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층, 약화층, 무광층...
심연으로 떨어지는 현실감이 빛의 소멸과 함께 사라졌고, 진득한 허무가 감각을 조여와 질식할 것 같았다.
힘겹게 눈을 뜨고 있는 인간의 의식이 아케론 강에 잠식당하기 직전, 한 줄기 희미한 빛을 본 것 같았다.
와장창.
유리병 하나가 곧장 인간의 머리를 향해 날아와, 엄청난 파열음과 함께 극심한 통증이 전해졌다.
순간 따뜻한 피가 이마에서 흘러내렸다. 인간은 어지러움에 휘청거리며 넘어지다가, 그제야 주변 풍경이 어느 주점으로 바뀌어 있음을 깨달았다.
머리에서 오는 통증이 온몸의 신경을 괴롭히자, 인간은 자신이 경련을 일으키고 있다고 느꼈다. 몸은 제어를 잃었고, 정신은 이 세계와 멀어져 갔다. 그것은 술병에 맞은 것보다도 더 찢어지는 듯한 고통이었다.
누군가 머리맡에서 애타게 인간의 이름을 외치고 있는 것 같았다.
피...
피델! 하! 쌤통이다. 머리통이 깨져버렸네!
또 다른 목소리가 영혼을 강렬하게 파고들었다. 그 목소리는 종소리처럼 위엄이 가득하여 거부할 수 없는 위압감을 품고 있었다.
피델·마르티네즈!
"카론"이 여기 있는데, 뭘 더 발버둥 쳐? 넌 이미 죽었으니까, 시간 낭비하지 말고, 따라와.
붉은 머리 "카론"이 멍하니 있는 새로운 악마/인간>를 열차로 끌어 올려, 일반실로 단번에 던져 버렸다.
의자에 머리가 부딪친 순간, 새로운 악마/인간>는 이게 어떤 상황인지 그제야 어렴풋이 깨달은 것 같았다.
다음 순간, 인간의 의식이 다시 끌려가 버렸다.
마이크·드레이븐!!
아케론 강에 삼켜진 또 다른 이름이었다.
마이크라는 남자가 인간의 시야에 모습을 드러냈다. 온몸을 떨면서 두 팔을 높이 치켜든 남자는 먼지투성이 전장을 향해 절규하며 달려갔다.
츠루가 전장에서 목숨을 잃었다! 강철의 눈물이 또 하야부사를 죽였다! 강철 군단은 잿빛 땅을 지켜야 하거늘, 어찌 이 지경까지 몰락했단 말인가?
봉기는 아직 성공하지 못했는데, 우리 기병들이 성당에 발을 디디지도 못했는데, 한때 등을 맞대고 싸웠던 형제자매들에게 총구를 겨눠야 한다니!
통탄할 일이다!
그/인간>가 분개하며 울부짖고 있을 때, 강철의 눈물의 부하들이 전우들에게 총구를 겨누고 있는 광경을 목격했다.
안 돼.
그/인간>의 시선이 갑자기 앞으로 향하더니, 몇 차례 큰 총성이 울린 후 모든 것이 고요해졌다.
복부에 총알이 박히고, 통증이 오장육부를 뒤틀어놓자, 그/인간>는 땅바닥에서 괴로워하며 몸부림쳤다.
또다시, 죽음에 이를 만한 고통이 인간의 정신을 갈기갈기 찢어놓았다.
그 후의 "이야기"는 인간이 예상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카론"이 와서 이 새로운 영혼을 데려가, 지옥 열차에 태웠다.
지옥 열차가 막 아케론 강 위를 지나던 중, 마녀 하이타가 침투해 들어왔고, 천사 무리까지 불러들여 열차를 파괴했다. 그리고 열차의 절반이 강물 속으로 추락했다.
결국 모든 시점이 강물 속으로 되돌아갔다.
인간은 여전히 가라앉고 있었고, 조금 전 목격한 것은 아케론 강 속 「바위」들의 죽음이었다.
