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구역에서 발생했던 전투는 유독 더 치열했을 것 같아. 지면의 경사각이 일부 비틀어졌어.
물체의 움직임 신호가 없음을 확인한 텔로는 조준하던 소총을 내려 놓고 폐허의 구석에서 걸어 나왔다.
반즈, 이곳에서 이상한 점을 스캔하지 못했어. 지금 경사진 지면을 따라가볼 생각이야.
음... 나도 부근의 고지에 도착했어.
오, 엄청 빠르네.
일찍 도착하면 일찍 쉴 수 있잖아.
텔로는 패널에 표시된 반즈의 좌표를 바라보았다. 반즈는 저격총을 벽에 난 구멍 사이에 세워놓고 벽에 기대 하품을 하고 있었다.
무기까지 다 배치해 놓았네. 역시 이럴 때엔 믿음직스러워.
텔로는 얘기하면서 위로 뛰어오르더니 경사진 부지 아래 있는 건축물에 도착했다.
하지만 너도 알아차렸겠지. 여기 폐허의 아래에서 반짝이는 건 우리가 찾으려는 파일 표식이야.
내가 돌아가면 철수하자.
응, 알겠어.
어디 보자, 스캔 결과는... 음, 여기로 들어갈 수 있겠어.
좌우 양측에 무너진 석판을 옮기니 마침 한 사람이 드나들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 텔로는 허리를 숙이고 석판을 지나 어두컴컴한 폐허로 들어섰다.
텔로가 계속하여 전진하려 할 때 전방에서 딱딱한 느낌이 전해졌다.
어? 패널을 보면 이곳에 아무런 물건이 없어야 맞는데.
Scusa, 이곳은 외부자를 환영하지 않는다.
누구냐?!
텔로, 거기에서 비켜!
강력한 충격이 텔로와 반즈의 대화를 끊었고, 텔로가 진입한 건축물 폐허가 폭발로 갑자기 크게 흔들렸다.
자갈과 강철 구조가 재차 무너졌다. 건물 잔해와 함께 무너진 폐허에서 튕겨나온 텔로는 반대편 건물을 들이받아 커다란 연기와 먼지를 만들어냈다.
이어 칠흑의 그림자가 무너진 페허에서 걸어 나왔고, 기계가 작동하는 소리가 흘러 나왔다.
반즈의 시각 모듈에 들어온 것은 정밀한 기계 장치와 벌을 받아 속죄하듯 붕대로 칭칭 감겨진 머리뿐이었다.
하지만 반즈와 텔로의 스캔 패널에서 그 그림자의 위치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공중 정원의 설비로 아무리 스캔해 보지만 그 신분을 분석할 수 없었다.
반응하는 침식체도, 구조체도 없고 더욱이 반응하는 인류도 없었다. 스캔 설비에서 깜빡이는 신호는 반즈와 텔로의 설비가 고장나지 않았음을 말해주었다.
그림자가 서있는 위치는 검은색에 잠식되어 있어 빛마저 삼켜버렸다. 폐허에 잔재한 빛과 달빛이 어우러져 그 몸체를 비추지만 아무런 색채도 반사하지 못했다.
흠... 처음으로 이런 이상한 놈을 만나는군.
텔로, 텔로.
반즈... 난 괜찮아. 우리가 찾는 물건이... 저 녀석의 손에 있어.
칠흑의 그림자는 칩 하나를 자신의 품 속에 넣었는데, 그 칩 위에는 반즈와 텔로가 임무로 찾고 있는 신호 표식이 반짝이고 있었다.
같은 물건을 노리고 있나보군.
하지만 이 물건을 너희들에게 줄 수 없어. 내가 엄청 공을 들여서야 게슈탈트가 남긴 암호화된 키를 해독했거든.
넌... 누구야.
사물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도록 하는 보잘것없는 작은 "톱니바퀴"이다.
칠흑 같은 그림자는 말하면서 폐허에 앉아있는 텔로를 향해 걸어 갔다. 발밑의 자갈은 그의 걸음에 따라 미세하게 진동하며 붕괴의 곡조를 울리고 있었다.
당장 떨어져.
반즈는 레일로 빠르게 하강하면서 끊임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몇 줄기의 은색 빛줄기가 검은 그림자를 향해 날아가지만, 허공으로 날아가던 탄알은 청색 빛에 의해 격추되었다.
도발인가?
너희들을 아무런 고통 없이 죽게 할 수는 없지.
아... 텔로, 조금만 버텨.
그럼, 이단자를 제거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