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Reader / 기억의 회랑 / 극락정토 / Story

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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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나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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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많은 진실을 알아내기도 전에 붕괴가 일어났다. 말 못 하는 소녀가 옆에서 세게 부딪쳐왔고... 베라의 기억은 그 순간에서 멈췄다. 그 이후로 의식을 잃었다.

베라는 부딪힌 탓에 다친 모양이었다.

의식의 바닷속에서 몸부림치는 베라는 마치 끓는 물 속을 허우적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엄청난 고통 앞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아파...

예전에 다쳤던 팔이 찢어질 듯이 아팠다.

말 못 하는 소녀

정비... 빨리...

귓가에 소녀의 외침이 희미하게 들렸지만, 현실로 돌아올 수가 없었다. 당장 응급 처치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흐릿한 의식 속에서, 쿠로노에게 "회수"당했던 그날이 떠올랐다. 그때도 이렇게 아팠던 것 같다.

그날... 무슨 일이 있었지?

단 한 명이라도 지켜낼 수만 있다면...

이봐, 평범하게 생긴 녀석. 넌 공격형이지?

그렇긴 한데... 이 상황에서 공격형이라고 무시하겠다는 거야?

베라는 자기 팔을 단숨에 떼어냈다.

너...

난 이제 한계야. 애초에 보조형으로 설계됐으니까. 넌 구조만 좀 보완하면 더 싸울 수 있잖아?

살아남은 대원이 있으면, 더는 나보고 "사신"이라고 부르지도 않겠지.

이 팔로 방어선을 뚫고 튀어. 처음 계획대로 도망가라고!

그리고... 그런 거짓된 연민 같은 거 보이지 마. 그게 지금 이 기체의 고통보다 더 괴로우니까...

아파...

누군가가 베라 곁으로 와서 천천히 밖으로 끌어내고 있는 것 같았다.

뭐지...

그만... 끌어...

너무 아파...

아파!!

으악!!

아! 제, 죄송해요!

눈을 떴을 때 말 못 하는 소녀가 옆에서 연신 사과하고 있었다.

너… ?

죄송해요! 위, 위급했어요. 진흙이... 둘러, 둘러싸여서...

어쩔... 어쩔 수가 없었어요.

소녀가 다급하게 뭔가를 설명하려 했지만, 너무 정신없이 말해서 베라는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저...

쾅!

베라의 청각 모듈 옆에서 폭발음이 울렸고, 말 못 하는 소녀가 즉시 베라의 몸 위로 엎드렸다.

공기를 가르는 돌조각들이 날아와, 말 못 하는 소녀의 기체에 상처를 남겼다.

으윽!

먼지가 걷히자, 몇몇 생존자들이 기침을 하며 달려와서, 폭발 중심부에 너무 가까이 있던 두 구조체를 끌어내려 했지만, 힘이 부족했다. 몇 번 시도하다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왜 또 폭파 장치를 쓴 거야...

침식체들이... 여기까지 왔나...

베라는 겨우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폈다. 벙커 가장 깊은 곳까지 밀려난 게 분명했다. 사방이 "먼지투성이"였다.

왜 너밖에 없어... "어이"는 어디 갔어...

돌파를 못 했으면 너라도 도망가지... 날 끌고 오지 말고, 바보야.

마, 말하지 마세요. 대장님, 안전... 해요.

아프... 다고 하셔서. 방금...

말 못 하는 소녀는 베라의 어깨를 가리켰다가, 자신이 소중히 간직하고 있던 마지막 남은 정비 부품을 가리켰다.

저... 치료할게요.

공격형이면서 무슨 치료를... 으윽!

후... 후...

아픔이... 날아가...

날아...

베라를 열심히 달래던 소녀가 갑자기 쓰러졌고, 베라는 다른 팔로 재빨리 그녀를 붙잡았다.

! 괜찮아?

...

그제야 베라는 소녀의 등에 난 처참한 상처들을 발견했다.

커다란 구멍이 등을 관통했고, 순환액이 온 등을 타고 흘러내려 베라 옆에서 작은 웅덩이를 만들고 있었다.

소녀의 상처는 베라 못지않게 심각했다.

쯧! 이렇게 다쳐놓고서는 왜 날 신경 쓰고 있는 거야?!

그게... 아푸... 다고 하셔서.

말 못 하는 소녀가 겨우 고개를 들어 베라를 향해 미소 지었다. 상처투성이인 반려 로봇도 말을 거들었다.

<i>"베라가 아프다고 하셔서입니다."<i>

베라가 늘 비웃던 그 "바보 같은 미소"가 이번만큼은 자신의 "심장"을 찌르는 것 같았다.

내가 아픈 게 너랑 무슨 상관인데?

내가 죽든 말든 상관 말라고!