물속에는 시간이 존재하지 않았고, 수많은 죽음이 책장들처럼 겹겹이 쌓여 인간의 눈앞에서 동시에 펼쳐졌다. 수많은 이들의 고통이 한꺼번에 인간을 물어뜯었고, 온몸 곳곳의 고통이 아우성치면서 이 인간 역시 돌무더기 속 한 조각으로 만들려 했다.
이런 죽음은 세상에서 가장 고통스러우면서도, 소리칠 수 없는 것이었다.
강물 속에서 몸부림치는 인간은 진짜 영혼까지 토해낼 것만 같았다. 그리고 시야가 다시 흐려지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영혼의 고문이 시작되려 했다.
하지만 그때 붉은 그림자가 인간을 감싸안았다.
다시 눈을 떴을 때, 인간은 고통에 휩쓸릴 각오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스름하고 붉은 햇빛만이 속눈썹에 비칠 뿐이었다.
붉은 머리카락이 저녁의 따뜻한 바람에 눈앞으로 날려와, 코끝을 간지럽혔다.
멀지 않은 곳에서 분주하게 말안장을 조여 매고, 검을 닦으며 곧 다가올 전투를 준비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이때는 아직 새벽의 법칙이 존재하던 시절이라, 모두 시원한 가을밤을 즐길 수 있었다. 이런 미래도 곧 무너질 것이라는 사실을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
깃발을 들고 있던 17살 여자아이가 한숨을 내쉬며, 옆에 있던 깃발을 발로 툭 찼다. 그 깃발 위에는 신성한 기호가 그려져 있었다.
두 주인이 갑자기 보잘것없는 염전 하나를 두고 다투는데, 왜 하필 신의 깃발을 내세우는 거야?
듣자 하니 그 염전에 신의 기적이 나타났다고 하더라. 그래서 이번 행동은 신의 자애를 얻기 위한 것이라며, 신이 내일 전투를 지켜볼 거라고 했대.
옆에서 말하던 여의사가 옥수수빵 한 조각을 건넸다.
베라, 좀 더 먹어. 이거 좋은 거야.
신의 자애를 얻기 위해서? 그웬니스, 너 그 말을 믿는 건 아니지?
그들이 자신들의 탐욕과 위선을 솔직히 인정하고, 퍼즐 맞추듯 자기 영토를 조금씩 늘려가고 싶다고 말한다면... 그럼, 내가 그들을 좀 더 높게 쳐줬을 거야.
베라가 석양을 바라보며 옥수수빵 한 입을 악독하게 베어 물었다. 그 모습이 전장에서 적의 목을 물어뜯는 기세와 똑같았다.
이런 전쟁은 빌어먹을 악마들을 처치하는 것도 아니고, 사람들의 생존을 위한 것도 아니야. 나는 인정할 수 없어.
상부에서 나한테 차라리 저 밀밭이나 돌보라고 하거나, 곡간에 가서 옥수수나 빻으라고 시키는 게 이딴 웃기는 깃발 드는 것보다 백 배는 낫겠어.
베라, 경건하게 행동해. 경건한 자는 미래에 보상을 받을 거야. 내일 이 깃발을 들고 신을 위해 전투에 나서면, 분명...
하루 두 끼 먹을 때, 옥수수빵 한 조각씩 받겠지.
그웬니스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벌떡 일어선 베라는 자신의 칼을 챙겨 들고는 자리를 떴다.
됐어. 일단 배부터 채우자.
오로라는 어디 있어? 내가 찾아볼게. 걔 무기는 남의 거 주워 쓰는 거라 형편없거든. 내가 손봐줘야겠어. 내일 첫 전투에서 큰일 나면 안 되잖아.
그럴 리가.
쉬익.
베라가 들은 그웬니스의 마지막 말은 "그럴 리가."였다.
그 순간 그녀의 의식이 끊겼다. 화살이 공기를 가르며 날아오는 영원히 잊지 못할 소리가 귓가에 스쳤기 때문이었다.
