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name] 찾을 수 있어?
찾았다. 자, 내 손 잡아.
어지럼증이 밀려왔고, 주위는 칠흑 같은 어둠에 잠겼다. 비린내가 공기를 가득 채웠고, 잘려 나간 팔다리들이 사방에 흩어져 있었다.
좋아. 꽉 잡아.
아직 정신이 없어 보이네. 와서 좀 도와줘.
크으윽...
그레이 레이븐은 반즈의 도움을 받아 전복된 열차에서 간신히 기어 나왔다. 그 순간, 빛이 바늘처럼 눈을 찔러왔다. 한동안 눈을 찡그리며 적응한 뒤에야, 눈앞의 성당이 겨우 보이기 시작했다.
새하얀 계단은 마치 살점이 뜯겨 나간 뼈대를 연상케 했으며, 열차의 잔해는 계단 중간에 처참히 박혀 있었다. 빛 아래에서 모든 것이 서늘한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마녀 하이타의 마법이 예상보다 강렬해서 열차가 완전히 통제를 잃었어요. 그 충격으로 인해 그레이 레이븐 님은 기절하셨어요.
"죽음"은 비상착륙 하겠다고 했는데, 성당에 부딪히기 직전에 기관차를 분리하더니, "대천사"를 향해 달려들었어요.
결국 "죽음"은 "대천사"와 함께 지상으로 추락하고 말았어요. 천사들은 홍수에 모두 휩쓸려갔지만, 마녀 하이타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어요.
마지막 "죽음"이 일으킨 폭발 때문인지... 이젠 "대천사"의 기운이 안 느껴져.
내 느낌이 맞다면, 확실히 "죽었어". 하지만 그렇다면 다른 문제가 생기는데...
말을 마친 반즈는 고개를 들어 빛으로 둘러싸인 하늘을 바라보았다.
응. "대천사"의 죽음으로는 영겁의 대낮을 끝낼 수 없나 봐.
"전쟁"이 얘기 했던 플랜B도 있지 않나요? "대천사"를 죽여도 해결이 안 된다면, 천사를 모두 없애버리자는 그 계획이요.
그리고 위에 있는 덩치 큰 놈도 아직 조사 안 했잖아요.
릴리스는 눈썹을 치켜올리며 성당 꼭대기를 바라보았다. 추기경의 잔해가 빛줄기 속에서 떠 있었고, 가슴 아래는 텅 비어 있었다. 금색 케이블은 마치 혈관처럼 아래로 길게 늘어져 있었다.
근처에 천사들이 숨어 있을 수도 있으니까, 내가 앞장설게. 잘 따라와.
네.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몸의 상처가 욱신거렸지만, 앞서 치른 전투에 비하면 이 정도는 휴식이나 다름없었다.
...
...
일행은 계단을 계속 올랐다. 대리석 위를 울리는 부츠 소리가 마치 카운트다운하는 시계처럼 텅 빈 공간에 울려 퍼졌다.
모두가 침묵 속에 잠겨 있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상처에서 통증이 밀려왔지만, 그보다 더 괴로운 것은 가슴 깊숙이 자리 잡은 막막함이었다.
도착했네요.
돌기둥 사이에 전부 "문"이잖아.
밖에서 보면 이곳은 단순히 추기경의 잔해가 놓인 거대한 공간처럼 보였지만, 막상 안으로 들어서니 가장자리 기둥 사이로 웅장하면서도 일그러진 빛의 거품들이 가득 차 있었다. 그 안에서는 기이하고 현란한 광경들이 끊임없이 반짝이고 있었다.
한겨울 속의 거대한 황금 나무, 진홍빛 재난이 범람하는 기이한 행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낯선 세계가 모두의 눈앞에 펼쳐졌다.
천사들과 지고천이 다른 "차원"에서 온 생명체라는 전설이 사실이었나 보네요.
저 문 보세요.
릴리스가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위쪽을 보니, 한 문이 눈에 들어왔다. 그 안에서는 그레이 레이븐을 닮은 인간이 "천사"와 맞서 싸우는 모습이 희미하게 보였다.
음... 누가 있는 것 같은데요?
염탐하는 자... 죽어라!
죽어라!
역시 이럴 줄 알았어요.
까악!!
릴리스가 다가가자, 별문에서 흐릿한 물결이 일렁였다. 그 순간, 한 천사가 문밖으로 튀어나왔다. "기근"은 가볍게 피한 뒤, 월산을 휘둘러 적을 처단했다.
피와 살이다. 학살하라!
더러운 것들!
