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Reader / 서브 스토리 / EX04 영탄회성 / Story

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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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04-12 영원의 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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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쪽 지평선에서 태양이 얼굴을 내밀어 아침 노을이 어둠을 뚫었다. 하지만 태양이 떠오를수록 빛이 점점 약화됐다.

하늘에는 보이지 않는 경계가 나타났다. 머나먼 동방의 첫 줄기 아침 햇살은 따뜻하고 밝았지만 아직 빛을 받지 못한 머리 위의 하늘은 차갑고 깊어 보였다.

 

이는 햇살로의 도망이다. 화이트 팔콘의 인솔을 따라 오래된 무거운 어둠을 등 뒤로 뿌리치고 밝고 따뜻한 세상을 향해 출발했다.

 

이윽고 높고 푸른 하늘에서 돌연 태양보다 훨씬 눈부신 한 줄기 빛이 나타나더니, 지면에 추락하는 유성처럼 그대로 자신의 뒤쪽에 떨어졌다.

고개를 돌리기 전, 등 뒤에서 반즈의 목소리가 들렸다.

돌아보지마.

계속 걸어. 뒤돌아보지 말고.

 

저 경계를 넘어도 돌아보지마라.

이합 생물이든, 그 속에 묻혀있던 인간의 모습이든, 모두 뒤로 남겨둔 채.

생각하지 않으면, 무거운 죄책감이 자신을 짓누를 것 같지 않다.

돌아오는 길, 모래바람이 일지 않았고,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던 고래의 노래도 사라졌다. 적조도 이제 퍼지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의 의미를 잘 알고 있기에 걸음은 더욱 무거웠다.

멀리 익숙한 구릉 위에 서있는 익숙한 세 그림자가 어렴풋이 보였다.

미처 입을 열기도 전, 루시아가 앞으로 달려와 힘껏 껴안는다.

지휘관님... 지휘관님...

 

그녀의 떨림이 전해왔다.

두 번 다시 그러면 안 돼요. 어떠한 이유가 있었든 이번처럼 혼자서 움직이면 안 된다고요.

 

살아 돌아온 일은 기뻐해야 하지만 지금은 마음이 무겁기만 했다.

주변을 둘러 보니, 자신을 꼭 껴안은 루시아 외에 리브와 리가 숙연한 얼굴로 옆에 서있었다.

자신이 독단적으로 결정을 내렸을 때, 그들의 심정을 고려해본 적이 없었던 거 같다.

그들은 무조건 나의 생각을 이해해줄 거라 생각했다.

이 순간 심각하게 한 가지 일을 깨닫게 되었다——그들이 있다면 무슨 일이 있더라도 나의 목숨을 가지고 모험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지휘관님, 이번에 말도 없이 떠난 일은 반드시 반성하셔야 해요.

 

진지하던 리브의 얼굴은 3초도 지나지 않아 부드러운 표정으로 바뀌었다.

더, 더욱 더... 자신을 아껴야 해요.

——!

 

루시아는 드디어 정신을 차리고 풀어줬다.

리브, 지휘관을 체크해줘.

긴장할 것 없어, 루시아.

지휘관님은 다치지 않았어.

 

리가 이쪽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말하지 않아도, 이미 모든 것을 알아차린 듯했다.

그가 어깨를 토닥였다.

많이 힘드십니까? 우선 쉬세요... 보고는 나중에 드릴 테니.

그레이 레이븐이 이번 작전에서 명령을 어긴 구체적 사안은 이미 보고서로 정리했으니 나중에 공중 정원에 제출하시면 됩니다.

마지막 결과가 어떠하든 우리가 작전 지휘 센터의 명령을 어기고 멋대로 움직인 것은 사실이니까요.

이번에 돌아가면 아마도 군사 법정에서 한동안 입씨름해야 할 겁니다.

두렵지 않으세요?

이걸 만용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겁이 없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됐어요. 지금은 이런 얘기를 할 때가 아닙니다. 돌아오셨으니 됐어요.

지휘관님이 어딜 가든 따라가겠어요.

지휘관님만 있다면 어떠한 것도 두렵지 않아요.

아, 맞다, 또 다른 일이 있습니다. 난민과 관련한 사안입니다.

 

그는 멈칫하더니, 생각을 다듬고 나서야 천천히 입을 열었다.

대부분 사람들이 여전히 남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하지만 일부 사람들은 떠나기로 했어요.

인원이 많지 않으니, 지상에 있는 보호 구역 건설이 완료되지 않았더라도 임시 시설에서 어떻게든 감당할 수 있어요.

