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Reader / 서브 스토리 / EX04 영탄회성 /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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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04-10 "세이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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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 하.

갑자기, 불길한 기운을 내뿜는 검은색 괴물을 하얀 매가 날려버렸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그의 마지막 총알이 괴물의 푸른 빛을 내뿜는 가슴에 명중했다.

파열 소리와 함께 이합 생물의 가슴에는 거미줄 같은 균열이 생겼다.

검은색 이중합 물체가 깨어진 거울처럼 조각조각 흩어져 떨어졌다.

이합 생물 속에 숨겨져 있던 너덜너덜한 사람 형체가 드러났다.

나에겐 낯설지만 익숙한 모습이다. 마치 언젠가 어디에서... 본 적 있있던 잔해 같았다.

늘 산만하던 반즈도 이 순간에는 눈을 크게 뜨고 호수 중앙에 있는 이합 생물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

그런... 거였어...

우주 정거장에서 실종되었던 구조체야. 승격자들이 감히 이런 짓을 벌이다니...

참으로 아이러니하네.

정찰 소대의 정보 데이터를 힐끗 읽고 기억해뒀었는데, 이런 곳에서 다시 만나게 될 줄이야...

정보를 발견하고 취합해서 보고하는 게 정찰병의 사명이니까.

지난번 승격자들이 싸움을 일으키기 전에, 정찰 소대 멤버들은 승격자에 관련된 모든 정보를 머릿속에 새겨뒀었거든.

가브리엘이라는 승격자가 우주 정거장 전투에서 공중 정원의 구조체 하나를 가져간 일은 모든 정찰병들이 알고 있지.

다만 왜 그런 일을 했는지, 그 필요성은 무엇인지는 줄곧 수수께끼였어.

이걸 위해서였던 거군...

여기에 또 다른 이중합 코어 조각이 있을 줄이야.

큰 타격을 입은 대형 이합 생물은 더는 움직이지 않고 적조 물가에 꿇어앉아 있었다. 대량의 퍼니싱이 공기에서 이중합을 진행하며 그 몸체를 복원하고 있었다.

여기서 끝인건가.

이 괴물은 절대로 이길 수가 없어. 내가 더 시간을 끌 테니 지휘관은 얼른 도망쳐.

……

...잠깐, 뭐하려는 거야?

그 필드 포인트를 들고 뭐하려는 건데?

인증 통과.

포인트 개방.

주변을 둘러보니 지휘관은 아직 고지에 서있기에 퍼니싱의 침식을 받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있는 곳을 제외하고도 도처에서 적조가 범람하고 있었다. 전방에는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이합 생물이 있어 필드 포인트를 설치하여 공중 정원의 신호를 받을 수 있는 안전한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내게 맡겨줘.

얼른 돌아가. 내가 끌고 온 거잖아... 지휘관마저 돌아갈 수 없다면.

...내가 어리석었어.

게다가 여긴 도처에 대량의 이합 생물이 득실거려서 인간은 구조체의 호위를 받지 못하면 돌아갈 수 없었다.

참... 지상에 내려오면 왜 골치 아픈 일만 벌이는지 모르겠어.

생면부지의 녀석들을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바치려다니, 지휘관은 착하기만 한 바보네.

호수 중앙에 있던 이합 생물은 마치 위기를 감지한 듯했다.

그는 포효하며 발버둥 치더니 파괴된 몸체를 끌며 다시 이곳으로 습격해왔다.

피할 수 없어...

죽음과 마주하자 지휘관의 체내에서는 대량의 아드레날린이 분비됐다.

자신이 지금까지 만났었던 사람들의 얼굴이 하나씩 눈앞 스쳐 지나갔다.

처음에 대답할 수 없었던 문제도 지금 이 순간에 해답을 얻게 되었다.

예를 들면 있잖아...

너는 저 행성을 어떻게 생각해?

――적도 반경은 6378.137km다. 서쪽에서 동쪽으로 자전하고, 태양 주위를 공전하며, 태양계 안쪽에서부터 바깥쪽으로 3번째 행성이다...

우리에게는 아무것도 없어. 마음속에 품고 있는 이 땅에 대한 미련은 우리가 구차하게 살아나가는 마지막 원동력이네.

