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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5 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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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함선이 격렬하게 흔들렸고, "균열"이 마치 뒤틀린 눈동자처럼 허공에 하나둘씩 "깨어났다".

모두가 지휘실에서 뛰쳐나오자, 비좁은 안전 구역에서 간신히 대열을 갖춘 병사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 번호 출처는 알아냈어?

바네사는 총기를 정비하며 서둘러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 아니요. 그런 번호 체계는 아예 존재하지 않아요.

존재하지 않는다고?

식별 번호의 구조로 조회해 봤는데, 그해 파오스 군사 지휘 학교에 ID가 Joanne인 여성은 단 한 명도 없었어요.

파오스 군사 지휘 학교의 식별 번호는 유일성을 가지고 있어서 구조 안에는 소재지, 입학 연도, 성명, 학번 등 복잡한 정보가 포함되어 있었다.

입학한 모든 신입생은 고유한 식별 번호를 부여받았다. 그렇기에 입학 등록만 되어 있다면 조회되지 않는 일은 절대 없었다.

설마 키메라가 파오스 군사 지휘 학교의 신호를 "시뮬레이션"하고 있는 건가?

지휘관은 아직 그 거대 괴물을 직접 보지 못했으나, 바네사의 설명대로라면 그놈은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인간을 손쉽게 짓밟을 수 있었을 터였다.

그런데 왜 이런 신호가…

바네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격렬한 진동이 다시 들이닥쳤다. 그 여파로 주변 물자 상자가 심하게 흔들렸고, 상자를 고정하던 결속선 몇 개가 연달아 끊어졌다.

지휘관은 물자 상자에 기대어 있던 부상자를 재빨리 끌어당겼다. 묵직한 금속 상자가 요동치며 굉음과 함께 뒤집히더니 반대편 선실 벽을 세게 들이받았다.

???

■▃▂■■▇▃█▂▄▇■▃█…

키메라야!

처절한 울부짖음이 선실 밖 멀리서 들려왔다.

바네사! 밖은… 이제 한계야!

안전 구역 부상자를 살필 새도 없이 바네사의 단말기가 울렸다. 레이나 뺨에는 피가 묻어 있었고 표정은 당혹감으로 가득했다.

균열이 늘어나면서 퍼니싱 농도도 높아지고 있어! 통신 탑 옆에 "균열"이 여러 개 생기더니 놈들이 거길 공격하고 있어!

제3소대와 제4소대를 데리고 지원하러 가겠지만… 걱정돼.

통신 탑은 반드시 사수해야 해! 내가 지금 병력을 이끌고 갈게! 넌…

갓 도착한 지휘관보다는 바네사가 우주 함선 상황을 더 잘 파악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지휘관이 직접 가는 것보다 이 임무를 바네사에게 맡기는 편이 나았다.

알았어.

지휘관과 시선을 교환한 바네사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지원하러 온 다른 구조체와 함께 빠르게 자리를 떴다.

???

■▃▂■■▇▃█▂▄▇■▃█…

애절하면서도 귀를 찌르는 듯한 소리가 안개 지역에 울려 퍼졌고, 짙은 잿빛 안개는 우주 함선 전역을 잠식하고 있었다.

퍼니싱 농도가 너무 높아서 퍼니싱 결정이 만들어지고 있어요.

루시아가 옆에서 "자라나는" 기괴한 결정체를 베어 넘겼다.

인간은 후퇴할 줄밖에 모르나?

칼날이 단숨에 안개를 가르자, 어둠 속에서 서늘한 검광이 번뜩였다. 그러자 안개 뒤에 숨어 있던 괴물은 미처 비명을 지르기도 전에 엉망이 된 갑판 위로 육중하게 고꾸라졌다.

지휘관은 알파와 더 대화할 새도 없이 다시 혼란 속으로 휘말렸다.

흥.

안전 구역 외곽에 경보의 붉은빛이 안개 속에서 끊임없이 깜빡였다. 알파는 그 희미한 빛에 의지해 안개 사이를 오가는 인간들의 모습을 어렴풋이 포착했다.

그들은 그저 나약하고 무력한 인간일 뿐이었다. 루시아가 나타나는 모든 괴물을 처단할 수는 없었으며, 단 한 마리만으로도 인간의 목숨을 앗아가기에 충분했다.

