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귓가에 풍령 소리 같은 선율이 들려왔다.
음악은 실처럼 흐르며 금빛으로 짜여, 산산조각 난 꿈속을 꿰매듯 스며들었고, 의식을 이끌어 깊은 잠에서 현실로 끄집어냈다.
까악!
무슨 꿈 꿨어?! 빨리 적어! 어서, 어서!
까먹으면 네티아가 또 나한테 화낼 거라고! 이 고귀하고 멋진 내 깃털, 그 손에 뽑힐까 무섭단 말이지!
바람이 휘몰아치고, 모래 먼지 소리가 사방을 감쌌다. 흐릿한 시야 속, 검은 큰 까마귀 한 마리가 어깨 위에 내려앉아 쉴 새 없이 지저귀고 있었다.
알겠어, 대장.
머리 위로 거센 바람이 불자, 천막이 찢어지는 듯한 소리가 났다. 그는 거대한 바위 그늘 아래에 몸을 뉜 채 잠시 눈을 붙이고 있었고, 눈앞엔 폐허가 된 캠프가 뜨거운 햇살 아래서 아지랑이처럼 뒤틀리고 있었다.
미안. 나 때문에 깼지?
익숙한 모습이 마른풀과 부서진 자갈을 밟으며 다가왔다. 그림자는 조용히 바위 그늘로 들어와 그의 곁에 쭈그려 앉았다.
근처에 딱히 쓸만한 게 없어서, 내 망토로 덮었어.
와타나베는 눈짓으로, 몸 위에 덮여 있는 붉은 천을 가리켰다.
그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작은 미소로 답했다.
인간은 진짜 신기해. 꿈꾸면 몸이 차가워지다니, 나도 한번 느껴보고 싶어!
조금 전부터 궁금했는데, 이 까마귀는 뭐야?
내 이름은 몰리간! 큰 까마귀라고! 그냥 까마귀 따위랑은 달라!
알았어. 대장.
마법 펫?
더 이상 자세한 설명이 없자, 와타나베도 눈치껏 더 묻지 않았다.
수에 마을까지는 말을 타고 반나절 걸려. 운이 좋으면 중간에서 강철 군단을 따라잡을 수 있을 거야.
와타나베는 인간 옆 빈자리에 앉아, 강철로 된 왼손을 천천히 펼쳤다.
손바닥엔 섬세한 금색 회중시계 하나가 놓여 있었다. 표면의 정교한 문양은, 도저히 재앙의 시대에 만들어진 것이라 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이건 아버지 유품이야.
와타나베가 금색 회중시계를 열자 딸깍 소리와 함께 주둔지에 익숙하고도 아름다운 선율이 흘러나왔다.
뚜껑 안쪽에는 오래된 흑백 전장 사진이 붙어 있었다. 왼편엔 한 여성이, 중앙엔 와타나베를 닮은 남자가, 그리고 오른편엔 더 건장한 체격의 사내가 굳은 표정으로 서 있었다. 그 눈빛은 날카롭고도 단단했다.
왼쪽은 어머니, 츠루. 오른쪽은...
강철 군단의 전 부통솔자 강철의 눈물.
와타나베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무거운 목소리로 원수의 이름을 읊었다.
하야부사와 츠루, 그러니까 내 부모님은 그와 함께 "잿불삼걸"이라 불렸어. 재앙 이전, 셋이 함께 강철 군단을 이끌고 혼돈의 균열에서 튀어나온 악마들을 상대했지.
재앙이 시작된 후, 인간의 적은 지옥이 아니라 성당이 됐어. 그보다 더 잔혹하고 피에 굶주린 천사들과 싸우면서도 강철 군단은 끝까지 인간 세계를 지키겠다는 신념을 저버리지 않았지.
...그리고 내 어머니도, 그 신념을 지키다 전사하셨어.
와타나베는 잠시 말을 멈추고, 얇은 유리 너머로 군단이 번영했던 그 시절이 담긴 사진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한때 혼자 지옥에 뛰어들었던 강철의 눈물은, 어느 한 잔혹한 전투에서 대천사의 지배를 받게 됐고, 지금은 성당의 권속으로 전락해 군단 내부에 숨어 있어.
그리고 그다음은 내가 전에 얘기했던 대로야.