우리가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일은, 이 땅의 품에 안겨 영원히 잠드는 것일세.

이곳에 있으면, 과거를 회상할 수도 있고, 먼저 떠난 친구들도 볼 수 있네.

여기서 태어났으니 여기서 죽겠네.

——중력이라는 이름의 사랑으로 인류를 속박하여 고향을 떠나지 못하게 한다.

지상에 남겨진 사람들은 왜 공중 정원으로 올라가지 못했을까?

지상에 남겨진 사람들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게 될까?

지상에 남겨진 사람들은 우리를 어떻게 생각할까?

위선도 적당히 해야지, 대체 우릴 위해서인가요? 아니면 당신들과 같은 인간의 탈을 쓴 짐승이 자신의 눈앞에서 죽어가는 꼴을 보고 싶지 않은 건가요?

이보세요, 당신들의 양심도 그 행동과 마찬가지로 역겹군요.

우리더러 이곳을 떠나라고 하면 당신들의 양심은 찔리지 않겠지만, 우리 생활은 나아지지 않아요.

이제 와서 우리가 연합 정부의 국민이라고? 가소로운 얘기네요.

철수할 때 당신들이 우리한테 어떻게 했는데?!

에덴으로 가는 입구에 가까이 가지 못하도록 총으로 우릴 겨누었잖아!

너희들은 우리를 쓰레기 버리듯 버려뒀어. 지금에 와서 우리를 구하겠다고?!

꺼져!

얼른 꺼져! 이제 와서 당신들의 위선 따위는 필요 없으니까!

자네들의 눈에서 나약함과 두려움이 보였기 때문이야.

이대로 끝난다면, 자네들은 모든 것이 자신들이 무능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큰 죄책감을 안고 살아갈게 될 게 뻔하지.

그래서 나는 자네들에게 말하고 싶었네... 그럴 필요없다고.

어떤 죄책감도 가질 필요 없네.

우리는 우리의 길을 선택했고, 자네들은 자네들의 사명을 다 했네.

이 정도면 됐어, 충분하네.

???

언젠가 지상의 동포들과 만나 각자 보았었던 기적을 얘기하고, 함께 노래를 부를 그날이 오게 될 거야.

이보다 더 낭만적인 일은 없을 거야, 그렇지?

그래, 그보다 더 낭만적인 일은 없을 거야.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이름없는 소녀의 질문에 답하고 있었다.

아직 서로가 본 기적을 이야기하기 전인데... 함께 노래하지 않았는데,

이런 원한과 비극의 결말로 막을 내리는 것은 너무나 억울하다.

그러니 적어도 마지막으로 필드 포인트를 지켜내야 한다.

이런 생각을 품고 검은색 긴 바늘을 꼭 품에 끌어안았다.

반즈

윽——

기계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눈을 떠보니 반즈가 내 앞을 막아선 모습이 보였다.

그의 오른팔은 이합 생물의 발톱에 뚫려 순환액이 끊임없이 상처로부터 솟구쳐 오르고 있었다.

신경 쓰지 마... 구조체는 나약한 존재가 아니니까.

지휘관이 부상을 입게 된다면, 지휘관의 멤버와 내 리더 모두가 내게 책임을 물을 거야.

하지만 지금은 그런 얘기를 할 때가 아닌 것 같네.

강한 무력감과 공포감으로 나의 두 다리는 힘이 풀려버렸다.

어렴풋한 가운데, 곁눈질로 괴물의 흉부에 묻혀있던 사람 형체를 훔쳐봤다.

그녀의 두 눈은 공허했고 처음 만났을 때처럼 드러난 흉부는 밝게 빛나고 있었고, 흉부 아래에서는 푸른 빛을 내뿜고 있었다.

이합 생물의 흉부는 손을 뻗으면 바로 닿을 가까운 곳에 있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멀고 희미하게만 보이던 소녀의 잔해는 이제 뚜렷하게 드러났다.

그녀의 얼굴을 알아본 그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그녀는 아직 살아있을까? 그녀는 꿈을 꾸고 있는 걸까?

아니라면 그녀는 왜 고통스런 표정을 짓고 있는 걸까?

