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ize=50>악마의 피가 흐르는 망할 지옥!</size></i>
온갖 풍파를 겪어온 지옥 열차가 다시 달리기 시작했고, 이는 천사들이 열차를 탈취해 성당이 사용한 지 수년 만의 일이었다. 열차는 지금 본래의 목적지인 지옥으로 향하고 있었다.
지옥 열차 조종실에 들어온 건 처음이지?
지옥 풍경은 일품이니까, 이번 "재방문"을 기회로 실컷 봐둬.
"죽음의 기사"는 다시 자기 자리에 앉아, 다리를 꼬고 창밖을 바라봤다.
지난번 기사 넷이 피의 맹세자 그레이 레이븐과 함께 열차를 탈취한 지 제법 시간이 흘렀다. 이제는 인간이 "지옥 문제 해결"이라는 약속을 지킬 차례였다.
열차 아래에 있는 게 바로 하얀 안개로 뒤덮인 아케론 강이야.
생사의 법칙이 무너지기 전까지 아케론 강은 삶과 죽음을 가르는 경계선이었어.
지옥에서 때가 된 악마들이 강물을 건너 왕생의 저편에 이르렀을 때 인간 세계로 돌아가 다시 살 수 있었거든.
하지만 죽음의 군주가 감금을 당한 이후, 아케론 강은 홀로 버려진 채, 완전히 멈춰버렸고, 그 안에 빠진 영혼들은 매 순간 강바닥 「바위」의 고통을 함께 느끼게 됐지.
그들은 결국 끝없는 고통 속에서 새로운 「바위」가 되어 가라앉게 됐어.
그래... 맞아.
당시 지고천에 맞서기 위해, 인간과 악마가 손을 잡고 성당을 공격했었어.
채찍 소리가 울린 후 말들이 뛰어오르더니 바퀴가 굉음을 내며, 마차가 질주했다. 정예병들이 앞다투어 나가며 칼과 창이 번뜩였다. 죽은 자들이 너무 많아 시체가 산더미를 이뤘다.
"죽음의 기사"는 눈을 감았고, 과거의 끔찍한 전투가 눈앞에서 다시 펼쳐지는 듯했다.
나중에 인간 세계는 영겁의 대낮이라는 벌을 받았어. 그리고 지옥은 생사의 법칙이 무너지게 됐고, 아케론 강도 죽은 물로 변해버렸어.
우리와 함께 전쟁에 참여했던 심복들은 죽음의 군주가 패배한 이후, 극형에 처해져 고인 물이 된 아케론 강에 던져졌고, 그 속의 「바위」가 됐지.
실수로 떨어진 불운한 놈들 말고도, 우리를 키워준 그 강물 안에는 우리의 뼈와 피가 섞여 있어. 아틀란티스의 전 악마의 영주도 그 안에 가라앉아 있지.
"죽음의 기사"는 다시 눈을 떴다.
"고향"이라...
어쩐지 그 단어를 들을 때마다 정말 낯설게 느껴져. 내가 인간 세계에서 겪었던 수많은 생애에서도 그런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아.
난 인간 세계의 전장에서 죽음을 맞이했는데, 참 어처구니없는 전쟁이었어. 듣기론 아무 농작물도 심을 수 없는 자그마한 염전 땅을 두고, 두 귀족 영주가 서로 싸우다가 결국 전쟁까지 벌이게 된 거라 하더라고.
그해 난 불과 17살의 어린 군인이었지만, 전선에 나가기로 결심했어.
"죽음의 기사"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을 이었다.
보다시피 얼마 지나지 않아 난 지옥에 오게 됐지.
지옥이 인간 세계보다 훨씬 좋더라고, 적어도 전임 아틀란티스 영주가 있을 때는 그랬거든.
그녀는 인간 세계로 돌아가는 걸 거부한 악마들을 받아들여, 불타는 골짜기에 주둔시켰고, 풀려나서는 안 될 악마들을 진압하면서 아케론 강을 관리했어.
그녀는 착하고 냉정했지, 인간 세계에서 찬양받는 여러 미덕을 가진 존재라고 볼 수 있지, 그런 그녀가 날 받아줬어.
