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차의 금화를 반드시 가져와야 한다. 도박꾼 릴리스도 학살해야 한다, 학살!
쉰 목소리의 괴성을 더는 듣고 싶지 않았던 악마 기사는, 창백한 생명체의 가슴을 거칠게 짓밟았다. 이어 부츠 끝 뾰족한 장식으로 목을 눌러, 더 이상 비명이 새어 나오지 못하게 막았다.
라파엘 부인은 이미 열쇠를 손에 넣었는데, 왜 아직도 절 괴롭히는 거죠?
학살하라, 학살!!
더는 시간을 낭비할 생각이 없었던 기근의 기사는 부츠 장식으로 천사의 목을 단숨에 꿰뚫었다. 시체를 발로 걷어찬 후, 바닥에 쓰러진 또 다른 생명체 앞으로 성큼 다가갔다.
암호문, 라파엘 부인, 명령... 암호문을 찾아라!
겨우 숨만 붙어 있던 또 다른 창백한 생명체가 힘겹게 말을 내뱉었다. 기사가 손을 쓰기도 전에 스스로 단서를 털어놓은 것이다.
오? 그 말은 부인이 아직 맘몬의 보물을 얻지 못했다는 뜻이군요.
그녀가 잠시 멈추자, 천사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더 많은 걸 쏟아냈다.
보물창고, 무귀성 안에... 맘몬 자리, 비어 있다.
암호문, 반드시, 찾아야 한다!
하하하! 정말 놀랍군요. 하늘 높은 줄 모르던 라파엘 대천사가 고작 맘몬의 암호문 하나 때문에 문전박대를 당하다니!
아, 이거 참 통쾌하네요. 역시 살아 있어야 이런 구경거리를 계속 볼 수 있는 거죠!
그녀는 고개를 뒤로 젖히며 폭소를 터뜨렸다.
아, 죄송해요. 피의 맹세자님께 먼저 설명드리는 걸 깜빡했네요.
기사는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내고, 차분히 경위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맘몬의 보물창고, 일명 무귀성은 수많은 보물이 쌓여 있는 지하 벙커예요. 하지만 그곳은 주인과 초대받은 자만 들어갈 수 있죠.
열쇠, 그러니까 라파엘 부인이 빼앗아 간 그 금화는 보물창고의 초대장일 뿐이에요. 무귀성에 들어가려면, 입장 허가에 필요한 암호문을 알아야 하죠.
그 어리석은 천사가 규칙도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저를 죽이려 했다니, 정말 상상도 못 했어요. 하하하…
말을 마친 기사는 또다시 웃음을 참지 못하고, 끊어질 듯 말 듯 웃음을 흘렸다.
하하, 맞아요. 피의 맹세자님!
저희는 그저 가서 기다리기만 하면 돼요. 피와 살이나 뜯어 먹는 저 하찮은 것들은 이제 필요 없어요.
기사가 손을 들어 올리자, 마름모무늬의 카드가 그녀의 손가락 사이에서 떠올랐다.
잘 가요.
기사는 한순간도 망설이지 않았다. 그렇게 또 다른 천사의 순례자의 더러운 피가 밀밭 길가에 튀었다.
저… 미안합니다. 아까 그렇게 무례하게 굴었는데도, 마을을 도와주셨네요.
기진맥진한 문지기가 천천히 걸어오며 말했다. 그의 오른팔은 붉은 피로 흥건히 젖어 있었다.
전 반이라고 합니다. 큰 보답은 되지 못하겠지만, 여기서 하룻밤 쉬고 가세요. 여관 주인으로서 드릴 수 있는 작은 성의입니다.
정말요? 그럼, 감사히 잘 머물다 갈게요.
그 짧은 순간에 그녀는 다시 능숙하게 "릴리스"라는 가면으로 바꿔 썼다.
백마 마을 주민들은 아직도 하룻밤 사이에 부자가 되는 꿈에 젖어 있는 모양이군요. 저와 피의 맹세자님이 마침 지나가지 않았더라면… 끝이 어땠을지 상상도 하기 싫네요.
저흰 전망 좋은 방에서 묵고 싶어요. 세 끼 식사랑 매일 룸서비스도 포함해서요. 이 정도면 무리한 부탁은 아니죠?
물론이죠. 그 정도는 제 권한으로 해드릴 수 있습니다.
문을 지키던 소년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여관 안으로 들어갔다. 인간이 반응할 틈도 없이 거래는 순식간에 끝나버렸다.
긴 머리의 릴리스는 여유로운 태도로 손을 내밀며 함께 가자고 권했다.
가시죠. 그레이 레이븐 님.
인간은 더 이상 반박하지 않고, 이 "절세 도박꾼"의 호의를 담담히 받아들였다.
