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Reader / 서브 스토리 / EX04 영탄회성 / Story

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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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04-17 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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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대 위에서 기계 팔이 왔다갔다 했고, 로봇이 쉼없이 아놀드에게 여러 정비 도구를 건냈다.

왼쪽으로 3센티미터 더, 거기 인공 피부를 자르고 상층의 기계판을 여세요.

여기?

네.

이 기술은 참으로 훌륭하군.

음... 기나긴 연구와 희생을 겪었기 때문이죠.

그렇군, 자네들 구조체도 힘들었겠어.

어느새 바깥 세상의 기술이 이토록 발전한 건가?

음... 아놀드씨는 바깥의 상황을 모르고 계세요?

몰라, 알고 싶지도 않고.

언제부터 홀로 이 무인 구역에서 살면서 사회를 멀리했는지 기억이 나지도 않아.

다만 어느 날 해치를 열었더니 이 세상이 완전히 변해 있었다는 기억 밖에 없어.

이 손이 보이지? 감염되어 괴사하기 전에, 내가 절단했기에 지금의 모습으로 개조할 수 있었지.

하지만 다행이지. 한 손을 대가로 지금 이 보호 장비를 연구해냈으니.

오... 대단하시네요.

물론이지. 내가 누구야. 예전에 나 아놀드를 모르...

도구를 건네던 볼 모양 로봇이 아놀드의 말을 듣고 나서 돌연 그의 얼굴을 발로 찬다.

로봇

삐, 삐삐삐, 삐삐삐삐.

[삐——], 또 까먹었군. 알려줘서 고마워, 파트너.

괜찮아, 과거의 일은 그만 얘기하지. 난 진작 소유했던 모든 것을 포기했어.

보호 장비라고 하지만 자네들처럼 대단한 건 아니야.

내가 쓰레기 더미에서 주워온 고물들로 끼워 맞춘 물건이라 여기 작은 구역에서 움직일 때에만 쓸 수 있지.

여긴 시대 속의 외딴 섬과 같아서 나와 나의 파트너만 이곳에 존재하지. 외부의 모든 정보는 우리와 단절되어 있어.

그렇군요......

아놀드씨, 파트너를 제게 빌려주실 수 있을까요?

마음대로 해. 근데 뭘하려고?

아놀드는 작업을 멈추고 곁에 있는 수납장에서 주전자를 꺼내 입에 물을 붓지만 겨우 몇 방울의 물만 떨어졌다.

물을 따른 뒤, 아놀드는 주전자를 한 켠으로 던지고 로봇을 자신의 어깨 위에서 떼내어 반즈의 곁에 놓아두었다.

로봇의 접속 부분을 저의 관자놀이에 연결하세요.

이렇게?

아놀드는 로봇의 몸체에서 연결선 하나를 떼내어 반즈의 관자놀이에 붙였다.

순간 주변의 환경이 갑자기 변했다. 어둑어둑하던 지하의 방이 순간 넓게 펼쳐진 백색 도시로 변했고, 도시를 이루는 벽돌이 위 측의 망망대해에서 용솟음쳐 나오더니 아놀드와 반즈를 지나 여러 가지 건축물로 조립되었다.

건축물의 모양이 끊임없이 변하더니 순간 화려한 서양식 전당으로, 순간 얼룩진 도시의 폐허로, 순간 선홍색 중도 재난 지역으로도 변했다.

조명이 도시 사이에서 빠르게 교체되며 낮과 밤의 경계가 흐릿하게 되었다.

백색 도시는 끊임없이 교차하고, 변화하고, 편향되더니 굴절된 햇살이 머리 위에서 쏟아져 내렸다.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니 그곳에는 푸른 데이터 바다가 출렁이고 있었다.

여러 가지 건축물과 그림자가 바다 위에 비치면서 두 침입자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

음... 제가 이렇게 하면 아놀드씨가 바깥 세상을 더 잘 알 수 있겠죠.

이건 뭐야, 현재의 도시인가... 머리 위에 저건 바다고?

음... 바다처럼 보이는 데이터 흐름일 뿐이에요.

아놀드는 순간 멍해져 끊임없이 변하는 주변을 둘러봤다.