앞에 있는 반즈가 힘겹게 버티고 있을 때, 다른 생각을 하면 안되지만 여전히 생각이 회오리처럼 소용돌이쳤다.

폐쇄된 우주 정거장, 자신과 그레이 레이븐의 세 멤버는 우주 정거장의 한복판에 멈춰 섰다.

혹시, 그레이 레이븐 소대인가요?

당신은...

자... 잠깐... 아이라?

네, 전 제2고고학 소대의 멤버 아이라에요.

...그녀가 왜 여기에 있는 거지?

리브, 리... 아이라를 알아?

...그녀는 공중 정원의 한창 잘나가는 젊은 예술가야. 머레이가... 그녀의 갤러리에 자주 갔었어.

저도... 아이라 씨의 작품을 좋아해요.

……

난 오래전부터 너희들의 이름을 알고 있었어! 특히...

...다른 얘기는 나중에 하자. 지금은 더 중요한 일을 전달해야 하니까.

내가 여기서 해야되는 임무는 【——】 라는 구조체를 구조하는 거야.

그녀는 나한테 매우 중요한 친구야.

그레이 레이븐 소대는 승격자 기지에서 용맹하게 싸운 사건이 집행 부대를 통해 알려졌어. 심지어 공중 정원에 있던 나도 들었으니 말이야.

당신이 승격자와 직접 접촉했다면, 혹시 우주 정거장에서 나와 싸웠던 승격자도 만났었어?

아니, 그는 중요하지 않아. 내 유일한 관심은 그들의 기지에서 그녀의 흔적을 찾았는지야...

사실 지휘관도 본 적이 있어. 우주 정거장에서.

그녀는 나랑 가장 친한 친구야.

그녀의 이름은...

이합 생물의 칼날이 여전히 반즈의 어깨 위에 박혀있었다. 반즈는 이합 생물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필사적으로 잡고 있다.

그 순간 몸이 생각보다 먼저 움직였다.

흩어졌던 기억의 퍼즐이 드디어 맞춰졌다.

사실 지휘관도 본 적이 있어. 우주 정거장에서.

그녀는 나랑 가장 친한 친구야.

그녀의 이름은...

아이라

세...

기억의 소용돌이 속 아이라의 목소리가 순간 자신의 소리 겹쳐졌다.

이름을 부른 순간, 이합 생물은 돌연 동작을 멈췄다.

곧 목구멍으로부터 날카로운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의 가슴 중앙에 있는 소녀가 미세하게 움직였다.

풀려있던 두 눈은 다시 초점을 회복했다.

이와 동시에 이합 생물의 몸체를 끊임없이 복원하던 퍼니싱의 이중합 속도도 느려졌다.

그 순간 깨달았다——구슬프던 고래의 노래, 자신을 속박하던 강철 가시, 이 모든 것은 이합 생물 흉부 속에 있던 소녀의 마지막 몸부림이었다는 것을.

사람 형체의 입술이 움찔거렸지만, 그녀는 발성 부품이 모두 망가져 어떠한 소리도 낼 수 없는 듯 보였고, 필사적으로 이합생물의 흉부에서 상처투성이의 손을 뻗고 있었다.

말은 필요 없었다. 눈빛이 마주치던 그 순간, 상대방은 서로의 처지와 입장을 이미 이해하고 있었다.

이제 남은 것은 각자 자신의 마지막 사명을 완성하는 것이다.

그레이 레이븐 소대를 호출한다! 그레이 레이븐 녀석들, 들리나? 긴급 사태다.

차징 팔콘 녀석이 드디어 진지해진 모습이군.

무슨 일인데 그렇게 당황한 모습인거지?

너희들의 지휘관이——

지휘관님?

지휘관님이 왜?!

너희들의 지휘관은 아무 일 없으니까 침착해. 비록 보호 장치가 극한을 넘어섰지만 혈청은 아직 충분해.

...지금은 입씨름할 때가 아니야. 한스 총지휘관이 방금 전 마지막 필드 포인트를 개방했어. 공중 정원이 우릴 향해 궤도를 변경하기 시작했고, 곧 타격이 시작 될 거야. 지휘관과 함께 철수 중인 거지?

너희들의 지휘관이랑 지금 "호랑이굴"에서 도망치고 있긴 하지.

