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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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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악의 천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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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절없이 추락하는가...

책에 적힌 마지막 문장을 나지막이 읊조리자, 강한 바람이 불어와 아직 다 읽지 못한 책장을 어지럽혔다.

그녀는 제멋대로 펄럭이는 종이를 눌렀다. 그 순간, 흩날리는 하얀 종잇장 사이로, 멀리서 아이들이 자신을 향해 손을 흔드는 모습이 아른거렸다.

선생님, 바람이 불어요! 곧 비가 올 것 같아요!

네티아는 책을 덮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더없이 따스한 미소를 지었다.

그럼, 이제 집으로 돌아갈까?

몇 달 전, 마을에 "네티아"라는 선생님이 찾아왔다.

젊고 우아한 이 여인은, 마을 사람들의 삶을 개선해 준다는 명목으로 재물만 탐하던 세무사들과는 달랐다. 그녀는 그저 묵묵히 산속에 학당을 세웠을 뿐이었다.

"누구든 지식을 얻고 싶다면 학당으로 오세요. 제가 아는 모든 것을 아낌없이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사심 없는 말과, 이를 행동으로 옮기는 모습은 순식간에 마을 사람들의 존경을 얻었다.

베아트리체, 오늘 수업은 벌써 끝났니?

네, 산 위에 먹구름이 보여서요. 비가 금방 올 것 같아 서둘러 내려왔어요.

선생님이랑 산 위에서 지내는 건 괜찮나? 뭐 필요한 건 없고?

네, 잘 지내고 있어요. 신경 써주셔서 감사해요. 아저씨.

베아트리체의 부모는 몇 년 전, 세무사에게 "혈액세"라는 명목으로 끌려간 뒤 돌아오지 못했다. 의지할 곳 없던 그녀는 그동안 마을 사람들의 도움으로 하루하루를 버텼다.

그러다 몇 달 전, 네티아가 마을에 찾아와 소녀를 거두었고, 그 후로 둘은 늘 그림자처럼 붙어 다녔다.

이 낙후된 마을에 외지인이 찾아오는 일 자체가 드물었고, 하물며 스스로 교사가 되겠다고 나서는 이는 더더욱 없었기에, 마을 사람들은 모두 네티아를 깊이 존경했다.

맞다, 오늘 밭에서 딴 호박인데, 우리끼리 먹기엔 너무 많아서 말이다. 좀 가져가렴.

고맙습니다. 아저씨!

선생님, 오늘 저녁은 호박파이예요!

우리 베아트리체는 호박파이가 먹고 싶구나?

네! 호박파이를 제일 좋아하거든요, 호박 케이크도 좋고요!

아이의 말을 들은 네티아는 아득한 과거의 기억이라도 스친 듯 잠시 눈을 감았다.

이윽고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녀의 입가엔 옅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래, 그럼 네 말대로 호박파이를 만들자.

야호!

베아트리체가 커다란 호박을 힘겹게 바구니에 넣으려던 찰나, 마을 반대편에서 날카로운 고함이 터져 나왔다.

어이, 다들 중앙광장으로 모여!

"악마토벌대"다! 집에 숨어있는 놈은 악마로 간주할 테니, 어서 나와!

베아트리체의 손이 멈췄다. 아이는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거두어준 네티아 선생님을 돌아보았다. 몇 년 전에도 "세금 징수대"라는 자들이 마을에 찾아왔었고, 그녀의 부모님은 그때 세무사에게 끌려갔었다.

괜찮아. 잠깐이면 돼. 저들이 가고 나면, 집에 가서 마저 호박파이를 만들자.

선생님은 늘 그랬듯이 다정한 목소리로 베아트리체를 진정시켰다.

네.

소녀는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불안감을 억지로 삼키고, 네티아의 손을 꽉 잡은 채 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향했다.

"악마토벌대"의 명령에 따라, 방금 수업을 마친 아이들은 베아트리체와 함께 마을 중앙의 노천 광장으로 모였다. 그리고 네티아는 선생님으로서 대열 가장 앞에 섰다.

넌 어디서 왔나? 이전 순찰 땐 못 본 얼굴인데.

이곳에 새로 온 교사입니다.

이딴 촌구석에 교사라고? 네가 생각해도 너무 "착한 척"하는 것 같지 않나?

세상에 "대가 없는" 호의가 어디 있나?

배움에는 귀천이 없습니다. 저는 누구나 교육받을 자격이 있다고 믿습니다.

오히려 이런 외딴 마을이기에, 저 같은 사람이 이 아이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노골적인 도발에도, 네티아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당당하게 맞받았다.

"악마토벌대"의 대원이 무언가 더 캐물으려던 찰나, 마을 사람들의 외침이 그의 말을 끊어버렸다.

제발 그만둬 주세요! 이 선생님은 우리 마을의 은인이에요. 학교도 세워주시고, 병을 고치는 법도 가르쳐 주셨단 말입니다.

나리들, 부디 자비를 베풀어 주세요. 우리 애가 겨우 학교에 다니게 됐는데요...

