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Reader / 기억의 회랑 / 극락정토 / Story

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

정토

>

"어이"가 문을 열고 "열쇠"를 손에 쥔 채, 아래의 침식체 무리를 내려다보았다.

혼자서 저 많은 침식체를 유인하겠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그래서 네가 남아야 해. 그래야 저 난민들도 "살아남을" 기회가 생기는 거야.

네 말이 맞았어... 지금 그들은 인솔자 없는 양 떼 같은 상태야. 네가 꼭 필요해.

방금 아래쪽에서 침식체 무리를 발견했을 때, 그들은 이미 난민들을 갈림길에 있는 "양 우리"에 피신시켜 두었다.

"어이"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나도 살고 싶었는데... 하하.

마지막 선택의 순간에서야 "어이"는 자신의 가면을 벗어던지며 절규했다.

하하하... 나도 살고 싶었다고!

네 말이 맞아. 도망치고 싶었어! 쿠로노에게서도, 전장에서도!

네가 "모스"한테 전투를 피하는 방법에 관해 얘기할 때, 나도 몰래 귀 기울이고 있었어... 하하하.

"모스"랑 너를 만나지 않았다면, 나도 저 난민들이랑 다를 게 없었을 거야. 결국 우린 다 이기적이고 나약한 존재니까.

가끔은 네가 너무 눈에 띄어서, 더 가까워지기가 무서웠어. 널 코드네임으로만 부른 것도 그런 이유였을지도...

제정신이야? 당장 그 위치 추적기 내놔!

베라는 "어이"가 "열쇠"를 쥔 손을 붙잡았다. 둘은 팽팽하게 맞서고 있었다.

지금 와서 이걸 달라고? 아직도 날 "배신"하게 놔두겠다는 거야?

그런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 헛소리 그만 집어치우고... 너처럼 의식의 바다가 엉망이 된 녀석이 이러는 건 절대로 용납 못 해.

베라, 제발... 난 이제 지쳤어.

이건 대장이 처음으로 "하운드"의 본명을 부른 순간이었다. 그 이름의 주인공은 순간 멈칫했다.

있잖아... 베라, 난 늘 이게 궁금했어.

도대체 뭘 쫓아야... 살아남을 수 있는 걸까?

난 자유를 꿈꿨어. 퍼니싱도, 전쟁도, 의심도 없는 극락정토를 찾고 싶었지... 그런 걸 쫓으면서 한순간이라도 더 버틸 수 있었어.

베라... 넌 어떤데?

베라가 입을 열려 했지만, 두 번이나 시도했음에도 발성 장치는 가슴속에서 거칠게 울리기만 했다.

<size=60>"넌 무엇 때문에 살아가?"</size>

이 질문 앞에서 베라는 수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태어나서 지금까지의 모든 순간, 간절히 바라왔던 평화로운 시간, 그리고 그녀가 걸어온 모든 전장.

인간이었을 때 느꼈던 심장의 고동부터, 전신의 동력 엔진이 그녀를 앞으로 한 번 더 돌진하게 하고, 한 번 더 적을 베어내도록 몰아붙였던 전투의 순간들까지.

퍼니싱이 앗아간 수많은 생명과 죽음으로 뒤덮인 땅, 그리고 그 속에서 칼날 아래 흘렀던 차가운 피와 순환액.

그 모든 것을 겪어오면서, 결국 단 하나… 수백 년이 지나도 결코 잊을 수 없는 그것만이 그녀에게 남아 있었다.

그래서 베라는 네 글자만을 내뱉었다.

[고통]이야.

...

풉.

답을 들은 "어이"는 눈물을 흘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역시... 네가 그렇게 확고하게 살 수 있는 이유가 늘 궁금했어.

고통이라... 이상하게도 이해가 가네.

고마워.

"어이"가 갑자기 베라의 다친 팔을 비틀더니, 칼로 벽에 박아버렸다.

!!!