얼마 지나지 않으면 공중 정원에서 수송기를 보내 그들을 이동시킬 겁니다.

이곳의 환경은 솔직히 사람이 살기에 적합하지 않아요.

적조가 더이상 이곳에 만연하지 않더라도, 남은 퍼니싱이 난민들이 다른 도시로 향할 수 있는 길을 막아버렸지요.

이곳에 남으면 얼마 버티지 못할 겁니다.

하지만 그들은 남기로 결정했어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들의 선택을 존중해 주는 것 밖에 없습니다.

모든 일을 결과로만 판단한다면 이 세상에의 대부분 행위는 무의미한 것입니다.

모든 일이 보고서의 생존 숫자로 귀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리의 말 그대로, 지휘관님이 하신 일이 전부 의미없는 일이라 생각하지 않아요.

지휘관님은 그들의 마음을 지켜주셨고 그들의 소원을 지켜주신 거에요.

지휘관님이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들의 운명을 위해 싸웠기에 우린 결국 서로를 이해하게 된 거에요.

 

서로 이해를 한다?

눈을 감으니 머릿속에는 필드 포인트를 꽂았던 너덜너덜한 사람 형체의 해탈한 듯한 미소가 떠올랐다.

앞에 있는 세 사람에게 어떻게 이 일을 얘기해야 할지 아직 생각을 가다듬지 못하고 있었다.

시선은 의식적으로 유일하게 자신과 마찬가지로 모든 진실을 알고 있는 반즈에게로 향했다.

손상 입은 기체를 긴급 점검을 받은 반즈는 조용히 풀더미 위에서 평온하게 누워 두 눈을 감고 햇빛을 즐기고 있었다.

구조체에게도 수면이 필요할까? 하고 생각하면서 깨워도 될지 말지 망설였다.

잠깐 고민하다가 잠을 깨우지 않기로 했다.

어렵사리 모든 어려움을 극복했으니 잠깐 동안의 휴식은 허락해줘야 할 것 같았다.

 

지상의 만물이 어떻게 발버둥 쳐도, 시간은 흘러간다는 사실에 영향을 주지는 못한다.

이 행성은 예전부터 그래왔다——평등하게 잔혹했고, 평등하게 자비로웠다.

황폐한 사막에는 좀처럼 비가 내리지 않지만, 비가 올 때면 모래먼지가 씻기고 하늘은 거울처럼 맑고 투명해진다.

젖은 땅에 휘몰아치는 바람이 먼지를 일으키지 못하듯, 이 순간은 고요한 호수와 같은 아름다움을 느끼게 했다.

반듯한 군복을 입은 한스가 묵묵히 야영지 밖에 서있었다.

주변의 경치는 눈부신 고요함에 휩싸여 깨끗하기 그지없다. 지금 서있는 이곳에 서면 멀리 햇빛에 물결이 반짝이는 해변가를 바라볼 수 있었다.

 

등 뒤에서 요란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한스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노인이 한스의 곁으로 걸어와 함께 먼 곳을 바라본다.

왜 그때 철수하지 않았나?

……

 

한스는 두 눈을 감았다.

전 오랫동안 진정한 일출을 보지 못했습니다.

 

잠시 뒤에야 한스는 자신이 10년 가까이 땅을 밟지 못했음을 의식했다.

마치 돌아갈 곳 없는 망령처럼 대기와 중력에 쫓겨 궤도 위에서 떠돌고 있는 것 같았다.

지금 공중 정원의 아이들은 황금시대를 거의 다 잊은 것 같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어디에서 왔는지 잊었고, 자신의 문화가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지 잊었다.

그들은 별하늘에서 눈을 떴기에 지구는 그들에게 있어 달과 다름이 없는 것이다.

전 그들에게 얘기했습니다. 지구는 우리의 고향이라고... 하지만 이곳이 왜 우리의 고향인지 설명할 수 없었죠.

이윽고 곧 모든 것들이 역사의 먼지로 변해버렸죠.

……

만약 선택할 수 있었다면 전 떠나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그는 군인이었고, 선택할 수 없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망자의 꿈을 반드시 이어가야 합니다.

 

살아야만 내일이 있고, 살아야만 복수가 있고, 살아야만 희망이 있다.

얼마나 고통스럽든, 얼마나 원하지 않든, 자신의 마음을 억누르고 떠나야 했다.

죄책감이 없다는 건...

불가능하겠지.

 

그는 무거운 죄책감에 눌려 꼼짝할 수 없었고 짓밟힐 뻔했다.

하지만 또한 그를 도망치지 못하게 하는 족쇄가 되어, 그를 전장에 결박하고 계속해서 눈앞의 있는 모든 지옥과 마주하게 했다.

