뒤집힌 홀로그램 자동차 한 대뿐이었지만 누구도 먼저 총을 쏘지 않았다.
루시아는 두 눈을 가늘게 떴다. 이 거리에서 상대방의 반응 속도가 자신과 거의 비슷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상대방에게 회피할 시간이 충분하기에 먼저 총을 쏘는 쪽이 반드시 이긴다는 보장이 없었다.
[player name] 역시 움직이지 않았고, 둘은 폐차를 사이에 둔 채 총을 겨누며 수 초간 대치했다.
돌연, [player name]이(가) 예상치 못한 행동을 보였다. 재빨리 한 걸음 물러나더니 옆 골목으로 몸을 굴려 피한 것이다.
!
루시아가 즉시 뒤쫓았지만, 골목 반대편엔 빈 공간뿐이었다.
루시아는 순간 깨달았다. [player name]은(는) 애초에 여기서 얽힐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상대의 진짜 목표는 처음부터…
니아, 어디 있어?
나… 난 방금 그 모퉁이에——
앗!!
쾅——
루시아가 돌아보자 니아가 있는 쪽에 옅은 푸른빛이 번쩍였고, 니아의 몸이 데이터 조각에 휩싸였다. 시스템에서 탈락 판정을 내린 신호였다.
저 멀리 고지대에서 그림자 하나가 총구를 거두었다.
한 명.
오필리아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 몸을 돌려 동쪽 폐허를 따라 루시아 팀의 군기가 꽂혀 있는 북쪽으로 계속 나아갔다.
아델라이드, 오필리아가 그쪽 후방으로 이동 중이야. 군기가 위험해.
나도 봤어. 지금 기지를 옮기는 중이야.
깃발에 손대지 못하게 막아.
알겠어.
아델라이드는 2층 창문에서 뛰어내렸다. 계단을 내려가며 곁눈질로 살피니, 오필리아는 이미 깃발 구역에 빠르게 접근하고 있었다. 이전의 모든 사격망을 완벽하게 우회한 탁월한 경로 선택이었다.
아델라이드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한편, 루시아는 청팀의 깃발만 빼앗으면 모든 게 끝난다는 판단에, 홀로 적진을 향해 돌진했다.
하지만 그 익숙한 실루엣이 여전히 길을 막고 있었다.
두 사람은 엄폐물을 사이에 두고 사격과 기동을 반복하며, 서로 맞부딪칠 때마다 날카로운 쇳소리를 내는 두 자루의 비수 같았다.
루시아가 돌파를 시도할 때마다 [player name]은(는) 루시아가 지나야 할 길목을 정확히 가로막았고, 상대가 압박을 가할 때마다 루시아는 순식간에 새로운 사격 각도를 찾아내 녀석을 밀어냈다.
루시아는 살짝 기쁜 마음이 들었다. 상대는 정말 그녀의 움직임을 따라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 오필리아는 이미 홍팀 군기 근처에 도달해 있었다.
깃발은 탁 트인 개활지 한가운데에 꽂혀 있었고 주변엔 엄폐물 하나 없이 시야가 뻥 뚫려 있었다. 누구든 접근하면 사격망에 고스란히 노출되도록 루시아가 일부러 고른 위치였다.
하지만 루시아는 없었고, 아델라이드도 고지대에 없었다.
겨우 이거야? 너무 쉽잖아?
깃발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가던 오필리아의 손가락이 깃대에 닿으려던 찰나…
발소리가 들렸다.
타앗!
오필리아가 미처 눈치챌 겨를도 없이, 측면 폐허 모퉁이에서 아델라이드가 놀라운 속도로 뛰쳐나왔다.
오필리아가 본능적으로 총을 들어 올렸고 아델라이드 역시 동시에 총구를 겨누었다. 둘은 거의 같은 순간에 방아쇠를 당겼다.
두 발의 총알이 허공을 갈랐다.
오필리아의 총알은 아델라이드의 어깨를 스치며 빗나갔고, 아델라이드의 총알은 오필리아의 총 개머리판을 명중시켜 소총을 날려버렸다.
!
오필리아의 총은 날아갔지만, 깃발은 바로 뒤 한 걸음 거리에 있었다.
몸을 돌려 손을 뻗는 순간…
어림없지.
