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Reader / 서브 스토리 / EX04 영탄회성 / Story

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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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04-13 전장의 적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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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즈, 넌 왜 정비실에 이상한 냄새가 나는 깡통을 놓은 거야?

음... 그거 먹었어?

이 맛이라면 카무도 먹지 못할 거야.

멀리서 그 냄새를 맡았을 때, 너의 정비실이 독가스 공격을 당한 줄 알았거든.

카무이의 떠들썩한 소리가 반즈의 정비실 방향에서 들려왔다.

정비실 문을 열자, 반즈는 자신이 수납장 위에 올려 놓았던 깡통이 보였다.

약간 부풀어 있는 오래된 양철 깡통 하나가 반즈의 생각을 과거로 이끌었다.

부서진 석판과 강철 기둥이 서있는 폐허에서 자욱한 연기와 먼지는 암울한 분위기를 한 층 더해주었다.

주변에 널려있는 포탄 구덩이는 이곳이 얼마나 치열한 전쟁의 시련을 겪었는지 말해주고 있었다.

오일은 지형을 따라 소리없이 흘러 내려 포탄 구멍을 가득 메우더니 결국 거리의 저지대로 흘러갔다.

군화 한 켤레가 저지대를 딛자, 오일의 표면에 동그란 검은 물결이 일었다.

잔잔한 물결이 오일에 묻혀있는 기계 팔 하나에 부딪치자, 순간 기계 팔은 어떠한 신호라도 받은 듯 적막 속에서 깨어났다.

기계팔이 미친 듯이 경련을 일으키더니, 손으로 주변에 있는 폐허의 돌을 지탱하며 반동으로 폐허에 깔린 자신의 부서진 몸을 빼내려 했다.

하지만 그 움직임은 총성과 함께 멈추었다.

아직도 있다니. 남부 방어선의 침식체는 백로부대가 총지휘를 맡은 대규모 소탕작전에 유인되어 간 줄 알았는데...

총을 쏜 자는 방열 중인 소총을 다시 어깨에 둘러 메고는 움직임을 멈춘 눈앞의 침식체를 바라보았다.

반즈, 여기서는 찾으려는 파일을 스캔할 수 없는데, 네 쪽은 어때?

하—— 아.

어이, 왜 또 하품을 하는 거야. 일을 열심히 하고 있는 거 맞아?

어... 그래, 그래...

반즈, 반즈?

참나, 또 잠들었군.

됐어, 내가 먼저...

텔로... 지금 엎드리는 게 나을 것 같아.

조용하던 통신 채널에서 돌연 소리가 울리자, 텔로라는 구조체는 순식간에 옆으로 굴렀고, 구른 뒤 그의 귓가에 맹렬한 폭파음이 들려왔다.

그건 대형 침식체가 공격을 개시한 소리였다. 돌연 텔로 앞에 나타난 침식체에서 끊임없이 자갈과 소형 침식체의 잔해가 몸체에서 떨어져 나갔다.

텔로가 총을 들고 대형 침식체를 조준하고 있을 때, 아까 텔로가 있었던 자리에 한 줄기 은빛이 번득 스쳐지나갔다.

이윽고 붕괴가 발생했다. 침식체의 팔부터 시작된 붕괴는 팔을 따라 몸체로 이어지더니, 기계 관절이 무너지면서 산산이 부서져 파편으로 변해 오일이 쌓인 구멍으로 떨어졌다.

마지막에 은색 빛이 옆에 있는 훼손된 전자뇌를 관통했다. 그 충격으로 뒤로 쓰러진 침식체는 잔해로 변했다.

하아——해결됐어. 잠이나 자야지.

텔로가 돌아보니 반즈가 멀리 폐허의 높은 곳에 서서 기지개를 켜더니 느긋하게 자리에 눕는 것이 보였다.

야야, 갑자기 자면 어떡해, 우리에겐 아직 임무가 남아있다고!

괜찮아, 저게 마지막 한 마리야...

어... 언제.

음음, 네가 파일을 찾느라고 분주할 때.

제자리에서 적을 스캔하고 죽이는 건 너무 편한 거 같아...

그래, 그래.

텔로는 한숨을 쉬더니 앞에 있는 건물을 뛰어 넘어 폐허 속을 계속해서 수색했다.

그러고 보니 이 도시 폐허는 정말 조용하네.

……

반즈, 넌 왜 차징 팔콘 소대에 들어간 거야??

아, 그냥 얘기하는 거야. 모처럼 네가 깨어있잖아. 예전에 네가 늘 졸고 있으니 너랑 얘기하기가 애매했었으니까.

……

……

어... 또 잠든 거야?

이상한 인연 때문이겠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 모양이 되어버렸어.

돌연 통신 채널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인지, 뜻밖의 답을 들어서인지, 폐허의 무너진 벽을 기어 오르던 텔로는 발을 헛디뎠다.

텔로가 벽에서 떨어지려고 할 때, 그의 발에서 엔진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 왔다. 희미한 흰색빛이 그의 발아래에서 나타나더니 텔로는 완전히 허공에서 멈춰 섰다.

후, 깜짝이야.

