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호가 뒤쫓아 나갔다. 원래 문이 있던 곳은 벽 전체가 무너진 폐허로 변한 가운데, 그 속에서 기침 소리가 들렸다.
양을 좀 조절할 수 없어?!
들어갈 수 있으면 됐지. 봐, 적당하잖아.
익숙한 소리에 21호는 눈을 크게 뜨고 말없이 연기 속으로 달려갔다.
이 바보, 지금 추적 중인데 이렇게 큰 소리를 내면!……어……?!
뭐야, 매복이라니!! 그럴 줄 알았어! 내 화약 폭탄을 받아라!
……녹티스! 매복이 아니야.
잔해와 폭발의 여운이 감도는 하얀 연기가 걷히자 그곳에 있던 자의 정체가 드러났다... 베라는 한 손을 허리에 대고 다른 한 손은 무기를 들고 있었다. 21호는 그녀의 다리를 꼭 껴안고 있었고 얼굴은 그녀의 허리에 파묻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옆의 녹티스는 정수리에 착 달라붙은 보조 기계를 머리 위에서 떼어냈다.
21호?! 하하하하하하, 아직 살아 있네!
어이가 없네……
베라는 무기를 들지 않은 손을 들어 올렸다가 내리며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21호, 이제 됐어.
...응.
21호는 작은 소리로 대답한 뒤 손을 떼고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녀의 보조 기계도 녹티스 손에서 몸부림치며 튀어 올라 21호 쪽으로 돌아갔다.
하, 지휘관을 따라다니면서 놀라서 울거나 그러진 않았겠지?
……놀라서 울어? 21호는 놀라지 않아. 지휘관이 놀랐어.
곧 자신이 베라, 녹티스와 연결 상태가 아닌 것을 깨달았다. 통신 채널을 조정한 뒤에서야 마침내 다른 2명의 케르베로스 멤버와 연락할 수 있었다.
연락이 두절된 후에 너희 쪽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성공적으로 합류한 셈이네…… 예상 시간보다 조금 늦긴 했지만.
여자를 오랫동안 기다리게 하는 건 좋지 않은 행동이지만, 그저 여자를 기다렸을 뿐이니 지휘관도 손해 본 건 아니잖아?
아직 그 수수께끼 인물의 정체는 파악하지 못했어. 도중에 약간의 사고가 생겼는데 누군가가 우리를 고의로 농락하고 있는 게 아닌가 의심돼.
흥. 어쨌든 나와 녹티스는 그 녀석의 안내에 따라 여기까지 왔는데……매번 한 발짝씩 뒤떨어졌어.
둘은 여기는 어떻게 온 거야?
그럼 말할 필요 없어. 아무튼 마지막 안내가 우리를 여기로 데려왔으니 이번에는 반드시 그 녀석보다 앞서서 "그"를 잡아내겠어.
베라는 말하며 거실로 들어섰다.
어때? 뭐 발견한 거라도 있어?
예를 들면, 빨간색 페인트로 쓴 "어서 나를 잡아줘"라는 메세지나, 인형의 머리가 도로 한복판에 화살표 모양으로 줄지어 있다든가, 길 위의 투명한 유령, 그리고 이 집 문 앞의 자물쇠가 있지. 귀신을 보고 어떤 나약한 새【삐——】가 자기 집에 이렇게 복잡한 자물쇠를 걸어 둔 거야?!……
녹티스의 말은 가장 처음에 사물함에서 봤던 핏빛 낙서를 떠올리게 했고, 같은 생각을 한 21호가 다른 두 사람을 사물함 쪽으로 데려갔다.
이쪽이야.
겨우 이게 다야?
사물함에 칠해진 낙서를 보고 녹티스는 화가 난 듯 소리를 질렀다.
이번에는 지도인가?
……이 집 뒤에? 여기가 우리 목적지인 것 같은데. "최후의 지옥"……이 사람의 패기는 알겠지만 정말 웃길 만큼 진부한데?
그럼 가자.
베라가 내뿜는 냉랭한 아우라에 나도 모르게 뒤로 물러날 것만 같았다.
하루 종일 우리와 숨바꼭질을 한 장난꾸러기를 만나러 가볼까.
...아, 그리고 21호.
응.
복귀를 환영해.
응, 21호에게 언제든지 명령을 내려줘.
집 뒤에는 숲이 있었다. 그들은 숲의 가장자리를 지나 숲 속의 오솔길로 들어섰다.
말라 있는 강 옆길을 걷고 있는데 광풍이 사방에서 휘몰아쳤고 밤바람에 나뭇잎이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모든 이의 귓가에 맴돌았다.
