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Reader / 서브 스토리 / EX04 영탄회성 / Story

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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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04-16 깨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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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백의 세상은 평온하고 달콤하다.

순백이 점차 희미해지고 얼룩덜룩한 인공건축물들이 나타났다. 주변 세계에 대한 인식이 반즈의 몸으로 다시 돌아왔다.

주변의 벽에는 칼로 그어놓은 것 같은 흔적들이 있었다. 누군가 이런 방식으로 뭔가를 계산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그 흔적들이 너무나 많아 몇 개인지 가능할 수 없었다.

반즈는 사지로 활동 신호를 보내지만 아무런 쓸모없는 헛수고였다.

음... 역시 움직일 수 없네.

반즈가 체내의 손상 상황을 한층 더 감지하려 할 때, 시야가 검은 총구로 뒤덮였다.

내가 너라면 멋대로 움직이지 않을 거야.

(내가 의식 불명일 때 쏴 죽이지 않았으니 "코그휠"이라는 자와 같은 패가 아니다. 혹시...)

반즈가 뭐라 얘기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앞에 선 노인이 먼저 입을 열었다.

넌 대체 뭐야?

어?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인간이 가져야 할 조직이 보이지 않는군.

몸은 분명히 기계인데, 밖에 떠돌아다니는 괴물들만큼 미쳐 날뛰는 건 아니고... 넌 누구고, 뭐 때문에 여기 있는 거지?

잘 생각하고 얘기해. 너의 대답에 따라 내 총알이 너를 맞이할지, 아니면 굿모닝 키스가 맞이할지 정해질테니까.

전 그냥 우연히 이곳에 오게 된 구조체인데요...

허? 구조체는 또 뭐야?

앞에 있는 노인은 말하며 소총을 반즈의 이마에 더 가까이 갖다 댔다.

모르시나요... 설명하기엔 꽤 복잡한 건데. 쉽게 말하자면 인류의 사고 모델을 가지고 있고, 신체는 탄탈 공중합체로 제작된 사람 형체의 기계 병사입니다...

그만, 그만, 그만, 그만 중얼 거려!

...그러니까 사람의 생각을 양철 깡통 속에 넣었다?

음... 그렇게 이해하시면 돼요.

[삐——], 참으로 벌받을 짓이군. 인류는 그토록 지구에서 살고 싶은 거야?

노인은 말을 마치고 옆을 향해 침을 뱉더니 반즈의 이마를 겨누고 있던 총을 거두었다.

근데, 너 같은 놈은... 난 처음 본다.

그럼, 어... 구조체? 읽기도 힘들군. 그냥 자네 이름을 부르는 게 낫겠어. 난 아놀드다, 자네는?

오... 반즈입니다.

반즈? 오, 만사형통의 그 반즈인가?

하지만 지금 보니 만사가 별로 형통하지 않은거 같은데.

이 구역은 오래전부터 무인 구역이었지. 난 오랫동안 살아있는 사람을 보지 못했지. 자네는 어떻게 여기에 온 거지?

...기억나지 않아요. 지금의 전 심지어 이곳의 좌표도 판단할 수 없는 걸요.

제가 알고 있는 건 수행하던 임무에 실패해서 철수 지점으로 이동하기로 결정했다는 거에요.

그리고 철수 중... 윽... 잠들었어요.

분명 혼절한 거일텐데 그걸 잠을 잔다고 말하다니.

하지만 금방 임무라고 했는데... 장비와 명패를 보니 군인인가?

……

자신의 신분을 말하지 않겠다? 괜찮아, 어차피 중요하지 않으니까.

나라도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에게 쉽게 자신의 비밀을 말하지 않을테니까.

죄송합니다.

괜찮아, 군인들은 다 그렇지. 나도 익숙해.

음... 예전에 군인이셨나요?

평생 군바리로 있던 [삐——]새끼를 알고 있지.

서로에 대해 매우 잘 알고 있는 것 같네요.

오래 살다 보면 그런 사람이 꼭 한 둘은 있어. 너도 같을 거야.

어... 아마도요.

이렇게 부상을 입었는데, 눈을 감으면 그들이 귓가에서 크게 절 혼내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요...

솔직히 내가 알고 있는 기계 지식으로 판단했을 때, 이 기체로 내가 있는 곳까지 걸어온 건 기적이야.

네가 의식이 없는 동안 나와 내 파트너가 자네를 정비해주지 않았더라면, 언제 깨어날지는 신만이 알고 있었을 거야.