죽을 때까지 그는 자신의 방식으로 싸울 것이다.

얼마나 졸렬하든, 얼마나 구차하든,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당하든... 심장이 멈추고 몸이 부서질 때까지 계속 싸울 것이다.

자신만이 알고 있었다. 자신은 원래 올곧은 소나무 같은 존재가 아니란 것을.

그는 단지 쓰러지지 않으려는 묘비와도 같을 뿐이었다.

그마저 쓰러진다면, 그의 몸에 새겨진 추억할 수 없는 황금시대의 영광은 완전히 기나긴 시간의 흐름 속에 묻혀 먼지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곧은 군복을 입은 남성은 이미 떠나갔고, 자신만이 이 구릉 위에 서서 외롭게 먼 곳의 바다를 바라볼 뿐이었다.

이 나이가 되었는데 아직도 감상적이다니...

 

어렴풋한 가운데 마치 파도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건 자신의 착각이었을 것이다.

해변가는 너무 멀리 있다. 바람을 타고 오더라도 자신의 귓가에 파도 소리가 전해질 리 없었다.

이건 자신의 기억 깊은 곳에 있던 메아리였다.

노인은 천천히 자리에 앉았다.

짙푸른 하늘 위 돌연 검은 점 몇 개가 나타났다——그건 공중 정원에서 그들에게 보낸 수송기일 것이다.

노인은 고개를 돌려 야용지를 힐끗 본다. 일부는 이미 자신의 거처에서 걸어 나왔는데 대부분 젊은 아이들이다.

지난번 실종되었던 남자아이는 지금 자신의 할머니 곁에 기대서 이곳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그리하여 노인도 그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잘 자라거라.

 

중얼거림에 가까웠다.

사람의 긴 인생은 이별로 가득 차 있다.

알고 지내던 사람들은 그의 세계에서 하나둘 사라졌다.

깊이 사랑하던 사람도, 미워하던 상대도 사라진 지 오래다.

지금도 또 다른 평범한 이별일 뿐이다.

그는 이 땅을 떠날 수 없고, 그들은 이 땅을 떠날 수 없었다. 누군가는 평생 동안 그들의 고향 땅에 발이 묶여있을 것이다.

이제 곧 떠나는 사람과, 남아있기를 선택한 사람들은 서로 작별 인사를 나누지만 얼굴에는 슬픈 기색이 없었다.

어린 새를 멀리 떠나 보내는 것은 그리 슬픈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녀는 오랫동안 악몽을 꾸고 있었다.

몸이 찢겨지고, 분해되고 다시 조립되었다.

그녀는 끝없는 어둠 속에서 이렇게 부서진 몸을 지탱하며 방황하는 동안 자신의 최초의 모습을 잊어버렸다.

희미하게 누군가 그녀에게 포기하라고 얘기했다.

포기하면 더이상 고통을 견디지 않아도 된다. 포기하면 더이상 지옥을 마주하지 않아도 된다.

아직 끝내지 못한 일이 있었나? 그녀는 기억하지 못한다. 아마 이미 사라진 것 같았다...

아니, 그렇지 않다.

"이상한 광경에 현혹되지 마라."

"머지않아 이런 기적들에 대해 설명해 줄게, 너도 그 기적들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이해하게 될 거야."

"——"

이름 하나가 머릿속을 스쳐 지난다. 그 이름의 구체적 음절은 떠오르지 않지만 그녀는 그에 대한 그리움을 마음으로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한 줄기 빛이 영원의 밤을 깨트렸다.

어둠이 커튼처럼 빛을 따라 양쪽으로 천천히 갈려졌다.

 

갑자기 모든 감각이 돌아왔다.

황폐한 땅에서 천천히 윗몸을 일으킨 그녀는 고개를 들고 두 눈을 떴다.

하늘은 높고 파랬다. 저쪽에 걸려있는 태양은 더는 우주에서 모든 것을 태워버리는 듯 타오르던 뜨거운 빛덩이가 아니었다. 대기는 그 은혜를 이 땅의 모든 생명에 골고루 나누어주고 있었다.

따뜻했고 사람의 모든 슬픔을 잊게 하는 다정함이었다.

그녀는 이곳에서 처음으로 빛줄기를 보았고, 처음으로 바람을 마시며, 처음으로 흙을 밟았다.

 

내가 누구인지, 왜 이곳에 있는지는 더는 중요하지 않다.

그녀는 단지 이 길에서 본 기적을 당신에게 재미있게 말하고 싶을 뿐이다.

Video: 세레나 애니메이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