찢어질 듯한 고통에 베라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온몸의 통감이 한곳으로 쏠리면서, 그 비정상적인 고통에 그녀는 꼼짝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때 네가 날 "착하다"라고 했었지. 하하... 진짜 착한 사람은 누구였을까? 그만 발버둥 쳐, 저항하지 마. 베라, 난 널 해치려는 게 아니야. 넌 반드시 살아남을 테니까.

그때 네 팔을 치료해 줄 때 살짝 손을 봐뒀어... 원래는 네가 배신자인 날 "추살"할까 봐 그런 건데, 이렇게 쓰게 될 줄이야.

뒤를 봐, 저 사람들의 눈빛을 좀 봐.

"어이"가 녹슨 철문을 발로 걷어찼다.

베라가 "어이"가 가리킨 쪽을 돌아보자, 난민들과 눈이 마주쳤다. 모든 눈동자에는 살고자 하는 간절함이 담겨 있었다.

이제 저들을 이끌 수 있는 사람은 너뿐이야. 넌 저들의 마지막 희망이고, 저들은 너에게 매달릴 거야.

...

내가 몸부림치는 이유는... 더 이상 모두를 데리고 나갈 만한 충분한 이유가 되지 못해. 그래도 다른 방식으로라도 마지막 발버둥은 쳐볼 수 있겠지. 적어도 너희들이 살아남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무언가를 직감한 베라가 필사적으로 몸부림치며 일어나려 했다.

크윽...! 아직 늦지 않았어! 말 못 하는 소녀가 말한 그 해변... 가고 싶어 했잖아!

그건 그냥 환상이었나 봐.

"모스"가 쿠로노에 들어왔을 땐 아주 어렸어. 재앙의 충격으로 기억이 미화됐겠지... 그래서 자기 이름조차 기억 못 하는 거고.

그런 아름다운 곳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을 거야.

난 그 아이한테 많은 걸 가르쳤어. "대장"이란 말도 그래서 제일 또박또박하잖아.

네가 013팀에 처음 왔을 때, 그 아이가 와서 네 이름 발음하는 법도 물어봤었어. 근데 혀가 안 돌아가서 맨날 "베르"를 "베르"라고 했지.

한때는 진심으로 도망칠 생각도 했어. 하지만 009팀 사건 이후로는 그만뒀지. 내 잘못으로 너희가 책임을 지게 되는 걸 원치 않았고, 내 우유부단함으로 너희를 끌어들이고 싶지도 않았으니까.

그래서 쿠로노 본부에서 한참 떨어진 이 임무를 자원한 거야. "이렇게 멀리 떨어진 해안가 마을이라면, 혼자라도 조용히 빠져나갈 수 있지 않을까?"하고...

근데 봐... 결국 이 모양이야. 여전히 망설이고, 흔들리고... 너희를 이끌고 돌파하지도 못하고, 서로 의심하느라 시간만 날렸지.

"어이"가 베라의 다친 팔을 살며시 두드리며 위로하듯 말했다.

이 지하에 갇혀서 의식의 바다가 거의 미쳐가는 것 같았어. 네 말대로 몇십 일이나 지났는데... 쿠로노에선 연락 한 통 없었지.

베라... 혹시 쿠로노도 우리가 서로 물어뜯기를 바랐던 걸까?

...

그걸 깨달았을 때 내 머릿속엔 단 하나의 생각만 남았어. "모스"랑 너만큼은 살려내고 싶다고.

근데 이제 "모스"마저 죽었고... 내 헛된 꿈도 여기서 끝이네.

사실, 쿠로노에서 너희... [동료]만이 내가 유일하게 볼 때마다 역겹지 않았던 존재였어.

"어이"는 문 쪽으로 걸어가며 마지막으로 베라를 돌아보았다.

"모스"의 말이 맞았어.

"이제 이 세상엔 우리밖에 없을지도 몰라."

베라, 네가 살아남는 게... 결국 우리가 사는 거야.

놔!!

베라는 팔이 찢어질 듯한 고통을 견디며 칼자루를 움켜쥐었다. 그리고 자신을 벽에 고정한 칼날을 뽑아냈다.

베라는 문으로 달려가 손을 뻗었지만...