아놀드의 말과 함께 공 모양의 소형 로봇이 반즈의 침대 옆에 나타났다. 아놀드가 로봇을 향해 손을 흔들자 로봇은 아놀드의 어깨 위로 깡충 뛰어 올랐다. 보아 하니 이것이 바로 아놀드가 얘기하던 "파트너" 같았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간단한 정비뿐이야, 어차피 내가 본 적이 없던 기술이라.

감사합니다... 그런데 왜 저를 도와주셨나요?

쯧, 그 미친[삐——] 귀찮은 자와의 약속 때문이지.

물론, 내 원인도 일부 있긴 하지만, 그건 지나간 일이야.

어쨌든 자네는 이제 잠시동안은 안전해.

아놀드는 손을 흔들며 방 한구석으로 걸어갔다.

반즈, 뭘 좀 먹을 텐가? 여기 수르스트뢰밍 통조림 있는데.

구조체는 비록 음식물을 먹을 수 있지만 이론적으로는 음식을 먹을 필요가 없습니다.

허, 참으로 편리하군.

아놀드는 허리춤에서 자신의 단검을 꺼내더니 부풀어 오른 통조림을 깠다. 순간 코를 찌르는 이상한 냄새가 협소한 공간에 가득 차오르는데, 심지어 손상된 반즈의 후각 모듈도 감각을 되찾을 정도였다.

우... 이건 뭐죠? 이걸 먹으면 악몽을 꾸게 될 것 같은데요.

젊은이들은 잘 모를 거야. 이 물건은 몸에 건강하고 게다가 머리를 맑게 해주지. 어쩌다 외부인을 만나서 나눠주려고 했더니만.

지금의 환경은 이전과 비교가 안되는데. 예전에는 아예 밖에 한 상 차리고 내 파트너한테 내가 좋아하는 베이스를 틀어놓게 했었지.

청어 고기를 나쵸나 감자, 버터와 함께 먹으면서 음악을 듣고 밤바람을 쐬지. 시끄러운 목소리도, 하늘을 가릴 만한 고층 건물 따위 없었지.

달빛과 수많은 별들의 빛이 내 위로 쏟아지는데, 그 경광은 지금과는 절대 비교할 수 없지.

아놀들는 단검으로 통조림에 있는 물고기를 한 입 먹으면서 눈을 감고 입을 다시더니 기억 속의 장면을 돌이켰다.

밖에 있는 괴물들 때문에 어떠한 물자도 오랫동안 밖에 놔둘 수 없게 됐지.

음... 어. 상상하기도 힘들군요.

하하하하하, 상상할 수 없는 건 정상적인 거야. 많은 일들은 자신이 직접 겪어봐야 이해할 수 있는 거니까.

아놀드는 웃으며 단검으로 통조림 속에 남은 마지막 고기 덩어리를 꽂아 자신의 입에 넣었다.

이때 반즈는 아놀드 어깨 위의 볼 모양 로봇이 미세하게 움직이는 것을 눈치챘다.

아 참, 늘 내가 밥 먹을 때에만 일이 터진다니까.

왜 그러시죠?

별 문제는 아니야, 잠시 나갔다 오도록 하지.

어? 지금 말인가요?

그래. 아니면 나 같은 늙은이가 어떻게 지금까지 살아남았다고 생각하나?

아놀드는 소총을 들고 벽에 있는 계단을 따라 위로 기어 올라가 머리 위의 밀폐된 원형 밸브를 열더니 방에서 나갔다.

그럼 이 시간에...

아놀드가 자리를 비운 후, 반즈는 두 눈을 감고 체내의 부품 손상 상황을 점검하기 시작했다.

부상자를 버리고 도망칠 리가 있겠나.

반즈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희끄무레한 연기가 이곳 지하 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고, 방의 불빛은 머리 위의 β등에 의존해야만 했다.

곁에는 기계 작업대와 같은 물품이 쌓여있었다. 반즈는 그 위에 쌓여있는 먼지로 보고 오랫동안 사용되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다.

텔로는 안전하게 철수 지점까지 갔을지 모르겠네...

잠깐 생각하던 반즈는 고개를 저으며 두 눈을 감았다.

지금의 나로선 어쩔 방법이 없지. 먼저 휴식하는 것이 좋겠어...

아놀드

내가 돌아왔네~ 돌아왔어~ 내가 보고 싶지 않았나?

