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a\>옛날 옛적에 아주 총명한 학자가 있었어. 그는 자신의 지혜를 부와 명예를 얻는 데 사용하지 않고, <para\>대신 숲속 깊은 곳에 혼자 숨어 지냈단다.
<para\>학자는 방대한 책더미 속에서 연구에 몰두했는데, <para\>그는 자신의 연구로 이 세계 누구도 죽은 이와의 이별로 인한 고통을 겪지 않게 되기를 바랐어.
<para\>그렇게 세월은 흘러갔고, 학자는 수많은 책으로 연구를 진행했지. <para\>하지만 마음속 외로움은 달랠 길이 없었던 학자는 조금씩 마음이 어둠에 잠식되어 갔어.
그때, 숲에서 길을 잃게 된 공주님이 우연히 학자의 오두막에 들어가게 되었고, 학자를 무서운 어둠 속에서 구해 주었어.
<para\>학자는 공주님의 아름다움에 마음을 빼앗기게 되었고, <para\>공주님은 학자의 깊은 재능을 존경했어. 이후 그들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단다.
아빠, 이야기가 좀 이상한데요. 동화에서는 용사가 숲에 들어가서 공주님을 구한다고 나오는데, 아빠는 왜 반대로 말하는 거예요?
아~ 알 것 같아요. 이거 엄마와 아빠의 이야기인 거죠? 맞죠?
그래, 우리 델로리스, 정말 똑똑하구나! 금방 알아챘네.
아빠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여자아이는 이야기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아빠의 말을 끊어버렸다.
하지만 아빠는 전혀 화내지 않고, 웃으면서 딸에게 대답해 주었다.
근데 아빠는 왜 엄마를 "공주님"이라고 부르는 거예요? 엄마가 공주님처럼 예뻐서 그래요?
하하, 엄마는 당연히 공주님처럼 예쁘지. 그런데 더 중요한 건, 옛날에 아무것도 할 줄 몰랐던 아빠를 엄마가 "구해줬다"라는 거란다.
그래서 엄마가 아빠의 공주님인 거야. 알겠니?
아... 그럼, 저는요? 아빠는 엄마만 좋아하고, 저는 안 좋아해요?
하하하, 당연히 델로리스도 사랑하지. 넌 아빠의 가장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작은 공주님이니까!
라이너스는 입을 삐죽 내민 딸을 번쩍 안아 올리더니, 공중에서 빙글빙글 돌렸다. 그러자 델로리스는 그제야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긴 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아침 햇살 속에서 아빠와 딸은 즐겁게 지내고 있었다.
와, 아빠! 더 빨리 돌려주세요~!
됐어. 이제 그만해. 라이너스, 델로리스가 떨어지겠어, 조심해.
델로리스. 아빠와 뭐 하고 놀고 있었기에 그렇게 즐겁니?
한 젊은 여자가 천천히 휠체어를 밀며 웃고 떠드는 부녀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화려한 옷차림을 하고 있었지만, 병색이 역력한 창백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라이너스는 급히 딸을 내려놓고는 아내에게 빠르게 다가가, 다정히 손을 꼭 잡았다.
이사벨,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어? 오늘은 좀 어때?
의사가 침대에서 푹 쉬라고 했잖아?
괜찮아. 계속 누워 있으면 심심하기만 해. 일어나서 돌아다니는 게 더 나을 것 같아.
엄마!
델로리스는 기쁜 마음으로 달려가 엄마 품에 안긴 뒤, 엄마의 목을 꼭 끌어안았다.
델로리스! 아빠가 그렇게 장난치면 안 된다고 했지. 엄마 몸이 좋지 않은 거 너도 알잖니.
잔뜩 신나 있던 델로리스는 아빠의 꾸중에 입을 다시 삐죽 내밀었다. 그래도 여전히 엄마 품에선 떨어지지 않으려 했다.
라이너스, 난 괜찮으니까, 애한테 뭐라 그러지 마.
우리 딸 머리가 엉망이구나. 엄마가 머리 빗겨줄게.
델로리스는 새끼 고양이처럼 조용히 엄마의 무릎에 엎드렸고, 엄마의 부드러운 손길이 자신의 헝클어진 머리를 가지런히 빗어 우아한 모양으로 만들어 줄 때까지 기다렸다.