계약은 인간의 영혼에 새겨진 저주야. 그건 숙주 내면의 어떤 욕망을 끌어내 결국 그 인간과 완전히 융합하게 돼. 우리 사이의 피의 맹세처럼 말이야.
성당에게 조종당하고 있다기보단, 천사의 낙인이 강철의 눈물의 양심을 삼켜버렸어. 지금은 그 낙인이 그의 뼈와 피까지 파고든 상태야.
그를 죽이지 않는 이상, 성당과의 연결 고리를 끊는 건 불가능해. 그리고 그는 계속해서 천사를 도와 악행을 저지를 거야.
그건 와타나베가 수많은 기록을 뒤지고, 직접 강철의 눈물과 싸운 끝에 내린 결론이었다.
난 반드시, 내 손으로 그 계약을 끊을 거야. 아버지를 위해서, 그리고 악마와 천사 앞에서 쓰러져간 무수한 전우들과 동료들을 위해서라도.
이건 자유가 억압에 맞서는 전쟁이야. 우리 선조들이 피로 세운 깃발과 검을, 이대로 꺾이게 둘 순 없어.
기사는 붉은 하늘을 바라보며, 영원한 태양을 손에 움켜쥐려고 손을 뻗었다.
지금의 와타나베는 성당의 권속과 대적할 만큼의 악마의 힘을 얻은 상태였다.
그럼, 피의 맹세자 넌? 왜 이 전쟁에 뛰어든 거지?
고개를 돌린 와타나베가 흥미롭다는 얼굴로 인간에게 물었다.
그래. 이제야 네가 왜 그 이름을 택했는지 이해가 되네.
네 별명 말이야. "그레이 레이븐."
강철 군단의 초대 통솔자이자, 재난 이전 시대의 인간 영웅—"그레이 레이븐."
이상했다. 그건 인간이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전설이었다.
?
그 말을 들은 와타나베는 좀처럼 보기 힘든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럼, 강철 군단의 칭호처럼 누군가에게서 물려받은 게 아니라는 뜻이네.
… 이상하네, 그렇단 말이지.
그보다 더 이전엔? 어떻게 그 힘을 얻게 된 거야?
제발...
인간은 기억의 더 깊은 곳을 애써 되짚어가며, 부서진 조각들에서 조금씩 답을 찾아보려고 애썼다.
… 이게 바로 피의 맹세자가 되는 대가야.
...
하지만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봐도 돌아오는 건 허무한 공백뿐이었다.
과거의 모든 기억은 안개 속에 묻혀 있었고, 남아 있는 건 성당에 대한 증오였다. 그 분노가 자신을 계속 앞으로 이끌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이 망각 자체가, 자신이 치르고 있는 대가일지도 모른다.
저 "동료"와 관련된 건 아닐까?
와타나베는 그렇게 말하며, 인간 어깨에 앉아 있는 기계 까마귀를 쳐다보았다.
전에 지옥 열차를 탈취할 때, 인간은 대천사에게 중상을 입어 죽을 뻔했다. 하지만 그때, 네티아가 적시에 나타나 위기에서 구해주었다.
사실 그보다 훨씬 전부터 그녀는 곁에 있었고, 함께 전략을 짜며 성당을 무너뜨릴 계획을 도왔다.
조각난 기억 속에 그녀와 관련된 장면은 많지 않지만, 어느 관점에서 보더라도, 지금의 그녀는 믿을 수 있는 동료였다.
네 과거엔 아직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가 많은 같네.
두 사람은 말없이, 세찬 바람이 휩쓰는 황량한 대지 속에 가만히 머물렀다.
아버지께서 내게 하신 말씀이 있어. 앞으로 나아갈 길이 클수록, 더 자주 뒤를 돌아보라고, 그러지 않으면 끝을 향해 달리다 결국 자신을 잃게 된다고.
네가 선택한 길에 내가 왈가왈부할 자격은 없지만, 언젠가 네가 필요로 한다면, 기꺼이 너의 뒤에 서서 너에게 방향을 알려줄게.
와타나베는 고개를 돌려, 인간의 어깨에 손을 살며시 얹었다.
군단의 병사는... 절대 은인을 외면하지 않아.
대장! 긴급상황! 긴급상황이야!
인간의 어깨에 앉아 있던 기계 까마귀가 갑자기 목청을 돋우며 소리쳤다.
