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리올라는 사포로 금속을 긁는 듯한 건조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니모는 문틀에 기댄 채 실내를 채운 푸른 불빛을 응시하며, 피곤한 듯 미간을 짚었다.
카오스 오염의 확산 속도가 빨라지고 있어. 유리안의 추측대로라면 기지의 역장은 기껏해야 한 달 정도 버틸 수 있을 거야.
알아. 이제 출발해야지.
루시아는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이야? 넌… 아니다, 우리 모두가 고민해 봐야 될 것 같아.
니모는 무심코 쓰려던 표현을 바로잡았다. 언제부턴가, 그 아이는 모두의 걱정거리가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
리올라는 고개를 숙인 채, 책상 위에 놓인 무언가를 무의식적으로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낡은 천으로 만든 초록색 개구리 인형이었는데, 삐뚤빼뚤한 바느질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초록색 개구리 인형은 요 며칠 밤마다 리올라가 몰래 만든 것이었다. 루시아가 잠들고 나면 곁에 앉아 단말기 스크린의 미세한 불빛에 의지한 채 한 땀 한 땀 꿰매다 바늘에 손가락을 여러 번 찔리기도 했다.
우리가 떠나면 분명 따라오려고 할 거야.
리올라는 그 상황을 잠시 상상해 보더니, 괴로운 듯 두 눈을 감았다.
루시아가 우리 뒤를 쫓아오는 걸 보는 게 두려워. 니모, 우린 정말 미움받아 마땅한 어른들이야.
어떻게 할 셈인데? 딱히 방법이 없다면, 난 내 방식대로 할 생각이야.
리올라는 손에 든 초록 개구리를 뒤집어 뒷면을 살폈다. 꼬리 쪽 꿰맨 자리의 매듭이 썩 예쁘지 않았다.
괜찮아. 내가 처리할게. 루시아는… 이야기 듣는 걸 좋아하는 착한 아이니까.
이번 이별의 끝은 선의가 담긴 이야기로 맺어주자.
루시아, 정말 대단하네. 금방 배우는걸.
루시아는 고개를 숙인 채 계속 글씨를 썼다. 한 줄을 다 쓰고는 잠시 멈칫하더니 고개를 들었다.
리올라 언니, 오늘은 왜 이렇게 일찍 나왔어요? 평소에는… 날이 어두워져서야 나왔잖아요.
업무를… 일찍 끝냈거든.
리올라는 옅게 미소 지으며 루시아 이마의 잔머리를 쓸어 넘겨주었다.
언니, 손이 왜 그래요?
리올라는 무심코 오른손을 등 뒤로 숨겼다. 손끝에는 바늘에 찔린 작은 자국이 여럿 있었다.
실험 장비를 잘못 만져서 그래. 괜찮아.
루시아는 리올라를 2초 남짓 빤히 쳐다보더니 입술을 꾹 다물었다. 그러고는 다시 고개를 숙인 채 더는 묻지 않았다.
코어 작업 구역
저녁
기체에 열쇠를 이식하는 프로그램은 다 준비됐어. 오늘 밤에 이식하고 내일 새벽에 출발한다.
알았어. 참, 루시아한테는 뭐라고 했어?
아직.
리올라는 무언가 깊은 고민에 빠졌다.
…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고, 머리 위의 형광등에서 모깃소리 같은 윙윙거리는 소리만 들려왔다.
니모는 구석에 기대어 있었다. 엊그제 다친 팔의 붕대 위로는 여전히 검붉은 피가 배어 나왔다. 니모는 리올라의 표정을 살피더니 시선을 내리깔았다.
시간이 얼마 없어, 리올라.
알아.
리올라는 눈을 뜨고 심호흡을 했다.
오늘 밤… 마지막으로 루시아와 하룻밤만 같이 있게 해줘.
루시아.
네?
내일… 언니는 모두와 함께 먼 길을 떠나게 될 거야.
…
"열쇠"를 완성했는데, 그걸 아주 멀고 먼 곳으로 보내 줘야 해. 그런데 꼭 직접 가져가야만 한단다.
루시아는 여전히 말없이 리올라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야.
리올라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지만, 그녀는 혀끝을 깨물며 억지로 울음을 삼켰다.
우리가 "열쇠"를 무사히 전달하고 나면, 분명 모두가 함께 이 세계를 고쳐낼 수 있을 거야.
목구멍에 무언가 걸린 듯 리올라의 목소리는 한 마디 한 마디 아주 느릿했다.
그러니까, 루시아. 기지에서 우리를 기다려줘.