엄마에게선 언제나 은은한 향기가 풍겼고, 손길도 항상 부드러웠다.
델로리스는 이렇게 엄마와 함께 있는 시간이 너무나 좋았다.
엄마는 이렇게 건강해 보이는데, 아빠는 왜 항상 "엄마는 몸이 좋지 않으니, 쉬어야 한다.", "장난치면 안 된다."라고 하시는 걸까?
그럴 때마다 아빠의 얼굴에는 평소의 온화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꾸짖는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델로리스는 엄마의 품에 안기기만 하면, 아빠의 당부는 금세 잊어버리곤 했다.
엄마가 델로리스의 머리 손질을 끝마쳤다. 그러자 델로리스는 아빠가 반응하기도 전에 날렵한 고양이처럼 잽싸게 엄마의 무릎에 올라갔다.
엄마, 예전에 아빠와 어떻게 만나게 된 거예요? 숲에서 길을 잃었을 때, 아빠를 만난 건가요?
우리 딸, 그건 아빠가 들려준 동화 속 이야기야. 그걸 진짜로 믿으면 어떡하니?
네 아빠는 예전에 아주 재능 있는 과학자였어. 꼭 "마법사" 같았지.
아빠와 엄마는 아빠가 일하던 실험실에서 만났단다.
엄마, 아빠가 "마법사"였을 때는 어떻게 마법을 부렸나요?
그건 마법이 아니라, 대단한 실험이란다.
네 아빠는 아주 대단한 실험을 하고 있는데, 그건 인간의 생각을 꺼내서... 꼬마 로봇 안에 옮겨 담는 거야.
네 아빠의 실험이 성공한다면, 많은 사람이 가족과 영원히 함께할 수 있게 될 거란다.
음... 대단한 실험인 것 같아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다른 사람들은 아빠의 연구를 좋게 보지 않았어. 그래서 엄마가 그 실험실을 인수한 뒤, 아빠가 마음 놓고 연구에 몰두할 수 있도록 해준 거란다.
엄마, 인수... 가 뭐예요? 무슨 뜻인지 모르겠어요.
그리고 아빠가 이렇게 대단한데, 왜 다른 사람들은 좋아하지 않는 거죠?
아빠, 힘내세요!
라이너스가 다가와 델로리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미소 지었다.
라이너스는 엄마 무릎에 여전히 기대고 있는 델로리스를 꾸짖지 않았다. 대신 조용히 안아 들어 자기 팔에 앉혔다.
애한테 그런 얘기하지 마. 다 지난 일이잖아. 그 실험 프로젝트들은... 나도 진작에 그만뒀어.
조만간 집사한테 지하실에 있는 실험실 물건들 좀 정리하라고 할 거야. 괜히 자리만 차지하게 둘 필요는 없으니까.
지금은 당신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게 더 중요해.
...
이사벨의 얼굴에서 어딘가 모를 쓸쓸함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말을 꺼내기도 전에, 갑작스럽게 기침이 터져 나왔다.
쿨럭쿨럭... 윽!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했던 델로리스는 엄마를 바라보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사벨! 집사, 집사! 어서 가서 의사를 데려와!
안고 있던 딸을 조심스럽게 내려놓은 라이너스는 걱정 가득한 얼굴로 급히 아내를 끌어안았다. 그러고는 문밖을 향해 연달아 외쳤다.
난 괜찮아. 너무 걱정하지 마.
라이너스의 외침을 들은 집사가 황급히 달려왔고, 그의 얼굴에도 걱정스러운 기색이 가득했다.
사모님, 의사가 곧 도착할 겁니다.
지금은 좀 어떠십니까?
정말 괜찮다니까, 이제 그 얘긴 그만해. 의사 선생님도 괜히 모셔 올 필요 없고.
가볍게 고개를 저은 이사벨은 잠시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런 뒤 힘겹게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모두의 걱정을 덜어 주려 애썼다.
델로리스의 여름방학도 거의 끝나 가는데, 아직 가족 나들이를 한 번도 가지 못했네.
에드먼드, 사람들 시켜서 바닷가 별장을 정리해 줘. 이 계절에 거기서 며칠 머무는 게 제일 좋을 것 같네.