수많은 난민들의 손이 베라를 붙잡았다.

!

베라는 필사적으로 몸을 앞으로 기울였지만, 손끝이 닿지 않는 곳에서 "허밍버드"가 아래로 뛰어내렸다.

대장!!

모두의 시선과 "외면" 속에서, "허밍버드"는 아래의 침식체 무리 속으로 떨어져 갔다.

치가 떨리는 금속음이 울렸고, 순환액이 꽃처럼 사방으로 터져 나왔다.

"허밍버드"는 회오리처럼 칼을 휘둘렀다. 자신의 순환액을 뿌리며, 거센 파도처럼 밀려오는 침식체 무리를 헤치고 천천히 멀어져 갔다.

저 멀리, 그 바다를 보기 위해...

"허밍버드" 품속의 거짓 "열쇠"는 한때 그녀에게 희망을 주었다. 이제 그녀는 그 거짓된 열쇠를 이용해, 살아 있는 자들이 있는 해안가로부터 분노의 파도를 멀리 끌어내기로 결심했다.

...

조석이 걷히고 바다가 끝나는 곳에서...

사람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먼 곳으로부터 긴 휘파람 소리가 울려 퍼졌다.

반려 로봇

</i>"귀항"</i>

"귀항"이라는 뜻이에요.

반려 로봇

<i>"어민들이 고기잡이를 마칠 때마다, 이 소리로 육지에 소식을 전했어요."<i>

<i>"그러면 육지에 있는 사람들이 식사를 준비하면서, 그들을 기다리곤 했죠."<i>

<i>"베라, 우리도 꼭 귀항할 수 있을 거예요."<i>

우리도... 꼭... 기항해요.

휘파람 소리가 끝나자 폭발음이 들려왔다.

모두를 살릴 방법은 성공했지만, 그 누구도 환호하지 않았다.

...

이렇게 불면 되는 거야? 이 동작이 맞아?

네, 네!

그때 "어이"가 말 못 하는 소녀처럼 손을 모으던 모습이 떠올랐다. 베라는 그때 처음으로 "어이"의 수줍어하는 얼굴을 봤었다.

그럼... 다른 건? "귀항"은 이제 배웠으니까.

이 휘파람 소린... "귀항"이 아니야.

그 아이가 새로 배운 그 말이었어.

베라는 무언가 말하려 입을 열었지만, 난민들 앞에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베라는 지금 난민들의 앞에 서서, 살아남은 이들을 이끌고, "살아남기"라는 임무를 이어받은 것이다.

그리고 난민들... "양 떼"는 마치 검은 양에게서 용기를 얻은 듯, 보이지 않는 밧줄을 갑작스레 넘어선 것 같았다. 이제 그들은 더 이상 맹목적으로 따라가기만 하지 않았다.

한 난민이 먼저 나서서 어디선가 주워 온 "어이"의 무기를 베라에게 건넸다.

또 다른 난민이 앞으로 나와 등불을 높이 들어 앞길을 환히 비췄다.

...

세 번째, 네 번째 난민도...

사람들은 서로를 부축하며 햇빛 한 점 들지 않던 벙커를 벗어나 드넓은 공간으로 나왔다. 이곳은 바다와 가까웠기에, 간간이 들리는 휘파람 소리 너머로 잔잔한 파도 소리가 배경처럼 부드럽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탈출하는 내내 침식체들이 들이닥쳤고, 베라는 칼을 휘둘러 하나씩 쓰러뜨렸다.

하아...

가는 길마다 베라의 상처는 늘어만 갔다. 사람들은 할 수 없이 "모스"의 잔해에서 쓸 만한 부품을 찾아 베라에게 주었다.

이제 "모스"의 팔이 베라의 팔이 되었고, "모스"도 베라와 함께 살아남은 것만 같았다.

가끔 의식이 흐릿해질 때면, 베라는 44일째 되던 날 말 못 하는 소녀와의 대화 속으로 돌아가 그때는 말하지 못했던 진심을 털어놓았다.

내 고향은... 바다와 거리가 좀 있었어.