밥 잘 먹고, 잠도 잘 자고, 민들레도 잘 돌보면서 우리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는 거야.
알았지?
네, 알겠어요.
루시아는 미리 대답을 준비해 둔 것처럼 아주 빠르게 대답했다.
…
잘 자, 루시아.
여느 때의 밤 인사보다 더 작고 가벼운 목소리였다.
네.
잘 자요, 리올라 언니.
리올라가 먼저 눈을 감았다. 여전히 오른손으로 루시아의 등을 쓰다듬으며 조용히 루시아의 숨소리에 귀 기울였다. 하지만 시간이 꽤 흘렀음에도 아이의 숨소리는 고르게 변하지 않았다.
루시아는 아직 자는 척할 줄 몰랐다.
…
서로 쫓고 쫓기며 뒷마당의 폭신한 잔디 위를 뛰어다녔다. 오후 햇살은 여전히 따스한 귤빛이었다.
독수리가 왔다, 독수리가 왔어! 다들 도망쳐.
흐흐… 이 병아리 녀석들, 어떻게 잡나 두고 봐라!
리올라는 두 팔을 벌린 채 웃고 소리치며 잔디밭을 달렸고, 그녀의 뒤로는 깔깔대며 웃는 아이들이 무리 지어 있었다.
잡았다!
리올라는 웃으며 맨 뒤에서 뛰어가던 남자아이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리올라의 손끝이 하얗게 바랜 셔츠에 닿은 순간, 품에 안겼던 부드러운 감촉은 순식간에 차가운 허무로 변해버렸다.
어?
리올라는 멈칫했지만, 놀이의 관성이 그녀를 앞으로 잡아끌었다.
너도 잡았다!
리올라는 몸을 돌려 양 갈래머리를 한 여자아이를 붙잡으려 했다.
하지만 그 여자아이는 손끝에 닿는 순간 깨진 도자기처럼 부서져 내렸다.
어디로 간 거지?
…
리올라는 손을 뻗어 그 그림을 만지려 했다. 하지만 손끝이 벽에 닿는 순간 도화지는 재가 되어 벽돌 틈으로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그러고는 소리가 들려왔다.
언니, 그 영웅의 이름이 뭐예요?
그 영웅은 아직 이름이 없단다.
누나… 너무 아파요.
잭… 조금만 참아!
언니… 우리 좀 구해줘요.
에이미…
목소리가 점점 많아지더니 점차 멀어졌다. 그러다 무어라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는 미세한 윙윙거림으로 변했다. 마치 수많은 사람이 멀리서 동시에 같은 말을 내뱉는 것 같았다.
그 소리는 시간이 흐르며 점점 아득해지더니, 마침내 아무것도 들리지 않게 되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리올라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서 있었다.
그리고 저 멀리 앞쪽에서 작은 빛 하나가 켜졌다.
아주 작은 한 줄기 빛이었다. 리올라가 들려준 이야기처럼, 무한한 어둠 속에서 스스로 빛나는 외로운 별 하나같았다.
그것은 조금 전까지 리올라 곁에 누워있던 아이였다.
루시아는 빛 속에 웅크리고 잠들었다.
…
리올라는 한참 동안 루시아를 바라보았다.
리올라는 주머니에서 꿰매 둔 개구리 인형을 꺼내 루시아의 손가락 옆에 살며시 내려놓았다.
리올라의 손가락은 루시아의 머리 위에서 한참을 머무르며 망설였지만, 결국 닿지는 못했다.
미안해, 루시아.
리올라는 천천히 일어나 돌아선 뒤, 어둠을 향해 발걸음을 내디뎠다.
누군가는 동화 속의 "영웅"이 되어야만 해.
황홀경 속에서 그 그림들이 서서히 나타나는 듯했다. 그림들은 리올라의 발밑에서 소리 없이 산산조각 나 미세한 빛무리로 변했고, 그것들이 공중으로 떠오르며 길을 만들어냈다.
리올라는 출발해야만 했다.
그렇게 리올라가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그림 하나가 바스러졌고, 빛무리가 피어올랐다.
앞에는 끝없는 어둠이 펼쳐져 있었고, 뒤에는 점점 작아지는 빛이 남아 있었다.
리올라의 손이 문손잡이에 닿았다.
리올라 언니.
리올라는 걸음을 멈췄다.
루시아?
루시아가 복도 반대편 끝에 서 있었다. 맨발에 머리는 헝클어진 채 초록색 인형을 품에 안고 있었다.
걱정하지 마. 역장 소리가 좀 이상해서, 작업 구역에 가서 점검 좀 해봐야겠어.