스위트룸 바닥에는 고급 융단이 깔려 있었고, 천장에는 값비싼 크리스털 샹들리에가 걸려 있었다. 재난 이전 시대의 디자인이었지만, 여전히 흐트러짐 없는 화려함을 뽐내고 있었다.
키 큰 릴리스는 맨발로 부드러운 융단을 밟으며 넓은 침실을 지나, 창가에 섰다. 그리고 몸을 돌려 가죽 소파에 앉았다.
바로크 양식이군요. 재난이 일어난 뒤로, 잿빛 변방의 사람들은 이런 사치를 누릴 여유조차 없었을 거예요.
이 비싼 스위트룸은 예전에도 대단한 사람들만 들어올 수 있었겠죠.
아니에요. 한 번뿐인 인생, 달든 쓰든, 직접 맛봐야 의미가 있죠.
릴리스는 얼음 통에 꽂혀 있던 샴페인 병을 능숙하게 열어, 피의 맹세자에게 옅은 금빛 술을 가득 따라주었다.
자, 좋은 술은 기다려주지 않아요. 어서 마시죠.
인간은 향기로운 술잔을 받지 않고, 차분히 그녀의 말과 행동의 모순을 짚어내고 있었다.
릴리스가 무언가를 숨겨서 그런 게 아니라, 그녀의 행동에 납득할 만한 이유가 필요했다.
그렇지 않으면, 이 작은 위화감은, 언젠가 서로 간의 신뢰를 모두 집어삼킬 거대한 나무로 자라날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 흔들림의 뿌리는 이미 자라나고 있었다.
제 과거가 그렇게 궁금하신가 보군요… 좋아요, 직접적인 답은 드릴 수 없지만, 하나도 숨김없는 이야기를 들려드리죠.
이 이야기에서 전 모든 걸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아무도 잔을 받지 않자, 릴리스는 혼자서 금빛 술을 반 잔 들이켰다. 은근한 취기가 번지자 그녀의 말투에는 조금의 나른함이 묻어났고, 이야기를 풀어놓고 싶은 욕망은 술과 가장 잘 어울리는 안주가 되어갔다.
이 이야기에서 어떤 답을 찾고, 어떤 정보를 얻게 될지는… 전적으로 맹세자님께 달려 있어요.
그럼, 주저 말고 저와 함께 이 선물을 즐기시죠.
릴리스는 다시 술잔을 가득 채워 단호하게 테이블 앞으로 내밀었다. 이번에는 인간도 거절할 명분을 찾지 못했다.
이야기를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아주 오래전, 잿빛 변방에 백마 마을이라는 작은 마을이 있었어요. 그리고 그곳에는 엘리너라는 이름의 여자아이가 살고 있었죠.
엘리너의 아버지는 성당에서 임명한 세무사로, 마을 주민들에게서 세금을 걷어 성당에 전달하는 일을 했어요.
그 과정에서 남는 몫 덕분에, 가족은 언제나 풍족하게 살 수 있었죠.
어린 엘리너는 "돈"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는 못했지만, 그것이 곧 권력의 상징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어요.
그리고 손에 번쩍이는 금화를 들고 있기만 하면, 어린아이인 자신도 어른들에게 즉각적인 존중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죠.
엘리너는 "돈"이 주는 쾌감과 우월감을 즐겼고, 주변에 있는 이들이 욕망에 빠져가는 모습을 보는 것도 좋아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집에 손님이 찾아왔어요. 엘리너의 부모님은 그녀에게 절대 그 분께 무례하게 굴지 말라고 신신당부했죠. 집안의 모든 재산을 쏟아부어도 잠시의 눈길조차 얻지 못할 만큼 높은 분이었기 때문이었어요.
그 손님은 키가 크고 빼어난 미모를 지닌 갈색 피부의 여성이었어요. 부모님이 "라파엘 님"이라 불러야 한다고 수없이 강조하지 않았더라면, 엘리너는 그 여자가 자신과 같은 존재라고는 믿지 못했을 거예요.
부모님은 그 여성과 오후 내내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엘리너는 문밖에서 몰래 들으려 했지만, 마지막 한마디만 제대로 들을 수 있었죠.
"능력도 안 되면서 욕심부리지 마."
그 말을 끝으로 여자는 자리에서 일어났어요.
거실 문이 열리자, 엘리너는 재빨리 벽 쪽으로 몸을 숨겼어요. 그러곤 굳은 표정으로 한 마디를 내뱉었어요.
부인님, 일부러 엿들은 건 아니에요…
가식은 집어치워. 무슨 말이 새어나가든 난 상관없어.
명성이 자자한 대천사는 엘리너를 거들떠보지도 않았어요. 문 너머로 듣는 이가 있었다고 한들 전혀 개의치 않아 했죠.
너도 네 부모 닮아서, 어린 나이에 욕망 하나는 크구나. 이게 바로 싱클레어 가문에 대대로 내려오는 저주겠지.
