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정확하게는 몰랐지만, 루시아는 갑작스러운 위험을 느꼈고, 어린 그녀는 "엄마"의 말에 따라 루나를 끌고 2층으로 뛰어 올라갔다.
막연히 물었지만 대답을 듣지 못한 채 루시아의 발걸음을 따라갔다.
두 여자아이는 복도 끝 침실로 뛰어 들어갔다. 루시아는 문을 닫고 열린 창가 쪽으로 다가가 "엄마"의 상황을 확인했다.
엄마...
그리고 그녀는 종말을 보았다.
창 밖에서 누군가가 울부짖으며 울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미지의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방으로 흩어져 집 밖으로, 숲으로, 그리고 생존의 희망을 향해 도망쳤다.
루나의 집으로 몰려온 그들은 철문을 미친 듯이 두드렸다. 공포와 분노로 그들의 얼굴은 일그러졌고, 친숙했던 이웃들도 마치 다른 낯선 사람 같았다.
그리고 퍼니싱이 홍수처럼 밀려와 마을을 덮쳤고, 침식체는 쓰나미처럼 사방을 집어삼켰다. 새빨간 침식체는 무방비 상태의 인간 하나하나를 쫓아다니며 그들을 장난감으로 삼았다.
"아빠"가 보였다. 그는 인파를 거슬러 이쪽으로 오려 했지만 너무 멀었다. 그가 누군가의 이름을 외치고 있었지만 들리지 않았다.
그 허약한 남자가 다시 무슨 소리를 외치는 순간 뒤에서 쫓아온 "경장"에게 삼켜져 버렸다. "아빠"가 자랑스럽게 여기며 함께 싸웠던 그 동료는, 기계가 된 빨간 큰 입을 벌려 "아빠"의 머리를 삼켜버렸다. 마치 불꽃이 볏짚을 삼키고, 마른 잎이 화염에 떨어지듯, 불타고 있었고 아무도 그것을 막을 수 없었다.
의식의 바다에서 나타났던 그 희미한 빛이었던 얼굴이 점차 뚜렷해지기 시작했다. 찢어진 상처에서는 피와 살이 보이는 것 같았다.
그리고 "엄마"는 두 손을 떨며 마당에 있는 기계 괴물들을 막을 수 있는 물건들을 모두 모아 철책 뒤에 세웠다.
그녀는 자상한 엄마였다. 시장에서 돌아오는 길에는 항상 데이지 한 송이를 가지고 로봇 의수를 살 여유가 없어 휠체어에 앉아 노래하는 소녀에게 건네주었다.
추수감사절 때면 마을의 독거노인들을 위해 그녀는 직접 과자를 만들어 항상 어린 그녀에게 심부름을 보냈다. 어린 그녀가 앞으로 착하고 강인한 사람이 되도록
그녀의 손은 피아노를 쳐야했고, 꽃을 들어야 했고, 따뜻한 수프를 옮겨야 했다.
피로 얼룩져, 떨면서 철제 문짝을 꽉 쥐고 있는 것이 아닌.
그녀는 무고한 사람들이 자신의 집 밖에서 괴물에게 잡아먹히는 것을 봐야 했다. 불과 15분 전까지만 해도 그녀의 남편도 그곳에 있었다.
하지만 모든 것이 헛수고로 돌아갔다.
침식체 그리고 수많은 인간의 피로 물들여졌고, 간절히 도움을 요청하는 손이 철책 틈새로 뻗어 나오며 인간이 낼 수 있는 가장 무서운 소리를 동반했다. 마치 지옥에서 내민 손처럼 그 허약한 여자를 심연으로 끌어들이려는 것 같았다.
——
결국 그 괴물 무리를 막는 데 쓸 수 있는 건 그녀 자신뿐이었다. "엄마"는 돌아서서 철문에 등을 바짝 대었고, 강한 충돌로 그녀의 몸을 쉴 새 없이 떨게 했다. 그리고 그녀는 고개를 들어 2층 창문을 바라보았다.
눈물이 가득 고인 그녀가 훌쩍이며 말했다.
——루시아, 동생을 잘 지켜주렴.
——도망쳐.
곧바로 무시무시한 기계의 촉수가 그녀의 가슴을 관통했다. 튀어 오른 혈액은 그녀와 함께 했던 매 순간의 포옹보다 뜨겁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녀를 다치게 한 것이 침식체인지 아니면 이성을 잃은 사람인지는 이미 알 수 없었다.
……도망쳐, 루나, 도망쳐.
여자아이는 목소리를 부르르 떨며 가냘픈 손으로 한쪽을 잡으려 했지만,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그녀는 그제서야 시선을 창 밖에서 이쪽으로 돌렸다. 그 두 눈에서는 눈물이 주룩주룩 흐르고 있었지만, 울음은 내지 않았다. 오히려 난데없는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무표정해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
다시 그녀는 나의 손을 살포시 잡았는데, 그 손에서 전해지는 체온은 너무나도 리얼했다.
그리고 그녀는 나를 붙잡고 뛰기 시작했다.