그웬니스! 적의 습격이야.
!!!
으윽... 쿨럭!
그웬니스가 목을 거의 꿰뚫으려는 화살을 힘없이 움켜쥐고 있었다. 피가 폭포처럼 쏟아졌고, 그녀가 입을 열어도 뚫린 목구멍에서는 붉은 피만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그럴 리가.
그 우스운 염전을 둘러싼 전쟁이 하루 일찍 시작된 것이었다.
그 이후의 일들은 죽은 지 너무 오래되어서인지, 베라 자신도 뚜렷이 기억나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이 깃발을 던지고 칼을 휘둘러 적들을 벴다는 사실만은 기억하고 있었다.
오로라도 희생자가 되었다.
이 분쟁에서 모든 걸 잃은 베라는 혼란스러운 전장에서 포효하면서, 따스한 석양 아래 하나씩 목을 베어 나갔다.
그리고 피로 범벅이 되어 진흙탕이 된 밀밭에서 가슴을 관통당했다.
그때 붉게 물든 태양이 지평선 너머로 저물어가고 있었고, 끝까지 감지 않으려 했던 베라의 두 눈은 그 모습을 담아냈다.
그때 베라는 이런 생각을 했다.
(난 경건한 자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줄곧 성당과 영주의 명령에 따라 싸웠어.)
(지고천께서 나를 거두어 가실까?)
찬란한 빛이 시체가 된 그녀의 망막을 태워버리자, 그녀는 정말로 한 줄기 신성한 빛을 본 것 같았다.
(저기가 아름다운 저편일까?)
하지만 그 빛이 사라진 뒤에는 오직 열차의 굉음만이 울려 퍼지며, 금발의 여자가 담담한 표정으로 혼란스러운 전장을 한번 훑어보고 있었다. 그리고 위병대에게 영혼을 열차에 실으라고 명령했다.
그리고 베라는 또 어떤 큰 목소리를 들었다.
오. 죽은 자들이 또 왔군. 너희가 내 새 동료들이냐?
너희는 대체 무슨 일을 저질렀냐?
괴이한 조각들이 심연 속에서 녹아내리고, 인간이 "베라"에게 기대고 있던 시선은 다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어이, 일어나!
한 번, 두 번, 세 번.
망치질이 가슴 아래서 파도를 일으켰고, 그 힘으로 인해 양쪽 갈비뼈가 부서질 것 같았다.
이건 명령이야! 여기서 포기하는 건 너무 웃기잖아.
제발... 일어나!
목 끝에서 타는 듯한 감각이 솟아오르자, 인간은 입을 벌리고 토해냈다.
눈부신 불꽃 하나가 눈앞에서 일렁이며, 조금씩 맞은편의 윤곽을 비춰 드러냈다.
"죽음의 기사"였다.
동굴의 굽은 벽 아래서 그녀의 얼굴은 인간이 유일하게 분명히 볼 수 있는 것이었다.
드디어 깼네.
당연히 아니지. 너 혹시 환생했다고 생각하는 거야? 성당에 도착했다고? 천사가 됐다고?
이때 "죽음의 기사"는 옆에 비스듬히 앉아 있었다. 그리고 두 손은 여전히 인간의 가슴에 올려져 있었지만, 목소리는 조금도 부드러워지지 않았다.
한번 시험해 볼래?
네가 천사들처럼 물고 싶은 욕구가 생겼는지 확인해 보는 거야.
자, 내 목을 한 번 물어봐. 할 수 있겠어?
"죽음의 기사"는 웃으며 고개를 쳐들고, 인간에게 아무 거리낌 없이 목을 드러냈다.
허, 이빨 괜찮네. 정말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괴물인 척하는 거야?
아직 이런 잔머리 굴릴 여유가 있는 걸 보니, 완전히 정신을 잃지는 않았네.
좋아. 이제 그만하고 일어나.
인간은 일어나서 몸에 지닌 장비를 확인해 보았다. 다행히 강물에 휩쓸려 가지 않고,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었다.