아... 아, 네...

아놀드의 우렁찬 목소리가 반즈를 깨웠다. 잠에서 덜 깬 반즈는 억지로 두 눈을 뜨며 아놀드를 바라보았다.

이런... 오늘은 저번보다 시간이 더 걸렸군.

계단을 따라 내려온 아놀드는 소총을 한쪽으로 던지더니 벽 구석에 있는 낡은 소파 위에 털썩 드러누웠다.

무슨 영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오늘 이곳에서 떠돌아다니는 괴물이 예전보다 훨씬 많아졌어.

마치 쫓기는 양떼들처럼 말이야.

설마...

괜찮아, 이미 해결했지. 이렇게.

아놀드는 말하며 손을 코트로 뻗더니 신속하게 손가락으로 앞을 가리키며 총을 쏘는 자세를 취했다.

예전의 핫한 영화의 남자 배우들은 모두 이런 자세였어.

음... 무슨 말씀인지...

쳇, 역시 어린 친구군. 남자의 낭만을 이해하지 못하다니.

아놀드는 재미없다는 듯 입을 삐죽이더니 소파로 돌아가 드러누우며 다리를 꼬았다.

오늘 괴물들의 이상한 움직임은... 아마 너를 그렇게 만든 놈과 관련이 있을 거야.

음... 이곳도 이제 안전하지 못하게 되겠네요.

아직 시간이 있으니 아놀드씨라도 먼저 여길 떠나세요.

자네도 참, 날 뭘로 보고.

부상자를 버리고 도망칠 리가 있겠나.

하지만 알지도 못하는 저를 위해...

이건 지인인지 아닌 지와 상관없어. 중요한 건 내가 내키지 않다는 거야.

번영했지만 차가운 도시를 본 적 있나?

번창한 도시에서 사람들은 주변의 모든 것에 관심이 없었지. 황금시대, 인류 사회의 분위기는 줄곧 그랬어. 짜증 나게.

쯧, 처음에는 모두가 열정을 품고 생활했었는데.

이런 건 자네가 자료를 통해서도 알지 못하는 것들이야.

왜냐하면 자료에서 사회의 변천은 다만 하나의 단어나 숫자에 불과하니까.

난 인류의 따뜻함을 보았고 사회의 냉담함도 체험했지.

인류 사회가 극도로 발전했을땐 되려 서로에 대해 무관심했어.

난 인류가 이처럼 이기적으로 생존해가는 것을 보고 있을 수 없었고, 그들과 같아지려는 생각도 없었어.

하지만 내가 인류를 싫어한다는 뜻은 아니야. 오히려 반대로, 누구의 목숨도 멋대로 버려져서는 안된다고 생각하지.

듣기 좋게 말하면 도피하는 거고, 나쁘게 말하자면 나약한 거지.

왜냐하면 더는 인류의 무관심한 행위가 내 눈앞에서 벌어지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혼자서 파트너와 지금까지 살고 있었다네.

하지만 내 앞에 나타난 생명은 절대로 좌시하지 않아.

……

그러니 이제 알겠나. 떠나려 한다고 해도 우리 둘이 함께 떠나야 해.

하지만...

자네의 몸이 함부로 움직일 수 없는 상태인거는 나도 알아.

이렇게 하지. 우리가 자네를 고쳐주고 나서 함께 떠나는 거야.

네?

늙은이를 얕보지 말게. 이래봐도 난 의사였었어. 이 몸도 내가 끊임없이 개조하고 강화해서 지금까지 살아있는 거야.

아놀드가 말하며 반즈의 곁으로 다가와 자신의 겉옷을 펼쳐 보였다. 반즈는 아놀드의 몸에 가득한 수술 봉합 자국을 보게 되었다.

...그랬구만.

하지만 혼자 하는 수술은 귀찮은 거야. 그래서 내 파트너에게도 관련 보조 시스템을 추가시켰지.

아놀드는 한 손으로 자신의 옷을 정리하며 다른 한 손으로 어깨에 있는 볼 모양의 로봇을 톡톡 두드린다.

자, 어떻게 자네 몸을 정비해야 하는지 알려줘. 말로만 해서는 안되지, 자네에게 나의 뛰어난 기술을 보여줘야지.

아놀드는 말하며 방 가운데 있는 작업대를 활성화 하더니 반즈의 침대 근처로 도구를 끌고 왔다.

자네 말대로 시간이 없어. 그러니 빠르게 끝내도록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