시끄러워! 악마는 피에 굶주린 교활한 존재다! 인간의 피와 살을 탐하기 위해서라면, 어떤 위선과 연극도 서슴지 않는다고!

마을 사람들의 반항에 격분한 "악마토벌대" 대원은 위협하듯 하늘을 향해 총을 한 발 쏘았다.

낯선 자에 대한 어리석은 믿음은 버려라! 너희가 그렇게 순진하게 구니, 악마가 파고드는 것이다!

총성에 놀란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졌지만, 오직 네티아만이 꼿꼿이 서서 학생들 앞을 막아섰다.

경고하는데, 만약 이 여자가 악마로 밝혀지면, 성당의 율법에 따라 너희도 악마를 감싼 죄로 처형당할 것이다.

누구 편에 설 건지, 잘 생각하는 게 좋을 거다!

자욱한 화약 연기 사이로, 다른 남자가 "드림캐처"를 높이 든 채 이쪽으로 천천히 걸어왔다.

"드림캐처"가 격렬하게 흔들린다! 이 마을에 분명 악마가 있다!

악마를 감싸는 자, 그 죄 또한 악마와 같다고 추기경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가 이렇게 고집을 부린다면, 우리도 극단의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다!

너희들, 가서 애들 전부 잡아! 횃불을 준비해!

선생님!

베아트리체는 네티아의 손을 꽉 쥐고 올려다보았다. 늘 침착하던 선생님의 얼굴에서 평온함은 온데간데없고, 본 적 없는 서늘한 살기가 감돌고 있었다.

괜찮아. 내가 반드시 너희를 지켜줄게.

남자가 한 걸음씩 다가올수록 "드림캐처"은 점점 더 격렬하게 흔들렸다. 네티아는 곁에 있는 소녀에게 나직이 속삭였다.

이따 무슨 일이 일어나든 신경 쓰지 말고, 모두를 데리고 학교 쪽으로 달려가. 알겠지?

하지만, 선생님...

베아트리체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따뜻하면서도 단호한 손길이 아이의 입을 막았다.

쉿... 더 말하지 마.

걱정하지 마. 넌 도망칠 생각만 해. 나머지는 내가 해결할 테니까.

결심을 굳힌 네티아는 천천히 일어섰다. 보이지 않는 실이라도 잡으려는 듯 두 손을 꽉 쥐고, 쉴 새 없이 떠들어대는 두 남자를 향해 걸어갔다.

남자가 방아쇠를 당기기 직전, 네티아는 검지를 들어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속도로 허공에 빠르게 룬 하나를 그렸다.

완성되지 않은 룬이 허공에 멈췄다. 낯선 외침이 소란을 중단시켰다.

손의 움직임이 멈췄다. 네티아는 그저 놀란 채, 시야로 뛰어드는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네가 어떻게...)

회색 망토를 걸친 "영웅"이 외진 마을에 나타났다. 그 영웅은 한 손으로 남자의 총을 빼앗고, 다른 손으로는 네티아의 팔을 붙잡아 그녀의 오른손을 높이 치켜들었다.

네티아는 이 "심판"에 저항하지 못했다. 온몸의 힘이 순식간에 빠져나갔다.

마치 온 세상에 죄를 선포하듯, 존경받는 그레이 레이븐은 팔을 높이 치켜들었다. 그제야 사람들은 눈부신 황금빛 쇠사슬이 둘의 손목을 단단히 묶고 있는 광경을 목격했다.

마을 사람들은 늘 온화하고 상냥했던 네티아가 악마였다는 충격에 휩싸여, 강철 군단의 총사령관이 직접 나타났다는 사실에 환호하는 것조차 잊었다.

빽빽한 군중 속에서 먼저 나직한 수군거림이 일었고, 이내 그레이 레이븐의 선언이 농담이 아님을 깨닫자, 광장은 걷잡을 수 없는 소란에 휩싸였다.

그리고 피비린내 나는 "일"을 강제로 중단당한 "악마토벌대" 대원들은 소란스러운 군중을 향해 불만스럽게 혀를 찼다.

강철 군단... 너희가 이렇게 선 넘는 게 한두 번이 아니지.

충고하는데, 악마는 절대 혼자 다니지 않는다. 이 마을에 분명 저 여자에게 홀린 자들이 더 있을 거다.

그레이 레이븐의 엄중한 경고에, 그들은 더 이상 마을에 머물 명분을 찾지 못하고 마지못해 무기를 챙겨 떠났다.

"악마토벌대"와 마을 사람들이 모두 자리를 떠나자, 검은 망토를 두른 인간은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러고는 심판하는 듯한 눈빛으로 그 악마를 엄숙히 바라보았다.

나를 심판정에 데려가려는 건가?

인간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티아 선생님!!

보라색 머리의 소녀가 어른들의 팔을 뿌리치고 비틀거리며 달려왔다.

그레이 레이븐 님, 분명 뭔가 잘못됐을 거예요! 네티아 선생님은 악마가 아니에요!

저도 심판정에 데려가 주세요. 제가 미카엘 님께 직접 말씀드릴게요. 네티아 선생님은 나쁜 짓을 한 적이 없고, 오히려 마을에서 우리를 계속 도와주셨다고요!