모든 별문이 요동치듯 흔들리더니, 각기 다른 차원에서 수많은 천사가 끊임없이 쏟아져 나왔다.
흠. 하루에 이렇게 많은 대전을 치르게 될 줄이야.
피의 맹세자, "기근", 내 옆으로 와.
이렇게 많은 적을 막아낼 수 있어요?
지금 도망친다면 오히려 약점만 노출될 뿐이었다. 이번 공격을 버텨내는 것이 승부의 관건이었다. 그레이 레이븐은 총알을 퍼부으며 반즈 쪽으로 뛰어들었고, 릴리스는 그레이 레이븐의 곁에서 엄호하며 빠르게 움직였다.
살... 살!
저리 꺼져!
반즈가 등불을 높이 들어 올리자, 은백색 빛이 번쩍이며 순식간에 무형의 장벽을 만들어냈다. 장벽에 부딪힌 천사들은 화염에 휩싸여 처절한 비명을 질렀다.
아아아악!
에너지 장벽이 주변의 모든 것을 밀어냈다. 끓어오르는 마력이 맹렬한 화염으로 변해, 천사들의 피와 살을 무자비하게 태워버렸다.
그레이 레이븐, 잠시만 견뎌줘.
에너지가 일정 범위까지 확장되자, 반즈는 등불을 든 자세를 유지한 채 장벽 밖으로 걸어 나왔다. 그는 그레이 레이븐과 릴리스를 제자리에 남긴 채 곧장 추기경을 향해 나아갔다.
그레이 레이븐, 미안. 난 거짓말을 했어.
그날... 사실 난 이 세계를 구하고 새벽의 법칙을 되돌릴 방법을 봤어.
천사들이 쫓아가려 했지만, 장벽은 그들의 공격을 완벽히 막아냈을 뿐만 아니라, 내부와 외부를 철저히 단절시켰다.
빛의 벽에 닿는 순간, 강렬한 전류가 파직 소리와 함께 그레이 레이븐을 수 미터 밖으로 튕겨냈다.
그레이 레이븐 님!
천사들이 반즈의 움직임을 감지하고 맹렬히 공격을 퍼부었지만, 모든 공격은 흩날리는 불빛에 휘말려 사방으로 터져 나갔다.
곧이어 반즈는 추기경의 잔해 아래로 가서, 그 거대한 몸에서 흘러내리는 빛줄기를 손으로 받아내려 했다.
난 이 잔해와 하나가 되어 다시 추기경이 될 거야. 그 힘을 제어할 수만 있다면, 밤을 인간 세계에 되돌릴 수 있을 거야. 그러면 잿빛 변방도 진정한 내일을 맞이할 수 있겠지.
...
반즈의 짧은 침묵이 모든 것을 말해주었다.
"역병", 성당의 유혹에 넘어가지 마요! 전에도 이렇게 시도한 자가 많았어요. 하지만 모두...
천재지변을 끝내려면, 이게 유일한 선택이야.
천사들의 비명이 하늘을 뒤덮으며 울려 퍼졌고, 빛의 벽은 그들의 맹렬한 공세에 점점 어두워졌다.
만약 실패하면... 내가 널 해치기 전에, 올바른 결정을 내리길 바라. 그레이 레이븐.
천사들이 빛의 벽을 뚫고 들어오는 순간, 반즈는 주위의 빛을 휘감듯 끌어모았고, 그의 눈동자는 황금빛으로 이글거리기 시작했다.
반즈는 자신의 영혼이 서서히 변화하기 시작하는 것을 느꼈다. 그가 뿜어내는 눈빛만으로도 혼란스레 흔들리던 별문들이 서서히 닫혀가기 시작했다.
보았는가?
봤어.
그래서 돌아왔어.
오랜 친구, 또 다른 자신과의 대화는 의외로 단순했다. 복잡하게 얽혀 있던 모든 것이 한순간에 매듭을 풀듯 사라졌다. 이제 남은 유일한 걱정거리는...
바로 자신과 계약을 맺은 피의 맹세자뿐이었다.
뭔가를 말하려 했지만, 융합이 시작되면서 반즈의 오감은 서서히 무뎌지더니, 이내 완전히 사라졌다.
잔해와 영혼이 서로 뒤엉키며, 반즈는 보이지 않는 힘에 높이 떠올랐다. 반즈라는 이름의 육체는 곧 흔적도 없이 사라질 운명이었으며, 추기경은 완전한 법률을 품고 이 성당으로 다시 모습을 드러낼 것이었다.
아쉬우면, 인간 세계를 좀 더 바라봐.
!
