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ze=55><i>"전쟁이 필요한 자들에게 전쟁은 정의가 되고,</i></size>
<size=55><i>모든 희망을 잃은 자들에게 전쟁은 정당한 선택이 된다."</i></size>
타오르는 태양이 하늘을 가르며, 끝없는 사막을 황금빛 호수처럼 달구고 있었다.
거센 바람은 날선 칼날처럼 황사를 가르며, 황량한 벌판에 평평한 자국을 그어냈다.
모래바람이 잦아든 벌판 위로, 두 개의 실루엣이 점차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앞뒤로 서서 작열하는 태양 옆에 선 채, 시위를 당긴 화살처럼 팽팽히 대치하고 있었다.
회중시계 소리가 멈추면, 쏜다.
단정한 군복을 입은 남자가 왼손으로 회중시계를 꺼내 조용히 눌렀다.
찰칵 소리와 함께 맑고 잔잔한 선율이 흘러나와, 오아시스의 실개천처럼 고요하게, 이 불모의 대지 위로 번져나갔다.
...
군복을 입은 남성 맞은편에는 건장한 체격에 회색 머리를 가진 남성이 서 있었다.
끝났다고 생각하지 마라, 강철의 눈물. 넌 아직 내게 대답해야 할 이유가 하나 남아있다.
그는 감정을 억누른 채, 오른손으로 가죽 권총집을 쓰다듬으며 풍령처럼 맴도는 멜로디에 귀를 기울였다.
내가 왜 성당에 귀의했는지 묻는 건가?
아니. 왜 내 아버지를 배신했는지.
...
천천히 흐르는 선율 속, 두 사람의 시선이 정면에서 부딪쳤다.
난 네게 강철 군단 쌍두 독수리의 깃발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가르쳤었다.
서풍의 독수리는 힘을, 동풍의 독수리는 지혜를 상징하지.
그래. 그리고 그 둘 모두를 갖춘 자만이 깃발을 짊어질 자격이 있다. 신은 서풍의 길만을 좇았지. 그의 좁은 시야는, 강철 군단이 세대를 거쳐 지켜온 명예를 스스로 무너뜨릴 거야.
명예라고? 지금의 군단은 성당과 결탁해 죄 없는 자들을 학살하고 있어. 그딴 게 무슨 명예야?
강철의 눈물은 조소를 흘렸다.
살아있는 자만이 명예를 누릴 자격이 있어. 그게 나와 신의 차이다.
신의 어리석음은 군단을 파멸로 이끌 테지만, 나는 군단을 올바른 길로 이끌 수 있다. 성당의 심판이 닥치더라도, 우리의 독수리 깃발은 꺾이지 않는다.
끝까지 정신을 못 차리는군… 개처럼 명령에만 충실한 독수리 따위!
그 순간, 회중시계의 선율이 뚝 멈췄다.
이를 눈치챈 와타나베는 망토를 휘날리며 오른쪽 허리에 찬 리볼버를 재빠르게 뽑았다.
펑!
뜨거운 총알이 날아가며, 날카롭고 우렁찬 총성이 울려 퍼졌다.
총알은 살을 찢고 뼈를 태우며 피를 사방으로 흩뿌렸다.
크흑...!
피를 토한 와타나베는 총을 놓치며, 무릎을 꿇었다.
한발 늦게 총을 뽑았던 강철의 눈물이 오히려 와타나베보다 먼저 방아쇠를 당겼다.
전사의 직감이 신참의 무모함보다 훨씬 믿을 만하지. 이게 내가 너에게 가르치는 마지막 수업이다.
이것은 강철이라는 이름의 통솔자가 수많은 전장을 거치며 몸에 새긴 본능이었다.
안타깝게도 전투 기술 쪽으론, 너는 신의 재능을 물려받지 못했구나.
닥쳐.
뼛속까지 파고드는 극심한 통증을 억누르며, 와타나베는 무기를 꽉 움켜쥐었다. 비틀거리며 간신히 몸을 일으킨 그는, 원수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넌... 그 이름을 입에 담을 자격이 없어.
거센 바람이 다시금 날카로운 모래 먼지를 일으키며, 피로 젖은 땅 위를 스쳐 지나갔다.
나는 단지 강철 군단을 지키기 위해 모든 걸 해왔을 뿐이다.
날리는 모래와 자갈 속, 비틀거리며 다가오는 와타나베를 바라보던 강철의 눈물은 차가운 눈빛으로 군용 칼을 들어 올렸다.
배신자... 이 배신자!!