인간들에게는 퍼니싱을 여과할 방호복뿐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준비—— 발사!!

한 학생의 명령에 따라 나머지 학생들이 중화기의 방아쇠를 힘껏 당겼다.

그러자 불꽃이 뿜어져 나와 눈앞까지 들이닥친 괴물을 불태웠다. 알파는 학생 눈동자에서 공포를 읽었으나… 퇴각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전방을 향해 공격하라!

라스트 총교관 목소리는 이미 쉬어 있었다. 그 곁에는 파오스 학생 몇 명이 엄폐물 뒤에 몸을 잔뜩 웅크리고 있었다.

탄약을 보충한다!

명령을 내린 학생은 파오스 교기를 힘차게 휘두르며 다음 공격을 준비했다.

학생은 이를 악물었고 팔은 끊임없이 떨렸으나, 그 누구도 무기를 놓지 않았다.

왜소한 체구에 방호복을 입은 여학생이 참호 엄호를 받으며 다른 구역으로 뛰어들어 총을 든 학생 팔 각도를 고쳐 잡아 주었다.

꽉 잡아. 이렇게 하지 않으면 반동 때문에 어깨를 다칠 수도 있어.

아, 고마워.

학생의 손가락은 힘이 풀려 몇 번이고 애써 보았으나 방아쇠를 당기지 못했다.

미… 미안해.

학생이 아랫입술을 꽉 깨물자, 메마른 입술 사이로 핏방울이 배어 나왔다.

나, 나는 그냥…

괜찮아. 조금 긴장했을 뿐이잖아. 그렇지?

니아는 눈을 가늘게 뜨고 목표를 조준하며 학생이 방아쇠를 당기도록 거들었다.

쾅——

둘은 근처에 있던 괴물 한 마리를 정확히 명중시켰다.

네 이름은… 오소, 맞지?

잘 봐, 방금처럼 눈 같은 약점을 정확히 노려 공격하면 전술 지원 수업 80점은 문제없을 거야. 우수 등급도 머지않았어.

니아는 머릿속에 남아 있는 엘리아나 교관의 목소리를 어설프게 흉내 내며, 방아쇠를 잡고 있던 손을 살며시 뗐다.

그… 그래?

당연하지.

이제부터는 네 몫이야.

니아는 다시 한번 오소의 조준점을 잡아 주었다.

준비—— 발사!

놈들이 엄폐물 근처에 오게 하지 마라!

중화기 여러 문이 동시에 귀를 찢는 굉음을 토해내자 붉은 불꽃이 안개 속으로 눈부신 궤적을 그렸다.

괴물이 빗발치는 총탄 속에서 비명을 지르며 나동그라졌다. 수많은 괴물은 동족 사체를 짓밟으며 금속 파도처럼 밀려왔고, 강판을 관통하는 화력을 뚫고 엄폐물 근처까지 육박했다.

조심해! 측면이야! 놈들이 뚫고 들어왔어!

공포가 섞인 비명은 근거리 폭발음에 금세 파묻혔고, 깃발을 든 학생은 저항할 새도 없이 반대편에서 튀어나온 날카로운 발톱에 몸을 꿰뚫렸다.

학생이 꽉 움켜쥐었던 파오스 표식이 새겨진 군기는 괴물의 공격과 함께 서서히 쓰러졌다.

후퇴하라! 여과탑 범위 내로 후퇴하라!

라스트 총교관은 금이 간 엄폐물을 단번에 뛰어넘었다. 그리고 양손에 든 중형 기관단총이 광기 어린 불꽃을 뿜어냈다.

라스트 총교관님!

괴물 무리가 순식간에 눈앞까지 들이닥쳤다. 라스트는 빈 총을 내던지고 전술 비수를 뽑아 들어 괴물 관절에 정확히 꽂아 넣었다.

물러나라! 으윽!

갑판 아래 균열에서 검은 그림자가 솟구치더니, 괴물이 울부짖으며 발톱을 들이밀었다.

발톱은 순식간에 라스트 몸을 꿰뚫어 뒤편 금속 선실 벽에 박아 넣었다.

교관님!

니아는 총을 들고 참호에서 뛰어나와 괴물에게 화력을 쏟아부었지만 턱없이 부족했다.