하지만 그녀는 광기에 사로잡혀 어리석게도 죽음의 군주와 함께 인간들을 도와 성당을 배신했고, 30년 전 성당 토벌 전투에 참전해 추기경을 죽였어.
그녀는 떠도는 영혼들에 안식처를 마련해주기도 했지만, 그녀를 따르려던 영혼들은 벌을 받아 아케론 강에 던져져 「바위」가 되게 하기도 했어.
결국... 그녀가 아틀란티스의 영주 자리를 나에게 넘겨주었고, 난 "카론"의 직책을 맡게 되었어.
이 모든 건 다 그녀 때문이라 할 수 있지, 난 그녀가 저지른 모든 일들을 인정할 수 없었어. 그럼에도 그녀의 손가락뼈를 삼키고 모든 걸 계승했지.
함부로 평가하기 어려우면 입을 열지 않는 게 좋아. 지금까지 그녀를 심판할 자격이 있는 자는 아무도 없었으니까.
잡담은 여기까지, 곧 아틀란티스에 도착할 거야.
그녀의 시선을 따라 아래를 내려다보니, 웅장한 건물이 불타는 골짜기 바닥에 자리하고 있었다.
기사가 어찌 성당의 권능을 손에 넣은 적과 맞설 수 있으랴? 마녀가 마성의 한가운데 서 있고, 아틀란티스는 천사들의 수호 아래 견고하기 그지없도다.
아케론의 물줄기가 그녀의 해자를 이루고, 또한 그녀의 성벽을 이루도다.
하하, 겁쟁이가 따로 없네! 그 녀석이 아틀란티스를 이렇게 위축된 모습으로 만들었다니.
"죽음의 기사"가 전장을 내려다보며 훑은 뒤, 승리를 확신하는 미소를 지었다.
열차를 타고 온 복수자가 아케론 강을 건너, 잿빛 변방 아래의 지옥에 도착했다.
그레이 레이븐, 지금 돌아가도 늦지 않아.
우리 계약에 지옥 분쟁 해결이 포함되어 있긴 하지만, 얼마 전 함께 열차를 되찾은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만족해. 나 혼자서도 충분히 할 수 있으니, 네가 굳이 지옥에 휘말릴 필요가 없다는 말이야.
악마가 인간의 살가죽을 벗기고 뼈를 발라낸다는 얘기 들어봤지? 이제 네가 겪게 될 일은 그런 전설보다도 백배, 천배 더 끔찍할 수도 있어.
용기 하나만큼은 인정할게. 피의 맹세자.
대장과 함께 열차까지 훔쳤으면서, 아직도 대장의 천사 잡는 실력을 못 믿는 거야?
확실히 말해두지, 난 널 엄호할 여유는 있지만, 저 죽은 새는 제외야.
어이! 내가 이래 봬도...
까마귀가 불안하게 양 날개를 퍼덕이며 항의하고 있을 무렵, "죽음의 기사"는 장창을 들어 불타는 골짜기 중앙을 가리켰다.
오? 병사들이 벌써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은데.
장창이 가리킨 곳에는 불타는 골짜기 안의 악마 군대가 있었다. 대형은 온전하지 않았고, 여러 차례의 전투로 큰 피해를 본 것 같았다.
그때 내가 아틀란티스를 지키라고 명령한 이후 지금까지 계속 버텨온 건가?
역설적으로, 이 용서받을 수 없을 만큼 사악한 악마들에게는 마성을 점령한 천사야말로 악행의 극치에 달한 침략자였다.
아케론 강 아래 산골짜기 사이에서는 악마들이 오히려 집을 지키는 전사가 된 것이다.
알고 있어, 그들이 잘 버텨왔다는 거.
저기 군기 들고 있는 분대장 보여?
죽었다가 살아난 기사? 듣기에는 감동적인데, 좀 진부하지 않나?
됐다, 진부하든 말든 상관없어. 어차피 이 세상은 끝까지 살아남은 자만이 이야기를 쓸 자격이 있으니까.
준비됐나? 이젠 전쟁에 뛰어들 차례야.
인간이 열차 조종실의 문을 열어젖히자 삐걱하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문 앞에 서 있으면서 자신의 결심을 보여줬다.
