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더는 이렇게 꾸물거리며 찾을 수 없었다. 아직 그들을 찾지 못했다…
사고는 단편적으로 이어졌고, 의식 속에 뿌리박힌 고통만이 선명했다. 「왕관」이 여전히 살점을 갉아먹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지금도 그 존재는 그것을 통제할 수 없었다.
넘쳐흐르는 "힘"이 안개를 찢어발겼고, 안개 너머 균열에서 수많은 "괴물"이 태어났다.
안 돼. 더 이상 「왕관」의 힘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파오스가...
수천만 명의 목소리가 그 존재의 의식 속에서 폭발하듯 울려 퍼졌다.
■▃▂■■▇▃█▂▄▇■▃█…
그 존재가 날카로운 비명을 내지르자, 「왕관」의 힘이 다시 한번 안개 지역 전체를 휩쓸었다.
그 존재의 발걸음이 돌연 멈췄다. 거대한 머리가 우주 함선의 갑판 위쪽을 향해 천천히 돌아갔다.
세 개의 명암이 다른 광점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 존재는 갑판으로 천천히 다가가 자세히 살폈다.
그녀는… 마침내 그리운 옛 지인을 알아본 것 같았다.
파오스 우주 함선
안개 지역
생존 범위가 좁혀지는 가운데, 부상자들은 물자 상자로 간신히 쌓아 올린 참호 속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었다.
엄폐물 밖에서는 괴물들이 지칠 줄 모르는 파도처럼 밀려와 위태로운 방어선을 미친 듯이 들이받았다.
여과탑은 아직 별다른 문제는 없어요. 그리고 저 괴물들은 퍼니싱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안전 구역 안으로는 들어오지 못해요. 하지만…
쌓여가는 놈들의 사체가 점점 높아지고 있어요.
잘려 나간 사지와 혈흔이 비좁은 틈을 비집고 들어와, 일행의 생존 공간을 서서히 압박해 왔다.
공기 중에는 매캐한 탄내가 가득했다. 다친 학생들은 서로 등을 맞댄 채 경계를 늦추지 않으며 다가올지 모를 다음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절망이 몸을 휘감았고, 추위가 뒤따랐다. 입 밖으로 내뱉는 숨결만이 유일한 온기였던 그때, 누군가 참지 못하고 목소리를 냈다.
여긴… 너무 추워.
과다 출혈 때문이야.
다친 학생A는 힘겹게 몸을 일으켜 다른 물자 상자 구석에서 얼룩진 붕대 한 뭉치를 꺼냈다.
이건 엘리아나 교관님이 남겨 주신 마지막 붕대야. 교관님이 돌아오실 때까지…
다친 학생A는 멀쩡한 한 손과 치아를 이용해 여학생의 붕대를 다시 꽉 조여 지혈을 도왔다.
교관님이 오실 때까지 최대한 아껴 써야 해.
저 상자에 든 식량도… 이제 거의 다 떨어져 가지?
당분간은 버틸 수 있어. 그다음은…
우리가 먼저 귀항하느냐, 저놈들이 먼저 들이닥치느냐에 달렸겠지.
우리가 먼저 돌아가면 음식을 먹을 수 있겠지만, 밖의 놈들이 먼저 들어오면 우리가 음식이 되겠지.
어느 쪽이든, 누군가의 배는 채워지겠군.
…
깜빡이는 전등 불빛 아래 소곤거리던 목소리가 잦아들더니, 출혈이 심했던 학생은 이내 의식을 잃었다.
지휘관님!
칼날이 번뜩이자 기괴한 괴물 한 마리가 지휘관 뒤편 물자 상자에 처박혔다. 놈은 동료의 사체를 짓밟고 안전 구역 안으로 뛰어든 것이었다.
으아악… 놈들이 쳐들어왔어!
적의 뒤틀린 기계 사지에서 녹슨 듯한 마찰음이 들렸다. 여과탑이 전력을 다해 가동되며 퍼니싱이 없는 환경으로 적의 전진을 막았으나
다른 괴물이 그 기계 팔을 밟고 부상자들에게 달려드는 것까지는 막지 못했다.