아델라이드는 자신의 총마저 내던진 채 포탄처럼 오필리아에게 몸을 날렸다. 둘은 동시에 바닥에 쓰러져 반 바퀴를 뒹굴었고, 오필리아의 손끝은 깃대에서 불과 한 치 떨어진 곳에 있었다.
쳇!! 놔! 이거 안 놔!
아델라이드는 아무 말 없이 온몸으로 오필리아를 짓누르며, 오른손으로 허리춤에 차고 있던 홀로그램 수류탄의 안전핀을 뽑았다.
잠깐만… 너 미쳤어?!
연습 규정 제3조. 수류탄 폭발 반경 내의 모든 개체는 전사로 판정한다.
이 와중에 규정을 줄줄 읊고 자빠졌네!!
청백색 섬광이 둘을 집어삼켰고, 바닥에 뒤엉킨 신체 위로 데이터 스트림이 휘몰아쳤다.
너… 너!!
언제까지 내 위에 엎어져 있을 건데?! 당장… 비켜!
다음번엔! 다음번엔 내가 꼭 널 먼저 박살 내줄게!
아델라이드는 치마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어내더니, 차가운 기계처럼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다음 대결을 기대할게.
이제 훈련장에 남은 "생존자"는 루시아, [player name], 조앤 셋뿐이었다.
루시아의 판단은 명확했다. [player name]이(가) 자신의 모든 시선을 끌고 있으니 남은 건 조앤뿐이었다.
루시아는 기습하는 척하며 엄폐물 사이를 틈타 [player name]와(과)의 교전 구역을 벗어났고, 재빠르게 청 팀 군기가 있는 방향으로 파고들었다.
군기 앞 엄폐물 뒤에 잔뜩 움츠려 있던 조앤은 조금씩 가까워지는 발소리를 들었다.
[player name]이(가) 그랬어. 그녀들이 쳐들어오면 도망치라고…
하지만 깃발이 바로 여기 있는데…
입술을 꽉 깨문 조앤이 소총을 세게 쥐었다.
…
골목 모퉁이에서 루시아가 모습을 드러냈다. 조앤이 거의 동시에 총을 쏘았지만, 총알은 루시아의 발 앞 50센티미터 바닥에 꽂힐 뿐이었다.
속도를 늦추지 않은 루시아가 몸을 틀어 두 번째 총알을 피하더니, 한 손으로 소총을 들어 올려 조앤을 향해 총구를 겨누었다.
조앤은 두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
하아, 역시 난 이런 건 적성에 안 맞나 봐.
훈련장에는 이제 둘만 남았다.
청팀 군기가 루시아의 등 뒤 불과 10여 미터 거리에 있었지만, 루시아는 깃발을 뽑지 않았다.
[player name]이(가) 바로 눈앞에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
두 사람은 다시 총을 맞대었다. 이번에는 망가진 차량도 중간에 없고, 피할 수 있는 골목도 없었다.
둘은 동시에 방아쇠를 당겼다.
둘은 측면으로 동시에 몸을 날렸고, 총알은 서로의 옷자락을 스치며 날아갔다. 이어 두 번째, 세 번째 사격이 연달아 터졌고, 호흡을 맞춘 듯 이어지는 교차 사격이 탁 트인 공간 위로 연속된 불꽃을 흩뿌렸다.
루시아가 거리를 좁히며 콘크리트 덩어리를 뛰어넘는 순간, [player name]이(가) 반대편에서 튀어나오며 둘은 정면으로 충돌할 뻔했다.
두 사람은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동시에 방아쇠를 당겼지만…
찰칵…
둘 다 총알이 바닥난 상태였다.
!
루시아는 무기를 바닥에 내던지고 왼쪽 다리로 하이킥을 날렸다.
[player name]은(는) 고개를 틀어 피한 뒤 그 반동으로 팔꿈치 공격을 날렸다. 그러자 루시아는 이를 쳐내고 상대의 팔뚝을 잡아채 근접 메치기를 시도했지만...
이에 [player name]은(는) 오히려 무게중심을 낮추고 루시아의 손목을 잡아당겨 힘을 흘려보냈다. 서로 팽팽히 당기던 둘은 한 걸음씩 물러났다.
루시아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씰룩거렸다. 웃는 건지 이를 악무는 건지 분간할 수 없었다.
루시아가 다시 돌진했다.