천사야!
천사의 순례자가 왔어!
두 마리의 갈색 준마가 마차를 끌며 황폐한 계곡을 전속력으로 달리고 있었다.
이랴! 이랴!
마차 뒤편에서는 땅이 울리는 듯한 굉음이 터져 나왔고, 그 천둥 같은 소리는 말발굽과 바퀴의 자갈을 밟는 소리까지 삼켜버렸다.
학살이다!!
눈알, 손가락, 머리카락 전부 찢어버려라!!!
창백한 피부의 거대한 생명체들이 마차가 일으킨 먼지를 따라가고 있었다. 그들은 손발을 써서 빠르게 움직이며, 점점 사냥감과의 거리를 좁혀갔다.
안 돼! 곧 따라잡히겠어!!
설마 마을도 "표적"이 된 건가?! 어떻게 이 많은 천사가 나타날 수 있지?
으... 아아아!
흐느끼는 소리가 마부의 뒤에서 간간이 들려왔다.
이... 이제 겨우 8개월인데...
저, 저기요! 혹시 마차를 조금만 조심히 몰아주실 수 없을까요? 아기... 아기가 곧 나올 것 같아요!
조금만 더 버텨요! 곧 수에 마을에 도착해요!
가파른 경사길을 내려가자, 덜컹거리는 충격에 마차 전체가 심하게 흔들렸다.
으아악!!
죽어!!! 썩어버려!!!!
사냥감의 비명에 더욱 흥분한 순례자들은 소름 끼치는 괴성을 질렀고, 그 메아리는 협곡 전체를 뒤덮었다.
어떡하지?!
마부는 자신의 옆에 놓인 총을 힐끗 바라봤다. 나무 개머리판에는 두 개의 머리를 가진 독수리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와타나베 님이었다면...
마부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총을 단단히 움켜쥔 뒤, 마차 안쪽을 향해 외쳤다.
말고삐 좀 잡아주세요! 제가...
까악!!
몰리간의 날카로운 울음이 협곡을 가르며 울려 퍼졌고, 마부의 외침은 그 소리에 묻혀 끊기고 말았다.
쾅!
마차가 산골짜기를 빠져나온 순간, 뒤편에서 거대한 폭발음이 터져 나왔다.
산 전체가 흔들릴 정도의 진동과 함께, 양쪽 산비탈에서 바위들이 눈사태처럼 굴러떨어져, 마차 뒤의 길을 순식간에 차단해 버렸다.
뭐야?!
멍하니 뒤를 돌아보던 마부는 무너진 산길을 보고, 손에 들고 있던 총을 천천히 내려놓았다.
쳇. 어쩔 수 없어. 우선 마을로 돌아가야 해!
이랴!
끄아악?!
꾸엑!!!
맨 앞에서 달리던 순례자가 급하게 멈춰 섰지만, 뒤따르던 무리의 천사가 그를 밀치며 그대로 바위에 처박혔다. 강한 충격에 피가 튀었고, 순례자의 온몸은 산산조각 나며 끝내 죽음을 맞이했다.
매복이다! 철수하라! 철...
쾅!
천사의 대군이 혼란에 빠진 그 순간, 뒤에서 또 한 번의 굉음이 울려 퍼지며, 천둥 같은 소리가 텅 빈 계곡에 메아리쳤다.
저 멀리 하늘을 뒤덮은 먼지 사이로, 작고 희미한 실루엣 하나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
한 놈뿐이다!!
죽여라! 죽여!
순백의 거인들이 순식간에 진형을 정비하고, 계곡 반대편에 선
마치 굶주린 늑대 떼가 홀로 남은 새끼 양을 향해 달려들 듯, 순례자들은 일제히 내달리며 발아래 자갈들을 가루로 으깨는 굉음을 냈다.
사냥감과의 거리가 100미터도 채 남지 않았을 무렵, 계곡을 덮고 있던 짙은 연기가 걷히기 시작했다.
연기가 사라지자, 수십 정의 총이 모습을 드러내며 붉은색 금속광택이 눈부시게 반짝였다.
천사들...
살짝 고개를 든 와타나베는 손에 쥔 날카로운 검을 들어, 달려오는 적들을 가리켰다.
전쟁을…
맞이할 준비는 됐겠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