"호랑이굴"? 뭐를 만났는데?

……

1초를 넘기지 않아 반즈는 침묵을 깨고 말을 이어갔다.

몰라, 하지만 내 판단으로는 그 물건이 적조의 원천인 것 같아.

그 판단을 내린 이유를 설명해 봐.

그 물건의 주변에 비정상적으로 높은 퍼니싱 농도, 강한 자아 보호 본능 그리고 그 주변의 이합 생물의 이상 행동들...

마치 지구 생태계의 벌집을 모방하고 있는 것 같아.

말로는 설명하기 어려워. 구체적인 측량 수치와 통계 데이터를 지금 전송해 줄게.

데이터 받았어... 이것도 이합 생물이라고?

리는 화면에 뜬 이합 생물을 보며 눈썹을 찌푸렸다.

확실히 네가 얘기한 것과 똑같군. 전투 중에서도 계속하여 데이터를 수집한 거야?

난 저격수야. 저격수는 전장을 관찰하고 데이터를 수집하는 사람이지.

그래서 뭘 한 거야? 설마 내게 원천을 찾아냈다는 말만 해주고 부리나케 도망치려는 건 아니겠지?

내가 뭘 한 게 아니라, 너희들 지휘관이 뭘 했거든.

너희들이 지휘관이 마지막 필드 포인트를 그것의 몸체에 꽂았어.

필드 포인트를 상대방의 몸에 꽂았다고?!

공중 정원에서 이미 좌표를 세워 우리의 상공을 향해 타격을 내릴 준비를 하고 있어. 그리고 지금 네 번째 필드 포인트도 이미 개방되었으니 만회할 여지는 있을 거야.

내 말뜻을 이해할 거라 믿어.

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너와 지휘관님의 상황은 어때?

나? 문제투성이야. 단 의식의 바다가 아직 안정적이고, 침식 정도도 한계치 이하로 억제하고 있어. 그냥 당장 잠자고 싶은 생각 뿐이야.

정신 차려. 지금 잠들면 영원히 깨어나지 못해.

알아... 농담이야.

웃기지도 않아. 지휘관님을 안전하게 데려오고 나서 그런 농담을 하든가 해.

그렇게 할게.

...아직 정상적으로 엄호 임무를 수행할 수 있어?

응... 평범한 인간의 육체를 보호하기엔 충분하지.

알겠어. 네가 돌아오면 구조체 정비 작업을 할 수 있도록 야영지에 준비해두라고 할게.

그리고... 고마워. 지휘관님을 보호해 줘서.

너희들의 지휘관님에게 고맙다고 해야지. 방금 전의 데이터를 너도 봤잖아.

너희들의 지휘관이 목숨을 걸고 일거양득의 기획를 얻은 거니까.

총지휘관을 설득해 공중 정원의 타격 계획을 정밀 타격으로 바꿀 수 있다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거야.

이건 너희들의 임무야. 너희 지휘관님의 심혈을 헛되게 하지마.

알겠어.

리브, 긴급 상황이야. 너의 연산 능력으로 이 모델을 똑같이 구축할 수 있도록 도와줘.

한스 총지휘관님.

그레이 레이븐 소대의 구조체, 이번엔 또 무슨 일인가.

공중 정원이 이제 곧 우리의 궤도 상공으로 도착한다. 이제 30분도 남지 않았다. 철수 명령이 곧 떨어질 것이다.

이제 방금 얻은 소식인데, 저희 지휘관이 지금 돌아오고 있는 길이랍니다.

도망자의 소식에는 관심 없다. 하지만 너희들이 지휘관 더러 바보 같은 짓은 하지 말라고 말리는 것이 좋을 거야. 지금 왔던 길로 돌아오면 타격 범위를 피할 수 없어. [player name] 더러 측면 방향으로 달리라고 해.

저희 지휘관은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때문에 우리가 이곳에 다시 서게 된 것이지요.

지휘관은 이동 중 한 마리의 거대한 이합 생물과 마주했습니다. 지휘관과 동행한 차징 팔콘 소대의 구조체가 전투 중 대량의 관련 데이터를 수집했습니다.

이 데이터에 근거하여 우리 팀의 리브가 적조에 관한 여러 모델을 만들었습니다.