베아트리체...

어린 소녀는 떨어지기 싫다는 듯 네티아의 몸을 꽉 껴안았다. 소녀를 바라보는 네티아의 표정은 무척이나 복잡했다. 연민, 부끄러움... 그리고 아주 강한 아쉬움이 뒤섞여 있었다.

더 이상의 말은 필요 없었다. 누구라도 한눈에 둘 사이의 정이 얼마나 깊은지 알 수 있었다.

명성이 자자한 강철 군단 총사령관은 결국 눈감아 주기로 했다.

그걸로 충분해, 고마워, 그레이 레이븐.

구마의 사슬에 묶여 저항할 힘이 없어진 긴 머리의 여자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소녀를 품에 안았다.

적어도... 호박파이를 만들어 줄 시간은 있겠네.

그레이 레이븐... 괜찮다면, 잠시 들렀다 갈래?

저녁 식사 자리에는 무거운 침묵만이 감돌았다. 늘 학생들로 북적이던 식탁은 오늘 텅 비어 있었고, 베아트리체는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는 호박파이를 먹은 뒤 네티아의 손에 이끌려 잠자리에 들었다.

악마와 내내 구마의 사슬로 묶여 있던 그레이 레이븐은 멀지 않은 곳에서 그들이 서로 잘 자라는 인사를 나누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이윽고 네티아가 촛대를 들고 방에서 나왔다.

네 표정을 보니, 묻고 싶은 게 많은 모양이군.

따라와라. 네가 알고 싶어 하는 걸 말해주지.

잿빛 밤하늘에 창백한 달이 높이 걸려 있었다. 결코 아름다운 밤은 아니었다.

네티아는 뒷마당으로 나갔지만, 인간에게서 멀리 떨어지지는 않았다. 그녀는 그레이 레이븐과 신중하고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며, 고개만 들면 바로 보이는 곳에 섰다.

인간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 질문에 답하기 전에... 그레이 레이븐, 나도 묻고 싶은 게 있어.

사람은... 어떻게 해야 영혼의 본질을 바꿀 수 있을까?

그녀는 더 이상 정체를 숨기지 않았다. 달빛 아래 악마의 권능을 드러내자, 허공에서 마법의 펫 까마귀가 소환되었다.

하지만 까마귀는 그저 나뭇가지에 내려앉아, 어떤 공격성도 드러내지 않은 채 조용히 그들을 바라볼 뿐이었다.

한때는 나도 "착하게" 살려고 노력했고, 그에 걸맞은 "좋은 일"을 한다면, 세상이 나를 착한 존재로 인정해 줄 거라고 믿었어.

하지만 내 영혼은 결국 너희의 드림캐처에 붙잡혔지. 그 물건은 내 행동이 선의에서 비롯됐다는 걸 인정하지 않았어.

네티아가 손가락을 튕기자, 텅 빈 눈의 까마귀는 순식간에 깃털로 변해 흩어졌다.

그레이 레이븐, 그건 내 영혼이 "심판"을 통해 악마가 되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오늘 낮에 그들이 말했던 것처럼, 지금 나의 모든 선행이, 내일의 어떤 사악한 생각을 위한 "위장"에 불과하기 때문일까?

그렇다면 난, 남은 생도 영원히 악마로 살아가야만 하는 거야?

인간은 소녀의 말에 담긴 진의를 신중히 헤아렸다. 교묘한 말로 목숨을 구걸하던 악마는 많았지만, 네티아가 던진 이 질문만큼은 지금껏 들어본 적이 없었다.

강철 군단의 총사령관은 그간 마주했던 인간 군상을 떠올리며, 자신만의 답을 내놓았다.

...

내가 "착한 악마"라면, 날 풀어줘도 되는 거 아니야?

네티아의 목소리는 낮았고, 희미하게 들려오는 웃음소리는 거의 자조에 가까웠다.

인간의 말은 평온했고, 사사로운 감정은 담겨있지 않았다.

네티아는 그 말에 담긴 의미를 알아들었고, 더 이상 항변하지 않았다. 그녀는 천천히 손을 내려 무거운 구마의 사슬에 다시 몸을 맡겼다.

알겠어.

방금 그 질문에 답할게, 내가 인간 행세를 한 이유는... 사실 내가 너에게 던진 질문 속에 그 답이 있어.

네티아는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달빛이 그녀의 아름다운 긴 머리에 은빛 테를 둘렀다.

그레이 레이븐, 그 질문의 답은 너 스스로 찾아야만 해.

대체 무엇이 한 악마의 영혼을 뒤흔들어, "착한 존재"가 되고 싶게 만들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자격을 너에게 넘겨줄게.

그리고 심판정에 도착하면, 너와 베아트리체가 함께 내 운명을 결정해 줘.

내가 유죄인지, 정말 내가 소멸을 당해야 마땅한 존재인지... 그 판단을 너희 둘이 함께 미카엘 님께 말해 줘.

서리 같은 달빛 아래, 그녀의 미소는 마치 작별 인사처럼 보였다.

너희 둘이 함께 내린 판결이라면, 어떤 결과든 기꺼이 받아들이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