텔로는 한 손으로 가슴을 쓸어내린 다음, 허공에 떠있는 다리를 거두었고, 부서진 벽을 딛고 자세를 안정시킨 후 다시 벽을 넘어갔다.

운명인가, 그럼 좋지.

나는 정찰병은 전장에 나가지 않아도 된다고 해서 들어왔어.

역시 너희 차징 팔콘 엘리트 소대와는 비교할 수가 없네.

음... 어, 우리가 엘리트였어?

당연하지. 정찰 소대에서 차징 팔콘 소대를 모르는 사람이 어딨어.

하지만 엘리트 소대는 그 뭐냐... 어... 뭐랄까, 인류인 지휘관이 배속될 텐데?

그건 일반 엘리트 소대지. 넌 너의 리더가 누군지도 안보나보네.

특화형 역원 장치를 장착하고 소대의 지휘관 책임을 맡고 있는 완벽한 구조체 크롬이야.

아, 맞다. 리더뿐만 아니라 차징 팔콘의 멤버들도 하나같이 뛰어난 엘리트거든. 차징 팔콘이 참여한 임무에서 실패한 적이 거의 없다지.

그렇군... 난 리더와 카무이가 엄청 특별하다고 생각했을 뿐이야.

반즈, 넌 이런 것에 너무 관심이 없어. 내가 얼마나 너희들을 부러워하는데.

난 말이야. 뛰어난 작전 능력이 없어.

발이 빠르고 입이 무거운 것이 아마 나의 유일한 장점일 거야. 그래서 니콜라 사령관님이 이번 임무를 내게 맡기신 거 같고.

사실 난 침식체와 싸우는 것이 두렵지 않아. 가능하다면 그들과 정면으로 붙어보고 싶어.

그러니까 아까의 일은 고마워.

음, 아니야.

하하, 쑥스러워 하긴. 진심으로 감사해 하는 거니까 마음 편히 받으면 돼.

텔로와 반즈는 얘기하면서 벽의 꼭대기까지 기어 올랐고, 그리하여 아래의 지역을 넓게 둘러볼 수 있었다.

그의 시야에는 침식체와 인류의 잔해가 무더기로 쌓여있는 지표면이 펼쳐졌다. 이곳에 얼마나 치열한 전투가 발생 했었는지 가늠할 수 있었다.

텔로는 고개를 숙이고 제자리에서 잠시 묵념한 뒤, 몸을 날려 벽 아래로 뛰어 내리더니 계속하여 앞으로 걸어갔다.

그렇지... 이곳도 면역 시대에 함락된 도시야.

사실 내가 감히 최전선에 나가지 못하는 원인 중 하나가 바로 눈앞에 보이는 이 장면 때문이기도 해...

전사들의 목숨과 맞바꾼 것이 고작 전멸한 뒤 대철수라니 웃기잖아.

하지만 규정에 따라 명령을 수행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지.

다만 매번 이런 장면을 보게 되면, 참을 수 없이 마음 속으로부터 의문이 생겨.

때론 답을 알게 되면 오히려 더 고민에 빠지게 되지...

텔로가 빙긋 웃으며 관자놀이를 가볍게 두드리자 스크린 투영이 그의 눈앞에 나타났다.

이 구역에서도 찾지 못했어.

반즈, 끝이 보이지 않는 이 전쟁은 대체 언제 끝나게 될까?

음... 나도 몰라.

하아, 전장에서 한 사람이 죽게 되면 영웅이고, 10명이 죽으면 열사지만 백만 명이 죽으면 그건 단지 숫자에 불과하지.

우린 너무 많은 희생을 겪었어.

철저한 승리를 거두고 인류를 다시 지구로 돌아가게 해야만 우리 사명은 끝나는 거야.

... 모르겠어. 하지만 난 전쟁에서 승리한 장면을 꿈에서 본 적 있지.

희미한 불꽃이 점차 세계로 번져 변혁을 일으켰어.

결국 불꽃은 지구 전체를 불태워 활활 타오르더니 결국 점차 어두워졌지...

침식체와 대항하여 잠깐의 승리를 얻었다 하더라도 퍼니싱의 위협은 그리 쉽게 끝나지 않을 거야...

꿈일 뿐이잖아.

그냥 꿈이 아니야...

퍼니싱이 우릴 속수무책으로 만든 것이 몇 번인지 몰라.

인류가 수백만 년에 거쳐 지구에 자신의 문명을 세운 것처럼.

퍼니싱도 그들만의 방식으로 이 땅을 침식하고 있다고.

만일 그걸 뿌리째 없앨 방법을 찾지 못한다면...

환경과 시간 등 조건이 적합하게 된다면, 언젠가 퍼니싱은 우리의 인식을 초월하는 존재로 진화하겠지.

그렇군... 적어도 지금은 그렇게 변하지 않았잖아?

미리 대비를 해두는 것이 맞아. 하지만 우린 여전히 현재에 살고 있잖아.

어... 음...

통신 채널이 다시 조용해졌다. 서로 다른 생각이 텔로와 반즈의 의식의 바다에서 휘몰아쳤다. 둘 사이에는 침묵이 흐르고, 무언의 분위기 속에서 두 사람은 계속하여 각자의 임무를 수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