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가 끝난 뒤, 21호는 급히 아래층의 지하실로 뛰어갔다.
지하실 문 앞에 서서... 아니, 그건 더 이상 문이라고 할 수 없었다. 수많은 핏자국과 긁힌 자국이 문 위에 이곳저곳 남아 침묵의 묘비와 같았다.
21호가 그 문을 살짝 열고 들어갔다.
봉인된 기억이 다시 열렸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단지 지하실 같은 썩은 냄새가 가득하고, 쌓여있는 물건에 몸이 끊임없이 부딪치는 감각만이 있었다.
곧이어 그 어둠 속에서 한 줄기 빛이 비쳤다. 자신도 모르게 문을 조금 열어 살며시 밖을 내다보았지만 계단의 한구석만 보였다.
나무 바닥에 울리는 소름 끼치는 금속음에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리고 몸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 후에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어떤 충동이 자신의 몸속 깊은 곳에서 미친 듯이 솟아올랐다. 언니의 이름을 큰 소리로 외치고 싶었지만……할 수 없었다. 그래서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지만 그 통증만으로는 그 공포를 억누를 수는 없었다.
죽음과 같은 정적.
천둥과 같은 소리가 들렸는데, 그것은 자신의 심장이 뛰는 소리란 것을 깨달았다.
그 인공심장은 자신과 아무런 관계없는 인간의 기억 때문에 비명을 질렀다.
이런 정적이 1초가 지날 때마다 절망이 조금씩 더해졌다. 지하실의 어두운 그림자가 마치 등을 짓누르듯 자신을 무너뜨리려 하고 있었다.
둔탁한 소리가 가까이에서 울려 퍼졌다. 뭔가 검붉은 몸이 계단에서 굴러떨어져 땅에 부딪쳤다
무의식적으로 입을 가리고 비명을 지르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몇 초가 지났거나 어쩌면 더 긴 시간이 지났는지 모른다. 몸을 움직이자 고통스러운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어린 루시아는 땅을 짚고 몸을 지탱하며 천천히 일어섰다.
피가 그녀의 이마에 흘러내리며 눈, 옷깃과 손끝을 붉게 물들였다.
손가락 사이로 가냘픈 외침이 새어 나왔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아직 모든 것이 끝난 게 아니었다. 계단 꼭대기에 있는 거대한 그림자가 루시아의 작은 몸을 뒤덮었고, 그녀는 똑바로 서지도 못했다.
그러나 그녀의 얼굴에는 조금도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발을 질질 끌며 그 괴물은 계단 아래로 향했고 그림자는 점차 가까워졌다.
반응하기 전에 지하실 문이 거세게 열리면서 내 몸 위로 햇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나는 그 오렌지 빛에 따스함을 느꼈다.
혈관의 울렁거리는 흐름은 쓰나미 같았고, 귀청이 터질 것 같은 맥박의 진동은 마치 북소리를 울리는 것 같았다.
손에 든 "무기"를 높이 치켜들자, 자신의 심장 박동이나 괴물의 고함소리가 들리지 않게 됐다. 보이는 것은 그 상처투성이, 피투성이의 여자아이뿐이었다.
——그 "무기"가 그저 우스꽝스러운 인형이었지만.
루나!!
루시아의 표정이 달라졌다. 그것은 무서운 침식체와 마주쳤을 때는 없었던 당황스러움이었다.
그녀는 이쪽으로 달려오고 싶었지만 통증으로 발을 헛디뎌 땅에 넘어지는 바람에 두 손으로 이쪽을 향해 기어왔다.
루나! 돌아가!
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두 눈에서 붉은빛을 번뜩이는 침식체가 새 먹잇감을 본 듯 맹렬하게 이쪽으로 달려들었다.
아, 안 돼——
21호가 손을 내밀었지만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
...그리고?
기억은 여기서 뚝 끊겼다. 루나가 그 이후의 기억을 잃어버린 것인지 아니면 기억을 되살리고 싶지 않은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나 다친 건가?
21호는 볼을 만지며 그곳은 차가워야 할 것 같았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매우 중요한 것을 잃었어.
이런 감정들은 21호에게 매우 낯설었다. 그런 일을 경험한 적도, 본 적도, 느껴본 적도 없는 21호는 그저 멍하니 서 있었다.
21호……이런 느낌 싫어.
그녀는 나쁜 짓을……많이 했어.
왜 이것들을 나에게 보여준 거야?
이런 일은 그녀에게 설명하기 어려워 간단히 말할 수밖에 없었다.
모두 자신의 과거가 있어. 너는 자신의 과거는 새하얗다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것도 과거야.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경험으로 인해 다른 사람이 되고, 그런 과거가 있었기에 지금의 자신이 있게 되는 거야. 하지만 이런 말을 21호에게 전하는 것은 맞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너는... 지금의 자신이 마음에 들어? 너가 가진 모든 것을 좋아한다고 생각해?
좋아한다면, 자신의 과거를 부정하지 마. 중요한 것은 과거도, 미래도 아닌... 지금이기에.
이건 루나의 과거일 뿐……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야.
이때 입구에서 커다란 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