여름은 덥지도 않아서 물놀이하기도 애매했어. 대신 겨울엔 눈이 참 많이 왔지.

눈 오는 날 할 수 있는 것도 많았는데... 바닷가만큼 재밌었을진 모르겠네. 웃기지 않아? 황금시대의 끝자락에 태어났는데도, 한 번도 실제로 바다를 본 적이 없었다니.

가족들은... 거의 다 잃었고, 살아남는 것만 생각하느라 주위를 둘러볼 여유도 없었어.

그래서 난 네가 말한 그런 풍경들을... 그런 정토를 본 적이 없어.

서로 등을 맡길 수 있는 동료도 없었고.

...

이제 다시 칼을 들어야겠네.

말 못 하는 소녀를 빼고도, 난민들의 간절한 손길이 마치 그녀의 몸에 붙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 손길들 때문에, 그녀는 계속해서 칼을 들 수밖에 없었다.

칼을 드는 건...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여야 하는 거 아닌가?

왜 이렇게 복잡해진 걸까? 하...

칼을 들고, 또 들었다.

남들을 위해 셀 수 없이 칼을 휘두르다 보니, 문득 말 못 하는 소녀가 이야기했던 그 정토가 눈앞에 보이는 것 같았다.

!

무지갯빛 해변과 투명한 바닷물, 알록달록한 산호, 시끄럽게 울며 먹이를 다투는 갈매기들까지. 화려한 축제 한가운데 있는 것 같았다.

...

그 광경에 베라는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사실 베라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정토가 있다고 믿었고, 그런 희망을 보여준 말 못 하는 소녀가 고마웠다.

그렇게... 노인과 아이들은 대열의 한가운데에서 보호받으며 앞서가는 붉은 그림자를 지켜보았다. 그들의 발키리가 있는 그곳, 바로 그곳이 생과 사를 가르는 경계였다.

모두가 "생존"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갔다.

그러다...

그러다...

...

사람이 있어요!

저기 보세요! 앞에 사람이 있어요! 우리 살았어요!

멀지 않은 곳에 보육 구역이 보였다.

하늘에서 비가 쏟아졌다. 빗줄기 너머로 침식체의 공격이 이 보육 구역까지 미친 것이 보였다.

베라는 무거운 눈빛으로 그곳을 바라보았다. 예상대로 혼란에 빠진 난민들이 보였다.

그런데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군중 속에서 한 무리의 구조체 소대가 눈에 띄었다. 그들은 비를 맞으며 뭔가를 외치고 있었다.

모두 당황하지 마세요! 질서를 지켜주세요! 우리 동료들이 침식체를 막고 있으니 대피할 시간은 충분합니다!

공중 정원의 구조체들이네...

수송차가 부족해 보였지만, 그래도 차분하게 탑승 순서를 정리하고 있었다.

어린아이가 있는 분들 먼저 태우고, 나머지 분들은...

말하던 구조체가 미끄러지자, 동료가 재빨리 붙잡았다.

! 고마워요... 바닥이 너무 미끄럽네요.

...

저들은... 서로에게 등을 보여줄 수 있는 동료인가?

지친 베라는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보육 구역의 구조체들이 이쪽을 발견했을 때, 그녀는 곁에 있던 난민을 앞으로 밀었다.

저기로 가...

음식, 물, 수송차... 살아남는 데 필요한 건 저기에 다 있어.

베라는 이쪽으로 달려오는 두 구조체를 바라보았다.

공중 정원... 어쩌면 쿠로노보다는 나은 곳일지도 모르지.

베라의 재촉에 난민들은 모두 그쪽으로 달려갔다. 마침내 그들은 안전해졌다.

하지만 베라는 이 평화로운 곳에 함께하지 않았다. 쿠로노 특별 작전팀의 "하운드"가 공중 정원 녀석들과 마주치기엔 적절하지 않았다.

베라는 칼에 의지한 채, 파도 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조석이 걷히고 바다가 끝나는 곳까지...

후우...

베라는 해안가에 도착했다.