리올라는 그 말을 하며 고개를 돌렸고, 시선은 루시아의 눈에서 어깨로 비껴갔다.
아주 미세한 움직임이었지만, 루시아는 그 모습을 똑똑히 눈에 담았다.
루시아는 리올라의 속눈썹이 떨리는 것과 옷자락을 꽉 쥔 손가락 끝이 자신도 모르게 하얗게 질려 떨리는 모습을 보았다.
어서 돌아가서 자. 금방 확인하고 올 테니까 조금만 기다리면 내가…
괜찮아요. 리올라 언니.
루시아는 조심스럽게 다가와 손을 뻗었다. 그러고는 자신의 두 손을 리올라의 손등 위에 아주 부드럽게 얹었다.
리올라의 손은 차가웠고, 한계까지 당겨진 활시위처럼 떨리고 있었다.
루시아는 리올라에게 힘과 지지가 되어주고 싶다는 듯 말없이 두 손을 천천히 오므려 자신보다 훨씬 큰 리올라의 손을 감쌌다.
루시아?
다 알아요, 리올라 언니.
루시아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이 기지에서 오랜 날들을 보내며 어른들에게서 배운 침착한 말투… 즉, 어른들의 말투였다.
리올라 언니는 그동안 줄곧 힘들었잖아요.
실험실 불은 매일 밤 켜져 있었고, 어쩔 땐 한밤중까지 깜빡거렸죠. 그리고 언니 목소리가 방 안까지 다 들렸는걸요.
혼자 울 때면 문을 닫아두었지만,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불빛이 일렁였어요.
리올라는 입술을 꽉 깨물었고, 턱 근육이 경직되었다.
헤가 이모가 떠났을 때, 언니는 돌아와서 이모 물건을 안고 밤새도록 앉아 있었잖아요. 유리안 삼촌이 떠난 날에는 통신실에 한참 머물며 스크린만 뚫어져라 쳐다봤고요.
언니는 실험실에서 나올 때마다 절 보며 웃어줬지만, 뒤돌아설 때면 웃음이 사라지고 너무도 지친 표정을 지었어요.
…
리올라 언니는 무슨 일이든 혼자서 다 짊어지려고 했어요.
루시아의 손에 조금 더 힘이 들어갔다.
니모 오빠도, 크리스 아저씨도, 헤가 이모도, 유리안 삼촌도 마찬가지예요. 다들 각자…
루시아는 적당한 단어를 고르려는 듯 잠시 멈칫했다.
모두 충분히 노력하셨어요.
그 누구보다 더 치열하게요.
리올라는 루시아의 눈동자와 마주치는 순간, 아무것도 숨길 수 없게 되리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고개를 돌릴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그러니까…
저는 말 잘 듣고 여기 있을 테니, 다녀오세요.
루시아의 키는 쭈그려 앉은 리올라의 어깨에도 미치지 못했지만, 루시아는 리올라의 손을 놓고 뒤로 한 걸음 물러나 최대한 허리를 꼿꼿이 폈다.
집은 제가 잘 돌보고 있을게요!
민들레에 물도 제가 줄 거고, 정수 장치 필터도 3일에 한 번씩 가는 법을 배웠어요. 식량은 세 번째 찬장에 있는데, 제가 세어봤더니 꽤 오래 먹겠더라고요.
크리스… 크리스 아저씨가 창고에 있는 무기 다루는 법도 알려주셨어요. 아직 레이저 총을 쏴보진 않았지만 할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역장 발생기에서 경보가 울리면 오른쪽 손잡이를 왼쪽으로 두 칸 돌리라고, 니모 오빠가 예전에 알려줬어요.
루시아는 손가락을 하나씩 꼽으며, 목록을 달달 외우듯 손가락으로 톡톡 박자를 맞췄다.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고 다녀오세요.
저는…
목소리에 콧소리가 살짝 섞이자, 루시아는 돌연 말을 멈췄다.
집을 잘 돌보고 있을게요. 하지만…
루시아는 있는 힘껏 온화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꼭 일찍 돌아오셔야 해요.
루시아가 그 말을 내뱉는 순간, 그녀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하지만 루시아는 울지 않고 버텼다. 마치 무언가와 씨름이라도 하듯 입술을 꽉 다물고 턱에 힘을 주었다.
제가 매일… 민들레에 물을 주면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루시아의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모두 돌아올 때쯤엔… 새로운 민들레꽃이 피어 있을 거예요. 노란색의 작은 꽃이요.
