핏빛 카오스 오염이 밀물처럼 기지의 역장 밖을 짓눌렀다. 때로는 응고된 핏물처럼 짙었고, 때로는 옅고 붉은 안개처럼 희미해졌지만 단 한 번도 물러간 적은 없었다.
아득히 먼 돔 너머로 안개 지역의 균열이 맨눈으로 보일 만큼 빠른 속도로 점차 커지고 있었다.
그날, 헤가가 루시아를 의무실로 불렀다.
그리고 수술대 위에 기구들을 일렬로 늘어놓았다.
오늘은 관이 끊어진 곳을 처리해야 돼, 먼저 상처를 깨끗이 하고, 단면을 맞춘 뒤에, 복구용 실로 이 각도에서 감는 거야.
루시아가 대답하기도 전에, 그녀는 빠르게 한 번 시범을 보였다.
잘 배웠지?
네.
직접 해봐.
루시아는 방금 기억을 따라 한 번 해봤고, 몇 군데는 약간 꼬였지만, 대체로 제대로 했다.
다음은, 수복액 주사. 접합 부위를 찾아 한 마디 지점 위치 위로, 바늘을 비스듬히 꽂고, 밀어 넣는 속도를 안정적으로 해야 한다.
헤가가 다시 시범을 보였다.
잘 배웠지?
네.
해봐.
루시아는 바늘 틀을 들고 조준을 시도했지만, 꽂을 때 손이 살짝 떨렸다…
위치는 정확해, 시간이 되는대로 스스로 더 연습해, 다음——
그쯤 해둬, 헤가.
옆 침대에서 기운 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는데, 또다시 의식의 바다 폭주를 겪은 유리안이었다.
루시아는 아직 어린애잖아.
그래서?
그러니까 너무 몰아세우지 말라고.
지금 살아남는 법을 가르치고 있는데, 불만이라도 있어?
…
유리안은 한동안 침묵하더니, 간신히 떴던 눈꺼풀을 다시 감았다.
마음대로 해. 어차피 이젠 아무 희망도 없으니까.
유리안의 자조 섞인 말에 헤가가 하던 동작을 멈췄다.
지금 뭐라고 했어?
희망이 없다고 했어.
유리안이 천장을 응시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저 안개가 얼마나 짙은지 너도 잘 알잖아. 5미터 앞도 보이지 않는다고 하던데.
저 괴물 놈들은 하루가 다르게 차단막 안으로 밀고 들어오고, 몇 명이 나가서 온몸에 상처를 달고 돌아오는데 그게 무슨 소용이야? 차단막은 매일 안쪽으로 좁혀지고 있잖아.
난 낫기라도 했지. 기지에 앉아서 그 녀석들에게 말을 전해 주다가 이제는 그 말조차 제대로 못 전하고 있다고!
혼자 통신 기지국 노릇을 한다고 유세 떨지 마.
정보 과부하가 걸려서 또 폭주한 거잖아. 네가 왜 또 나한테 왔는지나 생각해 봐.
네가 있으니 아직 치료받을 곳은 있잖아.
헤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유리안도 상관하지 않고, 혼자 계속 설명하기 시작했다.
어제는 신호도 제대로 전하지 못했어. 경고가 10초 늦었고, 그 결과… 9번이 돌아오지 못했지.
그저께도 마찬가지였어, 내 중계 범위가 줄어 서쪽을 커버할 수 없었지. 결과적으로 서쪽이 뚫렸고, 크리스와 니모가 또 다쳤어, 며칠도 안 됐는데.
유리안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손가락은 침대 모서리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날 개조할 때 대체 왜 나에게 이런 능력을 준 걸까? 신호는 볼 수 있는데, 의식의 바다가 들끓으면 전달되지 않아… 요즘 머리가 정말 죽을 만큼 아파.
난 쓸모없는 중계소일 뿐이야.
헤가가 유리안에게 다가가 몸을 숙이고 내려다보았다.
할 말 다 했어?
다 했어.
그럼, 입 닥치고 가만히 누워 있어.
헤가는 돌아서서 수술대 앞으로 돌아와 루시아를 계속 가르쳤다.