여러 마리의 괴물이 빈틈을 타 학생들이 있는 참호로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놈들이… 놈들이 들어왔어!

겁 먹지 말고, 계속 사격한다!

니아는 본능적으로 소리를 질렀고, 그 목소리는 참호의 소란을 뚫고 울려 퍼졌다.

놓지 마! 꽉 잡아! 사격해!

학생 몇몇이 참호를 빠져나갔다. 뒤에서 적이 다시 몰려드는 것을 확인한 니아는 고장 난 총을 내던지고 통로를 가로막았다.

파오스를… 위하여!

니아는 허리춤에서 소형 폭탄을 힘껏 꺼냈다.

니아에게 달려들던 괴물 하나가 휘둘러진 칼날에 나가떨어졌고, 검광이 번뜩이는 사이 니아가 쥐었던 소형 폭탄이 괴물 무리 속으로 날아들었다.

익숙하면서도 정체 모를 동요가 알파 의식의 바다에서 다시 한번 솟구쳤다.

지휘관님, 저 균열들을 보세요!

전투 중 루시아의 외침에 고개를 들어 보니 우주 함선 주위의 "균열"이 계속 커지고 있었다. 그리고 괴물은 그 틈으로 끊임없이 쏟아져 나와 우주 함선의 갑판으로 쇄도했다.

알겠습니다.

네 지시는 필요 없어. 당분간은 내가 거들어 줄…

윽…

???

■▃▂■■▇▃█▂▄▇■▃█…

처절한 울음소리가 다시금 들려오자, 알파는 크게 휘청거렸고, 칼자루를 거머쥔 손끝이 하얗게 질려갔다.

이번 파동은 인간인 지휘관의 뇌에까지 영향을 줬는지 지휘관의 마인드 표식마저 불안정한 신호를 내보내게 했다.

보아하니… 저놈이 모든 것의 근원인 것 같아.

알파는 자세를 바로잡고 장검을 뽑아 들었다.

지휘관이 말릴 새도 없이 알파는 안전 구역 외곽 너머로 사라졌다.

안전 구역 외곽 곳곳에 혈흔이 낭자했다.

안개 지역 속에서 "키메라"가 우주 함선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키메라가 울부짖을 때마다 안개 지역은 계속 무너져 내렸고 더 많은 "균열"이 생겼다. 떼를 지은 괴물들은 이성을 잃은 늑대 무리처럼 끊임없이 갑판 위로 기어올라 "안전 구역"으로 몰려왔다.

놈들에게는 아무런 목표도 없었다. 그저 본능에 따라 눈앞의 모든 인간을 도륙할 뿐이었다.

알파

너였어.

알파는 안개 지역 너머 우주 함선 한쪽에 있는 키메라를 멀리서 응시했다.

???

■▃▂■■▇▃█▂▄▇■▃█…

놈은… 슬퍼하고 있었다.

뭐… 라고…

그녀는… 왜 키메라의 슬픔을 느낄 수 있는 것일까?

뒤이어 의식의 바다가 갈가리 찢기는 듯한 통증이 엄습했다. 알파는 미간을 찌푸리며 이 모든 것을 "안개 지역 영향"이라 치부했다.

알파는 칼날을 휘둘러 달려드는 괴물을 베어 버렸다.

이 모든 일의 원흉이 네놈이라면…

알파가 순식간에 몸을 날려 혈흔 낭자한 갑판 위에 가뿐히 내려앉았다.

넌 대체 뭘 원하는 거야?

날카로운 칼날이 선실 벽을 타고 올라오던 괴물을 꿰뚫었다.

파오스 우주 함선과 나, 그리고 그레이 레이븐 지휘관과 루시아까지 끌어들여서…

안개 너머 거수에게 시선을 고정한 알파는 장검으로 안개를 가르며 차갑게 두 발을 내디뎠다.

대체 무슨 속셈이지?

통신 탑 근처

파오스 우주 함선

안개 지역

잿빛 안개가 통신 탑 주변을 소용돌이처럼 휘감았다. 키메라가 울 때마다 균열이 벌어졌고, 고농도 퍼니싱이 변이 결정으로 굳어지며 통신 탑 주위를 에워쌌다.

젠장, 지원군은 대체 언제…

마야!