작은 배 한 척을 발견한 베라는 그 위에 몸을 맡긴 채, 떠돌아가게 내버려두었다.

다시 한번 파도가 밀려와 베라의 비틀거린 발자국을 지워버렸고, 모든 것을 씻어냈다.

...

후우...

후우...

빗방울이 얼굴에 떨어지자, 베라의 속눈썹이 살짝 떨리더니 눈을 떴다.

한 인간이 위에서 베라의 얼굴을 진지하게 들여다보고 있었다.

결국... 날 여기로 데려왔구나.

해안가의 작은 배는 살아남은 자를 태우고 수년의 시간을 건너, 오늘에 이르렀다.

그 배 위의 사람도 이제는 쿠로노의 "하운드"가 아닌, 공중 정원의 베라가 되어 있었다.

베라가 시각 모듈을 조정하기도 전에, 흐릿한 형체가 그녀 앞에서 살짝 흔들렸다. 인간이 손을 내밀어 그녀 앞에서 흔드는 것 같았다.

뭘 일으켜. 내 휴식 시간 방해하지 마.

됐어... 그냥 좀 같이 앉아 있자.

인간은 이미 케르베로스 대장의 성격에 익숙해져 있었기에, 그녀의 날카로운 말투쯤은 대수롭지 않게 넘기고, 그저 초대를 받아들여 그녀 옆 바닷물 속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여기까지 찾아올 줄은 몰랐는데.

인간은 "그럴듯하게" 단말기에서 베라가 보낸 편지를 꺼내 읽기 시작했다.

어머? 그래서 또 장난 편지 하나 받고 이렇게 찾아왔다고?

이제는 양치기 소년 이야기처럼 속지 않을 줄 알았는데.

그렇게 말하면서도 베라의 표정은 올 것을 예상했다는 듯 여유가 넘쳤다.

베라는 만족스럽게 눈을 지그시 감았다.

좋아.

그래? 그럼 니콜라가 보낸 거구나. 임무 상황은 다 들었어?

니콜라 사령관의 말에 따르면, 베라는 비밀리에 어떤 "열쇠"를 찾고 있었다.

그 "열쇠"는 쿠로노가 가지고 있었고, 유일한 복제품은 황금시대 말기에 분실됐다. 퍼니싱이 폭발한 후, 쿠로노는 암시장에서 그 복제품을 회수하려 했지만 실패한 듯했고, 그 이후론 소식이 끊겼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공중 정원도 갑자기 "열쇠" 뒤에 숨겨진 보물에 관심을 보이며, 복제품을 찾기 시작했다. 그래서 과거 이와 관련이 있었던 베라와 그녀가 직접 지목한 그레이 레이븐 소대의 지휘관을 파견하게 된 것이다.

응. 내가 쿠로노 특별 작전팀에 있을 때, 우리 팀은 진짜 "열쇠"를 못 찾았어. 완전히 속았지. 그래서 동료들이 다 희생됐고.

우린 가짜 "열쇠"를 가지고 서로 의심하기만 했어. 진짜 "열쇠"는 계속 다이달로스가 갖고 있었지.

근데 웃긴 건 우리 대장이 살아남았더라고. 듣자 하니 주동자들한테 복수하고, 다이달로스까지 잠입해서 진짜 "열쇠"를 빼돌렸대... 마지막에 행방불명된 거 빼고는 꽤 통쾌한 "후일담"이야.

하하... 공중 정원이 나보고 그 후속 임무를 맡으라고 하는데, 제일 간단한 방법은 그 "대단한 대장"의 행방을 찾는 거겠지.

그래서 수단을 좀 써서 정보를 좀 아는 사람들의 입을 열게 했어.

쓸데없는 동정심은 거두는 게 좋을 거야. 그 "정보원"들은 죽어 마땅해.

쿠로노에 있을 때도 수많은 사람을 팔아넘겼고, 우리 임무가 실패한 것도 그들의 짓이야. 자업자득이지 뭐.

우리 임무를 망친 놈들은 못 찾았지만, 대장이 결국 이 섬에 올 거란 건 확신해.