그녀의 목소리는 의무실 안에서 계속 울렸고, 그녀의 의료 장비처럼 평온하고 정확했으며, 어떤 불필요한 것도 없었다.
침대에 누운 유리안은 눈을 감았다.
하지만 유리안의 손가락은 톡, 톡, 보이지 않는 버튼을 두드리기라도 하듯 여전히 침대 모서리를 매만지고 있었다.
유리안.
응?
네 의식의 바다 상태로는 연속으로 12시간 중계기에 연결했으면 최소 2시간은 쉬어야 해.
이제 네게 줄 약도 없으니까, 더 이상 무리하면 안 돼.
중계기에 연결하지 않을 거야. 그 녀석들이 개죽음을 당하든 말든 내 알 바 아니야.
너 말이야, 그 말 꼭 지켜라.
또 며칠이 지났다.
그날 소대는 아주 일찍 출발했는데, 크리스, 니모, 헤가 그리고 다른 두 명의 대원이 함께였다.
헤가는 모두의 장비를 하나하나 점검한 뒤, 다시 의무실 쪽을 돌아보았다. 작은 실루엣이 문가에서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헤가는 걸어가 그 작은 그리자 앞에 쪼그려 앉았다.
가르쳐준 거 다 기억하지?
기억해요.
순서 헷갈리지 마.
헷갈리지 않을게요.
평소 날렵한 헤가가 드물게 잠시 멈췄고, 일어나려던 순간 옷자락이 살짝 잡히는 느낌이 들었다.
헤가 이모… 전 아직 모르는 게 많아요…
?
그러니까 돌아와서 가르쳐 주세요, 기다리고 있을게요.
헤가는 아직 상처가 남아 있는 왼손을 내밀어 루시아의 머리 위에 올려놓았다.
얌전히 잘 있어. 조심하고.
헤가는 왜 떠나는지, 어디로 가는지, 아무 설명도 하지 않은 채 일어나 몸을 돌려 걸어갔다.
루시아는 제자리에 서서 헤가의 뒷모습이 하얀 안개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들이 돌아왔을 때는 이미 깊은 밤이었고, 발걸음 소리를 들은 루시아는 곧바로 의무실에서 뛰어나왔다.
니모가 크리스를 둘러메고 가장 앞장서서 걸어왔다. 크리스의 오른쪽 다리는 무릎부터 잘려 나가 있었고, 몸 전체가 니모의 어깨에 매달려 있었다.
뒤따라온 둘은 서로를 부축하고 있었으며, 둘 다 순환액을 흘리고 있었다.
다섯 번째 사람은 없었다.
루시아는 문가에 서서 두 번이나 세어 보았다.
헤가 이모는요?
대원들은 잠시 침묵했다.
니모는 크리스를 침대에 눕힌 뒤,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수술대 위에 올려놓았다.
보조형 및 증폭형 구조체가 상비하는 의료 모듈로, 헤가가 가지고 다니던 것임을 루시아는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기지를 보호하던 역장 차단막에… 구멍이 뚫렸어.
차단막을 미처 고치기도 전에, 안개 속에 있던 요괴 같은 놈들이 벌떼처럼 몰려 들어왔어.
들어온 놈들을 해치우면서 차단막이 복구될 때까지 우리가 구멍을 막을 수밖에 없었어.
헤가는 쉬지 않고 사람들을 구했어. 원래부터 상태가 좋지 않은 데다, 다리까지 부러졌는데도…
그의 목소리에는 피로가 가득 담겨 있었고, 말할수록 점점 느려졌다.
그녀는 사용할 수 있는 모든 물자를 우리에게 주었고, 부족하면 자신의 몸에서 떼어 주었어.
결국엔 이것까지 떼서 건네줬지.
크리스는 수술대 위의 의료 모듈을 바라보았다.
남은 사람들을 위해 쓰라고 하더군.
어른들은 침묵했고, 동료의 떠남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눈앞의 아이를 어떻게 마주해야 할지 모르는 듯했다.
루시아는 조작대 앞으로 가, 가볍고 작은 모듈을 집어 들었다. 그 위에는 어두운 색의 순환액이 조금 묻어 있었다.