날 원망하지 마라. 와타나베—
빛나는 칼날이 위에서 아래로 사막의 장막을 가르며, 그대로 와타나베의 왼팔을 잘라냈다.
피가 분수처럼 솟구쳐, 두 사람의 옷깃을 순식간에 붉게 물들였다.
세상이 어두워지고, 무게를 가진 듯한 침묵이 와타나베의 시야를 짓누르며 마지막 힘까지 빼앗았다.
윽...
복수를 꿈꾸던 자는 그렇게 타오르는 대지 위에 맥없이 쓰러졌다.
...
어슴푸레한 의식 속에서, 와타나베는 다시 그 산산조각 난 교차로로 되돌아왔다.
여긴...?
그는 하얀 텐트 앞에 서 있었다. 수많은 희미한 그림자들이 그의 곁을 지나쳐갔지만, 얼굴은 알아볼 수 없었다.
와타나베는 텐트 안에서 들려오는 다투는 소리를 따라, 하얀 커튼을 조용히 걷어 올렸다.
성당의 명령까지 30분도 안 남았어. 더는 망설일 여유 없어, 하야부사.
...
강철 군단은 잿빛 변방에서 천재지변과 악마를 막아내는 장벽이야. 군단이 이 땅의 백성들에게 총구를 겨눈다는 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침묵이 곧 내 대답이야. 강철 군단은 성당과 협력하지 않는다. 백성을 학살하는 일에 절대 동조할 수 없어.
성당을 거부한 사람이 너 하나만 있었던 게 아니야. 천사는 우리 모두를 죽일 거라고.
아니. 우리가 먼저 성당을 공격할 거야.
천천히 고개를 든 은발의 남자가 마지막 결정을 내렸다.
또 애송이처럼 덤비다가 죽으려고? 인간은 천사의 상대가 못 돼. 그동안 수도 없이 맞서봤지만, 결과는 언제나 같았어.
천사가 단 한 번 노려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그대로 얼어붙어 도륙당해.
의지가 강한 자는 천사의 정신 지배를 이겨낼 수 있어. 넌 이미 그걸 증명했잖아, 밸러드.
신, 척탄병 중대 전원 113명 중, 살아서 돌아온 건 나 하나뿐이었어!
강철의 눈물이 하야부사에게 달려들며 옷깃을 꽉 움켜잡았다.
왜 그런지 알아? 내 의지가 굳건해서? 아니. "그분"께서, "대천사"께서 일부러 살려둔 거야—너한테 전하라고!
그 당시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넌 모를 거야. 눈 깜짝할 사이에 형제들의 가슴이 전부 번개의 창에 꿰뚫려 버렸다고!
우리에겐 신을 죽일 수 있는 "성환은탄"이 있어. 아무리 신통한 "대천사"라도, 승산이 없는 건 아니야.
하야부사는 강철의 눈물의 손을 힘껏 뿌리치고 텐트 깊숙한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곳 황금색 촛대 위에는 총알 한 발이 떠 있었고, 은은한 푸른 빛이 그 주변을 감싸고 있었다.
그 총알은 강철 군단에서 대대로 전해져 내려온 성물이자, 추기경을 죽인 "성환은탄"이었다.
게다가... 우리마저 여기서 포기한다면
잿빛 변방 사람들은 누굴 믿고 살아가. 그동안 희생된 수많은 동료는 또 뭐가 되고…
"츠루"와 희생당한 이들은 전부 독수리 깃발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쳤어. 그런데도, 넌 모두를 이끌고 무모한 죽음을 택하겠다고?
와타나베, 참모부에 "전군 급행군으로 이동한 뒤 성당 총공격 준비."라고 전해.
하야부사는 갑자기 와타나베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버지...
과거의 자신, 와타나베는 침묵에 빠진 채, 모든 비극의 시작을 씁쓸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신! 네가 하려는 건 우리가 30년 동안 쌓아온 모든 걸 무너뜨리는 짓이야!
밸러드! 이건 명령이야!
...
리볼버의 차가운 회전 소리가 울렸다.
이렇게까진 하고 싶지 않았어.
강철의 눈물은 허리에 찬 총을 꺼내어 하야부사에게 겨눴다.
신,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한 글자도 빠뜨리지 말고 잘 들어.
강철의 눈물의 눈동자에 금색 빛이 떠올랐고, 목소리는 둔탁하면서 낯설게 변했다.
...
인간은 악마와 달라. 우린 심장을 가졌고, 그 심장은 천사의 정신 지배에 저항 못 해. 이건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내재 된 근본적인 결함이야. 악마가 꿈꾸지 못하는 것처럼 명백한 한계라고.