...계속 말해봐.

리가 단말기를 누르자 데이터가 한스 앞에 투영됐다.

이는 차징 팔콘 소대의 반즈가 적조의 원천을 조사할 때 정리했던 퍼니싱 층별 분포도입니다.

보시다시피 적조의 퍼니싱 농도는 안으로 들어갈수록 높아지는데, 이곳... 이 구역에서 최고치에 이릅니다.

리는 반즈가 마지막에 보내온 도면을 가리켰다. 적조의 물로 이루어진 넓은 호수가 홀로그래피 영상 중앙에 보였다.

그리고 불길한 기운으로 가득한 검은색 이합 생물이 보였다.

한스는 힐끗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봤으니 화면을 끄게.

리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홀로그래피 영상을 데이터 베이스에 도로 넣었다.

그리고 이건 적조의 유속 데이터입니다.

농도의 코어 구역도 유속 분포도의 중앙 지대에 있습니다. 적조는 이곳에서 빠른 속도로 회전하며 주변으로 확산합니다. 마치... 혈액을 심장으로 보내는 것처럼요.

마지막으로 이건 코어 구역 이합 생물의 행동 방식 통계 모듈입니다. 이 이합 생물이 소리를 낼 때 적조가 확산된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결론을 말하게.

적조에는 하나의 원천이 있습니다. 이 이합 생물은 적조가 만연하게 된 원흉이구요.

이를 제거하면 적조의 마개을 닫는 것과 마찬가지로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입니다.

저희 지휘관은 본인의 직감으로 최선의 수단을 취한 것 같습니다. 마지막 하나의 필드 포인트를 대형 이합 생물 체내에 남긴 것이죠.

공중 정원이 곧 상공을 지납니다. 모든 화력을 집중하여 지휘관이 설치한 필드 포인트를 우선 타격하도록 우주 공격 방식을 변경할 것을 요청합니다.

무슨 근거로 적조를 소멸할 수 있다고 장담하지?

리는 갑자기 목소리를 낮춘다.

확신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총지휘관님은 더 높은 권한을 갖고 계시니, 적조의 기원에 대한 수석 기술관의 추측을 잘 아시겠지요.

——이중합 코어의 잔여물입니다. 우주 정거장에서 진행했던 이중합 코어 작전 기록으로 보면 광역 타격으로는 그 존재를 철저히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

지금 보여드리는 것은 객관적 사실과 데이터입니다. 광역 타격은 처음부터 완전한 계획이 아니었습니다.

공중 정원의 발사 효율, 지구의 대기 두께, 기체의 난반사율, 적조의 면적 그리고 퍼니싱의 활성 등 여러 요소를 종합해 보면.

우주 공격은 굉장한 듯 보이지만, 모든 구역을 고르게 타격하기 힘듭니다. 단위당 면적에서 레이저 에너지가 급감하기에 적조를 소멸하려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보장하기 힘듭니다.

하지만 우리가 정밀 타격을 가한다면 적의 심장을 한방에 찔러 심장의 움직임을 멈추게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심장이 멈추면 시체를 처리하는 작업만 남게 되죠.

……

……

한스 총지휘관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지금은 주저할 때가 아닙니다.

시간이 얼마 없습니다. 결정을 내려주십시오. 한스 총지휘관님.

한스가 고개를 돌렸다.

공중 정원에 연결해.

작전지휘 센터를 호출한다. 하산 의장을 연결해.

세리카

연결했습니다. 한스 지휘관님.

지상의 상황은 어떠한가, 한스?

상황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그레이 레이븐 소대의 지휘관이 독단적으로 움직이다가 우리가 075호 폐허에서 발견한 대형 이합 생물과 매우 비슷한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가 전해온 데이터를 보면, 그 생물의 성질은 취서체에 매우 가깝습니다.

흘러 다니는 퍼니싱 에너지로부터 보면 이 이합 생물이 적조의 원천인 듯합니다.

그레이 레이븐 지휘관이 마지막 필드 포인트를 이합 생물 체내에 남겼다고 합니다. 이에, 모든 화력을 이 이합 생물에게 집중해 적조를 소멸할 수 있도록, 광역 타격을 정밀 타격으로 바꾸길 요청합니다.