그녀는 그것을 정성스럽게 닦아 빈 수납칸에 넣었다. 처리한 후, 남은 의료 도구를 들고 크리스의 침대 앞으로 갔다.
제가 아저씨 상처를 치료해 드릴게요.
그녀의 목소리는 매우 평온했고, 모든 슬픔을 마음속에 감춘 듯했다.
——헤가가 줄곧 그렇게 해왔기 때문이다. 헤가는 절대 울지 않았고, 절대 실수하지 않았으며, 기계처럼 냉철하고 신속하게 모든 상처를 치료했다.
그러니 루시아도 울어서는 안 되고, 실수해서도 안 됐다.
루시아는 헤가가 가르쳐준 순서대로 차근차근히 해나갔다. 상처 부위를 소독하고, 끊어진 곳을 맞추고, 복구용 실을 감았다.
크리스의 복부 수리가 거의 끝날 무렵, 그녀는 상처 안에서 육안으로 보기 힘든, 아주 작은 암적색 결정 몇 알을 발견했다.
루시아가 잘못 본 것인가 싶어 다시 확인하려 했을 때, 결정들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니모의 상처는 크리스보다 가벼웠지만, 흉강의 균열이 또다시 벌어져 있었다. 벌써 네 번째였다.
루시아가 복구액을 주사하자 니모의 손가락이 움찔거렸다.
루시아는 말없이 그에게 천을 건넸고, 니모는 아무 말 없이 받아 손에 쥐었다.
모든 처치를 마친 뒤, 루시아는 의무실 한가운데 서서 눈앞의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크리스는 침대에 누워 있었고, 오른쪽 다리 관절이 손상되어 있었으며, 다른 두 사람은 한 명은 어깨가 부서졌고, 한 명은 힘장 방벽이 3분의 1 갈라졌다.
그들은 돌아왔지만, 전부는 아니었다.
다… 유리안 덕분이야.
천장을 응시하던 크리스가 불쑥 입을 열었다.
안개가 너무 짙어서 유리안이 중계기에 연결해 알려주지 않았다면 방향조차 못 찾았을 거야.
근데 돌아오는 길에 신호가 자꾸 끊기더라고. 유리안은 지금 어때? 엄청나게 지쳤을 텐데.
리올라가 문을 밀고 들어왔을 때, 유리안은 여전히 예전처럼 단말기 앞에 앉아 있었다.
그 시선이 향하는 방향에는 수많은 복잡한 파형이 화면에서 여전히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었다.
단말기에는 의식의 바다가 붕괴하기 직전 타이핑한 것으로 보이는 쓰다 만 문장이 남아 있었다.
왼쪽 상단 파일에는 숫자와 기호가 빼곡히 적혀 있었다.
…
그러던 어느 날, 니모가 무언가를 들고 루시아 앞에 나타났다.
알록달록한 절연체 껍질과 둥글게 휘어진 얇은 금속판이었다.
루시아, 모레가 네 생일이잖아.
그래서 모자를 하나 만들었어.
그는 그 삐뚤삐뚤한 것을 들어 올렸다. 빨강과 파랑 절연 피복이 금속판 위에 번갈아 감겨 있었고, 생일 모자는 이 어두운 세계 속에서 자신만의 색을 갖고 있었다.
그걸 모자라고 부르는 거냐?
생일 모자야.
무슨 철사 고리 같은데.
니모는 대꾸 없이 계속 절연체를 감았다.
그런 것도 만들 줄 아냐?
예전에 우리 아버지와 연이 끊기기 전에… 아버지가 내 생일 때 만들어주셨거든.
…
뭐, 어쨌든 내 선물보단 낫겠네.
크리스가 허리춤에서 칼을 한 자루 뽑아 루시아 앞에 툭 던졌다.
아주 작은 태도였다. 무기 거치대 맨 아래 칸에서 찾아낸 가벼운 장비로, 체구가 작은 이에게 맞춘 것이었다.
하지만 루시아에게는 거대한 태도나 다름없었다. 루시아가 칼을 받아 들자 작은 체구가 통째로 휘청거렸다.