그래도 넌 좀 다르길 바란다.
라파엘은 문밖으로 나갈 때까지 "엘리너"를 한 번도 쳐다보지 않았어요.
그런데, 과연 네가 그 야망을 짊어질 자격이 있을까?
수년 후, 릴리스는 숲속에서 부모의 시신을 바라보다가, 라파엘 부인이 했던 말이 떠올랐어요.
부모님이 돌아가신 이유는, 라파엘 부인이 십여 년 전에 모두 말해줬었어요. 하지만 릴리스는 그 말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기까지 몇 번의 계절을 더 보내야 했어요.
그리고 마침내 그 답을 찾았을 땐, 이미 릴리스에게 아무 의미가 없었어요.
릴리스의 부모님은 어리석은 야망을 좇다가 목숨을 잃은 거였어요. 그들은 항상 "맘몬의 보물창고"의 열쇠를 손에 넣으려 했고, 그 창고를 여는 암호문까지 어렵게 알아냈죠. 하지만 그 행동은 성당의 분노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어요.
어머니, 아버지. 전 달라요. 절대 길가의 들개처럼 죽지 않을 거예요.
제 능력이 제 야망을 모두 감당할 수 있을 때까지 성장할 거예요.
릴리스는 돈이 권력을 상징하긴 하지만, 그 권력을 다루려면 더 큰 능력이 필요하다는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어요.
사회라는 "선별"을 통과하지 못한 실패자는 결국 높은 자리에 있는 이들에게 내몰릴 수밖에 없었죠.
전 맨 앞에서, 이 길의 꼭대기까지 걸어갈 거예요.
왜냐하면, 전 이 잿빛 변방에서 가장 행복한 존재가 될 운명이니까요.
릴리스는 어린 시절 들었던, 부모님이 목숨으로 맞바꾼 그 암호문을 수없이 되뇌이며, 먼 길을 향해 나아갔어요.
릴리스는 무너진 담장과 썩어가는 시체가 널린 황야를 지나, 모래폭풍에 가려진 폐허를 넘어, 마침내 자신만의 "낙원"에 도착했어요.
내줄 수 있는 모든 걸 담보로 바치고, 목숨을 건 대가로 운명의 총애를 얻었어요.
총알이 빗발치고 운명의 룰렛이 돌아가는 사이를 춤추듯 넘나들며, 결국 바라던 삶을 손에 넣게 되었죠.
이제 아시겠죠? 이건 단순히 "건드리는" 게 아니라, 반드시 "손에 넣어야 하는" 거예요.
전 운명이 요구한 대가를 한 번도 피한 적이 없어요. 완전히 쓰러지지 않는 한, 언제든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뜻이에요.
샴페인 잔의 마지막 한 방울까지 삼킨 릴리스는 눈앞의 음식을 모조리 먹어 치웠다. 그러나 갈증과 허기는 조금도 사라지지 않았다.
소파에 몸을 기댄 그녀는 두 다리를 꼬아 올리고, 한 손으로는 빈 잔을 내려놓으며 다른 손가락 끝으로는 긴 머리카락을 감아올렸다.
릴리스는 눈앞의 인간이 자신의 욕망을 채워주기를, 혹은 그 불타는 충동을 붙잡아 주기를 바랐다.
그레이 레이븐 님, 여기까지 온 이상 그 보물을 손에 넣지 못한다면, 라파엘에게 삼켜질 수밖에 없어요.
이건 처음부터 승자가 단 하나뿐인 제로섬 게임이에요.
그렇다면, 저와 함께 모든 걸 차지할 최후의 승자가 되어 보시겠어요?
은빛 눈동자가 반짝이며 강렬한 시선을 내뿜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결코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이었다.
하지만 그레이 레이븐은 "맘몬의 보물"에 대한 진실이 절대 단순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왜죠?
릴리스는 궁금한 듯 물었지만, 반박하지는 않았다. 대신 계속 말해보라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
흠, 그렇게까지 세세하게 따질 필요가 있을까요?
릴리스는 자신의 논리로는 눈앞의 인간을 설득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는지, 다른 각도로 다시 교묘하게 접근했다.
전 피의 맹세자님을 따르고 싶어요. 제힘을 보태드리고, 그 성과를 함께 공유하고 싶어요.
이 원칙만 지킨다면, 우린 여전히 협력 관계일 거예요.
릴리스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서자, 탁자 위 샴페인 병과 빈 잔이 바닥에 떨어졌다. 그녀는 인간의 손바닥을 자신의 가슴 위로 끌어당겼다. 악마의 몸으로 변한 그녀의 가슴은 여전히 뜨거웠지만, 생명의 떨림은 이미 영원히 사라지고 없었다.
탁...
바닥으로 떨어진 술병과 빈 잔이 굴러가다 부딪히는 소리가 방 안에 울려 퍼졌다.