루시아의 공격은 맹렬하고 매서워 망설임 없는 맹수와도 같았다. 반면 [player name]의 방어와 반격은 정확하고 빈틈없어서, 매번 루시아의 타격이 닿기 직전에 그 힘을 완벽히 흘려냈다.
실력이 제법이네!
루시아가 날린 앞차기를 [player name]이(가) 발목을 붙잡아 막아냈다. 루시아는 그 힘을 이용해 외발로 뛰어오르며 다른 다리로 상대의 머리를 후려치려 했다.
그러자 [player name]이(가) 손을 놓고 몸을 뒤로 젖혀 아슬아슬하게 피했지만, 루시아는 착지의 반동을 이용해 회전 킥을 날려 지휘관을 바닥에 쓰러뜨렸다.
하지만 [player name]은(는) 일어나는 대신 옆으로 굴러 루시아가 뻗은 손목을 잡아챘고, 그녀가 덤벼드는 관성을 이용해 밑으로 끌어내렸다.
루시아는 순간 무게중심을 잃고 바닥에 등을 세게 부딪쳤다.
너——!
루시아가 고개를 들어 코앞에 있는 얼굴을 바라보았다. 땀에 젖은 앞머리, 헐떡이는 숨소리, 그리고 평소보다 훨씬 더 반짝이는 두 눈동자가 보였다.
루시아는 잠깐 멍해졌다가 이내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꿈 깨시지.
허리와 배에 순간적으로 힘을 준 루시아가 짓눌린 물고기처럼 몸을 비틀었다.
그리고 잡혀 있던 손으로 오히려 [player name]의 손목을 움켜쥐고는, 다리로 휘감아 한 바퀴 구르자, 둘의 위치가 순식간에 뒤바뀌었다.
위로 올라탄 루시아가 [player name]의 양어깨를 짓누르며 내려다보았다. 헐떡이는 숨 사이로 땀에 젖은 머리카락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지금은 어때?
그때, 루시아의 손에 어디서 났는지 모를 개머리판이 들려 있었다. 우연의 일치인지, [player name] 역시 바닥의 고철 더미에서 쇠막대 하나를 거의 동시에 뽑아 들었다.
하!
쇳덩이가 부딪치는 소리가 폐허에 날카롭게 메아리쳤다. 루시아는 개머리판으로 막아낸 뒤 후려쳤고, [player name]은(는) 쇠막대로 쳐내고 찔러댔다. 임시 무기 두 자루가 맞붙을 때마다 불꽃이 튀었다.
개머리판은 우그러지고 쇠막대는 휘어졌다. 둘은 거의 동시에 무기를 내던지고 맨주먹으로 맞붙었다.
루시아의 오른 주먹이 [player name]의 양손에 잡히자, 루시아는 즉시 왼손으로 상대의 어깨를 붙잡았다. [player name]이(가) 고개를 숙여 어깨로 막아내고 반대로 루시아의 허리를 움켜쥐었다. 둘은 뒤엉킨 채 팽팽하게 맞서며 누구 하나 밀리지 않았다.
아직도 항복하지 않을 생각이야?
둘은 온몸이 바들바들 떨릴 정도로 힘을 주고 있었다. 멀리 떨어진 관전 구역 난간에선 이미 퇴장한 신입생 몇몇이 옹기종기 모여 목을 쭉 빼고 구경 중이었다.
아직도 싸우고 있어?
엄청나다. 둘이 되게, 되게…
되게 뭐?
조앤이 한참을 고민하다 마침내 어울리는 단어 하나를 떠올렸다.
음… 잘 어울린다고 할까?
뭐라고?
훈련장 한가운데에서 루시아가 뒤차기를 날리며 [player name]와(과) 함께 바닥에 세차게 나뒹굴었다. 둘은 한 바퀴, 또 한 바퀴 구르더니 동시에 멈췄다.
루시아가 위에서 한 손으로 상대의 가슴을 짓눌렀고, 상대 역시 루시아의 손목을 꽉 쥐고 있어 언제든 루시아를 끌어내릴 수 있는 상태였다.
그때, 안전 프로토콜 경고등이 붉은색으로 바뀌었다.
무거운 발소리가 둘의 귓가에 울렸다.
그만!
두 사람은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3미터쯤 떨어진 곳에 교관이 팔짱을 낀 채 서 있었고, 표정은 싸늘하게 굳어 있었다.