네 말대로, 의지가 강하면 잠시 버틸 수는 있어. 나도 겨우 몇 초간 그 통제를 벗어난 적이 있지.
그 몇 초 동안… 나는 수백 년을 고문당한 것 같았어.
비록 육체는 연약하지만, 천사는 우리의 심장을 성당과 연결해 줄 수 있어. 성당의 축복을 받게 되면, 우린 악마나 귀신과 계약을 맺듯, 초월적인 지식과 힘을 얻을 수 있어.
그때, 소름 끼치는 균열 음과 함께 강철의 눈물의 등뼈가 갈라지더니 눈부신 "가지"들이 천천히 뻗어 나왔다.
설마... 이미 천사와 계약을 맺은 거야? 도대체 언제?
하야부사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허리에 찬 홀스터를 꽉 움켜쥐었다.
그 학살이 끝난 뒤, 대천사가 나에게 초월자의 비밀을 보여줬어. 그때 난 성당이 품고 있는 거대한 비전의 일면을 보게 됐지.
"가지"들이 강철의 눈물의 몸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그리고 뼈와 근육이 부서지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가지"들이 점점 자라나더니 촉수처럼 텐트 안의 공간을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지고천은 잿빛 변방을 정화하고, 이 땅의 모든 생명체를 없애려고 해. 그리고 성당의 천사들이 바로 이 "심판"을 집행하는 사도들이야.
영겁의 대낮, 산송장, 천재지변... 이 모든 것이 계획의 일부였어. 하지만 그분들은 속도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정화를 앞당길 손을 찾고 있었어.
심판이 끝나면, 성당은 그분들과 함께 이 세계를 떠나, 더 거대하고 신비한 성전에 나설 거야.
이 은총을 거부한다면, 우리가 지켜온 모든 영광은 오늘 이 자리에서 사라지게 돼. 하지만 받아들이면 강철 군단은 성당의 축복 아래, 새로운 형태로 영원히 살아남을 수 있어.
하야부사는 점점 낯설어져 가는 친구의 얼굴과 그가 뱉는 말들을 들으며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신, 이제 너의 답을 들려줄 차례야.
하야부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미간을 찌푸렸고, 그의 눈빛은 칼날처럼 차가워졌다.
넌… 밸러드가 아니야.
네 껍데기 안에 다른 영혼이 있는 게 느껴져. 그게 아니라면… 이미 천사의 꼭두각시가 된 거겠지.
...
강철의 눈물은 무표정한 얼굴로 하야부사를 내려다보며, 천천히 입술을 움직였다.
"그"에게 남은 마지막 이성 덕분에, "내"가 너에게 이런 기회를 주는 거야.
하야부사의 손끝이, 허리의 홀스터 가죽을 찢을 듯 움켜쥐었다.
나 강철 군단 제3대 통솔자 "하야부사"!
성당의 사냥개와는 거래하지 않는다!!
두 사람은 동시에 방아쇠를 당겼고, 치명적인 불꽃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명중한 건 단 하나의 총알뿐이었다.
...
아버지!!
핏빛 안개가 퍼지며, 눈앞의 광경은 색이 바랜 벽화처럼 흐릿하게 사라져 갔다.
그다음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더 이상 기억나지 않았다.
<size=38><i>여정의 끝에 이르렀을 때, 와타나베는 자신이 강물 위를 떠다니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i></size>
<size=38><i>아버지와 똑같은 상처가, 와타나베의 의식을 서서히 앗아갔고, 그 피는 조용히 강물 아래로 스며들고 있었다.</i></size>
<size=38><i>마지막 순간, 와타나베는 자신의 결말을 어떤 단어로 표현하면 좋을지 고민하고 있었다.</i></size>
<size=38><i><b>경악, 고통, 슬픔, 분노...</b></i></size>
<size=38><i>수많은 단어가 피로 물든 하늘 위를 떠돌았지만, 그 어떤 말도 그에겐 충분하지 않았다.</i></size>
와타나베...
핏빛 바닷속에서 창백한 팔 하나가 떠올라, 와타나베의 얼굴을 조용히 어루만졌다.
강철 군단은... 절대로...
그 기억의 끝에는, 공허한 죽음뿐이었다.
팔이 천천히 가라앉으며, 와타나베의 몸도 함께 물속으로 잠겨 갔다.
비릿한 어둠이 다시 세상을 덮치며, 그의 영혼을 조금씩 어둠 속으로 끌어내렸다.