"역병"과 추기경 잔해를 잇는 빛줄기에 날카로운 참격이 날아갔다. 순간, 빛줄기가 피처럼 솟구쳤고, 융합으로 인해 움직일 수 없었던 반즈는 공중에서 힘없이 떨어져 바닥에 세게 부딪혔다.
다행히 안 늦었네.
일단 그 등불 가져와 봐.
깃털이 하늘을 뒤덮는 가운데, 한 낯익은 여성이 찬란한 빛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누구신지...
안녕. "기근의 기사", 그리고... 그레이 레이븐.
반즈가 공격받는 모습을 보자, 릴리스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공격 태세를 취했다.
괴이한 여관의 그 주인? 당신 대체 정체가 뭐예요?
시끄럽군. 저 청년처럼 좀 쉬어.
윽...!
지팡이의 강렬한 일격에 릴리스는 마치 둔기에 얻어맞은 듯 휘청거렸다. 신경이 끊어져 나가는 듯한 고통 속에서 그녀는 마력을 서서히 잃고, 결국 힘없이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모든 것이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졌다. 두 기사는 속수무책으로 눈앞의 여성에게 제압당했고, 그녀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며 그레이 레이븐을 바라보았다.
그레이 레이븐.
"역병"의 등불이 여기 있어. 시작해. 네티아!
잿빛 변방이 새롭게 태어나는 순간을 너와 함께 맞이하고 싶어.
말을 마친 네티아는 반즈의 등불을 들어 올렸다. 등불 속에서 흔들리던 불꽃은 점차 자홍빛으로 물들었고, 그 안에서는 영혼의 처절한 울음소리가 메아리치듯 퍼져 나갔다.
비통한 울음을 신호로 삼고, 원한을 인도자로 하리. 적막 속에 떠도는 외로운 영혼들이여, 모여라.
등불의 불꽃이 거세지면서, 주변을 감싸던 빛이 하나둘 사라졌다. 그 순간, 수많은 유령들이 구름을 뚫고 날아왔다. 법률의 붕괴로 갈 곳을 잃은 유령들이 네티아의 주문에 이끌려 이 신성한 성당으로 몰려들었다.
유령들의 숫자는 점점 더 늘어났고, 가까이 다가가기만 해도 그들이 품은 끝없는 원한이 느껴졌다.
추기경의 잔해를 제물로 바친다. 타락한 천사들의 감옥을 박살 내고, 이곳에 강림하라!
죽음의 군주, 나이아히츠여!
그 끔찍한 이름이 불리자, 유령들은 태풍처럼 추기경의 잔해를 끊임없이 들이받았다.
강렬한 충격으로 잔해에 균열이 생기더니, 그 틈새로 원래 존재하지 않았던 살점이 드러났다. 그것들은 심장처럼 맥박치며 추기경의 몸체 위에서 서서히 퍼져 나가 원래의 모습을 집어삼켰다.
성공했다.
순식간에 살점이 추기경을 휘감으며 그의 몸 일부를 뒤덮었다. 잔해 안에서는 "신의 심장"과 비슷하지만, 극도로 모독적인 존재가 서서히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이제 이 성체의 잔해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은 눈부신 성광이 아니라, 뼛속까지 파고드는 얼음 같은 한기였다.
흥흥. 하하하하.
살점 속에서 광기 어린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음산한 소리는 심연처럼 뒤틀려져 있으며, 마치 영혼의 가장 깊은 곳에서부터 울려 나오는 속삭임처럼 들렸다.
선행만 하다가, 결국 인간의 손에 죽어 이런 잔해가 돼버렸지. 하지만 이 덕분에! 이 덕분에...
추기경의 잔해는 지옥에서 온 죽음의 군주의 살점에 완전히 장악당했다. 광기 어린 웃음과 함께, 그는 거대한 팔을 들어 올려, 하늘을 찢어버릴 듯한 위압감을 내뿜었다.
이토록 완벽한 부활의 제단을 손에 넣게 되었지. 성광이니, 신앙이니 하는 것들, 결국엔 다 내가 돌아오기 위한 발판에 불과하지.
잘했어.
그래서... 어떤 보상을 원하는가? 새로운 권능, 아님 인간 세계를 통치할 영광인가?
나이아히츠, 내가 원하는 건 이미 내 눈앞에 있어.
...!
죽음의 군주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칼 빛이 반즈와 추기경을 잇는 빛줄기를 순식간에 베어냈다. 그다음 순간, 빛줄기는 피처럼 흩뿌렸고, "신의 심장"은 한순간에 갈라지고 말았다.
분노와 비명이 뒤섞이며 온 공간을 혼돈으로 물들였고, 죽음의 군주의 최후는 그 어떤 생명체보다도 처절하고 비참했다.
