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언덕 위의 모래처럼 흘러가고 있다.
태양은 서쪽 지평선에 걸려있고, 빛이 하늘의 절반을 비추고 있다. 노을이 이곳으로 넘어오면서 주변은 점차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건조한 공기와 지면의 방사 냉각 효과로 기온이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낮의 더위와는 달리 밤의 추위는 매우 혹독했다.
야영지는 이상할 정도로 조용했다. 소대의 설비를 교정할 때 가끔 들리는 금속음 외에는 차갑고 거친 바람소리만 들렸다.
이곳 사람들은 어떻게 극심한 온도차를 견뎠을까?
버려진 오두막집 옆, 모두 햇빛 가리개 밑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데, 지금의 용도는 모래 방지가 아닌 방한을 위한 용도가 되었다.
뒤에 있는 오두막집에는 누군가가 살았던 흔적이 있었다. 식기류에는 먼지가 조금 쌓여있지만 정갈하게 놓여는 있었다. 주인이 집에 안 들어온 지 꽤 된 것 같았다.
총지휘관 한스의 대기 명령을 받은 그레이 레이븐 소대는 조용히 01소대 구조체들이 장치를 설치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혈청도 보급되었고, 적조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한 보호 장비도 점검을 마쳤다. 결론적으로 이번 임무로 지상에 내려온 후, 지금이 가장 한가한 시간이다.
하지만 마음속의 초조함과 불안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참지 못하고 일어나 동쪽을 바라보았다. 동쪽으로 수십키로 더 가면 해안선이 있는데, 그곳이 바로 공중 정원이 지켜야 할 구역이다.
그러나 사람의 눈으로 멀리 보려고 해도, 그렇게 멀리까지는 볼 수 없다.
볼 필요 없어, 어차피 여기는 해발 고도가 높지 않아서 보이지 않으니까.
반즈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와 모두는 그쪽을 바라보았다.
반즈는 피곤한 표정으로 기지개를 펴면서 이 곳으로 다가왔다.
이곳은 기상 조건이 열악해서 시야가 극도로 안 좋아...
인간의 눈으로는 그 먼 곳까지는 볼 수가 없어.
반즈...
구조체는 충분한 수면이라는 개념이 없어, 그냥 휴식을 취했을 뿐이야.
리는 피식 웃는다.
이런 상황에도 여유롭게 휴식을 취할 수 있다는 건가?
나의 임무는 공중 정원의 소대를 맞이하는 일이야.
이제 내 임무는 끝났으니 잠깐 휴식해도 되지 않나?
음... 자유시간에는 쉬기 위해 있는 거니까.
리가 반박을 하기 전에 반즈는 나를 돌아보았다.
너희 지휘관이 머리를 다쳤었네. 붕대는 교체한거야?
반즈가 말하는 동안 리브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리브는 부드럽고 빠르게 붕대를 교체해 주었다.
알려줘서 고마워요. 반즈 씨.
피가 멈췄더라도 정기적으로 붕대를 갈아줘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환부가 감염이 될 수 있어요.
지휘관님, 무리하지 마세요.
리브가 붕대를 갈아줄 때, 상처의 피딱지에 대량의 황사가 들러붙어 있음을 발견했다.
상처를 처료하는 과정은 견디기 힘들었다.
참지 못하고 스읍 하는 소리를 내버렸다.
루시아 씨.
응.
루시아는 재빨리 전투식량을 뜯어 계속 숨을 몰아쉬는 나의 입 안에 넣었다.
눈을 가늘게 뜨고 보니, 리브의 뒤편 멀지 않은 야영지 뒤에서 머리를 내밀고 이쪽을 바라보는 야윈 아이가 보였다.
소독하는 거 피하려고 하지 마세요, 지휘관님.
네? 왜요? 누구 있어요?
리브가 알아차리기 전에 야윈 아이는 벌써 달려왔다.
그는 리브 옆으로 달려와 이쪽을 바라보았다. 그는 호기심에 가득 차 있었고, 눈은 사슴처럼 깨끗하고 순수했다.