교관은 두 사람을 보지 않았다. 시선은 바닥에 흩어진 총신 부품, 부러진 개머리판, 구부러진 금속 조각들, 그리고 두 사람의 팔꿈치와 얼굴에 난 진짜 찰과상에 머물러 있었다.
홀로그램 훈련 지급 장비가 뭐였지?
…
훈련용 소총, 탄창 3개, 섬광탄 1개, 수류탄 1개다.
그 외에 다른 게 또 있었나?
둘은 거친 숨소리마저 애써 억누르는 듯 동시에 침묵에 빠졌다.
그럼, 바닥에 뒹구는 이 박살 난 총열과 개머리판은 대체 뭐지?
훈련장 한쪽 모니터링 단말기로 걸어간 교관이 리플레이 영상을 띄우고는 뉴스라도 읽듯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청팀 오필리아. 훈련 도중 통신 채널에 미승인 도발성 발언 3회.
멀리 관전 구역에 있던 오필리아가 깜짝 놀란 고양이처럼 흠칫 굳어 버렸다.
홍팀 니아. 목표물 식별 없이 비전투 구역으로 의심되는 곳을 향해 조준 없는 사격 1회.
홍팀 아델라이드. 수류탄 폭발 전 규정된 3초 지연 경고를 생략했으며, 폭발 거리가 안전 반경 미달.
관전 구역에서 꼿꼿하게 서 있던 아델라이드의 얼굴 근육이 미세하게 씰룩였다.
청팀 조앤. 교전 중 지정 엄폐 구역을 이탈하여 통행금지 구역인 C동 진입.
그… 그건 더 안전한 엄폐물을 찾으려던 거였는데요…
교관의 시선이 날아들자, 조앤의 목소리는 기어들어 갔다.
이윽고 교관은 아직도 훈련장 중앙에 쓰러져 있는 둘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홍팀 루시아, 청팀 [player name]…
지급된 장비를 분해해 미승인 무기로 개조했고, 안전 프로토콜 경고등이 붉은색으로 바뀌었는데도 교전을 멈추지 않았다.
전원 집합.
교관은 잠시 말을 멈췄고, 목소리에는 어떤 감정의 동요도 느껴지지 않았다.
퇴장 후 관전 중이던 4명을 포함해 6명 전원이 연병장 중앙으로 불려 나갔다.
전원 팔굽혀펴기 500회. 단 한 명이라도 멈추면 전원 다시 시작한다.
잠깐만요… 5, 500번이요?
지금 당장 실시한다.
하나.
여섯 개의 손바닥이 동시에 훈련에 닿았다.
조앤은 여덟 개째부터 팔이 후들거리기 시작했다. 입술을 꽉 깨물며 버텼지만, 안경은 땀방울을 타고 자꾸만 미끄러져 내려왔다.
오필리아의 자세는 꽤 정석적이었지만, 이마엔 이미 촘촘한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오필리아가 옆에 있는 아델라이드를 쏘아보았지만, 아델라이드는 기계처럼 일정한 속도로 묵묵히 팔굽혀펴기를 이어가고 있었다.
야, 너… 힘들지도 않아?
체력 훈련 중 대화로 힘을 낭비해선 안 돼.
으윽… 진짜 한 대 더 패주고 싶네.
쉰하나.
돌연 조앤의 팔에 힘이 쫙 빠지더니 안경이 한쪽으로 비뚤어진 채 그대로 바닥에 엎어졌다.
한 명이 멈췄으니, 전원 다시 시작한다.
네?! 교관님, 농담하시는 거죠!!
미… 미안!
세 번째 시도, 모두가 150회를 넘겼고, 오필리아가 183회째에 한쪽 팔에 힘이 빠지며 무릎을 바닥에 찧었다.
쳇!
멈췄으니, 다시.
오필리아가 주먹으로 바닥을 내리쳤고, 손톱 밑엔 먼지가 가득 꼈다.
벌써 몇 번째인지 셀 수도 없었다. 바닥에는 땀방울이 흩뿌려졌고, 여섯 명의 숨소리가 뒤섞여 낡은 풀무질처럼 거칠었다.
