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그휠"은 한 손으로 반즈의 머리를 움켜쥐더니 땅으로부터 들어 올렸다.
이봐, 너희들은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었던 거지?
……
반즈는 입술을 씰룩이더니 순환액을 "코그휠"의 머리 위로 뱉었다. 비록 "코그휠"의 표정은 볼 수 없지만, 그의 몸에 있는 전원이 형광색으로부터 점차 붉은색으로 변해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아아... 참으로 무료하고 모독적인가.
"코그휠"은 움켜쥔 반즈의 손을 천천히 들더니 바닥에 쿵 하고 내리쳤다. 땅에는 이 충격으로 커다란 균열이 생겼다.
반즈의 몸이 충격의 반동으로 살짝 떴다가 다시 바닥에 떨어지려는 순간, "코그휠"은 손을 뻗어 반즈의 왼쪽 다리를 잡았다.
신앙이 없는 행동은 무의미한 껍데기일 뿐이야. 그러니 이토록 쉽게 무너지지.
정말 실망이군.
"코그휠"은 말을 마치더니 반즈의 다리를 움켜쥐고 자신의 양쪽 땅바닥에 번갈아 내리쳤다. 기계 몸체의 반즈는 마치 아이 손에서 휘둘리는 인형처럼 "코그휠"의 머리 위로 쳐들렸고, 이내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졌다.
약하지만 맷집은 좋네. 어리석은 놈.
이 과정이 얼마나 지속되었는지 모르지만, 육안으로도 "코그휠"이 내리치는 빈도가 점점 적어지는 것이 보였다.
...응?
"코그휠"은 고개를 숙여 잡고 있는 반즈의 오른손을 내려다보다가, 자기 오른손 관절 부근에 이미 한 층의 얼음으로 덮여있음을 발견했다.
얼음 때문에 마비되었는지 이 얼음층이 언제 응결되었는지조차 발견하지 못했다. 얼음층은 비록 두껍지 않지만 "코그휠"의 몸체를 제어하는 것에는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반즈는 오른 다리를 들어 힘껏 "코그휠"의 팔뚝 아래를 걷어찼다. 게다가 "코그휠"의 오른손 관절이 마비되어 힘을 쓸 수 없었기에 반즈는 "코그휠"의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반즈가 벗어나는 것을 본 "코그휠"은 즉시 왼손을 휘두르며 다시 한번 자신의 사냥감을 잡아채려 했다.
한 줄기 은빛이 바닥에 쓰러진 반즈의 손에서 뿜어져 나오더니 "코그휠"의 머리를 향해 날아갔다.
그 빛이 코크휠에 닿기 직전 그의 머리가 기묘한 각도로 휘어졌다. 빛은 갑옷에 불꽃을 튀며 하늘 위로 튕겨나갔다.
겨우 이거냐? 보잘것없군!
하지만 중상을 입은 반즈의 얼굴에 걸린 미소를 본 "코그휠"은 이번 공격은 간단한 것이 아님을 알아챘다. 그는 황급히 몸을 일으켜 빛이 날아간 방향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걷어 찬 텔로라는 구조체가 허공에 떠있는 것이 보였다. 그는 은색 빛을 단단히 손바닥에 움켜쥐고 있다. 그제서야 "코그휠"은 그 빛의 정체를 볼 수 있게 되었다.
그건 은색 원뿔 모양의 갈고리 발톱이었다. 발톱의 끝부분은 거의 투명한 복합 밧줄이 있었는데, 이 가는 선이 "코그휠"의 응결된 오른손을 관통하여 반즈의 손에 든 밧줄 총과 연결되어 있었다.
선물이야. 잠들기 전의 선물.
말을 마친 반즈는 밧줄총을 "코그휠"의 등 뒤로 발사하고 재빨리 옆으로 굴렀다. 밧줄총은 "코그휠"을 넘어가더니 빠르게 수축하며 그의 전신을 휘감아 손과 발을 단단히 묶었다.
밧줄로 "코그휠"을 완전히 고정시킨 후, 와이어 건은 입방체의 물체로 변하여 "코그휠"의 등 뒤에 단단히 붙어버려 "와이어 건"을 만질 수 없게 했다.
음...
공중에 있던 텔로도 지체하지 않고, 은색 발톱을 든 채 더 높은 폐허를 향해 날아간 후 급강하했다.
부상을 입은 까닭에 텔로는 착지할 때 온전히 서지 못하고 땅바닥을 구르며 먼지를 일으켰다. "코그휠"은 밧줄에 끌려 기체가 공중에 매달리게 되었다.
반즈는 왼쪽 다리를 절뚝거리며 텔로의 곁으로 다가가 그를 부축했다. 텔로는 몸을 일으켜 발톱을 땅에에 박았고 반즈는 이어서 빙결 수류탄을 던졌다.