루시아가 아주 큰 소리로 코를 훌쩍이고는 소매로 빠르게 눈가를 훔쳤다.
그때가 되면 다 같이 보러 가요.
그녀는 "먼 길을 떠난다"는게 무슨 의미인지 알고 있었다. 아빠도 "먼 길"을 떠난 적이 있고, 엄마도 "먼 길"을 떠난 적이 있으니, 당연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루시아는 웃으며 작별 인사를 건네야 했다. 그것은 어른들이, 즉 믿음직한 어른들이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믿음직한 어른은 작별할 때 웃으며 "조심해서 다녀와", "일찍 돌아와"라고 말한다. 그리고 등을 돌린 뒤에야 눈물을 흘렸다.
루시아는 그런 모습을 수없이 보아왔다.
그러니까, 꼭…
눈물 한 방울이 속눈썹에서 떨어지자, 루시아는 황급히 손을 들어 훔쳐냈다. 하지만 곧이어 두 번째 눈물이 떨어질 듯 맺혔다.
꼭… 돌아오셔야 해요.
루시아의 목소리가 심하게 떨리며 꽉 다문 이 사이로 간신히 새어 나왔다.
…
리올라는 마침내 고개를 돌려 필사적으로 미소를 지어 보이려는 루시아의 표정을 마주했다.
리올라는 그 동화 같은 이야기들처럼, "금방 돌아올게."라는 거짓말이 아이 한 명쯤은 속일 수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루시아는 처음부터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어른들에게는 자신들의 거짓말을 믿어줄 누군가가 필요하다는 사실조차 알고 있었다.
루시아!
리올라가 입을 열자, 여태껏 낸 목소리 중 가장 큰 소리가 터져 나왔다.
미안해. 루시아. 내가…
굵은 눈물방울이 리올라의 눈에서 걷잡을 수 없이, 속절없이 쏟아졌다.
리올라는 두 팔을 벌려 루시아의 작은 몸을 꼭 끌어안았다.
봐봐, 나도 울기 시작했잖아. 어른도 이렇게 우는데, 너도 울어도 돼. 억지로 참을 필요 없어. 이제는 정말 참지 않아도 돼. 루시아!
…
미안해. 정말 미안해! 우리 어른들이 제 몫을 다하지 못해서, 네가 억지로 어른인 척하게 했어.
그동안 우릴 보살펴줘서 고마워.
리올라의 품에 얼굴을 파묻은 루시아의 표정이 천천히 일그러지더니, 이내 울음보가 터질 듯 잔뜩 구겨졌다.
이제 마음껏 어리광을 부려, 루시아. 떼를 쓰고, 고집부리고, 화를 내도 돼. 뭐든 다 괜찮아. 억지로 어른이 된 아이가 두려움조차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 모습은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아.
루시아의 코끝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저… 저기…
우리가 지금까지 해온 모든 노력은, 네가 그저 자유로운 아이로 살 수 있게 해주기 위해서였어.
루시아는 거칠게 흐느끼더니, 마침내 "와락"하고 목 놓아 울기 시작했다.
전… 그런 파일 같은 건 잘 못 읽겠어요. 무슨 "세피라 탑승 허가", "현 계획 신호 협의" 같은 거요. 어려운 말들이라 너무 무서웠어요. 제가 이해할 수 있는 동화 같은 게 없어서 너무 무서웠다고요.
민들레 씨앗이 며칠째 싹이 트지 않아서 무서웠어요!
처음에 니모 오빠가 절 무시했을 때 무서웠어요!
헤가 이모와 유리안 삼촌이 떠났을 때 무서웠어요!
크리스 아저씨가 언니를 찌르려고 했을 때 정말 무서웠어요!
다들 미쳐버릴까 봐 무서워요! 이 세계도, 이곳도 너무 무서워요.
리올라 언니… 무서워요, 무섭다고요!
루시아가 통곡했다.
다들 계셨을 땐 하나도 안 무서웠는데… 이제 다들 간다고 하시니…
흑흑…
리올라의 품에 안긴 루시아의 어깨가 심하게 들썩였다. 루시아의 목소리는 리올라의 어깨에 파묻혀 제대로 들리지 않았지만, 리올라는 가슴팍이 빠르게 젖어 드는 것을 느꼈다.
리올라 역시 큰 소리로 울며 루시아를 꽉 끌어안고, 한 손으로는 루시아의 뒤통수를 꾹꾹 힘주어 쓰다듬었다.
아주 오랜 시간이 흘렀다. 더 이상 짜낼 눈물조차 마른 뒤에야 비로소 작별이라 부를 수 있을지도 몰랐다.