깊이 들어갈수록 밤바람 소리에 섞인 목소리가 앞쪽에서 들려왔다.
음……
하하——하하하——
……
우리보다 먼저 도착한 손님이 있군.
오솔길 끝에 가까워지자 나뭇잎 사이로 달빛이 쏟아져 내렸다. 베라는 뒤에 있는 케르베로스 소대원들에게 경계를 늦추지 말라며 눈짓했고, 세 명의 구조체가 살금살금 덤불 뒤로 갔다.
——너를 죽여버릴 거야! 너를 찢어버릴 거야! 너의 내장을 꺼내서 네 얼굴을 덮어 줄 테다!
후후……
커다란 충격음과 함께 나타난 것은 아무도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구조체의 모습이었다...
저건 롤랑이잖아?
처음에 롤랑인 것을 알아보지 못한 베라는 눈살을 찌푸렸다. 롤랑은 공중 정원의 감시에서 몸을 숨긴 지 이미 한참이 지났었다. 더군다나 지금은... 기체를 바꾼 것 같았다.
누가 저 녀석이랑 싸우고 있는 거야?
롤랑은 땅에 착지하자 묻지도 않은 먼지를 털었다. 맞은편의 "상대방"은 높은 곳에 있는 듯 나무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다.
이런, 이런……나를 여기까지 끌고 온 건, 그냥 한 대 때리기 위해서야?
불만이 있으면 앉아서 얘기하면 되잖아. 갑자기 손을 대다니……내 신사적인 품격과는 정말 거리가 멀군……
무슨 헛소리야! 난 임무가 뭔지 몰라! 너를 죽일 거야!
그렇게 외치며 롤랑을 향해 미친 짐승같이 더 맹렬한 공격을 쏟아냈다. 나무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았지만, 롤랑은 열세인 듯 뒤로 물러서 있었다.
그 순간, 나는 달빛 아래서 롤랑의 웃음 섞인 눈을 본 듯했지만, 너무 순식간이여서 그저 착각일 것이라고 의심했다.
…………
공격으로 날아가 땅에 떨어진 롤랑은 손을 흔들며 기침을 계속했고, 순환액이 그의 입가에서 흘러내렸다.
쯧쯧, 임무가 뭔지도 모르고……어떻게 이런 이상한 애를 보낸 거야……
죽이는 건 좋은데, 왜 죽이려는지 좀 알려줄래?
네 주인이 나에게 무슨 말을 전해달라고 한 거 없었어?
아니면……콜록, 넌 단지 누군가를 죽이기 위한 용병인가?
롤랑의 말은 상대방을 잠시 멈추게 했고, 잠시 후 무언가가 날아올랐다.
……하늘에 저건……!
21호의 말에 모두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한 강철 괴물이 천천히 날아올라 달빛을 등에 업고 주위를 노려보고 있었는데, 그 모습은 몸이 떨릴 정도로 섬뜩했다.
그분이……내게 너한테 보여주라 했던 것……
그 인간형 괴물은 눈을 번뜩이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 목소리는 쉬어 있었고 말투는 차분해 성별을 분간할 수 없었다.
"로키"가 이미 보여줬을 것이다.
우리가 상대를 잘못 알고 있었던 것 같아……그 표시들은 우리를 향한 게 아니었어.
하지만 너에게는 그럴 가치가 없는 것 같네.
그럼 여기서 끝내자……하하……
인간형 괴물은 개가 짖는 듯한 웃음소리를 냈다.
베라, 어떻게 해? 싸워?
……녹티스, 21호, 철수한다.
이건 임무 목적과 무관해.
우리는 확실히 목표를 잘못 추적했어. 지금이면 되돌아가도 늦지 않아. 지휘관 당신도 이미 자신의 임무를 완료했잖아. 안 그래?
베라의 말투는 어딘가 의미가 있는 것 같았다. 그녀는 뭔가를 감지한 것일까?
……확실히 그런 것 같네. 그럼 더더욱 싸울 필요가 없겠어. 오히려 당신이 내 대원과 무슨 좋은 일을 했는지 듣고 싶은데?
하, 일을 번거롭게 만들고 싶은 거라면 알아서 해. 난 빨리 일을 끝내고 싶을 뿐이야.
당신은 내게 명령할 수 없어——
이곳에 도착한 뒤로 줄곧 침묵하던 21호는 긴장하기 시작했고, 위험에 대한 경각심이 그녀의 의식의 바다 속으로 돌진하고 있었다.
21호. 발각됐어……!
...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