베라는 인간을 흘깃 보더니, 자기 과거를 거래하는 게 맞는지 고민하는 듯했다.

결국 베라는 이야기하기로 했다.

그건 정말... 긴 이야기야.

베라의 말이 이어지는 동안, 바닷물이 모래사장 위의 둘을 부드럽게 스치며 오래된 기억을 씻어내고 있었다.

...

이야기는 세 구조체를 연결했다. 베라는 그들이 서로를 모르던 시절부터 쿠로노 특별 작전팀 013팀이 결성되기까지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무 연관 없던 그들이 운명처럼 얽히게 된 과정.

서로를 의심하고 망설이던 날들, 그리고 그녀가 "경멸"했던... 하지만 지금도 떠올리면 눈을 감게 되는 두 번의 이별.

"모스"와 "허밍버드"의 추락, 미처 잡지 못한 손, 그리고 그 순간 베라를 필사적으로 붙잡아준 난민들의 따뜻한 손길.

빗줄기를 뚫고 작은 배에 올랐던 그때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베라는 인간의 시선 속에서 모든 이야기를 마치고, 눈앞에 펼쳐진 "아름다운" 풍경을 가리켰다. 편지에서 말했던 바로 그 "낙원"이었다.

마지막으로... 이 섬 어때? 아름다워?

우리가 상상하던 것과 비슷해?

여기가 바로 말 못 하는 소녀가 말했던 고향, "무지개 해변"이야.

"어이"가 늘 도망가고 싶어 했던 "극락정토"이기도 해... 그녀가 정말 살아있다면, 분명 여기 올 거라고 생각했어.

베라는 누워서 팔다리를 쭉 펴고, 발끝에 닿는 물결과 아래 있는 산호를 느꼈다.

인간은 말없이 듣다가 다시 한번 앞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i>"우리 집 앞에는 해변이 있었어요. 우리는 그곳을 '무지개 해변'이라고 불렀죠."</i>

<i>"'무지개 해변'은 수심이 얕은 바다였어요. 밀물 때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물고기가 헤엄쳤고, 썰물이 되면 그 아래의 산호들이 모습을 드러냈어요."</i>

<i>"알록달록한 산호들이 햇빛을 받아 반짝반짝 빛났죠."</i>

하지만 이곳에는 알록달록한 산호도, 헤엄치는 물고기도 없었다.

잿빛으로 변한 죽은 산호와 산더미처럼 쌓인 백골뿐이었다.

그 "정토"라는 것도 말 못 하는 소녀가 만들어낸 추억이거나, 도망치고 싶었던 한 여자가 살아남기 위해 붙잡았던 환상에 불과했다.

정토는 이미 퍼니싱에 의해 사라진 지 오래였다.

베라는 이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회색빛 물결 위에 누워 예전에 망가졌던 왼쪽 눈을 천천히 어루만졌다.

베라

정말 웃기지 않아...

쿠로노에서의 모든 기억이 베라의 눈앞을 스쳐 지나갔고, 그것들은 결국 모두 허망한 백골이 되어 사라져 갔다.

인간이 베라를 가리켰다. 모든 것이 썩어 문드러진 이곳에서도, 그녀의 붉은빛만은 여전히 선명했다.

그 선명한 붉은빛 뒤에는 날마다 시끌벅적한 특별 소대가 있었다.

베라

흥, 내 생각을 제멋대로 포장하지 마. 난 처음부터 끝까지 그저 내가 살아남는 것만 생각했어.

베라

...

시간이 흘러 "하운드"는 "케르베로스"가 되어 있었다.

베라

...

특별 작전팀 013팀을 잃고 난 뒤, 베라도 그 과거에 마침표를 찍고 싶었던 걸까?

베라는 다이달로스 관련 임무를 자진해서 맡았고, 다이달로스가 몰락한 뒤에도 남은 지부들을 끊임없이 찾아다녔다.

그 과정에서 마주한 증오와 죽음의 흔적은 이 해변 못지않게 많았다.