빨리 도망쳐야 한다. 그런데 어디로 도망가야 할까? 밖에 그것들은 뭘까? 그녀는 엄마 아빠가 그녀들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만 알 뿐이었고, 신은 그들에게 천사를 보내 구원해 주지 않았다. 그들이 구원받을 가치가 없어서일까? 아니면 그들이 무언가를 잘못해서일까? 엄마는 그녀에게 이 답들을 알려주지 않았다. 그녀는 어디로 도망가야 할까?
눈앞의 세상은 흐르는 액체로 흐릿하게 변했다. 한 손은 루시아에게 잡혀 있어서 다른 한 손을 내밀어 눈을 닦았다. 전투 중 순환액이 흐른 적은 있었지만, 지금까지 눈에서 이런 투명한 액체가 흘러나온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침실에 거의 다 왔을 때쯤 한 인형에 걸려 땅에 넘어졌다.
바닥에 넘어질 뻔했을 때 자신이 걸려 넘어진 것은 못생긴 얼굴을 한 개구리 인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보송보송한 천으로 꿰매어 눈으로 삼은 유리구슬, 그리고 새빨갛게 찢어진 입.
"본 적이 있다."
껴안기에 좋을 것 같다. 하지만 처음 봤을 때와 지금의 감각은 매우 달랐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몸이 땅바닥에 굴러 떨어지려는 순간, 누군가가 몸을 받아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
진짜 나는 지금 일어나고 있는 상황을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기억의 주인은 겁에 질려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그 곤혹스러움에 영향을 받아 입이 제멋대로 벌어져 있었다
루시아가 자신의 작은 몸으로 여동생인 나를 따뜻하게 하려 부둥켜안았다. 루시아는 내 귓가에서 숨을 몇 번 깊게 들이 마셨는데 내 얼굴은 루시아의 품에 파묻혀 루시아의 표정이 보이지 않았다.
……루나……우리 같이 아빠의 단말기를 훔쳐보던 거 기억해?
우리 공포 영화 봤었잖아. 안에서 무섭게 생긴 괴물들이 엄청 많은 사람들을 먹어치우는 거.
기억의 주인은 이때 무언가를 떠올린 듯 더 심하게 떨기 시작했고 루시아는 그녀를 더욱 꼭 껴안았다.
우리 동네에서 지금 그런 무서운 영화를 촬영하고 있는데 너한테 말하는 걸 깜빡했네.
아래층에서 큰 소리가 울렸다. 하지만 그 소리는 먹먹하고 작게 전해졌다. 마치 빗물 한 방울이 꽃잎에서 굴러 내려와 진흙 속에 떨어지는 것 같았다.
루시아의 호흡이 가빠지기 시작했다.
아빠가 루나 놀래키고 싶어서 나한테 말하지 말라고 했어.
진짜야. 언니는 루나한테 거짓말 안 해.
그 공포와 놀라움 뒤에 안심할 만한 위로의 말을 들어서인지 더 많은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거짓말이야!"라고 외쳤다.
미안해. 루나... 하지만 너도 영화의 출연자야. 이 영화는 한 번밖에 촬영하지 못하니까 언니 말 듣고 잘 하면 돼. 알겠지?
그 소리는 점점 더 가까워졌다. 뚜렷하고 공허하며 금속처럼 낭랑하고 또렷이 울리는 메아리처럼 들렸다.
루시아는 포옹을 풀어, 내 어깨에 손을 얹고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녀의 얼굴에는 눈물 자국이 이미 반쯤 말라 있었고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루나, 넌 이제 다 컸으니 강해져야 돼. 엄마 아빠가 네 곁에 없더라도 강해져야 돼.
응, 곁에 있을 거야. 그러니깐 촬영에 잘 협조해줘. 만약 루나가 협조하지 않으면 모두의 노력이 헛수고가 될 거야.
조금 무섭긴 하겠지만 언니가 데리러 갈테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루나는 숨바꼭질 제일 잘하잖아. 그렇지?
절대 괴물에게 잡히면 안 돼.
루시아가 땅에서 일어나 나를 세우더니 등을 밀었다.
지하실에 숨는 거야! 빨리!
괴물들이 이미 들어왔어... 누군가 주의를 끌지 않으면 우리 둘 다 잡힐 거야!
꼭 다시 데리러 올게.
"꼭 다시 데리러 올게."
21호는 눈앞에 있는 여자아이를 바라보았고 그녀의 약속은 각오한 것 같았다.
21호는 일생 동안 한 번도 약속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연구소에서 인간으로 있을 때도 구조체로서 케르베로스 소대에 있을 때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 기억 속의 감정에 전염되어, 알 수 없는 힘이 그녀의 인공심장을 타고 사지로 흘러갔다. 그녀는 이 여자아이의 모든 말을 진심으로 믿었다. 21호 자신의 기억이 아닌 다른 사람의 기억을 본 것 때문인지 아니면 그녀의 본심인지는 분간할 수 없었다.
두 여자아이는 눈을 맞추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이 그 둘의 마지막 교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