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Reader / 메인 스토리 / 41 장로귀항 / Story

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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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 결말은 곧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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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시간에 잡아먹힌 세계였다.

지휘관이 마침내 시간의 틈새를 엿보자, 갑자기 들이닥친 오염이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오염 결정체 속에 한 층, 더 한 층 새겨진 실패의 기록은 어느덧 하늘에 닿을 듯한 고탑이 되었다.

"이 삶과 죽음의 나선 속에서 얼마나 더 헤매야 하지?"

탑 꼭대기에서 창백한 빛이 끝없이 쏟아져 나오자, 온전한 것이든 부서진 것이든 가릴 것 없이 모두 맥없이 바스러졌다.

먼지가 가라앉자, 대지 위에는 아무런 소리도 남지 않았다.

폐허 깊숙한 곳, 작은 심장 하나만이 고집스레 고동치고 있었다.

그곳에서 "빛"이 시작되었다.

빛이 사라졌다.

이중합 탑 코어가 일행 등 뒤에서 녹아내리더니, 눈부신 백광이 공간을 휩쓸며 모든 것을 밖으로 내던졌다.

모두 꼴사납게 튕겨 나왔다. 마치 거대한 손이 공간 틈새에서 비틀어 꺼내 바닥에 내동댕이친 듯했다.

누군가 기침을 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기침 소리가 터져 나왔다. 구조체라 호흡할 필요는 없었으나, 조금 전 충격으로 만신창이가 된 기체는 더욱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파손된 내부 관로에서는 순환액이 역류해 엉뚱한 곳으로 흘러들었다.

일행이 반쯤 허물어진 폐허로 튕겨 나온 듯했다. 비스듬히 꺾인 천장이 위태롭게 버티며 간신히 작은 공간을 지탱하고 있었다.

그곳에 열두 명이 쓰러져 있었다. 저마다 자세는 제각각이었으나, 처참한 행색만큼은 하나같이 매한가지였다.

극심한 통증을 억누르며 몸을 일으킨 백발 여성이 비틀대며 대원들 상태를 살폈다.

다들 괜찮아?

여기저기서 대답이 들려올 때마다, 리올라의 어깨가 조금씩 가벼워졌다.

덥수룩한 수염의 사내가 소매로 얼굴에 묻은 순환액을 대충 훔쳐냈다.

우리가… 이긴 건가?

그의 목소리가 폐허 속에서 울려 퍼졌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0호 대행자의 상태는 어때, 유리안?

유리안이라 불리는 대원의 시각 모듈이 기민하게 돌아가자, 눈앞으로 데이터 스트림과 파형 몇 가닥이 스쳐 지나갔다. 이윽고 유리안의 망가진 성대 사이로 피로가 섞인 금속음이 새어 나왔다.

신호가… 완전히 사라졌어. 잔류 방사능조차 남아 있지 않아.

유리안은 믿기 힘든 결과를 스스로에게 이해시키려는 듯, 무겁고 느릿하게 보고했다.

이겼어. 우리가 드디어 이겼다고.

선발 대원 2호가 웃음을 터뜨렸다. 억지로 버티던 몸이 맥없이 바닥으로 무너져 내렸으나, 크리스는 고개를 들어 홀가분한 듯 숨을 내쉬었다.

2197년 12월 25일, 카오스 오염이 이 세상에 강림했다.

불과 1년 만에 사람들은 인간 문명의 가장 찬란한 꿈이 탄생하는 순간과 그 꿈이 카오스 오염에 침식되어 악몽으로 타락하는 과정을 동시에 목격했다.

구원의 방법을 찾으려 지옥에 발을 들인 사람들은, 끝내 자신들이 지키려 했던 터전이 서서히 멸망해 가는 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몇 번이고 빛을 향해 손을 뻗었지만, 그때마다 매번 어둠 속으로 추락했다.

12명의 지친 영혼은 지키고자 했던 보금자리만큼이나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오늘, 흐릿하던 그들 눈동자에는 마침내 심연을 가르고 솟아오른 새벽빛이 맺혔다.