리올라의 눈물이 루시아의 머리마저 적셨지만, 리올라는 닦아내지 않았다.
미안해. 꼭 빨리 돌아올게.
리올라의 목소리는 아직 떨리고 있었다.
돌아오면 다 같이 루나를 찾으러 가자.
민들레꽃 피는 것도 같이 보러 가자.
루시아는 리올라의 품에서 고개를 들지 않은 채,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리올라가 루시아의 품에 안긴 인형을 만지작거렸다.
참, 이것도 있어. 내가 만든 건데, 이름은 "바보 개구리"야.
바보 개구리요?
응, 되게 귀여운 만화 주인공이거든. 나중에 우리 돌아오면 다 같이 보자, 알았지?
네.
루시아는 심통을 부리며 마지못해 승낙했다.
내가 없을 땐, 이 녀석이 널 지켜줄 거야.
내가 곁에 있다고 생각하면서 이 녀석을 껴안고 자.
루시아는 그제야 고개를 들고 "바보 개구리"를 가슴팍으로 세게 끌어당겨 꽉 껴안았다. 마치 인형마저 사라져 버릴까 봐 두려워하는 듯했다.
민들레꽃이 피는 날, 카오스 오염이 다 사라지는 날이 오면.
리올라는 손을 뻗어 엄지손가락으로 아이의 눈물로 얼룩진 얼굴에 남은 마지막 눈물 자국을 지워주었다.
우리 함께 집으로 돌아가자.
네.
기다리고 있을게요.
어른들이… 한 입으로 두말하기 없기예요.
리올라는 마지막으로 루시아를 힘껏 끌어안았다.
리올라는 루시아가 이 포옹에 담긴 온도, 무게, 심장 박동, 옷에서 풍기는 옅은 민들레 향기까지 모든 것을 온전히 기억할 수 있도록 아주 오랫동안 끌어안았다.
그런 다음 리올라는 팔을 풀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뒤돌아섰다.
복도는 아주 길었다. 금속 바닥을 울리는 리올라의 발소리가 점차 멀어져 갔다.
리올라는 눈물을 꾹 참으며 끝내 뒤돌아보지 않았다.
복도 끝에는 니모가 벽에 기대어 기다리고 있었다. 니모는 말없이 무거운 시선을 던지고는 몸을 돌려 리올라와 나란히 기지 출구를 향해 걸어갔다.
출구에는 나머지 세 대원이 장비를 갖추고 대기하고 있었다. 다섯 개의 열쇠/세피라>에서 흘러나오는 빛이 대원들의 기체 안에서 미세하게 깜빡였다.
다섯 대원은 약속이라도 한 듯 마지막 문 앞에서 동시에 발걸음을 멈추었다.
잘 있어, 루시아.
선발대 전원이 심호흡한 뒤 발걸음을 내디뎠다.
그리고 기지 복도에는 루시아 혼자만 남게 됐다.
루시아는 맨발로 그 자리에 서서 바보 개구리를 품에 안은 채, 점차 멀어지며 흐릿해지던 발소리가 마침내 역장 발생기의 윙윙거리는 소리에 완전히 묻혀버리는 것을 가만히 듣고 있었다.
이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루시아는 고개를 숙여 품에 안긴 바보 개구리를 내려다보았다. 까만 단추 하나와 회색 단추 하나가 삐뚤빼뚤하게 루시아를 바라보고 있었다.
루시아는 그것의 팔을 다듬었다. 큰 쪽 팔은 조금 아래로 접고, 작은 쪽 팔은 조금 위로 뒤집어, 이렇게 보니 거의 같은 크기로 보였다.
그런 다음 인형을 안고 자신의 방으로 천천히 돌아갔다.
화단을 지날 때, 루시아는 잠시 멈춰 서서 민들레를 바라보았다.
몇 송이는 막 피어나려는 듯, 작은 꽃봉오리들이 줄기 끝에 오므린 채 매달려 있었다.
루시아는 쭈그려 앉아 그중 하나를 손가락으로 톡 건드렸다.
어서 꽃을 피워야 해.
루시아는 몸을 일으켜 "바보 개구리"를 꽉 끌어안고 방으로 들어갔다.
복도는 다시 조용해졌고, 역장 발생기의 낮고 묵직한 진동음만이 이 기지에서 여전히 뛰고 있는 유일한 심장 소리처럼 들려왔다.
화단의 민들레는 불빛 아래서 미세하게 흔들리며 소리 없이 자라나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