저놈들이 동료 사체를 발판 삼아 밀고 들어왔어요!
유광이 허공을 가르고 루시아가 완벽에 가까운 원을 그리며 장도를 휘둘러 괴물의 관절을 베어냈다.
여과탑이 여전히 가동 중이었기에,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기 전까지는 안전 구역을 계속 좁혀 나가는 수밖에 없었다.
놈들 머릿수가 너무 많으니, 제가 먼저 외곽 괴물들부터 처리할게요!
루시아가 참호 밖으로 몸을 날리자, 그녀의 목소리는 적들의 소음에 묻혀버렸다.
학생들은 서로 부축하며 조금 떨어진 여과탑을 향해 힘겹게 움직였다.
앗!
이동하던 여학생의 다리에 힘이 풀리며 고꾸라질 뻔했다.
날 잡아!
잘려 나간 팔에서 느껴지는 극심한 통증을 참아내며, 남학생은 멀쩡한 팔로 여학생의 어깨를 꽉 붙잡았다.
안 돼, 못 가겠어. 난 버리고 가. 기력이 다해서 더는 발이 안 떨어져! 괴물들이 코앞까지 들이닥쳤단 말이야!
발목이 퉁퉁 부어오른 여학생은 동료를 힘껏 밀쳐내며 절규했다.
크아아악!!!
괴물의 날카로운 발톱이 파공음을 내며 머리 위로 쏟아졌다.
지휘관은 여학생을 급히 끌어당겨 몸을 낮췄고, 두 사람은 바닥을 굴러 간신히 공격을 피했다. 그리고 지휘관은 일어섬과 동시에 재빨리 방아쇠를 당겼다.
괴물의 날카로운 발톱이 두 사람의 코앞까지 들이닥쳤다.
탕!
총알은 괴물을 겨우 반걸음 물러나게 했을 뿐이었고, 고통을 느낀 괴물은 다시 맹렬하게 튀어 올랐다.
…
서늘한 칼날이 허공을 가르자, 괴물의 공격이 뚝 끊겼다.
지휘관은 정신을 잃은 학생을 일으켜 세우며 짧게 감사를 표하고는 움직일 수 있는 다른 교관에게 학생을 인계했다.
도와주겠다고 말했잖아.
게다가, 내 사냥감은 아직 전장에 나타나지도 않았거든.
맞아. 우주 함선으로 다가오고 있어.
위잉——
또다시 갑판을 뒤흔드는 격렬한 진동이 발생하자 알파는 이마를 짚었다.
괜찮아.
눈살을 찌푸린 알파는 그렇게 해서라도 지독한 통증에서 벗어나려는 것 같았다.
이동하는 막간을 이용해 지휘관은 알파에게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그럼, 너희는 왜 거기에 있었지?
…
지휘관이 순순히 목적을 밝힐 줄 몰랐는지 알파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난 어떤 "환영"을 쫓아 파오스 옛터에 오게 됐어.
그러다 이 공간이 열리면서 파오스 우주 함선이 침식되는 광경을 목격했지.
너희에게 알리려 했지만… 이 공간에서 흘러나온 힘이 루나에게 곧장 영향을 미쳤어.
유출된 "힘"이 기묘한 환영을 만들어내더군. 예전에 본 적 있는 것뿐만 아니라 난생처음 겪는 것들도 있었어.
알파는 파오스 기념비 아래에서 이야기하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러다 파오스 옛터에서 너희와 마주친 거야.
기체를 업그레이드한 루나라면 승격 네트워크의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을 터였다. 그런 루나에게 영향을 줄 정도의 힘이라면…
확실하지는 않아. 하지만 그게 뭐든 내 손으로 찾아내겠어.
■▃▂■■▇▃█▂▄▇■▃█——
키메라의 날카로운 울음소리가 둘의 대화를 가로막았다.
키메라가 왔어.
말을 마친 알파는 장검을 쥔 채 안개를 뚫고 나갔다.
알파는 더듬거리며 무언가를 찾아 헤맸다.
사격해!