약속이라도 한 듯 모두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대원들은 그간 겪은 실패를 전부 보상받기라도 한 듯 환하게 웃음 지었다.

4호 선발 대원이 시선을 구석으로 돌리자, 창백한 낯빛의 청년이 벽에 기댄 채 앉아 있었다.

니모, 코어는?

니모라 불린 청년이 오른손을 폈다. 손바닥 위에는 기이한 정육면체가 놓여 있었고, 그것은 어떤 굴레에서 벗어나려는 듯 표면이 거칠게 떨리고 있었다.

그것은 봉인된 이중합 탑 코어이자, 이중합 탑이 포맷된 후 유일하게 남은 잔해였다.

여기 있어.

도미니카, 이쪽으로 와줘.

황폐한 대지 위에 리올라의 목소리가 공허하게 울려 퍼졌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잠깐만… 도미니카?

모두의 웃음소리가 갑자기 누군가 목을 조른 듯 동시에 멎었다.

어떻게 된 거지?

니모! 도미니카는 어디 있어?!

니모는 대답할 틈도 없이 기력을 다해 쓰러졌다.

5호 선발 대원

이봐!

선발 대원 5호가 서둘러 니모를 부축했다. 그제야 니모 기체 곳곳에 역장 차단막 출력 과부하로 생긴 균열이 가득한 것이 눈에 들어왔다.

좀 쉬게 내버려둬. 우리를 데리고 그곳에서 나올 수 있었던 건, 니모의 손에 들린 "열쇠" 덕분이었으니까…

리올라… 도미니카는?

나도 모르겠어. 이중합 탑에서 튕겨 나온 뒤로… 보이지 않아.

2호 대원이 몸을 돌려 현장에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거칠게 훑었다. 그리고 한 명씩 세어 보고, 한 명씩 확인했다.

12명만 남았을 뿐, 도미니카는 보이지 않았다.

그럴 리 없어.

크리스는 폐허를 뒤지며 돌무더기를 헤치고 기울어진 기둥을 밀어냈다.

밑에 깔린 걸지도 몰라.

여기에 없어, 크리스. 분명 안개 지역으로 튕겨 나갔을 거야. 너도 그 지옥 같은 곳을 기억하잖아.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오며 크리스의 희망을 단숨에 꺾어버렸다.

크리스의 손이 돌무더기 위에서 멈췄다. 그는 8호의 말이 맞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관문을 통과하려던 찰나, 도미니카는 이미…

크리스의 손이 돌무더기 위에서 힘없이 미끄러졌다.

실내에는 한참 동안 정적이 감돌았다. 조금 전까지 부풀어 올랐던 환희는 바늘에 찔린 풍선처럼 소리 없이 사그라졌다.

그래도 우리 성공한 거 맞지? 코어도 얻었고, 0호 대행자도 회수했잖아.

도미니카가… 도박을 걸었던 건 바로 이거였으니까.

그러니까 최소한…

유리안은 목소리가 불안하게 떨렸지만, 최대한 감정을 추스르려 애썼다.

최소한 세계는 구원받은 거겠지?

그 말이 모두에게 절실했기에 아무도 반박하지 않았다.

그래. 분명 그렇게 될 거야. 카오스 오염만 사라지면 생존자들과 함께… 도시를 다시 세울 수 있겠지.

모두가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야.

그때가 되면 지긋지긋한 기지에서도 짐을 뺄 수 있고, 어떻게든 살아가게 될 테니까.

밖에 나가보자.

일행은 하나둘씩 일어나 비스듬히 꺾인 천장 너머 실외로 향했다.

익숙한 핏빛 광선이 건물의 틈새 사이로 새어 들어왔다.

――눈앞에 펼쳐진 건 처참한 폐허였다.

부서진 도로와 끊어진 건물의 골조… 뒤엉킨 철근들이 부러진 백골처럼 하늘을 향해 뻗어 있었다.

도시라 할 만한 곳도, 생존자도, 마땅히 지켜야 할 그 무엇도 남아 있지 않았다.

?

