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금장치의 맑은 스프링 소리와 함께 문이 서서히 열렸다.
시선이 일그러지고 눈앞에 꿈같은 광경이 펼쳐졌다.
깔끔하게 정돈된 로비의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환하게 비치고, 공기 중에는 빵을 굽는 향기가 나는 것 같았고 작은 먼지는 투명한 햇빛에 비쳐 회전하며 상승했다.
여자아이들의 떠드는 소리가 방의 깊은 곳에서 들려왔다. 모든 것이 화목하고 아름다웠다.
눈앞의 너무 기이한 광경에 잠깐 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지만, 그러나 이것이 내 자신에게 일어난 진짜 기억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이 같은 감정은 자신과 완벽하게 동기화 연결된 21호에게도 전해졌다. 그녀의 호흡은 거의 멈춰 있었고 자신은 그녀의 뜨거운 의식의 바다 속에서 초조함과 막막함을 느꼈다.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거실로 들어갔다.
——
그녀의 발걸음이 문턱을 막 넘는 순간, 모든 것이 사라졌다.
햇빛도 단정하고, 깔끔한 거실도, 여자아이들의 떠드는 소리도 없었다. 눈앞에는 그저 한 더미의... 부서진 잔해만 남아 있었다.
21호는 거실을 둘러보았다.
방금 그건 뭐야?
향긋한 냄새도 많이 나고 따뜻했어.
21호가 거실을 둘러보니 그녀에게 가장 가까운 책상 위에 놓인 액자가 눈에 들어왔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무 액자에는 깊은 흔적이 남겨졌고, 깨진 유리는 사진 속의 얼굴을 이리저리 누볐다. 시선은 공기 중에 흩날리는 먼지, 일그러진 유리 틈, 길고 긴 세월을 넘어 노란 빛깔 사진에 찍힌 내용을 알아봤다.
그녀들을 다른 의식의 바다에서 본 적이 있었다.
어지러운 추측이 머릿속을 헤집었고, 한 가지 답을 잡으려고 애를 썼지만 결국 모두 헛수고였다.
기억... 이건, 루나의 기억이다.
모든 답이 나올 것 같았다.
루나의 기억이 내 머릿속에——
파오스의 창 시스템을 통해 지휘관의 링크에 침식 중입니다. 리버스 제어 가동 완료.
이곳은 과거 승격 네트워크와 가장 가까웠던 곳이야. 당신 같은 인간의 의식이 존재할 곳이 아니야.
기억 재생에서 너는 기억의 소용돌이에 완전히 빠져들 거다. 정보 과부하로 인해 몸을 제어할 수 없고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감지할 수 없어.
간단하게 말하면 너는 아무 예고도 없이 혼란스러운 기억 속에 빠지게 된다는 거지.
잊었다고 생각했던 것... 평소에 신경 쓰지 않던 것... 또는 과거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
잊었다고 생각했던 것...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
오염된 취서체의 사고로 부터 온 광기, 증오, 파괴욕... 이와 동시에 머릿속으로 흘러드는 루나의 그리움.
수많은 기억들이 너의 표층 의식에서 다시 나타날 거다.
‘재연 진행’
‘재연 진행, 재연 진행, 재연 진행, 재연 진행, 재연 진행, 재연 진행’
‘재연 진행, 재연 진행, 재연 진행, 재재재재재재연연연연연연진진진진진진행행행행행행’
이것이 승격 네트워크의 의지...
내 운명이야.
머릿속에 여러 얼굴이 고속으로 나타나 미친 듯이 뒤섞이고 전환돼 다가왔다. 그리고 그들은 입을 벌린 채 자신조차 이해할 수 없는 말을 연발했다.
대량의 소리와 화면이 마치 홍수처럼 머릿속으로 밀려 들어왔고, 자신은 기억의 홍수에 휩쓸려 검은 사해에 떠도는 것 같았다. 손을 뻗어 도움을 청하려고 해도 만져지는 것은 공기뿐이었다.
루나...
어둠의 침식은 점점 더 빨라지고 공중에는 그 끊임없이 수축되는 빛만 남았다——
언... 언니...
극심한 통증에 의식을 되찾은 순간 눈앞에 보이는 것은 취서체도, 죽어가는 루나도, 루시아도, 아시모프도 아니었다.
단지 회색 눈동자만이 매우 가까이 있었다.
...당신 미쳤어. 혼란스럽고 불편해.
21호는 손에 든 유리 조각을 버리고 바닥에 흐르는 순환액 한 무더기를 대충 닦아냈다. 그녀의 모습은 동작에 따라 일그러지며 사라졌다.
그제서야 사태의 전모를 이해했다. 21호가 유리 조각으로 자신을 찌른 것이다. 그녀의 소매에서 순환액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아프면 깨어날 수 있어.
미안?
그녀는 이 단어가 이 순간에 왜 나왔는지 모르는 듯 이 단어를 반복해 말했다.
21호는 고개를 저었다. 그녀의 상처는 보이지 않았지만 순환액이 흘러나오는 속도를 보면 상처가 가볍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담담한 표정을 지으며 그런 상처는 대수롭지 않은 듯했다.
21호 전투에 영향을 주지 않아.
사진, 아는 사람이야?
그녀들이 당신을 여기로 오게 한 거야?
난 이제 뭘 해야 돼?
특별한 단서를 찾았나요? 임무 좌표에 관계없는 장소에서 한동안 머무르고 있는 것을 봤어요.
문제를 해결한 뒤, 단서가 발견된 지점으로 돌아가 계속해서 단서를 찾으세요.
쿠로노의 그 애매모호하고 이상했던 태도의 진짜 이유를 이제야 알았다. 그때부터 "단서"가 가리키는 것은 더 이상 의식의 바다 이상 파동이나 제3자가 남긴 표시가 아니었다.
눈앞의 모든 것이 무색함과 화려함을 넘나들었다.
이곳은 루나가 인간이었을 때, 그리고 퍼니싱이 아직 이 별에 퍼지지 않았을 때 살았던 곳이었다.
그게 임무야?
21호, 이해했다. [player name]의 임무.
...응.
가슴속 그 인공 심장 박동의 빈도가 수천 km 떨어진 공중 정원에 있는 자신의 심박수와 신기하게 겹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