반즈와 텔로가 부축하며 자리를 떠난 뒤, 수류탄은 신속히 활성화 되었고 응결된 얼음이 은색 발톱을 땅 속에 고정시켰다.
우리들의 무기로는 얼마 못 버틸 거야. 코그휠의 정보는 전송했어?
안돼, 전송할 수 없어. 공중에서 무언가가 우리와 공중 정원의 연락을 막고 있는 것 같아.
텔로가 가르키는 위를 보니 이미 짙은 어둠이 내려와 어두운 밤만이 펼쳐져 있었다. 달빛은 애써 구름을 뚫고 그 빛을 전달하려 했지만 희미하게 비출뿐이었다.
스캔할 수가 없어... 아마도 그것과 같은 구조일 거야.
긴급 철수 계획을 실행하자. 앞에 모퉁이가 있으니까 저기서 갈라져서 철수 지점에서 합류하자.
음... 알겠어.
시간을 맞춰 보자. AM 00:43.
AM 00:43.
문제 없어. 3시간 뒤에 철수 지점에 도착할 수 있을 거야. 너랑 내가 도착하는 시간 차이는 5분 이내가 될 거야.
추적 당하는 걸 방지하기 위해 5분 뒤 모든 통신 신호를 끄고 무신호 모드로 들어갈게.
반즈는 자신과 텔로의 상처를 간단히 치료하고 나서 텔로와 함께 모퉁이 건축물의 양측에 기대섰다. 두 사람의 숨소리만 들리는 조용한 적막이 흘렀다.
신호 껐어. 무신호 모드로 들어간다.
나도 무신호 모드로 들어갈게.
마지막 확인을 마친 텔로와 반즈는 몸을 일으켜 모퉁이에서 각자 다른 방향으로 나뉘어 갔다. 반즈가 떠나려는데 텔로의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반즈, 죽지 마.
...응, 너도.
두 사람은 작별 인사를 마치고, 달빛을 빌어 각자 어두운 폐허의 오솔길로 걸어갔다.
응고된 얼음 수정은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고온 때문에 점차 녹아내렸다. "코그휠"이 관통당한 오른손을 힘껏 움켜쥐자 몸을 감고 있던 복합 밧줄이 끊어지며 육중하게 바닥으로 떨어졌다.
Dannazione, "부식"이 움직임에 영향을 주고 있어.
"현자"를 찾기 위해서는 아직 준비가 필요하다.
복합 밧줄이 끊어지며 바닥에 떨어졌다. "코그휠"은 몸에 걸려있는 복합 밧줄을 한쪽으로 던지고 텔로와 반즈가 떠난 방향을 바라보았다.
비록 계획보다 더 많은 시간을 소요해야 하지만, 잠재적 위험요소는 제거해야겠군.
반즈는 텅 빈 도시 포탄 구멍으로 가능한 거리를 힘겹게 전진하고 있었다.
달빛으로 비친 부서진 건물의 그림자는 마치 호수와 같았다. 밤바람이 구멍이 난 건물을 뚫고 불어오자, 자갈이 섞인 뜨거운 바람이 반즈의 몸을 덮쳤다.
전쟁은 도시 전체를 파괴했고, 건물들은 거리에 쓰러져 있었다. 일부는 지붕이 없고 일부는 껍데기만 남아있었 모래바람에도 쓰러질 것 같았다.
경치가 끊임없이 눈 앞에 펼쳐졌지만, 어디까지 다 비슷한 폐허의 모습이었다.
아... 진통제 효과가 끝나가나.
극심한 고통이 다시 밀려오며 반즈의 모든 데이터 회로를 자극했다. 극심한 통감으로 반즈는 휘청거리다가 바닥에 쓰러졌다.
저기, 반즈... 지금은 잠을 잘 때가 아니야.
좀... 진지해 봐. 아니면 또 크롬의 잔소리를 듣게 된다고.
하지만...
피곤해 죽겠어.
반즈의 눈 앞의 세계가 희미하게 떨리면서 바람소리도 멀어져갔다. 마치 인간이 잠들기 직전의 환각처럼 이 세상에서 이탈하는 감각이 퍼졌다..
지금은... 자면 안되지.. 안, 안돼...
반즈의 기체가 부상 때문에 곧 시각 신호를 강제 종료하게 될 때, 한 그림자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
... 누구야...
사람――? ――아니――.
아무튼――먼저――
누군가 반즈를 향해 조금씩 다가오지만 그의 목소리는 점점 멀어져만 갔다. 결국 반즈의 세상에는 끝없이 차가운 어둠만이 남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