아...
방금 그 꼬마잖아.
남자 아이의 시선은 나...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입에 물고 있는 전투식량을 보고 있었다.
그는 새끼 고양이처럼 손을 내밀고 잠시 머뭇거리더니, 결국 참지 못하고 전투식량을 빼앗아 허겁지겁 입 안에 넣었다.
루시아는 얼른 두 번째 전투식량을 꺼내 주었다.
남자 아이는 이번에 그것을 받고 바로 먹지 않았다.
감사합니다. 누나.
루시아가 대답하기도 전에 한 여성이 급히 달려왔다.
그녀는 힘껏 소년을 뒤로 끌어당기고, 경계하는 눈으로 모든 사람들을 둘러본 뒤 다시 자신의 옆에 있는 아이를 내려다보았다.
할머니...
누가 밖으로 나가라고 했어!?
너무 배고파서요.
점심에 통조림을 먹었잖아?
그래도 너무 배고파요...
식량이 곧 도착해. 아빠가 곧 돌아올거야.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돌아오지 못할 거라고 말하던데...
여성은 단호한 어조로 아이의 말을 억눌렀다.
조용히 해. 쓸데없는 말을 하지 말고! 누가 함부로 말하라고 그랬어! 아빠는 곧 돌아올거야. 내가 돌아온다면 하면 꼭 돌아와.
……
아이를 꾸짖지 마세요. 저희가 준 거에요.
우리한테 아직 더 있어요. 만약 필요하시다면...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네요!
말을 마친 그녀는 서둘러 아이를 데리고 자리를 떴다.
……
그녀를 용서해 주게. 그녀도 어려움이 있다네.
살짝 고개를 돌리자 집으로 돌아간 노인이 여기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저...
상대방 손에 들고 있는 통조림 하나를 보자 말을 멈추었다.
아무래도 이런 것은 필요 없을 것 같네.
저희는 구조체이기 때문에 음식이 필요 없습니다.
그런데 이 젊은이는 사람이지 않나.
노인은 나를 바라보았다.
정말 시간이 빠르구만, 살아있는 동안 에덴에서 온 사람을 만날 수 없을 줄 알았는데...
그래서, 자네는 먹을건가?
통조림 캔은 녹슬고 닳았지만, 포장이 부풀어 오르거나 새지 않는 한 음식이 상하지는 않네.
이건 대철수 전에 생산된 마지막 통조림일세. 이건 의외로 오랜 기간 동안 보관할 수 있거든.
과거의 문명이 남겨준 물건일세.
하긴, 하늘 위에서 오신 분이 이런 초라한 음식을 드시는 건 말이 안되지...
우리의 입장을 생각하는 건가? 놀랍구만...
그렇다고 해서 그리 귀한 것도 아니야. 사실 얼마전까지 바다에서 고기도 잡고 했지.
그런데 요즘 붉은 생물 때문에 다들 주둔지에서 너무 멀리 떠나지 못하고 있지. 아... 바로 자네들이 말하는 '이합 생물'이라는 것일세.
왜 갑자기 사과하는 건가?
이 일은 결코 자네들의 잘못도 아니고, 누구의 잘못도 아니네.
노인의 태도는 온화하고 상냥했으며, 처음 만났을 때의 엄숙함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아까는 많이 놀랐나?
우린 별다른 뜻이 없었네, 단지 때로는 자신의 입장을 고수할 필요가 있을 뿐이지.
고수해야 할 입장이 무엇입니까? 무의미한 죽음을 기다리는 게 그 고수할 입장입니까?
가시 돋친 리의 발언에도 노인은 화를 내지 않았다.
자네 말이 맞네. 우리는 이곳에서 죽음을 기다리기로 결정했지.
흐릿한 노인의 목소리는 바람 소리와 함께 사리질 것만 같았다.
이해할 수 없어요.
... 저도요.
그래... 자네들은 이해하기 힘들 거야.
죽음을 기다리기로 결심한 사람들이라니... 지독한 장난 같아 보이겠지.
하지만 이것이 우리의 진심이고 우리의 뜻이라네.