선물이다.
고맙습니다.
생일도 안 됐는데 벌써 선물을 줘?
뭐 어때~
크리스의 말투는 무심했지만, 오른손은 주머니에 찔러넣은 채 꺼내지 않았다.
선물 같은 건 일찍 줄수록 좋은 거야. 나중엔 주고 싶어도 줄 수 없을지 모르잖아.
두 사람이 말을 주고받는 사이, 루시아는 이미 칼을 잡아보려 시도하고 있었다.
어릴 적 루시아가 루나와 함께 본 애니메이션 속에서, 모든 슈퍼히어로가 칼을 휘두를 때는 매우 쉬워, 연필을 휘두르는 것처럼 간단했다…
흐앗…
무게가 그녀의 예상보다 무거워, 두 손으로 간신히 들어 올렸다. 칼자루는 그녀에게 너무 굵어서, 항상 올바른 위치를 잡을 수 없었다.
우와!
칼은 그렇게 쥐는 게 아니야.
크리스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쪼그려 앉아 그녀의 손 위치를 조정해 주었다.
꽉 쥐어.
루시아가 그대로 따라 했지만, 여전히 어설펐고, 칼은 무게를 이기지 못해 아래로 처졌다.
천천히 연습해.
칼을 쥐는 의미를 깨닫기 전까지는 제대로 들어 올릴 수 없을 거다.
그래도 꼬맹이치고 이 정도면 훌륭해.
그는 일어나 미소를 지으며 무릎을 두드렸다.
모레가 네 생일이지, 우리 함께 축하해 줄게.
실험실에서 나온 리올라는 둘이 즐겁게 손짓하며 비교해 보는 모습을 보고, 피곤한 얼굴에도 미소가 살짝 섞이는 걸 느꼈다.
그래. 모레 다 같이 루시아의 생일을 축하해주자.
세 어른이 루시아를 바라보자, 루시아는 선물로 받은 태도를 꼭 쥔 채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날, 크리스는 루시아에게 많은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있잖아, 내가 너만 했을 때", "그때 난 도미니카랑…" 등등 이야기부터 시작해, 중년 남자들이 흔히 하는 이야기를 잔뜩 늘어놓았다.
어린 루시아의 눈이 반짝이는 걸 보고, 니모와 리올라가 말없이 황당한 표정을 짓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그는 만족한 듯 몸을 돌려 자리를 떠났다. 자신의 방으로 들어간 그는 드물게 문을 닫고 벽에 기대섰다.
손목에서 시작된 검붉은 문양이 팔뚝까지 번져 올라와 있었다.
날카로운 통증과 함께, 묘하게 저릿한 감각이 뒤섞여 올라왔다. 그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다가, 결국 쉰 목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나름 멋지네, 그렇지?
루시아의 생일날 아침, 크리스는 길을 나섰다. 오늘은 청소할 구역이 넓지 않으니 금방 돌아올 거라고 했다.
꼬맹아, 기다려.
루시아는 태도를 품에 안고 문가에 서서 크리스의 뒷모습이 하얀 안개 속으로 사라지는 걸 지켜보았다… 그녀는 계속 멍하니 그곳을 바라보았고, 리올라가 여러번 부른 뒤에야 정신을 차렸다.
밖으로 나가던 크리스가 뒤를 돌아보며 루시아를 한 번 쳐다보았기 때문이다.
예전의 크리스는 단 한 번도 뒤돌아본 적이 없었다.
역장 차단막 밖, 크리스는 혼자 폐허 속을 걷고 있었다.
청소 구역이 넓지 않다는 건 거짓말이었다. 크리스는 평소 가지 않던 구역까지 깊숙이 들어왔다.
돌아갈 생각 따윈 없었다.
첫 번째 괴물 무리의 세 마리는 크리스가 왼손으로 총을 쏴 두 발로 끝냈다.
두 번째 무리의 다섯 마리 중 하나가 핏빛 결정 갑각을 두른 변이체였다.
크아아악!!!
덤벼!
크리스가 달려들어 갑각 틈새로 비수를 찔러 넣으려던 찰나, 오른손에 경련이 일면서 칼이 빗나갔다.