이사벨, 올해는 가지 않는 게 어때? 건강 상태가...
하지만 이사벨은 고개를 살짝 저으며 "집사"에게 휴가에 관해 물었다.
별장 준비하는 데 얼마나 걸릴 것 같아?
걱정하지 마십시오, 사모님. 제가 매년 여름이 시작되기 전에 항상 미리 준비해 둡니다. 이미 정리가 다 되어 있으니, 언제든 편히 지내실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행이네, 에드먼드. 역시 이 집에는 당신 같은 훌륭한 집사가 필요해.
그럼, 제 오리 튜브하고 다락방에 있던 바비 인형들도 아직 다 있나요? 거기에 가본 지 정말 오래된 것 같아요!
그럼요, 아가씨, 제가 저쪽 하인들에게 잘 보관해 두라고 당부했으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와! 에드먼드 집사님, 최고예요! 언제 그런 것까지 챙겼어요?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영광입니다.
그럼, 저는 이만 물러가 휴가 준비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집사는 살며시 물러가며 문을 닫았고, 방 안에는 에버렛 가족 세 식구만 남게 되었다.
하지만 두꺼운 문 너머에서는 오래도록 웃음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밤이 되자 낮의 소란은 잦아들고, 부드러운 달빛이 에버렛 저택 구석구석을 비추었다.
이사벨은 밤이 깊었지만, 여전히 델로리스의 침실에 앉아 잠든 딸을 다정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이사벨은 몇 번이고 델로리스의 얼굴을 쓰다듬으려 했지만, 깰지 두려워 천천히 손을 거두었다. 대신 이사벨은 딸의 사랑스러운 얼굴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그러다 어깨에 닿은 손길을 느낀 이사벨은 말없이 남편의 손을 잡았다.
이사벨, 너무 늦었어. 이제 좀 쉬어. 내일 아침 일찍 바닷가 별장으로 출발해야 하잖아.
남편이 낮은 목소리로 다정히 말을 건넸지만, 이사벨은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이사벨의 시선은 잠든 딸의 얼굴에서 단 한 순간도 떨어지지 않았다.
난 지금처럼 델로리스를 바라보고 싶을 뿐이야. 몇 분이라도 더 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해.
어느 날 갑자기... 다시는 볼 수 없게 될지도 모르잖아.
라이너스는 몸을 낮춰 이사벨의 어깨를 감싸고, 그녀의 쓸쓸한 눈을 바라보았다.
그런 말 하지 마. 지난번에 의사가 당신 상태가 안정됐다고 했잖아. 잘 관리하면, 분명...
내 몸은 내가 잘 알잖아. 내가 우리 가족들 곁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이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아.
당신과 편안히 몇 년만 더 지내다 가게 되면... 더는 아쉬울 것이 없을 거라 생각했어.
그런데 델로리스가 태어나고 나니, 정말 몇 년이라도 더 살아서 아이가 자라는 모습을 보고 싶어졌어.
하느님, 부디 우리 아이가 무사히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제가 가진 불치병을 절대로 물려받지 않도록 해주세요.
...
내가 반드시 방법을 찾아낼게. 여보. 어떤 일이 있어도 난 항상 당신 곁에 있을 거야.
라이너스는 아내를 꼭 끌어안았다. 창밖의 달빛은 여전히 부드러웠지만, 그의 눈에 비친 그믐달은 아내의 꺼져가는 생명처럼 보였다.
밤하늘 높이 걸린 밝은 달은 조금씩 슬픔의 그림자에 잠식되어 가는 라이너스의 마음속까지는 비추지 못했다.
다음 날, 그들은 에버렛 저택을 떠나 오래간만에 바닷가로 향했다. 바닷바람과 따스한 햇살 덕분인지, 이 가족을 드리운 보이지 않는 먹구름이 조금은 옅어진 듯했다.
오랜만에 찾은 해변에서 델로리스는 신나게 뛰어놀았다. 그녀의 웃음소리는 바닷바람을 타고 멀리 퍼져나갔고, 부모는 가까운 파라솔 아래에서 따스한 시선으로 딸을 지켜보고 있었다.
창백하던 이사벨의 얼굴에도 따스한 햇살이 옅은 빛깔을 더해 주었다.