아카디아의 대철수을 알고 있나?
재난이 다가오자 어떤 사람들은 에덴에 올라탔고, 어떤 사람들은 운이 안 좋아 타지 못했네. 내가 전에도 말했었지?
네.
사실은 운이 좋고 나쁨의 문제가 아니라, 단순히 떠나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었네.
어떤 사람들은 확실히 운이 좋지 않아 에덴에 발을 들이지 못했지.
어떤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이 에덴으로 가는 표를 얻지 못했기 때문에 함께 남은 사람도 있었지.
어떤 사람들은 집을 버리지 못해 남아 있었어.
어떤 이유에서든, 결국 우리는 남아있기로 했고, 이 운명을 받아들였을 뿐이야.
이 사실을 받아들인 우리는 이 땅에 뿌리내리고 계속 싸워왔지.
그러나 이곳은 사람이 살기에는 적합하지 않아요.
황무지는 도시와 멀리 떨어져 있어 침식체의 위협이 거의 없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곳에선 자연의 잔혹함이 충분히 드러났다.
노인은 동의한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 건조하고 열악한 주변을 보게나.
우리는 원래 도시에서 살았지만, 결국 우리는 집을 짓기 위해 어렵게 이곳을 선택했다.
자연은 무서운 법이네. 인류 문명이 기능을 멈추면 도시의 모든 것도 멈춰버리지.
물도, 전기도, 가스도 없이 줄지어 늘어선 고층 건물들은, 그냥 하나의 철창에 불과하지.
모두 동물처럼 존엄도 없이 죽어갔지. 처음엔 시신을 불태우거나 땅에 묻어 주었지만, 지금 살아있는 사람들은 더 이상 죽은 자들을 돌볼 틈이 없었다네.
도시는 잠잠해지고 시체더미가 쌓여 있었지. 그 악취는 자네는 상상하지 못할 것이네... 자네가 알고 있었던 사람들이, 한때 사랑했던 사람이 썩어가면서 풍기던 그 절망적인 악취를 말이야...
퍼니싱으로, 또는 전염병으로 죽은 사람도 적지 않았지. 생존을 위해, 침식체를 피하기 위해 우린 도시를 떠나 이곳에 자리를 잡은 거야.
멀지도 가깝지도 않네. 이렇게 이 땅에서 인류의 지난 영광을 지켜보고 있는 걸세.
신기할 거야. 우리 같은 '쥐'떼가 이런 곳에서 여지껏 살아왔다니.
……
그렇게 무거운 표정을 하지 않아도 되네.
처음에는 1년도 못 살 줄 알았는데 살다보니 생각했던 것 만큼 나쁘진 않았어.
문명의 유물에 감사할 뿐이지.
이것 봐. 유리, 금속, 플라스틱... 태양전자판까지 모두 회수할 수 있네. 비록 반도체가 거의 닳았지만 그것만으로도 전력은 생산할 수 있다네. 밤에 조명 몇개를 유지할 수 있다면 충분하지.
자네들이 보기에 이건 하찮은 쓰레기일지 모르겠지만, 우리의 눈에는 보물이지.
이 땅도 같네.
나의 아내와 나는 이 땅에서 우리의 집을 직접 손으로 지었네. 비록 집은 남루하고 견고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나의 집이야.
우리는 남은 목숨을 겨우 부지해 나가면서도, 한편 서로 부축하며 살아왔지. 이 수십년의 세월은 나의 불행한 인생에서 짧지만 가장 행복한 시간이네.
아내가 죽은 후, 나는 먼 언덕에 묻어줬지. 수평선이 보이는 곳에.
철수할 때 나와 함께 남은 세대는 거의 역사의 티끌로 사라져 지금 남아 있는 사람은 수십 명밖에 없지.
하지만 그 아이들이 이제 어른이 돼서 자신의 아이를 키우기 시작하고
죽은 벗들을 똑같이 그 바다가 보이는 곳에 묻었지.
이곳에 있으면, 과거를 회상할 수도 있고, 먼저 떠난 친구들도 볼 수 있네.