눈에 익은 핏빛 결정들이 도시의 잔해 위에 도사리고 있었으며, 폐허는 발밑에서부터 시선이 닿는 곳까지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이중합 탑은 여전히 기괴한 모습으로 우뚝 서 있었다.

카오스… 오염이라고?

어떻게 이런 일이… 우린 분명 탑의 코어를 빼앗았는데…

그리고 탑 상공에는 흉측한 균열이 하늘을 찢어발기듯 벌어져 있었다.

저건… 관문이 열린 뒤에 남은 균열이야.

기괴한 하얀 안개가 균열 속에서 소리 없이 스며 나왔으며, 그 안개를 따라 인간이 아닌 생물들이 대지 위로 쏟아져 나왔다.

눈앞의 모든 참상이 하나의 잔인한 진실을 가리키고 있었다.

일행 중 누군가 헛구역질하거나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으나, 이내 죽음이 드리운 천지에 집어삼켜져 허무하게 사라졌다.

아니야. 이럴 리 없어. 분명 살아있는 사람이 있을 거야.

리올라는 주저앉아 맨손으로 돌판을 치우고 잔해 더미를 파헤치며 밑을 살폈다.

시체 한 구가 엎드린 채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리올라는 몸을 일으켜 다음 더미로 향했다.

그녀는 일어나 다음 더미로 걸어갔다.

또 다른 시체는 무언가를 지키려던 듯 몸을 웅크리고 있었지만, 지켜낸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리올라는 몸을 일으켜 다시 다음 더미로 향했다. 한 구, 두 구, 세 구… 몇 번째인지 가늠조차 되지 않을 무렵, 마침내 숨이 붙어 있는 육신을 찾아냈다.

!

▆▇█▆▅▅▄▄▃▇▇█▅▄▄▄

카오스 오염이었다.

남자의 몸 절반은 핏빛 결정에 침식되어 있었으며, 복부 상처에서는 선혈이 쏟아져 나왔다. 고통스럽게 숨을 몰아쉬는 남자의 눈동자 속 인간의 것이 아닌 기묘한 문양이 서서히 빛을 잃어갔다.

어떻게 이런 일이?

크리스가 다시 묵직한 콘크리트판을 들어 올렸다.

둘은 좌우로 나뉘어 묵묵히 폐허를 뒤졌다.

한 더미, 또 한 더미… 잔해를 들춰낼 때마다 마주하는 결과는 매한가지였다. 이미 죽었거나 카오스 오염에 침식되어 곧 죽음을 앞둔 이들뿐이었다.

리올라… 이제 가야 해.

신호가 점점 촘촘해지는 걸 보니 균열 저편에서 무언가 다가오고 있어. 우리 상태도 엉망이고… 지금 철수하지 않으면 늦는다고.

뒤에서 들려오는 유리안의 목소리에는 불안한 떨림이 섞여 있었다.

잠깐만.

리올라…

현실을 직시해야 해. 우린 졌어. 완패한 거라고! 관문이 열리는 바람에 모든 게 엉망이 돼버렸단 말이야!

조금만 더 기다려 봐. 분명 무언가 남아 있을 거야.

리올라는 필사적으로 잔해를 뒤졌다. 돌덩이를 들어 올릴 때마다 팔의 상처가 벌어졌지만 멈추지 않았다. 단 하나라도 찾아낸다면 그동안 쏟아부은 노력이 헛되지 않을 것만 같았다.

누가… 대체 누가 리올라에게 이 사실을 증명해 줄 수 있을까? 리올라의 마음은 폐허가 된 세계처럼 산산조각 난 지 오래였다.

리올라는 또 하나의 잔해 더미를 파헤쳤다.

그 밑에 아이가 있었다.

!

먼지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뒤덮인 그녀의 작은 몸은, 눈을 꼭 감고, 입술은 갈라져 있으며, 피부는 창백했다.

그리고 가슴은 미동조차 없었다.

리올라의 손이 허공에 멈췄다. 그 아이는 일행이 발견한 유일한 아이였다.

리올라는 아이 위의 돌조각을 조심스럽게 치웠다. 아이가 아파하기라도 할까 봐, 하나하나 아주 천천히 들어냈다.