제 충성심이 의심된다면, 언제든 계약을 끊고, 절 죽은 살덩어리로 돌려놓으시면 돼요.
존경하는 그레이 레이븐 님, 선택권은 항상 당신 손에 있어요.
그러면 되겠네요. 합의점을 찾아내서 다행이에요.
릴리스는 인간의 손목을 놓고 몇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녀의 눈동자에 깃들어 있던 강렬한 야망은 이내 사라지고, 협상을 통해 목적을 이루어낸 뒤의 만족감만 얼굴에 남아 있었다.
앞으로도 수많은 싸움이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오늘 밤 이후로는 서로에 대한 의심은 잠시 접어두고, 우리의 목표를 위해 함께 싸워봐요.
릴리스는 넓은 침대 위로 몸을 눕혔다. 벨벳 이불 속에서 흘러나온 목소리가 부드럽고 따스하게 울려 퍼졌다.
좋은 방을 힘들게 얻었는데, 제대로 쉬지 않으면... 하암, 너무 아깝잖아요.
갑자기 강한 공격성을 드러내다가도 금세 지친 고양이처럼 몸을 웅크리고 눕는 릴리스를 보며, 인간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예측이 안 되는 그녀의 행동을 받아들이는 것 말곤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협상을 통해 이 악마의 "식욕"을 잠시 억눌러 두는 데 성공했다. 그래서 릴리스도 피의 맹세자에게 다른 마음을 품지 않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인간은 이 악마와의 거래 게임을 계속 이어 나가야 했다.
그는 침대 반대편에 놓인 여분의 베개와 이불을 챙겨 들고, 푹신한 의자에 몸을 기댔다.
...
아무런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방 안에는 그녀의 고른 숨소리만 잔잔히 울려 퍼졌다.
인간은 고개를 저으며, 터무니없는 상상을 머릿속에서 떨쳐내고, 몸을 돌려 눈을 감았다.
무귀성 문 앞
다음 날 정오
다음 날 정오 무귀성 문 앞
마귀의 영토는 언제나 황폐하고, 인적조차 드문 곳이었다. 땅은 날카로운 이빨에 파헤쳐진 듯, 크고 작은 구덩이와 폐허로 가득했다.
릴리스는 월산을 지팡이 삼아 굽이진 진흙 길을 가볍게 건너며, 마치 폐허 위에서 춤을 추듯 우아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맘몬이 사라진 이후, 무귀성의 문은 오래전부터 지키는 이가 없었다. 그녀는 형식만 남은 일고여덟 개의 좁은 길목을 지나, 빈틈없이 닫힌 거대한 돌문 앞에 멈춰 섰다.
무귀성의 문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이 문 너머에는 잿빛 변방의 모든 이가 그토록 꿈꾸던 "맘몬의 보물창고"가 숨어 있죠. 연옥으로 향하는 여정의 시작이기도 하고요. 피의 맹세자님, 기적을 맞이할 준비 되셨나요?
릴리스는 두 팔을 크게 벌리며 장난기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어서 끝내, 에취! 진짜 못 참겠네. 몇 세기가 지났는데도, 이 마귀들의 취향은 여전히 끔찍해!
인간이 얼굴을 가리고 있던 망토를 벗어 내리자, 익숙한 피비린내가 코를 파고들었다. 마귀들의 방식은 천사들과 비교해도 결코 고상할 리 없었다.
이 몸이 악마긴 해도, 돈밖에 모르는 멍청이들과 한패일 리가 없지!
몰리간이 온몸의 털을 곤두세우며 크게 화를 냈다.
보세요, 피의 맹세자님. 이미 누군가가 답을 들고 왔잖아요…
비단 표면이 우산살과 함께 펼쳐지자, 월산이 공중에서 꽃처럼 피어났다. 붉은 마력의 물결이 우산 끝 구멍들을 따라 흘러내리며 땅 위에 복잡한 선들을 그려냈다.
그 붉은 선들의 끝은, 거대한 바위 뒤에서 모습을 드러낸 창백한 생명체들을 예리하게 지목하고 있었다.
크큭... 큭큭...
라파엘 부인이 진즉에, 저희를 맞이할 준비를 해둔 모양이네요.
그 성의를 저버리면 안 되겠죠?
릴리스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녀의 입꼬리는 죽음을 부르는 낫처럼 차갑게 휘어있었다.
칼날이 살을 가르자, 피가 탄창 속으로 스며들었다. 인간은 팔을 들어 조준선을 맞추고, 바닥에서 꿈틀거리는 흰 그림자를 겨눴다.
당연하죠. 피의 맹세자 님.
카드가 입술을 스치며 지나갔다. 릴리스는 모든 살의를 존경의 웃음 속에 감춘 채, 월산의 그림자 아래로 몸을 숨겼다.
명을 따르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