이것이 바로 추기경과 죽음의 군주의 권력이군.
"신의 심장"에서 터져 나온 에너지는 마치 보이지 않는 손길에 이끌리듯 네티아에게로 흘러들어갔다. 에너지는 그녀의 몸에 새로운 문양을 새기며, 그녀를 새로운 주인으로 받아들였다.
알고 싶어? 그레이 레이븐.
소용없어. 그레이 레이븐.
"죽음의 군주"를 쓰러뜨림으로써, 네티아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두 가지 권력을 손에 넣었다. 이제 아무도 그녀에게 맞설 수 없게 되었다.
그레이 레이븐, 난 이 세계를 멸망시키고, 그것이 다시 태어나는 걸 보고 싶어.
네티아와 눈이 마주친 순간, 몸이 돌처럼 굳어버려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었다. 그녀의 뒤로, 먼 지평선에서는 짙은 어둠이 끝없이 몰려오고 있었다.
맞아. 밤이야.
캄캄한 균열이 서서히 벌어지기 시작했다. 30년 동안 잿빛 변방에 찾아오지 않았던 밤이 마침내 둑이 무너진 홍수처럼 메마르고 갈라진 대지 위로 쏟아져 내렸다.
전사들이여! 인간들을 모조리 죽여라. 한 명도 남김없이 죽여라!!
강철 군단, 대열을 펼쳐라! 평민이 모두 대피할 때까지 악마들을 막아라!
죽어라!!
저리비켜!
와타나베 님! 어, 어떻게 된 거예요? 왜 악마들이 밤과 함께 나타난 거죠? 그레이 레이븐의 동료 중에 악마 영주도 있지 않았나요?
악마 영주라고 해서 다 우리의 동맹은 아니야. 정신 차려!
메마른 대지에 밤이 다시 찾아왔다. 사람들이 상황을 파악할 새도 없이, 땅이 갑자기 갈라지며 지옥의 문이 열렸다. 그 틈새로 타오르는 용암과 함께 무시무시한 악마들이 쏟아져 나왔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악마들이 지옥의 불을 휘감고 인간 세계에 들이닥쳤다. 위급한 순간, 간신히 회복한 와타나베가 악마들의 첫 공격을 막아내고, 주변 병력을 신속히 집결시켜 전투에 투입했다.
수백, 수천 개의 "혼돈의 균열"이 동시에 잿빛 변방에 나타났고, 인간의 피와 뼈를 갈구하는 악마 영주들이 인간 세계로 쏟아져 들어왔다.
저항하지 말고, 그냥 얌전히 죽어라!
흠... 천사들의 우두머리를 겨우 죽였더니, 이젠 악마가 찾아오네. 쉴 틈도 안 주는군.
"불멸"의 힘 덕분에 베라는 그 치명적인 폭발에서도 살아남았다. 하지만 "대천사"의 필사적인 저항으로 베라는 심각한 부상을 입었고, 무기에 몸을 의지한 채 간신히 균형을 잡고 있었다.
그녀 앞에는 이미 지옥으로 변해버린 광야가 펼쳐져 있었고, 용암에서 기어 나온 "동족"들이 끊임없이 다가와 그녀를 둘러쌌다.
"카론", 감히 인간과 한편이 되다니...
베라는 악마들이 한 번 결심하면 그것을 바꾸기 어렵다는 사실을 이미 잘 알고 있었다.
이걸 어떡하나... 한 인간과 약속을 했거든...
인간 세계를 해치려는 자는 모두 죽이기로 했어!
베라는 악마 무리 속으로 돌진하며, 창끝으로 죽음의 핏빛을 그려냈다.
신과 악마가 땅 위를 거닐며, 천국과 지옥이 모두 인간 세계에 있게 하리라.
하늘은 어둠에 완전히 삼켜졌다. 대지 곳곳에는 지옥의 균열이 벌어졌고, 비명과 포효가 뒤엉킨 광란의 교향곡이 울려 퍼졌다.
세계는 한 차례의 붕괴에서 또 다른 붕괴로 내몰리고 있었다.
이 외침에 대한 대답은 그저 알 수 없는 의미를 담은 미소였다. 네티아는 조용히 다가와 인간의 뺨을 부드럽게 감싸안았다.
좀만 기다려봐. 네게 모든 걸 보여줄 거야.
너랑 나에 대해서, 그리고 과거의 일들에 대해서 말이야.
꿀처럼 달콤한 목소리와 함께 의식도 흘러내려, 어둠 속으로 잠겨 들었다.
그레이 레이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