변이체의 발톱이 크리스의 흉갑 일부를 뜯어내자, 그는 이를 악물고 왼손으로 단검을 박아 넣었다.
마지막 한 마리!
마지막 괴물이 쓰러지자, 크리스는 벽에 기대어 한참을 헐떡였다. 흉갑 틈새로는 순환액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고개를 숙여 오른손을 보니 검붉은 핏줄이 팔꿈치 관절을 넘어 번져 있었다.
아직… 할 수 있어.
!!!
세 번째 무리의 일곱 마리 중 두 마리가 변이체였다.
쳇!!
다섯 번째 놈을 쓰러뜨렸을 때, 크리스의 왼쪽 다리 관절이 박살 났다.
땅에 무릎을 꿇은 채 덮쳐오는 여섯 번째 놈을 비틀어 피했지만, 미처 다 피하지 못해 발톱에 왼쪽 어깨가 찢겨 나갔다.
커헉!
크리스는 새빨간 순환액을 토해내며 돌무더기 위로 쓰러졌다.
크리스가 고개를 들자, 일곱 번째 괴물이 돌무더기를 밟으며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철컹 철컹… 마치 죽음을 상징하는 시곗바늘과도 같았다.
그 괴물의 윤곽이 갑작스럽게 일그러졌다.
흐릿한 시야 속에서 일그러진 형체가 다른 무언가로 변했다. 크리스의 아내와 딸을 죽인 바로 그 괴물이었다.
그는 그 역겨운 생물을 직접 본 적도 없고, 생김새도 몰랐지만, 수많은 뒤척이게 만든 악몽 속에서, 그는 그것에 하나의 형태를 붙였다.
지금 그 형체가 바로 눈앞에 서 있었다.
하…
그는 단검을 꽉 쥐고, 손상된 관절을 버티며 그 그림자를 향해 비틀거리며 달려갔다.
그의 단검이 꽂히는 순간, 한 개의 날카로운 발톱이 그의 복부를 찔렀다.
그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분노한 채 단검을 깊숙이 찔러 넣었다. 상대의 동공이 어두워지는 것을 목격할 때까지.
그는 머리를 들어 힘겹게 피를 뱉고, 회색빛 하늘을 보았다.
예전 하늘은 이렇게 엉망진창이 아니었는데…
집으로… 가야 해.
하늘이 유난히 푸르렀던 6월의 어느 날. 크리스는 무거운 가방을 멘 채 현관문 옆에 서 있었다.
크리스, 잠깐만.
앞치마를 입은 여인이 뒤에서 따라 나왔고, 몸에서 따뜻하고 달콤한 기운이 났다. 그것은 집에서 오븐으로 막 구운 냄새였다.
시나몬 롤은 아직 따뜻해. 당신이 제일 좋아하는 더블 아이싱도 듬뿍 올렸어. 가는 길에 조금이라도 챙겨 가. 부족하면 내가 더 보내 줄게. 버섯 수프도 보온병에 같이 넣었어…
그는 다소 짜증난 듯 몸을 돌려, 뒤에 있는 여인이 배낭 지퍼에 손을 댈 수 없게 했다.
안 돼, 배낭 안에는 전술 장비로 가득 차 있어서, 넣을 공간이 없어.
그녀는 불평하지 않고, 머뭇거리며 김이 모락모락 나는 음식을 내려놓은 후, 그의 앞에 서서 흐트러진 옷자락을 정리해 주었다.
그는 아내의 부드러운 시선을 피하며 얼굴을 옆으로 돌려, 자신이 가야 할 곳을 바라보았다.
드디어 당신이 은퇴를 앞두고, 앞으로 가족들끼리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될 줄 알았는데, 또 떠나는 거야?
아내는 눈가를 붉혔지만, 얼굴에는 여전히 부드러운 미소가 걸려 있었다.
아주 먼 곳으로 간다고 들었어, 집에서 500마일이라면서.
선발대에 내가 필요해.
그는 자신이 위대한 일을 하고 있다고 확신했다.