제발 정신 차려! 우린 동료일 뿐이야. 그저 쿠로노 밑에서 같이 일하는 동료! 동료가 뭐라고 이렇게까지 해!

내 이전 동료들이 어떻게 됐는지도 모르면서...

<i>"그런 생각 마세요... 저희는 달라요. 걱정하지 마세요."<i>

<i>"대장님 말씀으로는, 베라가 가끔 심한 말씀을 하는 건 불안해서라고..."<i>

<i>"괜찮아요, 베라. 돌파는 실패했지만 모두 살아있잖아요. 다음 기회는 분명히 올 거예요."<i>

너희들 진짜...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는 거야?!

말 못 하는 소녀는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따스한 기운이 감도는 베라 쪽으로 살짝 기대며 몸을 웅크렸다. 그러고는 상처로 가득한 그녀의 손을 꼭 쥐었다.

<i>"그런 생각은 그만하세요... 베라, 베라."<i>

<i>"우리 이야기 나눠요. 대장님께서 구하러 올 때까지 다른 얘기를 나눠요. 어때요?"<i>

하...

베라는 고통과 짜증이 뒤섞인 한숨을 내쉬며 눈을 감았다. 이런 상황이 처음이 아니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이 둘은 늘 이랬다.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표현할 수조차 없게 만들어버리곤 했다. 마치 삼키지도, 뱉지도 못하는 건어물처럼 말이다.

그래도 나쁘지는 않았다. 오히려 익숙해진 것 같기도 했다.

팔의 둔통을 참으며 베라는 더 이상 뭐라 하지 않았다.

베라는 소녀가 자신의 붉은 머리에 기대도록 내버려두었다. 속으로는 아직도 오지 않는 "어이"를 원망하며 초조해하면서도, 소녀의 등에 난 깊은 상처를 힘껏 눌렀다. 하지만 아무리 눌러도 순환액은 끊임없이 흘러내렸다.

알았어. 네가 원하는 대로 다른 얘기를 하자. 뭐든 좋으니까.

<i>"좋아요..."<i>

<i>"방금 베라가 아프다고 하셨잖아요..."<i>

<i>"그... 아픔이란 게 도대체 어떤 느낌인지 설명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i>

갑자기 그건 왜?

<i>"전 아픔을 모르거든요... 하지만 여러분이 아프다고 하는 게 너무 싫어요."<i>

...

소녀는 눈을 감은 채 베라에게 더 바짝 붙었다.

베라는 눈앞의 불나방이 뜨거운 불빛을 향해 끊임없이 날아드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동료"를 위해서, 그리고 멀기만 한 "생존"을 위해서…

소녀의 통각 모듈은 거의 작동하지 않았다. 방금 그 무감각한 모습도 이 때문이었다.

베라는 잘 알고 있었다. 쿠로노가 이 "모스"를 선택해 이용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이 소녀는 선봉대 역할에 너무나도 적합했다.

하지만 왜인지 베라의 가슴속에서 알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대체 무엇 때문일까?

아마도 그 순간, 베라의 마음도 살짝 흔들렸다. "쿠로노를 떠나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심지어 다른 사람들까지 데리고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

깊고 어두운 벙커 안에서, 베라가 이 작은 나방을 꼭 끌어안았던 그 순간을 아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아픔이란 건... 아마도 기억에 가장 오래 남는 감각일 거야.

특별 작전팀에 들어오기 전... 너희를 만나기 전까지는, 이걸로 버텼었어.

...

"모스", 내 말 들리지?

꼭 살아남아.

...

전투 물자는 바닥났고, 돌파 작전은 실패로 끝났다.

말 못 하는 소녀는 결국 휴면 상태에 빠져들고 말았다.

베라는 중상을 입은 소녀를 대신해 "귀항" 신호를 보냈다. 최전선에서 싸우며 후퇴하던 "어이"는 신호를 듣자마자, 어쩔 수 없이 발걸음을 돌려 난민들을 더 깊은 곳으로 피신시켰다.

모두의 얼굴에는 절망이 가득했다. 다들 돌파 실패 이후의 시간이 그저 죽음으로 향하는 카운트다운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알고 있었다.

쿠로노 특별 작전팀-013팀이 이 해안가 마을에 도착한 지도 어느덧 <color=#ff4e4eff>42일</color>이 지났다.

...

베라는 철수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말 못 하는 소녀를 등에 업었다.

그리고 아무도 모르게 위치 추적기를 꽉 쥐고 있었다.

그것은 돌파를 시도하다 침식체에게서 뜯어낸 것이었다.

거미줄처럼 금이 간 화면에서 깜빡이는 위치 표시. 베라는 차라리 잘못 본 거라 믿고 싶었지만, 그 표시가 가리키는 곳은 분명 이 벙커였다.

...

베라는 이제 모든 걸 그만두고 싶었다. 하지만 이 지하에서의 의심과 몸부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