안개 지역 너머로 모습을 드러낸 키메라에게 포구를 겨눈 바네사의 표정은 차갑게 굳어 있었다. 맹렬한 화력이 쏟아졌지만, 거수는 그저 머리를 슬쩍 돌렸을 뿐이었다.
젠장! 왜 갑자기 이쪽으로 달려드는 거야.
대체 뭘 하려는 거지!
레이나는 눈을 부릅뜬 채 키메라가 발버둥 치는 학생을 낚아채는 광경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고농도 퍼니싱이 순식간에 학생의 방호복을 부식시켰다. 채 3분도 지나지 않아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핏덩이가 된 학생이 바닥에 던져졌다.
멈춰!
맹렬한 포화가 키메라의 몸 위에서 폭발했고, 사방으로 튄 검은 피가 갑판에 구멍을 냈다.
키메라는 고통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듯 몸을 숙여 또 다른 인간을 집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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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제할 수 없는 힘이 뿜어져 나오자, 우주 함선이 요동쳤다.
봤어. 드디어 봤어.
알파는 갑판 위에서 차갑게 그곳을 내려다보았다.
여긴 내가 맡을 테니, 너희는 통신 탑이나 사수해.
알파는 몸을 날려 키메라를 쫓아 안개 속으로 뛰어들었다.
안 돼. 균열이다!
키메라의 울음소리가 모든 경보음을 집어삼켰고, 통신탑 한쪽에서는 거대한 균열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거대한 균열은 굶주린 맹수의 아가리처럼 새로운 먹잇감을 기다리고 있었다.
워렌! 대답해!
바네사는 다른 데 신경 쓸 겨를도 없이 중형 무기를 챙겨 통신탑 아래로 내달렸다.
단말기에서는 거친 백색 소음만이 흘러나왔다.
이런, 저놈들이 우리가 살아서 돌아가는 꼴을 정말 보지 못하겠다는 거군. 하하…
바네사가 전력 질주하는 사이, 통신 탑 꼭대기에서 작은 그림자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워렌! 거기서 뭐 하는 거야!
당연히 기쁜 소식을 전해줘야지.
낮게 웃으며 창가에 기대어 단말기 버튼을 누른 워렌에게는 이미 일어설 기력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워렌의 곁에는 탐색대의 다른 대원 두 명도 모여 있었다. 하지만 단순히 "모여 있다"고 하기엔 그 광경이 너무나 처참했다.
우리 구조 신호에 응답이 왔어.
!!!
토비가 통신탑 위로 기어 올라가 신호 증폭기를 설치했어. 하지만 그 바람에 토비가 밑으로 떨어졌고, 내가 붙잡은 건 녀석의 왼팔뿐이었어.
엘과 내가 통신탑을 사수하던 중 적들이 들이닥쳤어. 이젠 총알마저 다 떨어졌고.
엘은 장비가 망가지는 걸 막으려고 소형 폭탄을 챙겨서 적들과 함께 해치 밖으로 나갔어.
내 곁에는… 지금 엘의 단말기밖에 안 남았네.
하지만… 우리 제5탐색대는 해냈어.
워렌은 보호 마스크에 묻은 피를 닦아내며 홀가분한 듯 미소 지었다.
우리가 드디어 공중 정원의 통신 신호를 잡았다고!
워렌!!
워렌의 손짓에 맞춰 통신탑 꼭대기에서 꺼져 있던 표시등이 반짝였다. 검은 균열을 배경으로 비쳐 오는 희미한 푸른빛은 유독 눈부셨다.
바네사, 잘 들어.
공중 정원의 채널을 네 단말기로 연결해 줄게.
공중 정원의 메시지를 전부 수신할 때까지 통신 탑은 무너져선 안 돼. 아니. 무너지지 않을 거야.
탑 아래 균열에서 첫 괴물이 이미 흉측한 앞발을 내밀고 있었다.
바네사.
나 대신… 엘리아나에게 안부 좀 전해줘.
워렌이 손에 든 기폭 장치를 작동시켰다.
뭇별의 끝에서 기다리고 있겠다고… 전해줘.
워렌은 그렇게 말을 마치고 몸을 던졌다.
콰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