여기를 떠나게 되면 우리는 정말 아무것도 남지 않아.
우리가 소중하게 여기는 신념, 추억, 사랑, 이 모든 것이 산산조각이 나서 사라져 버릴걸세.
게다가 자네들이 나타나지 않았더라도 우리는 그렇게 오래 버티지 못 할 거야.
우리의 혈청은 모두 근처 도시에서 나오는데, 그런 것들도 소모되는 날이 오지 않겠나.
누구나 다 알고 있기 때문에 언제든지 죽음을 맞이 할 준비를 하고 있었지. 자네들이 여기에 왔기에 단지 그 미래가 앞당겨진 것 뿐일세.
이곳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처음부터 미래에 대해 생각조차 하지도 않았네.
희망도 없고 동시에 가진 것도 없으니, 무엇에 대한 욕망도, 잃을 것도 없네.
오직 하나 남은 것은 이 땅에 대한 그리움 뿐이야.
우리의 시간은 영원히 머물어 있고, 그래서 하루하루를 마지막인 날처럼 보내고 있네.
여기서 태어났으니 여기서 죽는걸 선택하겠네.
아니, 빛이 무엇인지 모르는 자에게는 고통스러울 게 없다네.
우리는 허무맹랑한 에덴을 추구하지 않고, 마지막 순간까지 사랑하는 사람의 옆에 잠들 수 있기를 바랄 뿐이네.
만약 당신들이 자비의 마음이 있다면, 부디 우리의 마지막 소원을 빼앗지 말아주게.
자네들의 눈에서 나약함과 두려움이 보였기 때문이야.
이대로 끝난다면, 자네들은 모든 것이 자신들이 무능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큰 죄책감을 안고 살아갈게 될 게 뻔하지.
그래서 나는 자네들에게 말하고 싶었네... 그럴 필요없다고.
어떤 죄책감도 가질 필요 없네.
우리는 우리의 길을 선택했고, 자네들은 자네들의 사명을 다 했네.
이 정도면 됐어, 충분하네.
……
뭐라고?
이런 말을 에덴 사람들로부터 듣다니 뜻밖이구만.
최후를 맞이하기 전의 최고의 위안이었네.
말을 마친 후 노인은 몸을 돌려 가버렸다.
모두는 그 자리에 앉은 채 가만히 있었다.
모르겠어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어떻게 죽을 준비가 되어 있다고 그렇게 당당하게 말할 수 있죠...이해할 수 없어요.
이런 방법은 아무 의미도 없어요.
저는 구조체가 되는 것을 선택했고, 더 이상 인간이 아니더라도 여전히 살아있습니다. 그래서 누군가를 위해 계속 싸울 수 있고, 새로운 희망을 가질 기회도 있었어요.
저는 제가 하는 모든 것이 의미 있다고 생각해요.
이곳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처음부터 미래 따윈 바라보지 않네. 우리의 시간은 영원히 머물러 있고, 하루하루를 마지막인 날처럼 보내고 있네.
처음부터 아무런 희망을 갖지 않았다고...?
루시아...
리브는 몸을 돌려 루시아를 살며시 안았다.
저도 모르겠어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
자신의 생명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을까...
옆에서 조용히 있던 반즈가 갑자기 눈을 번쩍 떴다. 그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갸우뚱하며 눈빛을 반짝였다.
잠시 후, 한스가 모두의 앞에 나타났다.
변함없이 꼿꼿한 자세와 냉정한 표정에서 어떠한 감정도 읽을 수 없었다.
공중 정원의 새 명령이 내려왔다.
이 작전의 임무가 확실하게 완료되는 것을 전제로, 24시간 이내에 필드 포인트를 설치한다.
"세계 연합 정부의 재난 구조 및 긴급 지원법" 제21조 및 제22조의 지침에 따라——
——임무 수행 중 일반인을 발견하면 안전한 장소로 대피시켜야 한다.
강제적 수단 사용 여부는 알아서 판단해라.
그레이 레이븐 소대, 자네들에게 임무를 주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