일촉즉발의 순간 레이나가 총구를 돌려 사격함과 동시에 왼손으로 학생의 멱살을 낚아채 괴물의 공격 범위 밖으로 거칠게 끌어냈다.

이런 때 멍하니 있다니, 죽고 싶어 환장했어? 가서 나나 엄호해!

아, 알겠어요!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마야는 총을 안고 엄폐물 뒤로 숨었다.

지원이 더 늦어지면 통신 탑은 끝장이야.

레이나는 이를 악문 채 충혈된 눈으로 안개 너머 통신 탑을 절망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괴물들이 퍼니싱 결정을 타고 기어 올라가 탑 꼭대기에 이르자, 통신 탑을 지키던 제5탐색대가 화력을 퍼부었으나 역부족이었다.

사격해!

하늘을 가르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사나운 불길이 통신 탑에 매달린 괴물들을 정확히 강타했다.

살았다! 바네사!

잠깐, 그 중화기 포는 어디서 난 거야?

창고를 뒤져서 찾아냈지.

바네사는 구태여 설명하지 않고 두 구조체에게 계속 사격을 지시하며 단말기를 켰다.

제5탐색대, 워렌… 살아 있어?

당연하지!

날카로운 금속음이 섞인 백색 소음 너머로 남성 교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5탐색대… 전원 3명 중 현재 3명 생존.

바네사, 총알이 거의 바닥났지만… 모두가… 살아 있어!

살아 있으면 됐어. 총알은 내가 어떻게든 해 볼게.

계속 외부로 구조 신호 보내. 그리고…

버텨.

아하, 네가 그런 말을 다 한다니 별일이네.

걱정하지 마. 난 아직 엘리아나한테 프러포즈도 못 했다고! 이대로 죽을 순 없지!

바네사가 입을 떼기도 전에 통신이 끊겼다.

워렌은 아직 엘리아나가 그렇게 된걸…

누가 가서 소식을 전할래?

바네사는 레이나의 말을 차갑게 끊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전술 지도를 응시했다.

워렌뿐만 아니라 우리 중 누구도 오늘을 넘길 수 있을지 장담 못 해.

바네사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홀로그램 스크린에서 초록색 신호가 또 하나 사라졌다.

라스트가… 전사했어.

레이나는 허탈하게 고개를 떨구었다.

공중 정원의 우주 함선에서라면 레이나는 파오스 군사 지휘 학교의 위풍당당한 행정 책임자로서 모든 자원을 관리했겠지만… 이곳에서 레이나는 전우들이 하나씩 죽어 가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넋 놓고 있지 마. 탄약을 가져왔으니 어떻게든 워렌 일행에게 전해야 해.

무리하게 몸을 움직이자, 팔의 상처가 욱신거렸다. 바네사의 창백한 얼굴에서 마지막 핏기마저 가시며 미간이 깊게 패었다.

너도 다쳤어?!

가벼운 상처야. 방호복도 갈아입었고 침식되지도 않았으니까 호들갑 떨지 마.

바네사는 뼈가 보일 정도로 깊어 피가 철철 흐르는 상처를 대수롭지 않은 듯 몸을 돌려 감췄다.

워렌에게 보급품을 전달할 방법을 찾아봐. 무슨 일이 있어도 통신 탑은 뺏겨선 안 돼.

고개를 들어 안개 속에 홀로 서 있는 강철 구조물을 바라보는 레이나의 눈동자에 막막함이 스쳐 지나갔다.

통신 탑을 지킨다 한들… 이런 곳에서 정말 공중 정원과 연락이 닿을 수 있을까?

처음엔 확신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가능할 것 같아.

바네사의 시선은 홀로그램 지도에서 여전히 교전 중인 두 개의 초록색 신호를 쫓았다.

[player name]와(과) 루시아… 그리고 정체 모를 구조체가 안개 지역에 들어왔다는 건, 이 공간의 파동 상태가 불안정하다는 뜻이야.

이곳은 완전히 폐쇄된 공간이 아니라 지상으로 이어지는 "출구"가 간헐적으로 생기고 있어.

바네사는 눈을 가늘게 뜨고 단말기에 표시되는 주파수를 뚫어지게 응시했다.

전체 채널로 계속 구조 신호를 보내고, 공중 정원도 우리를 수색하고 있다면

반드시 연락이 닿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