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익은 불빛이 머리 위에서 리듬 있게 흔들렸고, 유유라는 소녀는 두 눈을 뜬 뒤 심하게 기침을 했다.
공기가 목구멍으로 흘러가는 달콤한 느낌을 오랜만에 느껴보는 유유는 자신이 숨쉬는 것을 잊어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었다.
응. 드디어 정신 차렸네……
유유를 두 번 구한 여성은 처음으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웃음을 지었다. 그녀는 유유를 일으켜 앉혀 차가 담긴 작은 그릇을 그녀 입에 갖다 대어 먹여줬다.
차의 온도는 유유가 살아 있는 느낌을 떠올리게 했고, 온몸의 떨림은 서서히 멈추었지만, 동시에 그녀의 얼굴에서 예고 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언니…… 나 아직 살아있는 거…… 맞죠?
소녀가 점점 울먹이자 여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찻잔을 내려놓고 잠시 머뭇거린 후, 유유를 살며시 품에 안는 것을 선택했고, 그녀의 말 없는 눈물이 화려한 옷을 적시도록 내버려 두었다.
시간이 흐르고 멀리 있는 어둠도 사라지고 새로운 날이 왔음을 알렸다…… 눈물과 슬픔의 밤은 지나갔다.
유유는 눈물 자국이 가득한 두 눈을 살며시 닦고선 망설이며 입을 열었다.
미안……
그 여성은 자신의 더러워진 옷을 보며 고개를 저으며 전혀 개의치 않는 것처럼 보였다.
어, 괜찮아. 이 옷은 무용단이 나에게 준 거야. 간단히 세탁만 하면……
이거 말하는 게 아니에요…… 물론 이것도 미안해요!
유유는 얼굴을 붉히며 쑥스러운 듯 머리를 긁적였다.
안전한 곳에 남아있으라는 언니의 말을 듣지 않고 언니를 나쁜 사람이라고 말하고, 혼자 화내면서 떠나는 게 아니었어요.
어쩌면…… 너의 말이 틀리지 않았어. 이 야항선에서 사람을 믿는 건 그리 똑똑한 게 아니였어.
그녀는 뒤에서 항상 유유 옆에 있던 판다 인형을 꺼내 유유의 품에 안겼다.
나도 너한테 사과해야 돼…… 다시는 부모와 만날 수 없다는 그런 말을 너에게 하지 말았어야 했어. 네가 희망을 버리지 않는 한, 언젠가 구룡성으로 돌아가면 그들은 여전히 그곳에서 네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몰라.
네! 유유는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그들은 여전히 나를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그리고 한 가지 더 사과할게. 난 네가 산 타이아 로봇을 복원하려고 했어…… 하지만 몸과 전자두뇌가 모두 심각하게 손상돼서 원래의 모습으로의 복원은 불가능해……
그녀가 손에 든 방울을 흔들자 거대한 그림자가 안방에서 천천히 걸어 나왔다. 뜻밖에도 역사 로봇이었다.
삐——
그래서 난 그의 몸에 있는 부품을 이용해 부서진 역사 로봇 하나를 수리했어. 어쩌면 이런 방식으로 그를 "부활"시킬 수 있을지도...
그녀는 자신이 얼마나 오만한 지 알고 있었다. 유유가 "친구"라고 부르던 타이아 로봇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으며, 그녀는 자신이 한 모든 일이 괜한 위로에 불과할까 봐 두려워했다.
로봇 몸에 있는 나사 하나하나, 부품 하나하나 전부 바꿀 수 있었다... 조합된 몸은 과연 영혼이 있을까? 무엇이 진정한 "자신"일까?
유유는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어 소심하게 역사 로봇의 몸을 만졌다. 그의 손목에 묶인 분홍색 리본을 제외하고는 모든 로봇과 마찬가지로 차갑고 단단했다.
이 리본은 원래 타이아의 몸에 묶여 있었는데 그것이 분명 특별한 의미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남겨뒀어.
유유는 눈을 깜박이며 그 리본을 바라보았고, 살짝 웃었다. 그것은 원래 그녀의 머리띠였다.
이 로봇…… 이름이 뭐예요?
이름? 모르겠어...
이름이 없으면 안 되지. 내가 이름 하나 지어줄게. 내가 제일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에 주인공도 로봇 친구가 있는데 그 안에 있는 이름 그대로…… "아이치"라고 부를게. 어때?
삐삐——!
응응, 내 이름은 유유라고 해. 우리는 서로의 이름을 알았어…… 근데 넌 방금 전에 태어난 동생이라 유유가 누나야. 알았지?