신, 이제 너의 답을 들려줄 차례야.
안타깝게도 전투 기술 쪽으론, 너는 신의 재능을 물려받지 못했구나.
생명이 꺼져가는 그 순간, 와타나베는 마침내 진정한 자아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원한
증오
분노
붉은 화염이 수면을 뚫고 솟구치며, 광활한 창공 위로 천천히 타올랐다.
전쟁
와타나베는 강가에서 누군가의 흐릿한 실루엣을 보았다.
빛이 숨 막히는 어둠에 불을 붙이자, 와타나베는 발버둥 치며 수면의 희망을 향해 손을 뻗었다.
와타나베는 고개를 끄덕였다.
복수...
철썩—!
하늘 위, 회색 로브를 걸친 구세주가 찬란한 광채 속에서 그를 내려다보며 손을 내밀었다.
하늘 위, 회색 로브를 걸친 구세주가 찬란한 광채 속에서 그를 내려다보며 손을 내밀었다.
복수.
고개를 든 와타나베는 결연하게
와라!
멀리서 준마의 날카로운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몸이 물 밖으로 올라온 그 순간, 거센 물살이 인간의 모자챙을 들추었고, 와타나베는 그 얼굴을 제대로 마주할 수 있었다.
너는... 누구지?
그레이 레이븐.
인간이 상처로 뒤덮인 팔을 천천히 들어 올리자, 상처에서 수많은 핏줄기가 흘러나와 실타래처럼 와타나베의 가슴 속으로 스며들었다.
그 순간, 무언가가 솟구쳐 오르며 텅 빈 마음을 가득 채워갔다.
철컥—! 강철과 불꽃이 부서진 육신을 다시 깎고, 붙이고, 새겼다. 찢어진 살은 아물고, 부서진 뼈는 결합되었다. 피와 강철이 융합되는 고통 속에서 잘려 나갔던 왼팔이 새로운 형태로 되살아났다.
와타나베는 강철로 다시 태어난 왼팔을 들어 보이며, 눈앞의 인간을 경계의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힘은 궁지에 몰린 자를 무작정 돕지 않는다. 나한테 뭘 원하는 거지?
돈에 눈이 먼 무법자 같아 보이지는 않는데.
...
와타나베는 인간의 황당무계한 계획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곧 강렬한 원한이 심장을 두근거리게 했다. 와타나베는 자신의 증오가 점차 이 땅의 모든 비극과 하나가 되어 거대한 그림으로 펼쳐지고 있음을 깨달았다.
뜻밖에도 그들은 같은 길을 가고 있었다. 와타나베는 죽음의 문턱에서 자신을 구해준 이 영웅이, 성당을 무너뜨릴 위업을 이룰 것이라 믿고 싶었다.
다른 사람이 이 말을 들으면, 죽고 싶어 안달 난 미친놈이라고 생각하겠지.
와타나베는 옅은 미소를 띤 채, 눈앞의 신비로우면서도 같은 목표를 가진 은인에게 손을 내밀었다.
난 이미 한 번 죽은 몸이야.
형언할 수 없는 힘이 와타나베의 피와 살 속에서 꿈틀거렸다. 가슴 속에서 요동치는 맥박과 함께, 수많은 붉은 화염 총이 황사 속에서 하나둘 떠올랐다.
천사를 사냥하려면, 그 날개부터 잘라내야 해. 그리고 완전히 지칠 때까지 기다렸다가 포위해 끝장내는 거지.
성당을 무너뜨리려면, 부패한 강철 군단을 제거하는 게 우선이야. 그들이 가장 의지하는 팔이자 다리니까.
나에게는 사명이 있어. 성당이 군단을 모독하며 지배하는 걸 반드시 막아야 해. 만약 내 전략을 따라준다면—
나 역시 기꺼이, 네가 시작한 이 전쟁의 첫 번째 총알이 되어주지.
인간이 답하며, "전쟁"의 손을 잡았다.
그럼 이제—
저 썩어빠진 벌레들을 불태워 재로 만들어 버리자고.
<size=50><i>전쟁의 계시가 내려지자, 하늘의 모든 군왕과 신하들이 그 분노의 굉음을 들었다.</i></size>
<size=50><i>산과 바위에 쓰러져라. 그곳에서도 광란에 휩싸인 노예들을 피할 수 없을 테니.</i></size>
<size=55><i>분노로 가득 찬 그들 앞에서</i></size>
<size=55><i>과연 누가 버텨낼 수 있겠는가?</i></siz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