마지막 잔해가 치워지자, 아이가 온전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조용히 누워 있었고, 말없이 순순했다.

리올라는 아이를 조심스레 안아 올렸다. 그녀는 마치 이 세계가 잊어버린 마지막 유물처럼, 너무나도 가벼웠고

피부는 창백하고 차가웠다.

미안해.

그 목소리는 아주 작아서, 누구에게도 닿지 않을 말이었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관문을 연 것도, 균열을 낸 것도 그들이었다. 그동안의 탐사, 실종된 리더, 그들이 저지른 그 모든 일 때문에…

미안해.

옆에 쪼그려 앉은 크리스는 고개를 돌렸다.

품에 안긴 아이가 살짝 움직였다, 손가락 하나가 떨리는 것처럼 약했다.

리올라의 몸이 굳었다.

콜록…

그녀의 목소리는 작다 못해 바람 속에 묻힐 정도였다.

——하지만 리올라는 들을 수 있었다. 그녀는 아이의 속눈썹이 살짝 떨리는 것을 보았고, 그 떨림으로 인해 자신의 마음까지 흔들리게 되었다.

쿨럭!

리올라의 눈물이 아이의 잿빛 뺨에 떨어졌다. 이내 목소리마저 떨려왔다.

살아있어. 아이가 살아있어!

부서져 내린 리올라의 마음속 상처가 무언가로 채워지는 기분이었다.

다행이야. 정말 다행이야.

걷잡을 수 없는 기쁨에 리올라의 몸이 떨렸다. 구원받은 쪽은 아이가 아니라… 오히려 리올라 자신인 것만 같았다.

크리스가 고개를 돌렸다. 리올라의 품에서 아이의 입술이 미세하게 달싹이는 모습을 보자, 잠시 멍하니 있던 크리스는 이내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었다.

선발 대원 8호가 뒤에서 달려왔다. 이중합 탑에서 다리를 다쳐 줄곧 대열 뒤편에 처져 있던 그녀였지만, 지금 잔해 더미를 가로지르는 속도는 부상자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빨랐다.

내려놔 봐, 내가 볼게.

리올라는 아이를 조심스럽게 바닥에 내려놓았다.

8번은 반무릎을 꿇고, 오른손을 목동맥에 댔다. 그녀는 아이의 눈꺼풀을 들어 올려 피부 탄력을 확인하고, 손톱으로 시간을 재며, 일련의 검사를 빠르고 정확하게 진행했다.

어때, 헤가?

심각한 탈수에 저체온증이야. 생명 징후가 거의 잡히지 않아. 겉보기엔 죽은 거나 다름없는 상태야.

그녀는 허리춤에서 마지막 수액 주입기를 꺼내, 아이의 머리를 살짝 들어 올린 뒤 한 방울씩 주입했다.

흑흑…

아이가 천천히 팔을 들어 올리더니, 잿빛 하늘 아래서 무언가를 찾으려는 듯 힘없이 허공을 더듬었다.

루… 루…

루나야!

천천히 해. 천천히 움직여. 몸이 아직 많이 약한 상태야.

아이의 팔은 두 번 버텼지만, 곧 힘이 빠져 축 늘어졌다. 그녀는 눈썹을 살짝 찌푸렸는데, 마치 자신이 무력한 것을 혐오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리올라가 서둘러 아이의 어깨를 받쳐주었다. 곁에 있던 선발 대원들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아이 주변에 모여들었다.

당신들은 누구죠? 루나는요?

루나?

루나는 제 동생이에요.

아이의 목소리가 다급해졌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옆에 있었는데…

집이 무너질 때 제가 손을 꼭 잡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그 뒤에…

말이 빨라지던 아이의 목소리가 점점 잦아들었다. 마치 돌무더기에 깔려 조각난 기억을 필사적으로 긁어모으려는 듯했다.

그러다 아이는 돌연 말을 멈추더니, 텅 빈 손을 내려다보았다.

언제 손을 놓쳤는지, 언제 의식을 잃었는지, 동생이 언제 사라졌는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찾으러 가야 해요.

