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다... 어딘가 잘못됐다...
네티아가 가리키는 길은 세상을 종말로 이끌 것이다.
인간의 혼란스러운 의식 속에서 오직 이 생각만이 뇌리에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러자 인간은 물에 빠진 자가 마지막 밧줄을 붙잡듯, 거센 물결 속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럼, 그레이 레이븐, 넌 어떻게 이 세계를 구할 거야?
네티아의 눈에는 실망과 분노 대신 오직 연민만이 있었다.
난 평범한 인간의 힘으로는 막을 수 없는 수많은 비극을 목격했어. 너조차도... 그런 비극 속에서 목숨을 잃었지.
이 성당에 남아 있는 것들을 봐봐. 추기경도 결국은 지고천의 지배를 유지하기 위한 기계일 뿐이었어. 그가 별문을 통해 만 리 밖에서 이곳까지 온 이유도 이 행성의 거주자들을 자신의 가축처럼 취급하기 위해서였어.
세계가 이런 규칙을 보이는 이유는 우리들의 고통스러운 싸움을 관람하고 소수의 운 좋은 "승격자"를 선발하여, "별문"을 통과하는 말로 사용하기 위해서였어. 그의 영토 확장 야망을 채우기 위해서 말이야.
난 그 누구도 지고천의 꼭두각시가 되는 걸 보고 싶지 않아. 그리고 이 세계를 저 기생충에게 넘겨줄 수도 없어.
말을 마친 어둠을 다스리는 마계의 지배자는 팔을 내리고 가슴을 어루만졌다.
한때 인간의 가슴 속에 있던 심장이 지금은 네티아의 몸 안에서 격렬하게 뛰고 있었다.
아니면...
네티아의 표정이 슬픔으로 일그러지며, 깊이를 알 수 없는 비통함이 그녀를 삼킬 듯했다.
예전처럼 자신을 희생하면 이 세계가 더 나아질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인간의 팔에서 흘러내린 핏방울이 발 아래 끝없는 심연 속으로 떨어졌다.
내가?
네티아가 반응할 틈도 없이, 인간은 총집에서 총을 꺼내 들었다. 그러자 따뜻한 피가 총신을 타고 흘러내려 순식간에 총알의 형태로 모였다.
인간이 겨눈 곳은 어둠을 다스리는 마계의 지배자의 가슴이었다.
망설일 시간이 없었던 인간은 반사적으로 방아쇠에 손가락을 올렸다.
붉은 빛이 밤하늘을 눈부시게 가로지르며 네티아의 가슴을 관통했다.
네티아의 몸이 천천히 뒤로 쓰러지려 했다. 하지만 더욱 뜨겁고 밝은 또 다른 형체가 뒤따라오더니 강하게 내리치며 그녀를 공중으로 날려 보냈다.
저게 바로 나이아히츠의 거울 감옥인 건가? 실제로 가보니까 별거 아닌데?
그에 비하면 제 "무한의 환상"이 더 재미있지 않나요?
입 다물어. 너의 그 환상에는 아무도 가고 싶어 하지 않아.
안개가 걷히자, 네 기사의 모습이 시야 앞에 나타났다. 그들은 평소처럼 한가롭게 대화를 나누며, 눈앞의 위기를 별것 아닌 듯 여기고 있었다.
다들... 경계를 늦추지 마.
챙 넓은 모자를 쓴 와타나베는 모두의 앞으로 나서며 총을 어깨 위로 들었다.
상대는 "추기경"과 "죽음의 군주"의 권능을 융합한 존재야. 한순간도 방심해서는 안 돼.
그런데 그레이 레이븐님, 저희가 뭘 해야 하나요? 모두 죽여버릴까요?
릴리스는 당당하게 웃으며 우산 끝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폐허가 된 정원에서 수수께끼의 봉인이 풀리며, 천사와 악마의 군대가 사람들을 향해 끊임없이 기어 오고 있었다.
무분별한 살육은 이 세계에 더 많은 고통만을 가져올 뿐이야.
반즈는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곧이어 등불을 들어 올리며 계속 밀려오는 "검은 물결"을 향해 총을 겨눴다.
기근, 이번만큼은 그녀의 영혼을 내게 맡겨.
그리고 "등불" 속에서 그녀의 진의를 우리가 살펴보자.
전 그런 "좋은 사람" 역할을 하는 게 싫지는 않은데, 그레이 레이븐님은 어떠세요? 그녀를 용서하실 건가요?
그럼, 그렇게 하지.
정신 차려! 이번 전투엔 지원군도 없고, 중단할 수도 없어. 우리만으로 삼계의 천군만마를 막아내야 해.
베라는 쌍날 검을 땅에서 뽑아 들고는 저 멀리 위에 있는 어둠을 다스리는 지배자를 향해 겨눴다.
피의 맹세자여, 우리에게 명령을 내려줘.
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