광풍과 짙은 안개가 인간의 머리카락을 휘날리게 했다. 인간은 불타는 눈빛으로 기사가 따라오기를 기다렸다.
남의 일에 끼어들면서 영웅인 척하는 건, 역시 인간답네.
그렇다면, 시간 낭비할 필요 없지.
"죽음의 기사"가 손을 내밀며, 피의 맹세자와 함께 열차에서 뛰어내렸다.
가자, 피의 맹세자!
불타는 골짜기 깊숙한 곳에서, 오랜 세월 풍파를 겪은 그 대군은 마성을 향해 새로운 돌격을 감행하려 하고 있었다.
기사의 충성스러운 부하는 다가올 변화를 알지 못한 채, 그저 끝없는 살육의 윤회 속에서 변함없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나와 함께 돌격할 배짱 없는 자들은 지금 돌아가라!
불타는 골짜기를 넘어갈 수 있는 좋은 말과 금화를 주겠다!
그런 겁쟁이들과는 협력 작전을 하지 않겠다. 성당의 개들을 두려워하다니!
마성에 혈제를 바치고, 대군님께 해골을 진상하라!
죽음의 절대 권위를 위하여!
전사들의 포효가 합쳐진 피의 레퀴엠이 불타는 골짜기 상공에 울려 퍼졌다.
죽여라!!!
뜨거운 바람이 썩은 시체의 냄새를 싣고 맞바람으로 다가왔다. 그것은 죽음의 냄새이자, 지옥의 공기와 양분이었다.
전사들은 승패 따위는 잊은 지 오래였고, 성당은 그저 피가 강을 이루는 모습을 구경하고 싶어 할 뿐이었다.
그리고 대열의 반대편에서는 누군가가 잊힌 언어로 무서운 말을 날카롭게 외쳐대고 있었다.
대체 왜... 아틀란티스를 분명히 되찾았는데, 너희에게 지금까지 시달려야 하는 거야? 모든 게 내 것인데...
문지기, 그들을 죽여!
모조리 태워버려!!
눈 부신 번개가 마녀의 조종 아래 전장을 가로질렀다. 그러자 아케인 게이트가 늑대 발톱에 의해 찢어져 열렸다.
추악한 하얀 천사들이 그 안에서 기어 나왔다. 멀리서 보면 마치 메뚜기알 같았다.
기어 나올 용기가 있다면, 그날이 바로 너희들의 제삿날이다!
죽여라!!
인간과 "죽음의 기사"가 불타는 골짜기 가장자리에서 뛰어내렸다. 마성의 윤곽이 점점 더 선명해지자, 멀리 산등성이 위의 핏빛 구름층까지 보였다.
아틀란티스의 첨탑은 창공 위에서 흐르는 아케론 강을 가리키고 있어서, 인간 세계를 찌르려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아틀란티스 아래쪽에서는 악마 대군과 천사들의 하얀 물결이 서로 뒤엉켜 있는 모습이 보였다.
전사들이여, 약탈하라! 이 전장을 약탈하라!
철과 피로 뒤덮인 대지 위로 하늘에서 우렁찬 외침이 울려 퍼졌다. 그 외침과 함께 까마귀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
악마 장군은 믿기 어렵다는 듯, 고개를 들었다. 붉은 그림자가 허공을 가르며 착지한 후, 양날의 창을 짚고 천천히 일어서는 것이 보였다.
나다! 마성 부대여, 나와 함께 적진을 돌파하자!
하! 이 못난 놈들에게 우리의 실력을 보여주자!
쟁쟁하고 힘찬 목소리가 산골짜기 사이에 울려 퍼지며, 새벽의 도래를 예고했다.
"죽음의 기사"의 외침은 천사들의 주의를 끌었고, 추악한 하얀 천사 하나가 소리가 난 곳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리고 불타는 골짜기에 "죽음의 기사"와 같이 나타난 인간도 즉시 행동했다.
피가 주입된 총알이 총구에서 발사되자마자 사방으로 퍼지는 치명적인 파편으로 변한 뒤, 걸어 다니는 고깃덩어리 같은 천사들을 한 발 한 발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기사는 양날의 창을 휘둘렀고, 타오르는 칼날은 하얀 껍데기를 재료로 삼아, 살육하는 가운데 눈부신 깃발을 만들어냈다.