오랜 수색 끝에 어느 지부의 실험실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마침내 단 한 명의 생존자를 찾아냈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한 구조체... 하얀 그림자 같은 존재였다.

그 하얀 그림자는 베라의 칼날 앞에서, 그녀를 안으려는 듯 스스로 팔을 벌렸다.

21호

버리지... 마...

21호는...

베라는 하얀 그림자의 어깨를 붙잡고 인형을 다루듯 자세를 바로잡은 뒤, 능숙한 동작으로 "출혈"을 멈추게 했다.

21호

혹시...

천사인가...?

베라는 순간 멈칫했다.

그 후, 베라는 습관적으로 뭔가 부정하는 말을 했던 것 같지만, 21호가 의식을 잃자 그대로 등에 업었다.

그리고 그 비 오던 밤.

익숙한 좁은 통로에서 붕괴가 다가오고 쿠로노와 연락이 끊긴 순간, 베라는 상부에서 무슨 짓을 하려는지 깨달았다. 그때처럼, 1개월 이상 동안 013팀을 벙커에서 죽을 때까지 발버둥 치게 했던 그것, 바로 그 저주받을 "적자생존"이었다.

이제 쿠로노는 다시 한번 그들 둘 중에서 약한 자를 도태시키려 하고 있었다.

베라는 21호에게 철수하라 명령했다. 더 이상 누구도 잃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 바보는...

21호는 몸을 웅크린 채 떨어지는 돌덩이들을 막아내며, 필사적으로 베라를 끌고 밖으로 나가려 했다.

순환액이 바닥에 흘러넘치고, 결국 빗속에 쓰러졌음에도, 21호는 베라와 함께 돌아가길 원했다.

그렇게 베라의 등에는 하얀 그림자 하나가 더해졌다.

베라

야! 자지 마!

힘들게 죽은 시체나 짊어지고 가게 할 셈이야?!

21호

안 잤어...

베라

...

베라는 21호를 등에 꼭 업은 채, 전해지는 온기를 느꼈다.

그때, 베라는 처음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

"동료"에 대한 집착은 이미 지울 수 없는 집념이 되어, 베라의 성격처럼 과거 속에 깊이 박혀 있었다.

하지만 운명의 시간은 계속 흘러갔고, "하운드"에게 새로운 미래를 선물했다. 013팀은 없어졌지만, "베라"가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것들이 생겨났다.

수많은 실이 그물처럼 엮이며, 결국 모든 인연은 가장 적절한 순간에 하나로 이어졌다.

하하... 그래, 네 말이 맞아.

케르베로스 소대의 대장이 해변에서 일어나 백골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수많은 백골 사이에 한 구조체의 잔해가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허밍버드"는 바닷물에 씻기고 부식되어 원래 모습을 전혀 알아볼 수 없었다.

베라는 그 구조체의 손에서 작은 권한 카드를 조심스레 빼냈다.

"평범해 보이는 권한 카드 하나, 언뜻 보면 그냥 하찮은 액세서리 같았다."

꿈꾸던 정토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살아갈 마지막 희망마저 잃어버렸구나... 그렇다고 스스로 목숨을 끊다니.

허밍버드, 난 네 마지막이 맘에 안 들어. 방금 저 지휘관 말이 훨씬 낫더라.

베라는 새로운 신념을 움켜쥐듯이 "열쇠"를 꽉 쥐었다.

진짜 "열쇠"는 내가 가져가는 게 좋겠어.

베라는 "열쇠"를 챙기고 특별한 휘파람 소리를 불었다. 그 소리는 파도를 타고 멀리 퍼져나갔다.

지휘관, 이야기도 다 들었으니까 이게 무슨 신호인지 맞혀볼래?

힌트 줄게. "허밍버드"가 침식체들을 유인할 때 분 바로 그거야.

베라가 환하게 웃었다.

틀렸어!

베라는 손에 든 기창을 해변 모래에 힘껏 꽂았다. 깃발이 순식간에 펼쳐지며 하늘 높이 휘날렸다.

베라

이건 말이지... "출항"이야!"

다음 정토는 내가 직접 만들어낼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