하산에게 대답하기 전, 또 다른 목소리가 그를 가로막았다.

...한스, 자네가 한 일은 이미 전방 지휘관의 권한을 넘어섰다.

계획을 제정하는 것은 공중 정원의 임무이지 너의 소관이 아니다.

계획이 제정되면 네가 할 수 있는 것은 실행뿐이다.

알고 있습니다, 사령관님.

광역 타격은 과학 이사회에서 신중한 평가를 거쳐 내린 최적의 판단이다. 우린 광역 타격이 적조를 완전히 소멸시킬 수 있다고 보장할 수 없지만 가장 안전한 책략이지.

의장님, 과학 이사회에서는 이 계획을 제정할 때 제가 방금 전에 얘기한 데이터를 확보하지 못했었습니다.

저는 현재의 새로운 데이터에 기초한 합리적인 임기응변이 필요하다고 여깁니다.

전장에서 모든 것은 예측하기 어렵지요. 전 현재의 실제 상황에 근거하여 최적의 판단을 내린 겁니다.

어떤 다른 의도는 없는건가?

……

데이터를 전송하게. 아시모프한테 지금 확인해 보라고 할 테니까.

아시모프에게 연결해.

세리카

이미 연결되었습니다, 의장님.

아시모프, 지상에 있는 전방 부대에서 보낸 데이터인데 어떻게 생각하나?

잠을 덜 깬 아시모프의 모습이 통신에 떴다. 그는 실눈을 지으며 한스가 전송한 데이터를 힐끗 보다가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아, 재밌네, 아주 재밌어... 이걸 보니 네 번째 필드 포인트가 위치한 좌표가 중요하네요.

자네도 그렇게 생각하나? 전방 부대에서는 광역 타격을 네 번째 필드 포인트를 조준한 정밀 타격으로 바꾸어 달라는 요청이 있네.

솔직히 얘기하면 그들이 전송한 모델에 근거하여 내린 판단이라면 합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취서체의 체내에 있는 이중합 코어가 적조의 기원이라는 추측은 저도 일찍이 했었습니다.

다만 취서체가 사라진 후 적조를 계속 만연시킬 수 있는 에너지가 있다는 점을 이해할 수 없었죠.

새로운 동력원이 있었다니...

재밌네, 이 데이터...

아시모프, 지금은 연구에 심취할 때가 아니네.

아, 죄송합니다. 의장님.

작전 변경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나?

객관적으로 보면 저흰 적조에 대해 아는 것이 너무 없습니다. 광역 타격이든 정밀 타격이든 모두 도박이나 다름없죠.

광역 타격은 저희가 계산을 통해 결론지은 가장 안전한 계획일 뿐입니다.

도박이라... 알겠네.

잘 생각하게, 한 걸음 잘못 나아가면 심연으로 추락할 수 있으니까.

자네만이 아닌 이 지구 전체가.

두 가지 모두 도박이라면 난 인간성에 치우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네.

한스 총지휘관에게 연결해.

한스.

말씀하세요, 의장님.

공중 정원의 광역 타격을 정밀 타격으로 바꾸는데 동의한다. 공중 정원이 정상을 지날 때 좌표 계산이 완료되면, 우린 그레이 레이븐 소대가 책임진 필드 포인트에 우주 공격을 내릴 것이다.

즉시 모든 구조체들에게 명령을 전달하겠습니다.

내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네. 한스.

1차 타격이 끝난 뒤, 우린 20분 동안의 관찰 시간을 갖는다. 만일 적조 억제에 효과가 없다면 2차 타격은 무차별한 광역 타격을 진행한다.

연이은 두 차례 타격은 공중 정원의 90%의 에너지를 소모하게 된다. 그때 공중 정원의 방공 전투력은 동력 부족으로 크게 낮아질 것이네.

이게 무슨 의미를 하는지는 알 것이네. 하지만 난 가치 있는 일이라 여기지... 자네가 말했던 것처럼――지상의 사람들도 우리의 동포니까.

자네가 전달해야 하는 것은, 작전 변경뿐만 아니라 철수 명령도 포함된다. 소대를 데리고 안전지대로 이동하도록 해.

네,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