오리 튜브 위에서 한참을 놀던 델로리스는 곧 해변의 새로운 것에 시선을 빼앗겼다.
고운 흰모래 위를 천천히 기어가는 소라게들을 보는 델로리스의 눈은 호기심으로 가득했다.
델로리스는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몇 번 시도한 끝에 가장 큰 소라게를 잡았다.
델로리스는 소라게를 손가락 사이에 쥐고, 버둥거리는 "녀석"을 신기한 듯 들여다보았다.
야야야... 도망가지 마! 잡았다, 이 녀석!
엄마, 아빠, 이것 좀 봐! 방금 내가 엄청 큰 소라게를 잡았어!
델로리스는 흥분이 가득한 얼굴로 부모님께 달려와, 자기 "전리품"을 자랑스레 흔들어 보였다.
이걸 어떻게 잡았니? 손가락 다치지 않게 조심해.
괜찮아. 엄마. 나 하나도 안 무서워.
우리 델로리스가 이렇게 용감한 줄은 몰랐네.
엄마, 이거 집에 있는 큰 수족관에서 키워도 돼요?
그건 안 돼. 그 수족관은 엄마가 제일 아끼는 거잖아. 거기에 이런 이상한 걸 넣으면 안 돼.
아버지의 제지를 당한 델로리스는 토라진 듯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그러고는 도움을 청하듯 엄마를 바라보았다.
델로리스, 이 "녀석"은 바다로 돌려보내 주자. 바다가 바로 얘 집이니까.
얘 엄마, 아빠가 바닷속 집에서 아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몰라.
엄마의 온화한 타이름에 결국 델로리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응... 알겠어.
델로리스는 소라게를 조심스럽게 집어 들고 바닷가로 달려가, 소라게를 파도 속에 놓아주었다.
잘 가.
소라게를 놓아준 델로리스는 엄마의 칭찬을 기대하며 달려갔다.
하지만 델로리스를 맞이한 것은 엄마의 미소가 아니라, 창백하게 일그러진 얼굴이었다.
...
델로리스의 눈앞에서 엄마는 힘없이 휠체어에서 쓰러져 있었다.
엄마! 왜 그래... 엄마!
이사벨!
짧았던 행복은 산산이 부서지고, 보이지 않는 무거운 먹구름이 다시 에버렛 가문의 머리 위로 조용히 드리워졌다.
델로리스는 병원 복도의 의자에 한참을 앉아 있었다. 에어컨 때문에 쌀쌀한 데다 의자도 몹시 불편했다.
밤이 깊었지만, 아빠는 엄마의 병실에서 나오지 않았다. 지루해진 델로리스는 원피스의 장식 띠를 만지작거렸다.
에드먼드 집사, 아빠는 왜 아직도 안 나와요? 그리고 엄마는 언제 우리와 같이 집에 갈 수 있어요?
아가씨, 아버님께서 저에게 먼저 집으로 모시고 가라고 하셨습니다.
싫어요! 저는 엄마, 아빠와 같이 집에 갈 거예요! 아빠, 왜 이렇게 안 나와요?
델로리스는 잽싸게 병실로 달려 들어갔다. 하지만 평소 온화하고 점잖던 아버지가 의사의 멱살을 움켜쥐고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치료할 방법이 없습니다."라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우리 에버렛 재단이 당신들 병원에 얼마나 많은 후원을 했는데, 지금 와서 이런 소리를 하는 겁니까?
이런 돌팔이에, 밥벌레 같으니라고!! 쓸모없는 것들!!!
라이너스는 굳은 얼굴로 의사를 세게 밀쳐 바닥에 쓰러트린 뒤 분노에 찬 걸음으로 병실을 나섰다. 그러면서 벽 구석에서 떨고 있는 어린 딸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아빠... 엄마...
벽 구석에 웅크린 델로리스는 당황한 채 어찌할 줄 몰랐다.
그때, 집사가 황급히 문을 열고 들어와 바닥에 쓰러져 있던 의사를 부축하며 거듭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라이너스 님께서 갑작스러운 이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우셔서...
하... 이해합니다. 하지만 제가 드린 말씀도 사실입니다.
델로리스는 각종 의료기기에 둘러싸인 채 깊이 잠든 엄마를 멀리서 바라보았다. 엄마를 안아보고 싶었지만, 집사가 막아섰다.