업무 보고가... 귀찮아서 투영 기록 기능을 개조해 달라고 부탁했었어요.

제가 봤던 거의 모든 것을 데이터 흐름에서 재현할 수 있습니다.

참으로 편리하군. 그렇다면...

무의식적으로 했던 자신의 말을 의식한 듯 아놀드는 고개를 가로젓는다.

됐어...

지난 과거에 대한 미련은 진작 없어졌지.

내게 현재 인류들이 생활하고 있는 곳을 보여줘.

주변의 도시들이 점차 중첩되며 공중 정원의 모습으로 변화했다.

음... 거의 모든 예전의 도시들이 전쟁에 의해 파괴되었어요.

그래서 사람들은 공중 정원에서 살고 있지요...

공중 정원이라... 연구 중이란 것만 알고 있었는데 벌써 완공되었나 보군.

다행이네요, 공중 정원에 관한 일을 알고 계시다니 힘들게 설명하지 않아도 되겠어요.

대단하네. 인류가 하늘로 올라가 생활하다니.

하늘이요...? 그렇다고 할 수 있죠.

아무튼 지금 인류는 그곳에서 생활하고, 발전하고 자신을 확장하며 다시 지구를 되찾아 올 준비를 끊임없이 하고 있답니다.

공중 정원의 경관에서 점차 인파가 늘어나고 임무 출격 전 선서하는 구조체 병사들이 보였다.

한 편, 도시는 지상의 전쟁터로 변했다. 계속하여 구조체가 침식체 무리로 뛰어들어 적들과 싸우다가 결국 전사했다.

상처 투성이의 지표면, 목숨을 겨우 부지하며 살아가는 인류, 용맹히 전투하는 구조체, 그리고 지표면에서 기승 부리는 침식체 등이 아놀드와 반즈의 곁에 나타났다.

그렇군, 이것이 지금의 시대인가.

그런데, 왜 지구를 되찾는 데 그렇게 집착하는 거지?

왜냐면... 사실 저도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아직까지 찾지 못했어요.

답을 알 수 없는 목표를 위해 전쟁에 몸을 던진다고? 답을 찾기 위해서?

그런 건 아닙니다.

공 모양의 로봇 파트너가 없기에, 아놀드는 할 수 없이 홀로 수리 도구를 가지러 걸어갔다. 아놀드는 도구를 뒤적거리면서 말했다.

그럼 왜 이 병든 행성을 되찾으려는 거지?

병들어요? 퍼니싱 말씀이신가요?

아니, 이 행성은 아주 오래전부터 병들었었지.

과거의 도시, 도시에서 구축된 인류 사회 모두가 병들었어.

지금 밖에 퍼져있는 퍼니싱과 괴물은, 황금시대에 병적이었던 인류 사회에 내린 벌일지도 몰라.

인류는 번영한 생활을 누리면서 또한 부패와 타락의 병증을 잉태하고 있었지.

인류가 정말로 이 행성을 다시 돌아올 필요가 있는 걸까?

어쩌면 우린 더는 가망 없는 과거보다는 내일을 바라봐야 할지도 모르지.

지구를 되찾아 오기 위해 그토록 많은 희생을 한 건 어떤 의미가 있는 거지?

인류가 언젠가 다시 지구로 돌아오기 위해서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자네는 지구로 돌아가고 싶나? 인류와 함께 이 지구로 돌아와 지난 "황금시대"를 다시 이룩하고 싶은 건가?

드디어 도구를 찾아낸 아놀드는 반즈의 침대 근처로 다가가 계속하여 다음 부위를 정비했다.

사실... 아주 오래전부터 전 인류의 집단 목표에 대해 의혹을 품고 있었습니다...

인류는 가식적인 거짓말로 목표를 향하는 길을 장식했고, 모두 그 목표를 위해 앞으로 미친듯이 나아갔죠.

쯧, 예전과 똑같은 거 아닌가?

... 전 동료들처럼 필승의 신념과 결심을 가져본 적이 없습니다.

기나긴 전쟁 속에서 구조체에게 부여된 것은 작고 작은 희망이었죠. 보잘것없는 승리를 위해 끊임없이 자신의 피와 살로 최종 목표를 향하는 어둠의 길을 채워왔습니다.