그들은 구조체가 필요하고, 능력 있는 사람이 필요하거든… 나 같은 사람은 영웅이 되어야 해, 집에 틀어박혀 평생을 보내서는 안 되지.
그는 대범하게 손을 흔들며, 마치 큰 영웅인 양 행동했다.
바로 그때 어린 아이가 방에서 뛰어나왔다.
아빠, 곧 내 생일인데… 가지 마, 응?
아빠는 너와 같은 수많은 아이들에게 생일을 잘 챙겨 주기 위해서 떠나는 거야.
늘 그럴듯한 말만 늘어놓았다.
그는 예전처럼 몸을 낮춰 수염으로 딸의 볼을 살짝 문지르려 했지만, 아이는 홱 몸을 피하더니 화난 듯 아내 뒤로 숨었다.
그는 어쩔 수 없다는듯 미소를 지었다.
걱정 마, 카오스 오염 따위는 그냥 작은 소동일 뿐이야.
넌 그 작은 태도를 제일 좋아하잖아? 아빠 돌아오면 그걸 선물로 줄게, 그걸로 엄마와 우리 집을 지켜.
그는 아이의 머리를 대충 쓰다듬었다.
출발할게.
아내의 부드러운 미소, 아이의 의지 어린 눈빛, 부엌의 연기, 오븐 속 달콤한 향기…
문이 닫혔고, 그가 한때 하찮게 여겼던 소중한 기억들까지 함께 잠겼다.
이후 카오스 오염이 닥쳤고, 그 문은 다시 열리지 않았다.
그는 한 번도 딸의 생일에 맞춰 축하해준 적이 없었다.
집으로…
부서진 돌무더기 바로 위에는 더 이상 푸르지 않은 회색빛 하늘이 있었다.
그는 손을 뻗었지만 아무것도 잡지 못하고 그대로 쓰러졌고, 볼에 모래가 묻은 채, 아기처럼 땅에 엎드렸다.
의식은 흐려져 갔지만, 단 하나의 장면만은 뚜렷했다.
루시아가 삐뚤삐뚤한 모자를 쓰고, 기지 대문 앞에서 그가 돌아가기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었다.
돌아간다고… 말했으니까.
그의 목소리는 점점 거칠어졌고 인간다운 흔적이 조금씩,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다.
이번에는… 꼭 돌아가야 해.
무언가 이쪽으로 접근하고 있어.
무거운 발걸음 소리가 바깥에서 들려왔다. 마치 마지막 힘을 끌어 모아 스스로를 끌고 오는 사람 같았다.
문이 열리자, 크리스가 문가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
크리스의 기체 장갑은 대부분 떨어져 나갔고, 왼쪽 팔은 어깨 관절부터 비틀려 있었다. 전신에서 순환액이 배어 나왔고, 산산조각 난 역장 차단막 파편들이 기체 표면에 위태롭게 붙어 있었다.
루… 시아…
크리스 아저씨!
리올라는 앞으로 달려가려는 아이를 단번에 붙잡았다.
그녀는 크리스의 팔을 보았다. 진홍색 줄무늬가 손끝에서 어깨까지 번지고 있었다.
카오스 오염이었다.
크리스 역시 무언가를 알고 있는 듯, 떨리는 몸을 억누르고 앞으로 나서지 않았다.
오지… 마.
크리스는 문가에 무릎 꿇은 채 거칠고 헐떡이는 숨을 내쉬었다.
생일 축하해. 루시아.
이번에는… 늦지 않았어.
그는 남아 있는 마지막 이성을 다해, 인간 같지 않은 목소리로 포효했다.
니모, 날 도와줘… 마지막이야!!
!
날 인간의 모습으로… 죽게 해줘.
니모는 이를 악물고, 고통스럽게 허리에서 칼날을 뽑았다. 그리고 다음 순간——
크리스의 듬직한 몸이 순식간에 그에게 달려들었다.
퍽—— 익숙한 감각이 몰려왔고, 칼날이 깊숙이 크리스의 가슴을 찔렀다.
니모는 인간의 표정을 잃어가는 크리스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그는 이 장면을 본 적이 있었다. 그것은 그가 어릴 적 자란 마당, 평범한 황혼이었다.