아이는 다시 한번 억지로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이내 실 끊어진 인형처럼 리올라의 품에 고꾸라졌다. 방금까지 버티던 마지막 오기마저 순식간에 사그라든 듯했다.

흑…

(유리안, 이 아이의 동생을 좀 찾아봐 줘. 그리고 찾으면 바로 말해줘.)

(생존자 중 침식되지 않은 건… 이 아이가 마지막이야.)

(알았어.)

얘야… 언니 말 좀 들어봐. 네 동생은 분명 살아있을 거야.

리올라가 서툰 거짓말로 달래자, 죽어 있던 아이의 눈빛에 일순간 생기가 돌았다.

어디 있어요?

지금 당장은 찾기 힘들지만, 적어도 이 근처에는 없어.

리올라는 몸을 살짝 비켜, 루시아가 뒤편의 참혹한 폐허를 보게 했다.

어쩌다… 어쩌다 이렇게 변한 거예요?

이중합 탑 근처는 아주 위험하거든. 우리가… 미안해.

유리안은 아이를 바라보는 눈빛에 미안함과 의구심을 동시에 담았다. 대체 어쩌다 이 작은 아이가 이토록 험한 곳까지 흘러 들어오게 된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집에 먹을 게 다 떨어졌어요. 근처에도 아무것도 없고요.

여기 말고는… 먹을 게 전혀 없었거든요. 루나한테 쿠키 반 조각을 떼어 줬는데, 그러고 나서… 동생이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어요.

언니…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예요? 루나는 어디 갔어요?

정말 미안하구나.

리올라는 고개를 숙인 채 주먹을 꽉 쥐었다.

이 세계가… 아주 깊은 병에 걸려버렸거든. 그래서 우리가 치유할 방법을 찾고 있는 거란다.

세계가 나아지고 너도 건강해지면, 분명 여동생을 찾을 수 있을 거야.

하지만 여긴 이제 안전하지 않아. 당분간 우리와 함께 가지 않을래?

당신들은 누구세요? 뭐 하는 사람들이세요?

우리는…

리올라는 머릿속에서 적당한 단어를 골라내기 위해 오랫동안 생각에 잠겼다.

리올라는 입을 뗐지만, 이 질문에 대답하기가 무척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들을 대체 무엇이라 말할 수 있을까?

"선발대"는 아이가 알아듣기에 너무 생소한 단어였고, "구원자"라 하기엔 정작 누군가를 구했는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과학 연구원" 또한 연고 하나 없는 황량한 폐허에 나타날 법한 직업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사… 우리는 전사야.

아이는 엉망이 된 주변 폐허를 힘겹게 둘러보고는, 만신창이가 된 열두 명의 어른을 훑어보았다. 무언가 깨달은 듯, 아이는 말없이 리올라의 팔에 자신의 손을 얹었다.

네. 고마워요. 절 구해줘서 고마워요. 같이 갈게요.

리올라는 헤가의 눈짓에 맞춰 아이를 조심스럽게 안아 들었다. 아이의 몸은 마치 무게가 전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한없이 가벼웠다.

그러고 보니… 아직 네 이름을 물어보지 않았구나. 이름이 뭐니?

제 이름은…

선발대는 끝을 알 수 없는 어둠을 헤치며 기지로 향했다. 무너져 내린 다리와 갈라진 도로, 그리고 카오스 결정체에 침식되어 형체조차 알아보기 힘든 도시의 잔해들이 그들의 곁을 스쳐 지나갔다.

한때 목숨 바쳐 지키려 했던 그 모든 것들이, 마치 끝없이 이어진 장례 행렬처럼 도로 양옆에 죽은 듯 늘어서 있었다.

잿빛 하늘은 새벽을 여는 법을 잊기라도 한 듯, 좀체 밝아질 줄을 몰랐다.

대원들은 가끔 고개를 숙여 리올라의 품 안에서 잠든 작은 그림자를 바라보았다.

잔혹한 세계가 대원들에게 남긴 것은 승리도, 정답도 아니었다.

숨을 쉬고 있는 가장 작고 가냘픈 빛 하나만이 그곳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