전 인류가 참패를 맞는 모습을 수없이 꿈에서 보았습니다. 불빛이 약해지고, 진정한 어둠이 몰려왔을 때 잠깐 발버둥을 쳐보았지만, 곧 완전한 적막으로 돌아갔죠.

고민했었고, 시도했었습니다. 결국 전 이것이 현재의 현실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개인의 노력은 현실 앞에서 너무나 초라했죠.

답을 고민하는 과정은 제게 있어 너무나 어려웠어요...

마침 잘 됐군. 아직 시간이 있으니 지구라는 골칫덩이를 버리게.

모든 고민과 생각의 과정을 버리고 인류 역사에 쌓여진 폐해를 버리게.

은하로 가서 새로운 시대를 열어야지.

... 전 그렇게 못합니다.

꿈에서 또 다른 미래를 여러 번 봤거든요. 기나긴 세월이 흐른 뒤, 생존한 인류는 새벽녘의 첫 아침햇살을 만끽하고 있었습니다.

그 꿈 속에는 확고한 신념을 가진 동료들 외에 저도 있었습니다.

동료들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띠고 있었고, 구전으로 전해오던 문명이 또다시 실체를 가지게 되었죠.

우린 드디어 지구로 다시 돌아왔고 우리 자신을 구했습니다.

막막하고 나약한데다, 의지가 굳지 못한 제가, 그 화면을 보며 전에 없던 감정을 느꼈습니다... 충만하고 열의 높을을요...

자네도 꿈이라고 했잖아.

나도 황금시대의 인류가 언젠가 최초의 신념을 되찾을 거라고 상상했었지.

하지만 꿈은 언젠가 깨지게 되어버리지. 인류는 나쁜 근성 때문에 계속하여 과거의 잘못을 반복하면서, 지구에 하나 또 하나의 새로운 병증을 키우고 있는 거야.

네, 언젠가 꿈이 깨질 날이 오겠죠. 하지만 꿈에서 본 장면을 실현하기 위해 힘이 닿는 노력을 해야만 합니다.

반즈와 아놀드의 곁에 있는 투영이 신속하게 전환되더니, 무수한 석탑이 세워진 가운데에서 치열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전장이 점차 확대되면서 반즈가 부상자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그들을 죽음으로부터 구해내려 노력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게다가 여기서 멈춘다면 지금까지 함께 노력한 동료들을, 꿈에서 함께 미소 지었던 모두를 배신하는 것이 아닙니까?

……

하하, 자네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확고한 신념을 가졌구만.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인가...

위대하지도, 숭고하지도 않아. 하지만 자네다운 생활 방식인 건 확실한 것 같네.

음... 비록 이런 생활 방식이 이기적이긴 하지만...

과거에 저로 인해 많은 사람들과 많은 구조체가 연루되고 피해를 입었습니다.

그게 뭐 어때서.

사람마다 자신의 생활 방식이 있는 거야. 나처럼, 자네처럼.

난 황금시대에서 무리와 어울리지 않은 자였지.

인류 사회를 멀리하고 이곳에서 숨어 살고 있을 때, 바깥의 세상이 어떻게 날 질책하고 비판했을지 뻔해.

하지만 그때 내가 떠나지 않았더라면 오늘의 자네를 구할 수 없었을지도 모르지.

타인이 이기적인 생활 방식이 맞고 틀리고를 판단할 수 없어. 결국 자... 콜록 콜록.

미소 짓던 아놀드가 갑자기 크게 기침한다. 손으로 입을 막아 보지만 피가 손가락 사이를 흘러나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아놀드씨, 이건...

아놀드는 빙긋 웃으며 입가의 핏자국을 닦더니 손에 든 도구로 계속해서 외부에 노출된 반즈의 기계 회로를 연결한다.

괜찮아, 고질병이거든. 아마 신체의 어느 장기가 또 고장이 난 거겠지.

정비가 끝나면 제가 봐드릴게요.

그런 것도 할 줄 알아?

응급 관련 지식을 어느 정도 배웠었습니다.

허허, 그럼 자네 기체부터 정비하고 다시 보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