그 모습은 마치 고대의 신이나 성당이 천지 창조를 했던 때의 사자처럼 보였다.
기사는 무기를 높이 들었다. 그리고 칼날의 끝으로 적진을 가리키며 높고 우렁찬 함성을 터뜨렸다. 그 소리는 어떤 악마의 포효보다도 더욱 선명하고 또렷했다.
"죽음의 기사"와 피의 맹세자가 전장에 합류했다! 너희들은 혼자 싸우는 것이 아니다!
마성이 천 년을 버텨낼 수 있다면, 성당은 반드시 이 말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지옥에 감히 맞서는 짐승들에게는 죽어서 매장될 곳조차 없는 결말뿐이다!
전사들이여! 장창을 휘둘러 방패를 찢어라.
아틀란티스의 성문을 향해 진격하라!!!
아케론 강 위의 "카론", 불멸의 악마 영주, 지금은 "죽음의 기사"가 된
그녀가 돌아왔다.
그녀는 불의 깃발과 날카로운 함성으로 마왕의 복음을 전했다.
어라! 돌아오지 못할 줄 알았는데!
그래도 좋은 구경은 놓치지 않아서 다행이야! 이 환영식, 꽤 스릴 넘치지 않아?!
충성스러운 부하가 강철 팔을 휘두르더니, 달려드는 천사를 한 방에 관통시켰다.
영주님이시다!
영주님께서 돌아오셨다!!
죽여라. 죽여라! 마성을 되찾자!!!
흑철갑옷이 참혹한 백색 파도 속에서 한 줄기 통로를 뚫고 나왔다. 악마 전사들이 천둥 같은 발걸음으로 인간 세계에서 돌아온 군주를 바짝 뒤따랐다.
그리고 "죽음의 기사"는 항상 그들보다 한발 앞서서 마성 성문 방향으로 향했다.
어서 말에 올라타! 피의 맹세자, 바짝 따라와야 돼!
인간이 말 위로 올라타자, 말발굽이 천사 시체를 짓밟는 쾌감이 온몸에 전해지는 듯했다.
마성에 혈제를 바치고, 대군님께 해골을 진상하라!!!
악마! 죽여라! 죽여!!
학살하라!!!
오랫동안 들리지 않았던 환희의 포효 소리가 해안을 치는 파도처럼 시체의 산과 피바다 사이에서 요동쳤다.
천사들도 선두에 선 불꽃을 힐끗 봤다.
"카론"?
으아아아아!
양날의 창이 정확하게 하얀 천사를 찔렀다. 천사는 기사의 얼굴을 확인할 틈도 없이 더러운 물로 변하고 말았다.
성당의 개 주제에 감히 내 이름을 불러?
천사 대군이 비명을 지르자, 공포가 마성의 외곽 방어선을 뒤덮었다.
깊이 고무된 악마 전사들은 목청껏 외쳤다. 그들은 살육을 벌이면서 한편으로는 함성을 지르며 전진했다. 그리고 승기를 탄 추격의 환호성은 굳게 닫힌 성문까지 몰아쳤다.
방심하지 마라. 내가 알고 있는...
그 마녀가 직접 나설 거다.
"죽음의 기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유황비가 비스듬히 쏟아졌다.
혼란스러운 최전선 끝에 물고기 꼬리를 가진 신비로운 여인이 성문 앞에 우뚝 서 있었다.
...
마녀 하이타는 하늘을 향해 살짝 고개를 들고는 불의 비가 얼굴에 내리치는 것을 그대로 두었다.
마녀 하이타.
자조, 분노, 인내, 원한 그리고 수년간 억눌렀던 과거의 기억들이 한순간 "죽음의 기사"의 뇌리에서 무너져 내렸다.
"죽음의 기사"는 열차에서의 기습과 성당에서 훔쳐낸 그 알을 떠올렸다.
아틀란티스의 수많은 밤들, 권력 다툼으로 떠나간 선배들
그리고 수많은 우여곡절과 그녀의 손으로 마무리했던 반복되는 결말들을 떠올렸다.
나 왔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