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오스 우주 함선
안개 지역
"안전 구역"은 이미 더 이상 안전하지 않았다.
파손된 비상등이 선실 양쪽 벽에서 어지러이 깜빡였고, 부상자들과 지칠 대로 지친 구조체들이 한데 뒤엉킨 채 피로 얼룩진 얼굴로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괴물의 숫자가… 아직도 늘어나고 있어.
죽여도 죽여도 끝이 없어. 놈들이, 놈들이 곧 들이닥칠 거야.
다친 학생A의 목소리는 통곡이나 다름없었고, 적막이 내려앉은 참호 속을 낮게 파고들었다.
우린… 정말 돌아갈 수 있을까? 파오스가…
파오스가 정말 다시 귀항할 수 있을까?
방어선의 불빛은 점차 희미해졌고, 탄약은 빠르게 소모되었다. 기괴한 안개 지역 안에서 파오스 우주 함선은 그 어떤 보급도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탄약이 동나고 구조체들조차 한계에 다다른다면… 인간은 과연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파오스는 당연히 귀항할 수 있어!
모두가 침묵에 젖어든 순간, 니아가 돌연 비틀대며 일어섰다. 상처 입은 왼쪽 다리 하나에 의지해 위태롭게 몸을 지탱하는 모습이었다.
수많은 교관님과 친구들이 이곳에서 희생됐어! 어떻게 그분들의 시신을… 이 기이한 안개 지역 속에 내버려두고 갈 수 있겠어!
…
이게 마지막은 아니야. 아직… 아직 포기해선 안 돼!
우리 모두 파오스 군사 지휘 학교에서 배웠잖아? 적과 맞서 싸우고, 살아남은 사람들을 지켜야 한다고…
지금도 살아남은 사람들이 있잖아! 그리고 우리에게는… 아직 싸울 힘이 남아 있잖아!
우리 선배님이신 그레이 레이븐 지휘관님도 아직 싸우고 계셔! 그러니 우리도… 할 수 있어!
하지만… 대체 뭘로 싸운다는 거야?
총알은 곧 바닥날 테고, 남은 식량이라곤 압축 비스킷뿐이야. 유통기한 지난 혈청까지 끌어다 썼지만 그걸론 턱없이 부족하다고.
심지어 파오스의 깃발까지…
부상 학생 A는 절망하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총알이 없다면… 우리에겐 아직 비수가 있잖아.
니아는 팔에 감긴 붕대를 입으로 물어뜯어 풀고는 자기 교복 코트를 거칠게 벗어 던졌다.
엘리아나 교관님이 알려주신 창고 위치 지도가 내게 있어. 식량이 부족하면 다시 탐색대를 조직해서 안개 지역에 있는 창고를 찾아내면 돼.
니아는 피 묻은 손가락으로 재킷 뒷면 빈 공간에 파오스 문양을 힘껏 그려 넣었다.
인간은… 이런 곳에서 쓰러지지 않아.
파오스 학도들 역시… 고작 이런 시련 때문에 멈춰 서지 않을 거야!
니아는 총알이 떨어진 총 한 자루를 집어 들고, 초라하기 짝이 없는 그 군기를 총구에 단단히 묶었다.
니아, 파오스 지휘과 1학년, 학번 074…
니아는 파오스 깃발을 높이 쳐들고 안전 구역 외곽으로 뛰어나가 괴물 사체 위에 깃발을 힘껏 내리꽂았다.
파오스를 위하여!
니아는 엘리아나 교관이 가르쳐준 대로 비수를 꽉 쥐고는 괴물 눈에 거칠게 찔러 넣었다.
파오스 우주 함선 갑판
안개 지역
짙은 안개 속에서 키메라가 발걸음을 멈췄다.
끊임없이 비명을 지르는 붉은 비상등 아래에서 칼날이 차가운 별빛처럼 번뜩였다. 이어 알파는 민첩하게 몸을 돌려 키메라 정면에 착지했다.
넌 이제 도망칠 곳이 없어.
장검이 안개 속에서 차가운 곡선을 그리자, 미처 피하지 못한 키메라는 알파가 가한 공격을 고스란히 받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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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의식의 바다에서 갑자기 전해진 고통에 알파는 다시 멈칫했고, 키메라는 그 틈을 이용해 우주 함선 갑판 꼭대기로 도망쳤다.
너… 멈춰라!
알파는 몸을 날려 키메라를 뒤쫓았다.
크윽…
키메라는 갑판 중앙에 멈춰 섰다.
키메라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는 더 이상 기괴한 울음소리가 아니었다.
!!!
넌 대체 누구야?!
난…
키메라 목소리에는 심연처럼 깊은 애상이 담겨 있었으며, 목구멍에서는 갈라진 신음이 흘러나왔다. 알파가 든 칼날을 두려워하지 않는 키메라는 알파에게 두 손을 뻗었다.
너…
키메라의 슬픈 눈동자에 사로잡힌 듯, 알파는 무의식적으로 키메라에게 다가갔다.
알파!!!
멀지 않은 곳에서 균열을 타고 튀어나온 괴물과 교전 중이던 루시아가 다급히 검을 거두고는 알파가 있는 쪽으로 돌진하려 했다.
하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키메라가 알파를 꽉 껴안은 채, 끝없는 안개 지역 속으로 추락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