물속 상황이 너무 복잡했어. 하지만 우리가 계속 서로를 붙잡고 있어서 다행이었어. 그렇지 않았다면 너를 여기까지 끌어낼 수 없었을 거야.
인간의 몸은 여전히 미세한 통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강물 속에서 보낸 시간은 찰나에 불과했지만, 타인의 죽음을 목격해야만 했었다.
그 맛은 좋지 않았지만, 마지막에 본 그 광경은 잊을 수 없었다.
"죽음의 기사"는 능숙한 손길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왕관 뒤로 넘기며, 놀란 기색 없이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
정상이야. 아케론 강이 죽은 물이 된 후, 다시 던져진 「바위」들이 신생을 맞이하지 못하고, 그 안에 갇혀 있거든.
강물이 그 「바위」들의 고통을 모두 흡수한 뒤, 그 고통이 물에 녹아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어. 그런데 네가 그 안에 들어가 버렸으니, 어쩔 수 없이 그 모든 걸 계속 "보게" 되는 거야.
...
인간이 자기 죽음까지 봤다는 걸 알게 된 베라가 순간 머뭇거렸다.
내 죽음은 수많은 이들과 같아. 특별할 것도 없이 평범해. 봐도 상관없어.
설마 내가 정말로 지고천에게 받아들여질 거라고 생각한 거야? 나는 신의 가호를 받은 귀족 같은 존재가 아니야. 그때 나이는 어렸지만, 손에 피를 많이 묻혔거든. 전투마다 최전선에 나가서 사람을 죽였으니까.
어쨌든 난 더러운 것들에 너무 많이 물들어 있었으니까, 열차 일반실에 실려 불타는 골짜기에 던져진 것도 놀랄 일은 아니었어.
게다가 불타는 골짜기가 내 눈에는 꽤 괜찮아 보였어. 아틀란티스가 거기에 있었거든.
아틀란티스의 악마들은 날 인간 세계로 돌려보내지 않았어. 그래서 그런 따분한 일상을 다시 느끼지 않아도 됐지. 이 뒤의 일은 오는 길에 얘기해서 너도 알 거고.
차갑던 말투가 서서히 누그러들더니 부드러워졌다.
맞아. 아케론 강 한 번 돌아보니까 진짜 짜증 나더라.
나도 너처럼 강 속에서 그들의 고통을 몸소 겪으면서 계속 곱씹어야 했거든.
성당이 그들에게 극형을 가해 강에 가둬놨는데, 그들의 원한은 결국 내가 떠안을 수밖에 없잖아.
마녀 하이타는 지금 잘못된 선택을 하고 있어. 그녀가 성당과 무슨 비밀 거래를 했든 간에, 나는 그걸 파헤쳐서 모두 불태워버릴 거야.
익숙한 불꽃이 기사의 눈동자 속에서 일렁였다. 그것은 확고한 신념의 증거였다.
"죽음의 기사"는 무기를 단단히 움켜쥐면서, 다시 전투에 나설 준비를 마쳤다.
먼저 주변 환경부터 살펴보자. 「바위」들이 강을 따라 하류로 가는 길을 알려줬거든. 그렇지 않았으면 이곳을 찾을 수 없었을 거야.
베라가 창끝을 높이 들자, 서로의 얼굴만 비추고 있던 불빛이 갑자기 폭발하면서 주변을 환히 밝혀 주었다. 심지어 어둠 속에 숨겨졌던 돔까지 드러났다.
천사 입에서 나는 괴상한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주변은 오랫동안 버려진 듯한 폐허처럼 보였다.
진홍색 이끼가 아치형 천장을 뒤덮고 있었고, 벽돌이 하나씩 쌓여 은밀한 공간을 이루고 있었다. 벽돌 틈새로 진흙이 천천히 스며 나오고 있었다.
그런 셈이지. 아케론 강은 연결 통로야. 다만 이렇게 사방으로 뻗어있을 줄은 몰랐어. 여긴 나도 알지 못했던 곳이야. 아틀란티스 바로 아래쪽에 있었네.