조앤의 안경은 이미 바닥에 떨어진 지 오래였다. 눈앞이 보이지 않아 그저 감각에 의지해 한 번 한 번 악으로 버티고 있었다. 눈물과 땀이 뒤섞여 손등에 뚝뚝 떨어졌지만, 어느 게 눈물인지 땀인지 분간할 수조차 없었다.
오필리아도 더는 말이 없었다. 자세를 유지하는 데 모든 힘을 쏟아붓느라 얼굴은 잔뜩 일그러졌고, 턱을 타고 뚝뚝 떨어지는 땀방울이 바닥에 짙은 점들을 그려냈다.
아델라이드는 여전히 완강하게 동작을 이어갔다. 속도는 눈에 띄게 느려졌지만, 굽혔다가 펴는 동작 하나하나는 흐트러짐 없이 정석 그대로였다.
사백오십.
하아… 나… 도저히…
이를 꽉 깨물고, 팔에 힘을 줘, 절대 풀지 말고.
으으!
사백아흔.
여섯 사람의 그림자가 머리 위 조명에 의해 길게 늘어나, 훈련장 바닥에 여섯 개의 흔들리는 기둥처럼 드리워졌다.
사백아흔아홉.
오백.
오백이라는 외침과 동시에, 니아가 가장 먼저 쓰러졌다.
곧이어 조앤도 주저앉았다. 안경은 어느새 1미터 밖으로 굴러가 있었지만, 주울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뭍에 오른 물고기처럼 옆으로 누워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오필리아는 무너지는 꼴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였는지 악바리같이 2초를 더 버텨냈다. 그러고는 뒤쪽 폐허 벽에 기댄 채 고개를 젖히고 거칠게 가슴을 들썩였다. 땀에 젖은 머리카락이 뺨에 엉겨 붙은 것이 말 그대로 엉망진창이었다.
아델라이드가 가장 마지막으로 움직임을 멈췄다. 천천히 무릎을 꿇고 앉은 그녀는 두 손으로 무릎을 짚고 고개를 푹 숙인 채 가늘게 어깨를 떨었다. 몇 초간의 침묵 끝에 그녀가 입을 열었다. 쉰 목소리라 거의 알아듣기 힘들었다.
보고, 전원 완료했습니다.
교관은 아무 대꾸 없이 훈련장 중앙을 응시했다. 여섯 명 중 네 명은 쓰러졌고, 남은 두 명은 아직 바닥에 엎드려 있었다.
…
루시아의 팔이 파들파들 떨렸고, 턱을 타고 쉴 새 없이 흘러내린 땀방울은 손등 위로 뚝뚝 떨어졌다.
그 후, 그녀는 몸을 무릎 자세로 밀어 올리고 잠시 멈춘 뒤, 한쪽 다리를 밟고 잠시 멈추고, 다른 쪽 다리도 밟으며 흔들리면서, 자신을 바닥에서 들어 올렸다.
모두가 경악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가운데, 루시아가 마침내 우뚝 섰다. 뜨거운 불에 달궈져 휘어진 쇠막대처럼 무릎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손등으로 얼굴의 땀을 훔쳐낸 루시아가 고개를 들었다.
루시아의 곁에서 [player name] 역시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루시아와 똑같은 순서로 무릎을 꿇고, 한쪽 무릎을 세워 버틴 뒤 다른 다리에 힘을 싣고 비틀거리며 간신히 무게중심을 잡아 올렸다.
루시아는 자신과 다를 바 없이 엉망인 모습으로 서 있는 상대방을 쳐다보았다. 땀에 젖은 머리카락, 터진 입술, 덜덜 떨리는 두 다리. 자신과 완벽히 똑같은 모습이었다.
[player name] .
루시아가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만큼 아주 작은 목소리로 지휘관의 이름을 다시 한번 읊조렸다.
다음엔 내가 이길 거야.
불쑥 건넨 루시아의 선전포고에 지휘관은 잠깐 멈칫하더니 미소로 화답했다.
루시아는 더 이상 대꾸하지 않았다. 홀로그램이 흩어지며 부서지는 빛의 파편 속에서 자신과 동갑내기인 이 동기를 다시 찬찬히 뜯어보며 슬며시 입꼬리를 올렸다.
하.
오랫동안 혼자 앞서 달리다 문득 옆을 봤을 때 누군가의 그림자가 나란히 있는 것처럼——이렇게 마음이 가벼웠던 게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