그때 니모 앞에 서 있던 아버지의 눈동자에서는 마지막 남은 빛이 사라져 가고 있었다.
그날, 니모는 어쩔 수 없이…
안 돼…
왜 그는 항상 같은 길로 돌아와야만 하는가?
니모의 팔이 떨리기 시작했고, 아무리 힘을 줘도 칼을 뽑아낼 수 없었다.
크윽… 아아!!
크리스의 몸이 다시 한번 튕겨 올랐고, 검붉은 핏줄은 이미 얼굴 절반을 뒤덮었다.
하지만 핏줄이 안구를 덮치기 직전, 크리스는 갑자기 움직임을 멈췄다.
크리스의 시선은 니모를 넘어 멀리 떨어진 곳을 향해 있었다.
크리스 아저씨!
루시아는 작은 태도를 꼭 쥐고 있었다.
그녀는 크리스에게 배운 자세대로 간신히 칼을 움켜쥐었고,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올라의 앞을 지켰다.
일곱 살짜리 아이가 자신의 팔뚝보다 긴 칼을 쥐고 모두의 앞을 막아선 것이다.
크리스는 그런 그녀를 바라봤다. 점점 인간의 형체를 잃어가던 그 얼굴 위로, 아주 짧은 순간 어떤 표정이 스쳐 지나갔다.
크리스의 입술이 위로 미세하게 떨렸다.
드디어…
망막 중앙에는, 그의 아내와 딸을 죽인 괴물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는 수천 개의 악몽 속에서 아내와 딸이 그 괴물에게 죽임을 당하는 것을 보았고, 그는 항상 한 발 늦었다…
——하지만 오늘, 그를 대신해 늦게 도착한 그 칼을 들어 올려 주는 이가 있었다.
네가 지켜야 할 것을 찾았구나… 아가야.
그는 안도하며 미소 지었다. 그 괴물의 형체가 그의 시야 속에서 점차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며.
그의 발걸음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듯했다. 500마일, 400마일…… 그는 걸었다, 걸었다, 여행의 시작점으로 향해.
그 모든 것이 다시 처음의 모습으로 돌아간 듯했다. 오븐에서는 달콤한 김이 모락모락 나고, 따뜻한 벽난로, 아내의 부드러운 잔소리, 아이들의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렸다.
다녀왔어.
그는 포옹하는 자세를 유지한 채로 쓰러졌다.
니모의 동공이 떨리고, 아버지의 얼굴, 정신병 환자들의 얼굴 하나하나, 그리고 크리스의 얼굴이 그의 시야 속에서 겹치고 흩어졌다.
그는 마치 그때 처진 석양을 다시 보고, 하늘이 끝없는 밤으로 떨어지는 것을 보았지만—— 그는 무력했다. 그의 운명은 언제나 그러했다.
한참 뒤, 아주 작은 손이 니모의 손등 위에 포개졌다.
니모 오빠…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녀는 자신의 슬픔을 억누르려 애쓰는 듯했다. 그녀의 눈과 코끝은 붉었고, 머리 위의 삐뚤삐뚤한 「왕관」은 이미 떨어져 있었다.
그녀는 살짝 몸을 숙여, 크리스의 고통스러운 눈을 조심스레 감겼다.
루시아는 머리에 모자가 없는 것을 알아채고, 허리를 굽혀 바닥에 떨어진 모자를 주워 다시 썼다.
그 후, 발끝으로 살짝 서서 리올라의 얼굴에 흐른 눈물을 닦아 주었다.
리올라 언니…
그녀는 울지 말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결국 그 말을 하지 못했다. 한 세계의 슬픔이 그대로 아이의 가슴 위로 떨어졌다.
크리스의 죽음은 누구에게도 위로를 주지 못한다——그 행복의 거품은 오직 그의 눈 안에만 존재하며, 그의 생애 마지막 순간에만 있었다.
나머지 촛불이 갑자기 꺼지는 순간, 살아남은 이들에게 남는 것은 차갑고 길게 이어지는 기나긴 밤뿐이었다.
창밖의 안개가 또 한 겹 짙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