죽음의 군주가 각 악마 영주에게 영지와 마성을 하사해 줬는데, 역대 아틀란티스의 군주들은 모두 "카론"이라 불렸어. 지옥에서 가장 강력한 악마 영주라고는 하지만, 사실 두 세계를 잇는 다리 역할에 불과해.
내가 "카론" 자리를 물려받을 때는 상황이 너무 급해서, 아틀란티스의 비밀에 대해서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했어. 그래서 이렇게 아래에 거대한 공간이 있는 줄도 몰랐어.
하지만 마녀 하이타는 여기서 자랐으니까, 나보다 훨씬 많은 걸 알고 있었을 거야.
마녀 하이타가 혼돈의 문지기를 조종해서 천사들을 불러낼 수 있는 아케인 게이트를 열었고, 그 하얀 쓰레기들을 이용해 성을 지키게 하면서 내 앞에서 기세를 부렸지.
지금 마녀 하이타는 분명 우리가 문지기를 찾는 걸 원치 않을 테니, 어떻게든 문지기를 숨기려고 할 거야.
그럼, 혹시 여기에 숨겨놨을 가능성도 있겠다.
어? 무서워?
인간은 경계하며 무기를 점검했다. 먼저 벨트가 문제없는지 점검한 후, 혈탄이 어느 정도의 전투는 버틸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남아 있음을 확인했다.
마녀 하이타와 성당의 그 짐승들의 실력으로는 부족해.
내 부하 악마들은 인간들의 강철 군단도 무서워하지 않아. 게다가 지금 내 옆에는 이것저것 참견하기 좋아하는 피의 맹세자인 너까지 있잖아.
기사가 돌아보자, 복도의 어두운 불빛이 그녀의 뺨을 비추고 있었다.
얼굴에는 흥미로운 표정이 떠올랐고, 입가에는 언제든 싸울 준비가 되어 있는 피에 굶주린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잘 들어. 내 말이 끝나자마자, 더러운 것들이 죽으러 달려올 거야.
가시가 공기를 가르는 고주파 진동이 귓가를 스쳐 지나가면서, 옆에서 들리는 조롱하는 목소리를 덮어버렸다.
뼈마디가 선명한 창백한 다섯 손가락이 벽 뒤에서 갑자기 뻗어 나오더니, "죽음의 기사"가 서 있는 곳으로 덤벼들었다.
죽어라!
"죽음의 기사"는 장창을 들어 올리더니, 깔끔하게 참격을 가했다.
천사의 마른 나뭇가지 같은 팔다리가 절단되어 맥없이 땅으로 떨어졌다. 그러자 "죽음의 기사"가 창으로 그것을 튕겨 날려버렸다.
하, 정말 내 말이 맞았네. 하이타의 물건 숨기는 기술이 아직도 이렇게 서툴 줄이야. 어쨌든, 천사와 마주쳤다는 건 문지기가 가까이 있다는 뜻이니까.
베라의 판단을 증명하듯, 복도 모퉁이 너머는 어둠뿐이었지만,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낮은 포효는 천사 대군이 앞을 점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피의 맹세자, 이 이야기의 끝이 너무 시시하지 않았으면 해.
"죽음의 기사"가 하는 말은 항상 도발적이었지만, 인간은 그 속에서 신뢰를 느낄 수 있었다.
"죽음의 기사"는 무릎에 대고 쌍날 검을 분리했다. 그리고 인간과 시선을 교환한 뒤, 먼저 천사 무리 속으로 돌진했다.
기사는 곧 벌어질 혈전에서 기꺼이 동료에게 등을 맡겼다.
더러운 것들, 제 발로 찾아오다니. 아틀란티스에서 꺼져버려!
스읍!
어둠 속에 숨어 있던 천사가 꿈틀거리며, 귀를 찢는 포효로 베라의 선전포고에 응답했다.
약탈한다! 점유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