아가씨, 어머님께서 방금... 깊이 잠드셨으니, 방해하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
제가 모시겠습니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시죠.
어린 소녀가 호화로운 침실에서 커다란 곰 인형을 꼭 껴안고 있었다. 침대 위, 바닥 그리고 방 구석구석까지 크고 작은 봉제 인형과 바비 인형이 가득했다.
집사에게 저택의 모든 장난감을 방 안에 가득 채우게 했지만, 델로리스의 두려움은 여전히 가시지 않았다.
에드먼드 집사, 엄마는 언제 집에 와서 저와 같이 있어 줘요? 저 너무 무서워서 잠이 안 와요.
아빠는요? 아빠도 며칠째 보질 못했는데... 엄마, 아빠 다 어디 간 거예요? 흑흑...
아가씨... 아버님께서는 당분간 다른 일 때문에 더 바쁘실 겁니다. 어머님께서는...
제가 문 바로 밖에 있을 테니, 무슨 일 있으면 바로 말씀해 주십시오. 그럼, 편히 쉬십시오. 아가씨.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한 집사는 방을 나가며 조용히 문을 닫았다.
어둠 속에 혼자 남겨진 델로리스는 입술을 깨물며 눈물을 참아봤다. 하지만 결국 곰 인형을 꼭 껴안은 채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렇게 한참 울다 지쳐서야, 델로리스는 잠에 들 수 있었다.
혼란스럽고 어두운 꿈속에서 다정한 손길이 델로리스의 뺨을 어루만지는 것 같았다. 귓가에는 부드럽게 흥얼거리는 자장가 소리가 은은히 맴돌았다.
잘 자라, 우리 아가.
엄마는 언제나 널 사랑해. 세상의 모든 따스함과 행복이 너와 함께할 거야.
장미 한 다발, 백합 한 다발을 우리 아가가 눈 뜨면 전부 다 줄게.
놀란 델로리스는 눈이 번쩍 뜨였다. 그렇게 꿈에서 깨어났지만, 방 안은 여전히 텅 비어 있었다.
엄마?
델로리스는 신발을 신을 새도 없이 문을 열고 엄마를 찾아 나섰다. 하지만 복도에는 아무도 없었고, 문밖을 지키고 있어야 할 집사마저 보이지 않았다.
아래층 지하실에서 아버지와 집사가 다투는 듯한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그래서 델로리스는 그 소리를 따라 살금살금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아빠가 단 한 번도 들어가게 허락하지 않았던 그 실험실 문이 반쯤 열려 있었는데, 문 틈새로 불빛과 함께 점점 격해지는 언성이 흘러나왔다.
델로리스는 차마 안으로 들어가지는 못하고, 문밖에 숨어 아빠와 집사가 다투는 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었다.
라이너스 님께서 지금 이 재단의 주인이시라 해도 이 말씀만은 꼭 드려야겠습니다. 이건 정말 도가 지나치신 것 같습니다!
저는 이사벨 부인께서 어린아이이셨을 때부터 이 에버렛 저택에서 일하며, 지금까지 그분의 성장을 곁에서 지켜봐 왔습니다.
부인은 존엄한 분이십니다. 라이너스 님께서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인형이 아닙니다!
이제 세상을 떠나셨으니, 마땅히 안식을 누리셔야 합니다. 지금처럼... 라이너스 님 손에 "실험 품"처럼 다뤄져서는 안 된단 말입니다!
집사 주제에, 어디서 참견이야?
방금 네가 말했듯이, 에버렛 재단의 새 주인은 바로 나다.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건 뭐든 할 권리가 있어.
라이너스 님! 당신은 당시 끼니도 잇기 힘들었던 몰락한 과학자였습니다. 그걸 잊으신 겁니까? 부인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오늘의 당신이 있을 거라 생각하시는 겁니까?
부인께서 당신처럼 겉과 속이 다른 사람에게 속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건방진 놈! 당장 그 입 다물어!
무언가가 쾅 하고 산산이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고, 델로리스 아빠의 더욱 거친 욕설이 뒤따라 전해졌다.
...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어두운 구석에서 눈물로 범벅이 된 델로리스는 몸을 웅크린 채 두 팔로 자신을 꼭 끌어안고 있었다.