아이치가 온몸으로 알았다는 표시를 한 후, 유유는 다시 옆에 서 있던 여성에게로 돌아섰다.
이제 언니의 이름을 알려줄 차례예요!
유유가 묻자 그녀는 다소 의외라는 듯 고개를 저으며 천천히 소매를 잡아당겨 그전에 역사의 공격에 부서진 팔을 드러냈다. 인조 피부 밑에는 복잡한 로봇 구조였다.
어쩌면 넌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난 인간이 아니야…… 기밀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내 제작자는 나에게 이름을 지어주지 않았어. 도구로서 만들어진 난 이름 지을 필요도 없었겠지.
그녀는 인간과 다름없는 두 손과 더할 나위 없이 정교한 얼굴을 가졌다. 만약 상처로 진실을 드러내지 않았다면 누구도 이 사실을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었다.
전에 난 너에게 아무 가치도 없는 존재라고 말했지만…… 사실 가치가 없는 건 나 자신이야. 난 제작자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 만들어진 도구지만, 결국 난…… 그것이 로봇으로서 영원히 완수할 수 없는 사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
언니는 그렇게 강한데도 못하는 일이 있어요?
응, 세상에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어…… 그리고 어떤 것들은 영원히 가질 수 없어.
창밖을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은 새벽녘의 햇빛을 지나 야항선에서 가장 높은 누각에 멈춰섰다. 거기에는 가끔 그 사람의 모습이 나타나는데, 그의 눈에는 자기 자신도 없고…… 이 배의 모든 것도 없었다.
이 몸으로 난 인간 행세를 하며 이 야항선에 오를 수 있었어…… 그때 내가 왜 제작자의 명령을 어기고 구룡성을 떠나 그의 그림자를 따라 야항선에 올랐는지는 설명할 수 없어.
하지만 아무리 인간 같아도, 난 영원히 인간을 이해할 수 없고, 영원히 유유 너 같은…… 귀한 인간이 될 수 없어.
유유는 알 듯 말 듯 했으나 웃으며 그녀의 손을 잡았다.
가치, 사명, 이런 게 그렇게 중요해요? 저도 사실 잘 몰라요…… 하지만 언니가 인간이 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왜냐면 "마음 이라는 부품만 있으면 인간도 로봇도 다르지 않거든요!".
멋있죠? <구룡 마법 소녀>에 나오는 대사지만…… 이곳에 써도 잘 어울리네요.
유유는 다시 찾은 판다 인형을 가슴에 안고 장난스럽게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 언니가 다른 사람이 부여한 가치를 잃었다면, 언니 스스로 자신만의 가치를 찾으면 돼요. 그것은 분명 더 소중한 물건일 거예요.
나 스스로 가치를 찾는다고……? 내가…… 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
유유의 말을 들은 그녀는 상당히 놀랐다. 그녀로서 이건 로봇의 논리를 뛰어넘는 사고였다.
하지만 시도해 본다고 너와 약속할게. 나 자신의 가치를 찾아보고, 마음이라는 부품을 찾아볼게……
나도 꼭 구룡성으로 돌아갈 거예요. 아빠랑 엄마는 언니가 말한 것처럼 날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그러면 우리 약속해요! 이 야항선에서 함께 살기로 약속…… 우리의 목표를 달성할 때까지요.
유유는 웃으면서 자신의 오른손 새끼손가락을 내밀었고…… 그 여성과 손가락을 걸었다.
이게 뭐야……?
이건 약속하는 자세인데요…… 근데 언니, 이름이 없으면 안 되잖아요.
음…… 제작자가 부여한 이름은 없지만, 배에서 생활할 때 쓰는 코드명이 있어. 그건 내가 노래 가사에서 빌려온 거야.
그게 바로 언니의 이름이죠. 언니만의 이름.
그녀는 처음으로 자신만의 보물을 갖게 되었다. 그것이 이름일지라도 그녀에게는 의미가 남달랐다.
함영…… 응. 내 이름은 함영이야.
언니의 이름이 함영이군요! 예쁘네요!
유유는 함영의 손가락을 다시 잡고서는 리듬 있게 머리를 흔들었다.
약속, 약속, 함영 언니와 유유는 백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을 것을 약속!
함영은 유유와 약속한 손가락을 보며 더없이 따듯한 미소를 지었다.
그것은 그녀가 오늘 얻은 두 번째 보물, 어린 인간과의 약속이었다.
두 사람의 굴곡진 운명은 이때부터 얽히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